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
037. 돌개몰 사건(6)
일본 지리를 배울 일도 없고, 일본 여행 같은 것을 해 본 일이 없으니 태영으로서는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아니면 홋카이도나 오키나와 같이 종종 뉴스에 등장하거나, 역사적 이유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위치를 알고 있기가 쉽지 않다.
하긴, 도쿄도 일본의 동부 해안 어디쯤으로 알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위치는 모른다.
다만, 강제 노역 문제로 뉴스에 자주 나왔던 군함도 같은 곳은 나가사키 남쪽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상황이니 와카마쓰라는 곳은 스마트폰이나 PC를 켜면 혹시 자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아, 눈이가 있었지.
눈이는 세계 지도 복사 작업을 하고 있으니 와카마쓰의 위치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사포로 돌아가서 지도를 보면서 눈이에게 물으면 정확하게 나올 것이다.
“이유는 알아보았는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방에 기근이 심해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태영은 묶어 놓은 왜구들을 돌아보았다.
피골이 상접한 놈은 하나도 없다. 하긴, 피골이 상접해서는 노략질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아닌 것 같다.
와카마쓰라는 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이곳 돌개몰이나 달구곶으로 들어왔으면 분명히 일본 서부 해안일 텐데, 해안선을 따라 이동해 보면 자기네들 나라에도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을 것인데 바다 건너 이곳까지 왔다고?
달구곶 바닷가에 매여 있는 저 배로 오려면 하루 만에 오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그 먼 길을 왔단 말이지?
“상관없지. 일단 모두 묶어서 사포로 끌고 간다. 그리고 호장은 돌아왔나?”
“네, 모두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호장의 가족들 스물하나, 가병들 숫자는 모두 열여덟인데, 우리를 향해 칼을 뽑았던 두 명을 사살하고, 호장을 포함하여 열일곱입니다.”
달구곶은 꽤 큰 마을인데 비해 가병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여기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
“네, 그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박세인은?”
“대장님이 짐작하신 것이 맞았습니다.”
“맞아?”
“네, 박세인은 왜구가 들어오는 때에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호장 일행을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늘 술을 입에 달고 사는 데다, 술만 마시면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인간 망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완력이 제법 좋아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데다 호장의 말도 잘 듣지 않는답니다.”
“그래? 혼자라도 남아서 왜구들과 싸운 줄 알고 쓸 만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잘못짚었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란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니까.
거기다 술만 마시면 인간 망종인데, 맨날 술을 입에 달고 산다고?
아주 형편없는 놈이었네.
“체격도 좋고, 힘도 좀 쓰게 생겼더구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던데요.”
하긴, 사포의 병사들은 특공 무술을 훈련해 오기를 2년여가 되었다.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웠거나, 완력이 남다르지 않으면 쉽게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잘 훈련되어 있으니 당연한 것이리라.
“대들었어?”
“네, 우릴 향해 주먹질을 하다가 박 일병 발길질 한 방에 나가떨어졌지요.”
“박일병은 그리 센 편이 아닌데.”
“네, 그렇지요. 일단 그놈도 함께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한데, 가병들끼리 조금 전까지도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있는 걸 지들끼리 싸우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대장님 오시는 것을 보고 이리 와서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놈들 봐라. 뭘 잘했다고 감방에 들어앉아서도 싸워?”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앞장서게.”
여기 사람이 죽어 가요. 빨리 누가 좀 와 보세요~
간수, 여기 사람이 죽어 가요. 빨리빨리~
옥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고함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들끼리 심하게 싸운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사고가 생긴 듯했다.
해는 거의 다 넘어가서 어둑어둑해지는데, 옥 안은 불이 밝혀져 있지 않기에 어두워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안쪽에 작은 관솔불이 하나 켜져 있고, 한 명이 옥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태선, 무슨 일이야?”
“네, 중대장님. 아까부터 안에서 서로 잘 했느니 못 했느니 심하게 싸우고 있었지 않습니까?”
옥사 안을 보던 2소대장인 김태선이 후다닥 뛰어나와 보고를 했다.
“그랬지. 내가 있을 때도 큰소리가 났었으니까.”
