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0
015. 친구의 선물
“정당방위가 되는지 확인 좀 해 봐.”
대한민국에서는 법으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래도 위니가 조사를 하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정당방위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때리면 맞아라, 칼로 찌르면 찔려라, 입니다.]“무슨 놈의 정당방위가 그래?”
[그 부분에 대한 항의는 무척이나 많고,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몇 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도 가해자가 되어 쌍방 과실로 처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아…… 기억난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서 가물가물하지만.”
[비슷한가요?]“아마도. 친구들끼리 강도가 칼로 찌르면 그냥 칼 맞고 죽어야지, 강도를 때리면 형무소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것 같아.”
29년 전의 기억이니 가물거릴 수밖에.
[사례가 많지 않지만, 사건보다 댓글이 흥미롭습니다.]“뭐라고 되어 있는데?”
[가만있으면 저항 안 했다고 하고, 저항하면 가해자라고 한다.]“뭘 어쩌라는 거야?”
[피해자가 죽어야 정당방위로 인정할 겁니까? 그런 자조 섞인 댓글도 있습니다.]“웃음도 안 나오네.”
[그만큼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알았어. 내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겠군. 그나저나 알리바이는 충분하지?”
[네, 충분합니다.]위니에게 조금 설명을 들었다.
“대략 진행되는 순서를 말해 봐.”
[고발장이 접수되면, 그것이 수사과에 넘어가서 형사에게 배정됩니다.]“그리고?”
[배정받은 형사 또는 조사 담당이 기본 검토를 하고, 고소인을 불러 조사합니다.]“응.”
[이때, 맡고 있는 사건의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조정되어 빨라지기도 하고, 뒤로 밀리기도 합니다.]“그건 현실적인 거네. 그다음에?”
[그 후에 피소고소인을 소환하여 조사하는데, 통상 출석 요구서를 발부합니다.]“그럼, 내 손에 출석 요구서가 오고, 출석 요구 일까지 기간이 얼마나 걸리지?”
[몇 가지 사례를 확인한 결과, 최소 20일에서 2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 일에 유재구가 개입되어 있기에 20일 전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출국 금지되어 있지 않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그 전에 출국하자고.”
[여권이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통상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봐.”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가장 빠르면 3일, 통상 5일이면 받을 수 있습니다.]“알았어. 여권 나오면 바로 출국하고, 대응은 돌아와서 하자.”
[네, 마스터.]“그리고, 유재구.”
[네.]“기자 회견도 안 하고,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도 안 하는데 움직임이 있어?”
[동영상에 얼굴이 선명해서 발뺌은 불가능할 것입니다.]“수사 착수는 하지 않았지?”
[네, 조사할까요?]“아냐, 놔둬 보자.”
유재구를 매장시킬 것인지, 아닌지 생각이 여러 가지다.
그러니 좀 더 기다려도 된다.
[그리하겠습니다.]태영은 서초구청에서 일반 전자 여권으로 신청을 했다.
다들 일이 바빠서인지 태영에게 관심이 없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은 창구 앞에서 서류를 받던 담당자밖에 없다.
***
커피숍.
창밖의 도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태양의 빛이 사라진 그곳이 상점들의 불빛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환한 빛으로 밝혀진 거리가 내다보이는 카페 안.
서영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커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 후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대 증발 사건.
분단된 나라로 인해 모든 남자는 군에 가야 한다.
그렇게 군에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 슬프고 안 된 일이지만,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울음소리가 반인 엄마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분명히 남의 일이었다.
사라진 사람들 중에 동생 태영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
연차를 내어 여주의 부모님께 달려갔다.
군에서 온 우편물이라며 서영에게 내민 종이.
동생이 ‘부대 증발 사건’의 군인들 중에 한 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상이 반쯤 무너진 줄 알았다.
자주 티격태격하는 오누이 사이였다.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아빠와 엄마의 얼굴.
그 순간 티격태격하던 상황이, 사이가 좋았던 동생에 대한 기억으로 바뀌었다.
찾아간 부대에선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기자들의 고함 소리, 플래시 터지는 소리, 사라진 군인의 가족들이 부르는 이름과 이름들.
부모, 형제, 아내들의 고성 사이로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어느 날 ‘왜 너만 살아왔는데’라는 말이 언론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제목을 빼고 기사가 나왔다.
그로부터 수일이 지난 후.
‘부대 증발 사건’의 현장에서 동생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동생 혼자 나타났다고 했다.
다시 연차를 내고 부모님과 함께 부대로 찾아갔다.
여전히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동생 일 때문에 자주 연차를 쓰긴 했다.
혹시, 그것 때문인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 위안일 뿐이었다.
해고 수당은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취업난이 심해서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거기에 공채 시즌도 아닌데 해고라니.
경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짧은 경력이다.
