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1
016. 새장 밖으로(1)
태영은 말없이 하늘을 보고 서 있었다.
시멘트 바닥이 쓸리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뒤에서 태영의 몸을 움켜잡는 박준혁의 손길.
남자에게 포옹을 당했다.
에이.
어깨가 축축해진다.
“고맙다. 절대로 잊지 않으마.”
물기가 줄줄 흐르는 박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난, 전에 말했던 여행을 간다. 아마 한두 달 후에 돌아올 거다. 그때 물어라.”
“……그래, 잘 갔다 와라.”
그 말을 들으며 발걸음을 대문 밖으로 옮겼다.
당분간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어머니 회복할 때까지 곁을 지킬 수 없나?
그런 말을 해 줘야 하는데, 그건 쓸데없는 소리다.
***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벗어나는 친구의 뒷모습.
박준혁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집은 언제나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대신,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다.
기일도 모르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형제에 대한 기억도 없다.
이해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항상 궁금했다.
어머니의 가슴이 아플까 하여, 단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몸이 편치 못한 어머니.
몇 년 전 겨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
밤새 눈이 내려 미끄러워진 이 비탈길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수 미터를 미끄러지고 굴러가는 사이에 여러 번 벽에 부딪쳤다.
그날따라 새벽에 눈이 내려서, 구청에서 염화칼슘을 뿌리기 전이었다.
염화칼슘을 뿌려도 이런 가난한 동네는 다음 날이 되어야 차례가 온다.
길이 위험해도 어머니는 집을 나서야 했다.
그것이 사고로 이어졌다.
조금 더 아래쪽에 방이 두 개인 집에 살았지만, 보증금을 뺐다.
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그 돈으로도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제대로 치료를 하면 걸을 수 있을 텐데, 돈이 없었다.
어머니도 더 이상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채 시장에서 돈을 빌리겠다고 했을 때다.
거기에 손을 대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며 울면서 말렸다.
더 이상 쓸 수 있는 돈이 없을 때, 이 집으로 이사 왔다.
원래는 집이 아니다.
이집 주인이 창고로 쓰던 곳이다.
‘개집이지.’
여기라도 와서 살겠다고 집주인에게 사정사정을 한 사람은 박준혁 자신이다.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으니까.’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자신은 다친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절대로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소원.
남들에게 네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알려서 동정을 받지 말라는 어머니의 부탁.
도움을 준다고 무조건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측은하게 보는 것은 싫다.
동정하는 것도 싫다.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은 더 싫었다.
그래서 독이 올라서 털을 바짝 세운 들짐승처럼 살아왔다.
남들은 그것을 보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
최태영.
대학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친구 중의 한 명이다.
군에서 ‘부대 증발 사건’으로 수백 명이 동시에 사라졌고, 8일 후에 유일하게 살아온 친구.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사건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기적의 생환자.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벌레처럼 보지 않았다.
동정하지도 않았다.
단 한마디였지만, 그냥 빚을 지워 둔다고 말했다.
그러면 된 거다.
‘친구’라고 대답했을 때, 무너질 뻔했다.
그것을 가까스로 버텨 냈다.
물을 것이 많았다.
‘우리 집을 가르쳐 준 사람이 없는데.’
궁금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학교에 없다.
이 주변 사람들.
어머니를 치료한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전부다.
어찌 알았을까?
‘너도 부자는 아니었는데.’
힘들게 살았다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 궁금했다.
이 돈으로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 산비탈 마을을 벗어날 수 있다.
치료비로 쓰고, 얼마나 남을지 몰라도, 평지로 이사 갈 수 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평생을 네 종으로 살라고 해도 네 말이라면 그리해 주마. 이건 나의 맹세다.”
박준혁은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친구 갔니?”
“네, 어머니.”
“이돈…….”
“네, 어머니.”
박준혁은 대답을 하면서 어머니가 건네주는 차용증을 받아 들었다.
자주 볼일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차용증 형식이다.
그렇게 쓰여 있었다.
3억을 빌려 주고, 상환 예정일도 없다.
연말에 3천 원을 이자로 받겠다고 한다.
커피나 한잔 사 줘, 그 말이다.
“미친놈.”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준혁아.”
“어머니, 친구의 선물입니다.”
“……그래?”