“네, 중대장님이 대장님 모시러 간 사이에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저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 명이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의무병에게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호장과 다른 가병 두 명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역시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확인해 봐.”
태영이 김태선에게 상황 파악을 하라고 하자 김태선이 옥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동안 웅성거린 후에 되돌아 나왔다.
“저희들끼리 다투다가 가병 한 명이 사망한 것 같습니다. 호장과 다른 가병 한 명, 그리고 박세인이 중상을 입었고, 경상자가 여섯입니다.”
“어떻게 된 거야?”
“서로 잘잘못을 따지다가 호장이 가병들을 시켜 박세인을 집단 구타했는데, 박세인이 격렬하게 항의하며 싸우다 가병 한 명을 벽으로 힘껏 밀쳤다가 후두부에 타격이 심해서 죽은 듯합니다. 그리고 함께 뒤섞여서 싸우다가 다른 사람들도 다쳤다고 합니다. 죽은 가병은 모두 다 죽은 줄을 몰랐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얼떨결에 그리된 듯합니다.”
“하는 꼴을 보니 안 되겠군. 사포에서는 우리가 오기를 학수고대할 텐데, 더 이상 우리가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태영의 그 말에 정하연도 김웅겸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해룡호의 진수식으로 사포와 율촌의 잔칫날인데 이렇게 되었으니 그쪽의 사람들이 모두 궁금해할 것이다.
“권 대위가 2개 소대를 데리고 당분간 호장 직무를 대리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왜구들을 태우고 사포로 돌아간다.”
이미 돌개몰에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두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슬슬 해가 져서 이제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지체하면 여기서 하루 숙박을 해야 할 판이다.
태영은 돌개몰에서 권우석에게 시킨 것처럼 이것저것 조치가 필요한 사항을 지시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다만, 돌개몰은 호장이 없어진 상태이고 달구곶은 잘못한 사람들을 옥에 가두었으니 상황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태영의 의사를 확인하려 들지 말고,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묻고, 어떻게 조치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상황에 맞게 판단하여 시행하라 시켰다.
2년 동안이나 태영의 옆에서 봐 왔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생포한 왜구들을 모두 해룡호에 태우고 사포를 향해 출발하자 정하연이 비서실 병사들을 데리고 태영이 기다리고 있는 1호 선실로 왔다.
사포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눈이를 불러서 와카마쓰가 어디쯤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이다.
해룡호에는 선원들이 잠을 자고 개인 생활을 하기 위한 선실이 충분히 여유 있게 만들어져 있다.
그 중에 함교의 바로 아래층에 함교와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진 1호 선실은 태영과 정하연을 위한 곳이다.
1호 선실의 좌측으로 들어가면 30명이 앉을 수 있는 대회의실이 있고, 우측으로 들어서면 넓은 거실이 있는데, 그 거실에서 4명이 앉을 수 있는 소회의실 2개와 침실로 통하는 문이 있으며, 침실에서 욕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거실에서는 대회의실로 들어가는 별도의 문이 나 있지만, 회의실에서는 거실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그러나 넓기는 해도 아직 내부 장식이나 집기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눈이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 이리 좀 오라고 했어.”
집기가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네, 대장님.”
“와카마쓰가 대략 어디쯤인지 알고 있나?”
“와카마쓰, 와카마쓰. 기억에 없습니다.”
하긴, 세계 전도이기에 세세한 지명들이 다 나올 수가 없긴 하다. 이놈들을 취조해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
해룡호가 돌아오자 사포 해안에는 환한 불빛이 바닷물 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보다 먼저 사포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두 개의 해안 초소에서 경보기가 울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달구곶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부지런히 되돌아왔던 것이다.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는가?”
“이놈들은 대마도에서 온 왜구가 아니고, 왜국의 본토에서 온 놈들입니다.”
정인구가 많이 궁금한 듯 물었고, 태영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태영이 그러는 사이에 다른 병사들도 마을 사람들의 질문에 답해 주고 있었고, 조선소를 떠나지 않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사포로 들어온 왜구들의 숫자는 몇이나 됩니까?”
사포에 들어온 왜구들을 잡는 것까지만 보고 갔기에 정인구에게 물었다.