재취업을 하려면 사직한 이유는 꼭 물어본다고 했다.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거지?
취준생.
말이 좋아 취준생이지 백수다.
어느 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의 조사를 받고 있어서 언제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런데 전역을 했단다.
동생에 대한 걱정과 해고로 인한 상실감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몸을 울리는 희열로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참았다.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동생은 ‘왜 너만 살아왔는데’라는 말을 행운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복권을 내밀며 전역 선물이라고 했다.
“이 기집애, 어디다 정신 팔고 있어서 오는 줄도 몰라?”
“어? 아, 어서 와.”
자신의 앞에 털썩 앉으며, 한 소리 하는 대학 동기 서이현이다.
오빠가 하는, 인터넷 온라인으로 쇼핑몰 사업을 함께한다.
그 일이 정말 재미있다고 자랑하는 친구다.
***
(지금 네 집 앞이다.)
문자를 보내 놓고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스마트폰이 알려 줄 응답 신호를 기다리며.
서울특별시가 맞는데, 군 생활하던 산골짜기와 다름없다.
어둠에 묻혀 있어서 더욱 그래 보인다.
시멘트가 대충 발린 낮은 담벼락.
그 담벼락을 끼고, 역시 낮은 지붕이 촘촘하게 있는 것이 다르다.
(네가 우리 집을 어찌 알아?)
5분이 지났을 때 온 답신이다.
스마트폰의 시계는 밤 12시 52분.
(어려웠다.)
그렇게 답신을 보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달빛.
전신주에 매달린 작은 외등의 불빛.
희미하게 박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지친 발걸음과 가쁜 숨소리.
이곳은 지하철 종점 역에서도 제법 먼 길이다.
오르막을 한참 동안 올라온 곳으로, 걷기에 부담스러운 길이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서 마을버스는 오지 않는다.
설사 마을버스가 있다고 해도 운행을 중단했을 시간이다.
“…….”
오르막길의 아래쪽.
태영을 발견한 박준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대로 서서 태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
태영 또한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가라.”
전역을 축하해 주던, 치킨집의 친구가 맞다.
그러나 그 친구와 다른 사람처럼 말한다.
“친구가 집 앞까지 왔는데, 잠시 들어가자 소리도 안 하냐?”
“…….”
“보여 주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거, 말 안 해도 안다.”
“…….”
“그래도 우린 친구 아니냐?”
박준혁은 여전히 말없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찾아온 이유나 말하고 그냥 가라.”
제법 긴 침묵 후에 나온 말이다.
저놈의 자존심은.
“어머니 좀 뵙고 가면 안 되나?”
“……그냥 가라.”
“어머니 돌아가시고 후회할 거냐?”
“뭐?”
~컹~컹컹~
박준혁의 고함 소리 때문인지, 어느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다. 그 말 사과하지.”
“…….”
빤히 태영을 바라본다.
“그래도 어머니는 좀 뵙고 가자.”
오지랖이 넓은 건 안다.
저놈의 자존심으로 쉽게 굽히지 않을 것이기에 모친의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그로 인해 더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래도, 태영으로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박준혁의 상황도 더 좋아질 리 없다.
“씨발 새끼.”
기억 속에는 박준혁이 단 한 번도 욕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주먹이 날아오지는 않는다.
“욕해도 좋아. 그래도 어머니는 좀 뵙고 가자.”
대체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네가 뭔데?”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다.
마치 호수 아래로 잠겨 들 것 같다.
“친구.”
“……하아.”
박준혁이 깊게 내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픈 어머니를 뵙고 인사 좀 드리고 가련다.”
~저벅~
서로 말없이 마주 보고 서 있던 시간은 5분이 넘었다.
박준혁이 발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태영과 자신의 중간 지점에 있는 벽에 보이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역시, 찾아오길 잘 했다.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앞에서 기다릴 생각도 했다.
거기서 만났으면, 태영이 생각했던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만 나빠졌을 것이다.
집 앞이다 보니 기세가 조금 꺾인 것이다.
대문을 들어섰다.
마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작은 공터.
그 옆에 나무로 된 쪽문이 있다.
지붕은 천막 같은 재질로 덮인 집이다.
지붕의 끝은 태영의 키보다 한 뼘이 낮다.
그 문의 우측, 멀찍이 제대로 집 모양을 갖추고 있는 집이 있다.
이 집의 주인이 사는 곳이다.
집주인도 가난하게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박준혁이 사는 곳은 집이라고 볼 수도 없다.
최대한 성의 있게 표현해서 개집이다.
~끼익~
박준혁이 열쇠도 없이 나무로 된 쪽문을 문을 밀었다.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딸깍~
스위치 켜는 소리.
부엌으로 보이는 좁은 공간이 희미하게 밝아 왔다.
