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68
013. 귀농의 이유
짐작만 할 뿐인 아버지의 가족 관계.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여태 살아오면서 큰아버지도 작은아버지도 고모도 본 적이 없다.
거기에 이모도 이모부도 외삼촌도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했다.
머리가 커 가면서, 막연하게 두 분이 다 고아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아버지가 네 엄마를 이리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주세요.’ 뭐, 그런 의미 같다.
태영은 부모님이 언제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식들도 그러한지는 모르겠다.
고려로 날아가기 전에는 크게 궁금해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을 뗀 이후.
아버지의 눈가에 반짝이는 것은 아마도 슬픔의 결정일 것이다.
억지로 참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버지는 고아다.”
“…….”
누나도, 태영도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아버지 말씀처럼, 친척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까.
“아니, 고아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무슨?
그런 의문이 들 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네 할아버지의 이름도, 어릴 때 살던 집도 기억에 없지만, 다섯 살 때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
이건 확실히 충격이다.
누나도 조금 놀란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그 몇 마디.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원인과 과정이 없이 결과로만 나타나는 일은 없다.
결과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원인이 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그 결과가 나온다.
여태 아버지가 말한 적은 없다.
그건, 오래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던 아픔일 것이다.
“너무 어려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꽤 잘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살았던 것 같다고?
아버지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스스로 다시 술잔에 술을 따라 다시 들이켰다.
“그리고, 친척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는 없다.”
친척도 있었던 것 같다고?
그렇다면, 대체 뭐지?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가지만, 빈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의 탄식 같은 말씀이다.
“다섯 살 때쯤, 모두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다.”
“…….”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를 나이이니,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는 모른다.”
그렇지.
다섯 살이면, 무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나이다.
그 나이대의 것을 기억조차 하기 어렵다.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다.
태영 역시도 다섯 살이나 그 이전의 기억은 1도 없다.
그런데, 다섯 살 때쯤인 것은 어찌?
태영의 의문을 뒤로하고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 후에 고아원에 맡겨졌고, 거기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5세.
그때는 결혼 적령기가 30세 이전이었다.
그럼 조부님과 조모님의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셨다고?
알 수 없는 바람이 머릿속을 한 바퀴 돌고 지나가는 것 같다.
“잘살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신……?”
“음, 그건 어릴 때는 몰랐고, 어른이 되어서 어느 날 문득 생각난 것인데, 조문객이 제법 많이 왔었던 것…… 같다.”
끝말을 살짝 흐리더니 또 말을 끊었다.
기억을 더듬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잘살았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후우~. 장례식장에 사람이 수백 명은 있었던 것 같거든. 물론 어렸으니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아, 네…….”
조문객이 많았으면, 잘살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다른 기억은 없어도 장례식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
아마도 일상의 일이 아니어서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충격이었을 테니.
“그런데, 친척은 없었나요? 왜 고아원에?”
조금 거북한 내용일 수 있다.
이런 유의 질문과 답은 일상의 대화처럼 나눌 수가 없다.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말이 나왔을 때, 마저 해야 한다.
“어렸을 적의 기억이어서 남은 것이 없다. 왜, 어떻게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소주 한 잔을 말없이 마시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
“고아원에 맡겨지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섯 살이면 자신의 성과 이름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나이이다.
그런데 고아원에 가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고?
“엄마두요?”
어머니도 고아였느냐고 묻는 누나.
“…….”
도리도리.
아니라고 작게 고개를 젓는 어머니의 동작, 대답 대신이다.
“어차피 알고 있는 것이 나을 테니, 말해 줘.”
그 주문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당신이 말해 줘요. 내 입으로는 못 해.”
“…….”
“……?”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후~
“네 엄마에게는 부모님, 그리고 두 언니와 남동생이 있다.”
숨을 크게 한번 내쉰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짧게 뒷말을 이었다.
“아니, 있었다.”
그 정도면 제법 형제가 많은 편인데, 과거형이다.
“돌아가셨어요?”
누나의 놀란 목소리다.