“전체가 여든두 놈인데, 그 중에 다섯은 죽었고, 중상자가 넷에 경상이 일곱, 나머지 예순여섯은 아주 멀쩡하네. 몸도 건장해서 부려먹기 딱 좋아 보여.”
“돌개몰하고 달구곶은 사망자가 많은데 비해 이쪽은 생존자가 많군요.”
“그렇지. 여기야 바다에서 오는 놈들을 차근차근 잡았지만, 거긴 민가를 약탈하는 중에 진압을 했을 테니.”
“정 실장.”
“네, 사포까지 포함하여 침입한 왜구 총원 360인, 사망 81인, 중상자 포함하여 생포한 자가 242명인데, 중상자 17명 중에 사망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몰라도, 그들을 제외하면 경상자를 포함하여 228인은 노역을 시킬 수 있습니다.”
태영이 부르자, 방금 정인구가 말한 왜구들의 숫자를 포함하여 총규모를 말해 주었다.
“꽤 많네. 이놈들을 데려다 노역을 시키면 방파제와 선착장은 1년 안에 해결되겠어. 윤 반장, 안 그런가?”
“네, 돌개몰이나 달구곶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는 했는데, 이 왜놈의 새끼들을 데려다 시키면 아주 좋습니다. 좀 더 잡아다 주시지요.”
윤점돌이 태영의 말을 듣고 아주 신나서 대답을 한다.
“모두들 제대로 걸어라.”
그때 왜어로 소리치는 오인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줄줄이 묶인 왜구들이 수용소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 상병.”
김웅겸이 오인택을 불렀다.
“네, 대대장님.”
“가능하면 몰아 놓지 말고, 여러 방으로 흩어 두도록 해. 그리고 당분간 음식을 주지 말라고 하고.”
“네, 그렇게 시행하겠습니다.”
“대대장.”
“네, 대장님.”
“왜구를 정벌하러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얼마나 걸려?”
“이제 막 진수를 했기에 해룡호에 실린 것이 많지 않습니다, 기본 물품들을 채우는데 보름을 예정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 중에 장작과 생필품의 준비도 완료할 수 있습니다.”
“좋아. 내일부터 당장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와카마쓰가 어딘지 확인했나?”
“네, 확인했습니다. 눈이가 취조하는데 함께 있었는데, 결국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눈이를 돌아보았다.
“어디야?”
“네, 기타규슈라는 곳에서 서쪽으로 이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기타규슈?
거긴 현대로 따지면 상당히 대도시인데.
일본을 구성하는 네 개의 커다란 섬은, 북쪽 끝의 홋카이도, 가장 큰 섬인 혼슈, 그리고 그 혼슈의 남쪽에 붙어 있는 시코쿠, 남서 방향의 끝에 있는 규슈.
본슈와 규슈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다시피 한 그곳이 기타규슈, 다시 말해 북구주라는 매우 큰 항구 도시이다.
그런데, 거기서 왔다고?
***
왜구들의 침입으로 인해 진수식의 마무리가 이상하게 되었지만, 김하석 대목장이나 정현 대철장을 비롯하여 오늘 해룡호가 완성되는데 이바지한 일등 공신들을 치하하고, 은병 5개씩을 상으로 주었다.
그것으로 함께 일하며 고생한 사람들과 작은 기쁨이라도 나누라는 말과 함께.
“오늘 하루 너무나 뿌듯해요 태영 씨.”
비서실장의 위치에서 아내의 위치로 돌아온 정하연이 뜨끈뜨끈한 목욕통으로 들어오면서 기쁜 듯이 말했다.
Y자 복근과 근육이 잘 발달된 탄탄한 몸이 수증기에 젖어 번들거렸다. 태영을 따라 2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운동을 한 결과이다.
Y자 복근이 발달한 만큼 사람의 허리가 어찌 저리 가늘어질 수도 있나 싶도록 잘록한 허리를 타고 오르면, 알맞게 솟은 젖가슴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태영의 눈앞에는 정하연의 젖가슴의 끝에 꽃송이처럼 매달린 핑크빛 유륜이 마치 유혹하듯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겨우 열여덟의 나이, 현대를 기준으로 봐도 이제 겨우 성년이 된 나이인지라, 태영에게는 여전히 어리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혼을 하고 2년이 흐른 지금은 성숙한 여인이 되었고, 나이에 맞게 매혹적이었다.