태영의 눈에 보이는 부엌의 모습.
그릇들은 비록 낡아 빠졌지만, 현대식 물건들이라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 태영이 ‘부대 증발 사건’에 날아갔던 고려 양민들의 부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부엌을 통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인 듯, 미닫이로 된 방문을 살짝 밀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음, 피곤하지? ……어서 자거라.”
조금씩 간격을 두고 속삭이듯 들려온 말.
자식에 대한 걱정이 가득 들어 있지만, 건강하지 못한 몸이어서 그렇다.
힘이 없고 아주 느릿하다.
“네, 어머니. 친구가 와서요. 잠시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조금 놀라는 음성과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럭~
~딸깍~
미닫이문을 열고 손이 들어가더니 다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보다는 조금 더 밝은 빛으로 불이 켜진 방.
침대는 없는 전형적인 달동네의 쪽방이다.
박준혁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태영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불이 깔린 방.
병색이 완연하고 희끗희끗한 머리가 헝클어진 노인.
박준혁의 어머니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방 안에는 그 흔한 TV도 없다.
한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옷장, 칠이 벗겨져 나간 서랍장이 가구의 전부다.
다섯 명쯤 앉으면 가득 찰 만큼 작은 방이다.
이 좁은 방에 박준혁과 그의 어머니가 산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준혁이 친구 최태영이라 합니다.”
“…….”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 중간에 매달린 형광등 불빛에 그늘이 진 태영의 얼굴을 살펴보는 듯.
태영은 그늘이 지지 않도록 방바닥에 앉았다.
“어머니……라. 준혁이 친구에게서 처음 듣는 호칭이네. 어서 오게.”
친구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는 호칭이 생소한 모양이다.
“네, 어머니.”
“누추한 집이어서 뭐 내어 줄 것도 없고…….”
“걱정 마십시오, 어머니. 밤도 늦고 해서 어머니 얼굴만 뵙고 저도 가려구요.”
“그래, 그래.”
“대신 준혁이가 저를 때리려고 하면 한번만 말려 주십시오.”
“때려? 왜?”
모친의 의문을 뒤로하고, 태영은 들고 온 패키지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박준혁, 이거 내가 빌려 주는 거다.”
“……?”
무슨 소리야?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일 당장 어머니 입원시키고, 다음에 네가 회사 생활하면서 평생에 걸쳐서 갚아라.”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 뭉치를 풀었다.
풀린 신문에 누런색의 돈 뭉치가 가지런히 모여 있다.
3억.
종이에 말아서 태영이 들고 온 돈의 액수다.
“헉!”
“야, 야 이 씨…….”
모친의 놀란 숨소리와 박준혁의 고함 소리다.
유재구에게서 압수한 돈이 화장실 천장 속에 숨어 있다.
그렇지만, 소득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1등짜리 복권을 샀다.
그리고 증명이 가능한 소득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만들어 내느라, 지난주에 와야 했던 것을 오늘 왔다.
박준혁이나 모친의 통장 번호.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다.
물어본 적도 없는 통장 번호를 어찌 알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본인에게 물으면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따위 이벤트를 벌이게 되었다.
“어머니, 말려 주셔야 합니다.”
태영은 일부러 몸을 살짝 움츠리며 모친을 바라보았다.
“…….”
“…….”
모친도, 박준혁도 말을 잃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표정.
그리고 긴 침묵.
희미한 불빛 아래 박준혁의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받아들였네. 다행이다.’
절대로 울지 않을 것 같던 친구.
칼바람이 불 것 같은 친구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이 이벤트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친은 태영을 한번, 박준혁을 한번 바라보았다.
“이건, 차용증. 확실하게 네 이름 쓰고, 사인하고 다음에 만났을 때 나에게 주면 된다.”
“야, 야…… 이… 씨……바…….”
박준혁의 입에서 욕.
그러나 그건 욕이 아니다.
“고맙다는 말은 사양이다. 너에게 빚 지워 놓는 거니까.”
“…….”
“어머니, 건강하게 일어나십시오.”
“이…… 이기…… 이게 다 무슨 소리고?”
“어머니 치료하고, 집도 어머니 움직이시기 편한 곳으로 이사해라.”
일어서며 박준혁에게 말했다.
“나 간다. 어머니 저 갑니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겨를을 주지 않아야 한다.
재빨리 문을 열고 움직였다.
부엌으로 나서는데, 뒤에서 옷자락을 잡는 박준혁의 손길이 느껴졌다.
“도망 안 간다. 밖에 있을 테니까 천천히 나와.”
그 말끝에 옷자락을 잡은 힘이 사라졌다.
“어머니…… 잠시 밖에, 친구 보내고 오겠습니다.”
태영이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갈 때 그 말이 들렸다.
곧이어 박준혁이 뒤따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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