있었다는 과거형이면, 그게 맞으니까.
“돌아가신 것은 아닌 것 같네요?”
말투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그게 아니다.
그래서 태영이 담담하게 물었다.
아픈 이야기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
서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잠깐 바라봤을 뿐, 침묵의 시간이 제법 흘렀다.
“후~ 그래, 맞다.”
긍정의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는 하게 될 줄 알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알려 주마.”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신 아버지의 대답.
그래도 여전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고아인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인해 혼자가 되었다.”
“진짜요?”
누나가 많이 놀란 듯 물었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내쳐진 것이었구나.
“주위 모든 사람의 반대와 외할아버지의 완고한 뜻을 거역한 대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마주 보았다.
그 말이 가리키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은?
어머니가 고아인 아버지를 선택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선택한 사랑의 대가로는 너무 크다.
고려에 두고 온 아내 한서윤.
그 서윤의 어머니인 김아선 여사.
집안의 노비를 지아비로 선택한 양반집 딸이다.
그분이 치른 대가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를 보면 마음이 바뀌실 거라 생각했다.”
“……?”
누나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본인을 지칭하였으니까.
“그래서 서영이 너를 품에 안고 네 엄마와 함께 외가에 찾아갔다.”
“어디 감히 발을 들이느냐? 너 같은 딸을 둔 적이 없다고 하며 내쫓았다.”
아버지의 말을 이은 어머니는 두 손으로 눈가를 훔쳐 냈다.
코가 막히는 목소리여서 더 슬펐다.
그래서 결혼사진이 없었구나.
처음에 ‘아버지가 네 엄마를 이리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라는 말씀의 의미가 이거였구나.
새삼스럽게 무겁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두 눈에 고인 흥건한 눈물.
“흐음! 흠! 난 들어가마. 서영아, 네가 정리 좀 대신해라.”
어머니는 두 손으로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 냈다.
감정을 추스르며 그 말을 남긴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후, 억눌린 울음소리가 통곡이 되어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죄송해요, 어머니.’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 둔 그리움과 서러움이 오늘 태영의 질문으로 비어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치자.
형제 셋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보통은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만나지 않나?
“태영아, 우린 밖으로 나가자.”
“네.”
태영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었다.
태영은 술잔 둘과 안주 접시를 들고 뒤따라 나갔다.
5월의 날씨이니 이 차림으로 나가도 조금 쌀쌀한 정도다.
창고 앞쪽의 테이블에 소주병을 내려놓는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 엄마가 외할머니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리고 네 이모도.”
“지금이라도 연락해 보면 안 되나요?”
“24년간 연락 없이 살았다.”
“…….”
자조적인 목소리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
누나의 나이가 25세이니 누나를 안고 찾아갔던 그 이후에 발길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날, 너무나 모진 매를 맞았기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
때때로, 말로 당한 매질이 몽둥이로 맞은 것보다 더 아픈 경우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이니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네.”
“네 외할아버지가 네 엄마의 가슴에 박은 못은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깊고도 아프게 꽂혀 있다.”
“…….”
짐작만 할 뿐이다.
혹시 아버지에 대한 욕이 아닐까?
누나와 태영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두 분의 이야기.
그걸 오늘 털어놓으셨다.
그래도 가슴 한편에 숨겨 둔 또 다른 아픔이 남아 있다.
그것마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네가 질문한 것이 두 가지였지?”
“……네.”
귀농의 이유와 친척이 없는 이유를 한꺼번에 물었었다.
“귀농한 이유라…….”
말없이 별이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시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태영이 질문한 두 가지 중에, 이제 귀농한 이유를 말씀하실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는 생활화학 용품이 참으로 많다.”
뜬금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신다.
“……?”
“설거지에 사용하는 주방 세제, 비누, 샴푸 이런 것도 생활화학 용품이고, 세탁 세제나 표백제, 방향제, 탈취제, 방부제, 살균제 등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네, 그렇죠.”
“그것들의 대부분은 안전성이 입증되어 있지만, 유해성과 무해성의 경계선상에 서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
태영은 잘 모르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약도 그렇지 않은가?