“네, 그러니 써도 됩니다. 그리고 그놈이 제 종으로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방금 하늘에 맹세하고 왔습니다.”
“준…….”
박준혁은 앙상한 어머니의 몸을 살며시 안았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의미도 있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숨기기도 해야 했다.
“내일, 바로 병원에 가요. 그리고 건강해지세요.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래…… 오냐…….”
***
“내일, 표 있지?”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며 위니에게 물었다.
새벽녘의 어둠이 모든 곳을 덮고 있다.
[네, 퍼스트 클래스 2석, 프레스티지 클래스 5석, 이코노미 클래스 42석이 남아 있습니다.]빈 좌석의 빈도가 높은 요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 미국 애틀랜타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소인 조사 일자가 확정되었다고?”
‘부대 증발 사건’도 있고, 고소 사건도 있다.
일찍 비행기 표를 끊었다가 출국 금지라도 당하면 안 된다.
행정 처리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있으니 그럴 시간을 안 주면 된다.
[조사관 선임되었고, 조사 일자가 정해졌지만, 아마 변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왜?”
[고소인이 병원 입원 중인데, 정치인이나 재벌이 아닌 경우엔 출장 조사 사례가 없습니다.]아, 그렇지.
재벌의 경우에는 입원 중이면 병원으로 가기도 한다.
[그로 인해 변경될 소지가 있어서 지정 일자에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럴 수 있겠네.”
조사관들의 업무량도 만만치 않게 많다.
그러니 병원으로 출장 조사까지 나가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상관이 까라면 까기는 할 것이다.
대신 다른 일을 조금이라도 털어 낸 뒤에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그사이에 별일은 없겠지만, 혹시 출국 금지 요청을 하면 딜레이해 줘.”
[네, 마스터.]매사 불여튼튼.
문서가 오가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세상이다.
그래서 서류가 오가는데 시간이 필요 없지만, 그래서 위니가 얼마든지 손댈 수가 있다.
“퍼스트, 왕복으로 하고, 오는 날자는 미지정. 새벽 4시경에 해 줘.”
[인천에서 애틀랜타 퍼스트 클래스 왕복. 오는 날자 미지정. 4시경 예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비행시간은 얼마나 돼?”
[약 13시간 20분 전후입니다.]“와, 썅. 무지 많이 걸리네.”
[그래도 직항편이어서 많이 걸리지 않는 편입니다.]“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음.”
노의성의 위협을 알고 있다.
“누나 곁에 ‘사프캣’이 있어도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노의성이 무슨 짓을 하면 제어가 곤란하지?”
[통신 딜레이가 있습니다.]“그럼, 베트남 공장에 사고를 하나 만들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해 줘.”
“신원이 명확하고 흔적이 없는 사람 조사는 어때?”
시민권이 있고,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사람.
그러나 최근 2년 이상 흔적이 사라진 백인 남자.
태영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려면 위장 신분이 필요하다.
태영의 얼굴과 이름으로 활동해도 문제는 없다.
다만, 미국인으로 활동해야 편리할 때도 많다.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애틀랜타 5명, 뉴욕 19명, LA 14명 등이 있습니다.]“그리 많아?”
[다른 지역까지 모두 따지면 수백 명입니다.]“하긴 미국이니.”
[마스터께서 자주 언급한 지역과 기착지만 말씀드린 것입니다.]“뉴욕과 LA에서 각 1명으로 골라 보자.”
[아이미어로 영상 송출하겠습니다.]잠시 후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왜 이리 못생겼어? 키도 작고?”
첫 영상으로 나온 사람.
못생긴 유럽인 얼굴에 키가 160은 되어 보인다.
[아, 그럼 잘생긴 사람을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컴퓨터가 분석한 잘생긴 사람이라니.
28세기의 인공 지능이지.
생긴 사람을 골라내는 것이 아주 쉬울 것이다.
“이 사람은 아주 잘생겼는데?”
[에런 젠킨스(Aaron Jenkins), 솔즈베리(Salisbury) 태생, 올해 25세, 영국 태생의 영화배우 태런 애저튼과 싱크로율 85%입니다.]영화배우?
외국의 영화배우는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태런 애저튼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미남이다.
25세이면 한국 나이로 26세, 나이 또한 적당하다.
“그 영화배우 사진과 나란히 보여 봐.”
[네, 마스터.]두 사진이 나란히 나타났다.