“그래, 나 역시 그래. 이리 와.”
목욕통 안의 의자에 앉아 태영이 부르자, 손을 뻗으면 앞에 있는 정하연의 어깨에 손이 얹힐 정도로 작은 목욕통이지만 태영이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태영이 정하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팔을 돌리자 태영의 가슴에 등을 가져다 대고는 품속으로 쏙 들어와 안겼다.
동그란 엉덩이의 탄력이 허벅지에 느껴지고 곧이어 매끈한 등의 감촉이 태영의 가슴에 느껴졌다. 태영은 살며시 배 앞쪽으로 팔을 감으며 부드러운 젖가슴을 손으로 받쳤다.
“으음. 뜨끈한 물속에서 닿는 태영 씨 손길이 너무 좋아요.”
“나도 좋은데.”
“오늘 왜구들을 진압한 것이 마치 꿈만 같은 거 알아요?”
“왜?”
“2년 전 그때, 왜구들에게 묶여서 끌려갈 때, 태영 씨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왜구들을 소탕하면서 그때가 더욱더 생각났거든요.”
“…….”
태영은 말없이 손으로 정하연의 어깨에 물을 끼얹었다.
“그때, 그대로 끌려갔으면, 태영 씨와 보내는 이 꿈결 같은 행복을 느껴 볼 수도 없었을 테고, 오늘같이 통쾌하게 왜구를 진압하지도 못했을 테고, 저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자진을 했을 텐데.”
“하연아.”
“알아요. 이런 이야기 별로 좋은 거 아니라는 거. 태영 씨가 늘 당부하셨기도 했지만,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때의 일을 잊고 살려고 했는데, 오늘 왜구들을 보면서 더욱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해요?”
“나쁜 기억보다는 통쾌하게 느껴지는 건 좋지. 통쾌하지 않았어?”
“맞아요. 통쾌했어요.”
“그럼 된 거야. 그지?”
“이제부터 철저하게 그들을 응징하실 거죠?”
“그래, 여태까지는 그들이 우리를 노략질했지만, 이젠 우리가 그들을 노략질해 보자고.”
“저한테 많이 맡겨 주실 거죠?”
“그럼. 당연하지.”
“당신은 나의 생명이고 나의 모든 것이에요. 그리고 사포와 율촌에 사는 모든 사람들, 아니 김 대목장과 그 일행들을 포함해서 온정 철소에 사는 그 모든 사람들의 꿈이고 희망이죠.”
“아이쿠, 낯간지러워.”
태영이 웃으면서 몸을 움츠리곤 간지러운 시늉을 했다.
“아버지에게 물어봐도 태영 씨처럼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해요. 거기다가 태영 씨가 우리 사포와 율촌의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둘 만들어 가는 그 모든 것들이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없이 어떻게 살아?”
“전에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었죠. 지금은 아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물건들을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보급하는 장인들을 글만 읽는 양반들보다 높이 쳐 주고 있는 곳이 사포와 율촌이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거야.”
“당신, 참 대단해요.”
그 말과 함께 정하연은 깊은 숨을 쉬더니 몸을 돌려 태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깊게 맞추었다. 그리고 매끈하고 공처럼 탄력 있는 정하연의 몸이 강렬한 유혹으로 감겨 들어왔다.
태영을 죽이려던 오중현의 칼에 찔린 다리의 지혈을 위해서 댕기를 달라는 말이 청혼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댕기를 부탁하는 바람에 코가 꿰인 것이지만 정말로 잘 꿰인 코였다.
율촌과 사포를 통틀어 가장 미인이기도 하거니와 가장 똑똑하기도 하고, 가장 키가 크기도 하다.
그래서 태영과 나란히 걸으면, 많은 사람들의 작은 키와는 다르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렇게 오직 부부만이 알 수 있는 여인으로서의 매력조차 차고도 넘칠 지경이라니 이 얼마나 코가 잘 꿰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