“또 약간의 유해성을 감수하고 사용하는 것들이 제법 있다.”
“살균제 비슷한 경우 말인가요?”
“그래, 비슷해. 특히 살균제는 매우 중요한 생활화학 용품이다.”
“그렇죠.”
“그런 것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에게 무해한 살균제는 없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그런 생활화학 용품을 만드는 회사였구나.
“유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
태영이 모르는 분야다.
그래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말은 유해성을 인지하고, 작은 피해를 감수하면서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네.”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군.
“그리고, 또 역설적으로 유해성을 안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제조사가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폐해를 밝혀내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네요.”
“그렇지?”
“네.”
“그런데,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작은 사고가 있었다.”
아버지가 관계된 일일까?
“누구의 책임인가를 굳이 따지면, 회사의 관리 체계와 상관이 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하고, 태영도 잘 알고 있다.
“회사는 책임질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책임을 아버지에게 넘겼다는 말이기도 하다.
“너는 아직 학생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회사라는 곳은 가장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조직이면서, 때때로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이다.”
그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전제 설명인 것 같다.
“네, 아무래도.”
일단 동의해 드렸다.
“명문화된 규정보다 안전성을 더 강조하는 아버지는 회사 안에서 언제나 미운털이 박힌 존재였다.”
“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규정보다 안전을 더 강조하면,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감소하게 된다.
그것이 결과로 나온다.
미운털이 박힌 존재는 핑곗거리가 생겼을 때, 그 핑계에 얹어서 보내 버리는 방법.
그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없지 않았지. 그로 인해 평생의 일이라 생각한 직장을 잃었는데.”
“…….”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힘은 크지요.”
“그리고 소문은 많이 왜곡되어 업계에 빠르게 번졌고, 아버지가 설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선택의 길이 사라졌군요.”
“그래.”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으셨다.
태영도 말없이 한 잔을 비워 냈다.
지금 아버지에게서 간단하게 듣는 설명.
당시의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 젊은 나이였다.
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혹시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다시 해 보실 건가요?”
제법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태영이 물었다.
“취업? 아니면 그들과 싸우는 거?”
“어느 쪽이든지요.”
“아서라. 그런 싸움은 돈과 체력 소모, 정신력 소모를 가져올 뿐,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죠.”
“물론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돈이 없었고.”
싸우려면 실탄이 충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네 선물로 인해 돈이 생겼지만, 그래도 생각은 없다.”
“…….”
그 뒤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주로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주변 상황 이야기가 많았다.
“말이 길어졌구나. 이만 들어가자.”
아버지는 남아 있는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네, 곧 들어가겠습니다.”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어떠세요?’
하는 말은 아꼈다.
고아원에 가기 전에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
그것을 머릿속에 남겨 두고 아버지와의 대화는 끝났다.
아버지의 아픈 이야기다.
머리가 커서 아버지와 나눈 꽤 긴 이야기였다.
살아온 기간으로만 따지면 아버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고려로 날아간 이후에, 자신에게 칼끝을 내미는 자를 살려 둔 적이 없다.
고려 땅에서는 구호가, ‘우리에게 칼을 뽑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처단한다.’였다.
이곳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돌려준다.”
과거에 일어난 일까지 소급해서.
“유재구? 노의성? 너희 둘이 그 시작이다.”
아버지와 가족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다.
그러니 너희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락으로 떨어트려 주마.
“위니.”
[예스, 마스터 에뒨.]“들었지?”
[부친의 부모님과 관련된 전 가족 관계, 부친이 다니던 회사, 조사 착수하겠습니다.]“급하지는 않아. 천천히 해.”
[네. 모친의 집안은 필요하지 않습니까?]“그쪽도 필요해. 그런데 아버지의 전 가족 관계는 근거가 될 만한 무언가 없이 가능한가?”
[어차피 부친으로부터 더 이상 이야기를 들으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그렇지.”
[기억에도 한계가 있으니, 현재의 내용만으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그래.”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