“허, 정말 많이 닮았네.”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너무 잘생겼는데, 학력은 어찌 돼?”
[리치몬드 대학에 1년을 다녔습니다.]“좋아, 이 사람으로 결정. 이 사람은 흔적이 사라졌단 말이지?”
[그렇습니다.]“어떻게?”
[부모는 수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 친척은 없습니다.]“그런데?”
[부모의 사망 보험금으로 뉴욕에서 생활했고, 도박과 마약으로 모두 탕진…….]“미국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이지?”
[네, 그 일로 갱들과의 마찰이 많았고, 27개월 전에 돌연 사라졌습니다.]“갱?”
저렇게 잘생긴 얼굴에 대학도 나온 놈이 뭐가 부족해서.
[갱과 범죄 조직은 조금 다릅니다.]“요약을 해 줘.”
[갱은 지역의 소규모 폭력 집단으로 보면 됩니다.]“폭력 조직은 조직화된 전국구?”
“아무튼, 안 나타났다는 거지?”
[네, 그 후, 흔적이 없습니다.]위니가 찾아내어 리스트 했으면, 서류상 생존 상태다.
“에렌 젠킨스를 아이미어 6번으로.”
여자의 아름다움은 사회생활에서 큰 무기가 된다.
물론 능력이 있다는 전제다.
그렇듯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 얼굴도 이왕이면 잘생긴 것이 좋지.
[그렇게 하겠습니다.]“시민권, 여권은 미국 가서 만들기로 하고.”
아이미어로 바꿀 수 있는 얼굴형은 10가지.
신체도 상당 부분을 바꿀 수 있다.
지문의 변경도 가능하다.
물론, 반드시 위니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음, 보십시오.]“이 사람 이름은 뭐야?”
[스캇 플레처(Scott Fletcher), 샌타클라리타 출신으로 23세.]“또 다른 잘생김.”
[대학은 칼텍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 칼텍 합격 후 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한 인물 하네? 칼텍이 어느 정도 수준인데?”
미국의 대학들은 잘 몰라서 물었다.
[1891년 개교한 사립대로, MIT와 더불어 미국 내 공대에서 최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대체 왜 사라졌을까? 아무튼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샌타클라리타(Santa Clarita)가 어디쯤 돼?”
[LA 북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의 작은 도시입니다.]“가깝네.”
지도를 펼쳐서 보여 주었다.
LA와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스캇 플레처는 영화배우 프레디 하이모어와 싱크로율 70% 정도 됩니다.]프레디 하이모어(Freddie Highmore).
당연하게도 태영의 기억에는 없다.
“비교 사진.”
[네.]태런 애저튼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좋아, 스캇 플레처를 7번으로.”
5번은 평범한 한국인의 얼굴이다.
양재동에서 조폭들과 싸울 때 보인 얼굴이다.
6번으로 에런 젠킨스, 7번으로 스캇 플레처.
아직 7개가 남아 있다.
***
“최태영이 탄 미국행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난 뒤에 보고를 해? 너희들은 대체 뭐 했어?”
국방부의 헌병대, 아니 군사 경찰.
이름이 개명되었지만, 조병원에게는 여전히 헌병대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조병원 소령은 보고하는 대위 계급장의 얼굴에 서류를 집어 던졌다.
전역했으니 민간 신분이다.
사안의 특수성으로 인해 업무 이관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한 달이 지나가는 동안 이관하지 못했다.
“시끼들 말이야, 지들만 바쁘나? 군에서 왜 민간인을 관리해야 하는데?”
조병원 소령은 혼잣말처럼 했다.
앞에서 듣고 있는 대위는 좌불안석이다.
“죄송합니다. 새벽 4시에 표를 예매해서 9시에 발권했는데, 저희가 확인했을 때 비행기는 이미 이륙한 뒤였습니다.”
“하, 영악한 놈 같으니… 씨팔, 조용히 좀 있지 왜 미국으로…….”
비행기를 돌리려면 돌릴 수 있다.
그만한 힘은 있으니까.
다만,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분명하고 타당한 이유.
“전역했으면 국정원이나 경찰로 이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병원은 부하를 쳐다보았다.
“왜 우리가 계속 이 일을 맡고 있어야 합니까?”
잠시 움찔했지만, 말을 마저 한다.
바로 그 문제다.
조금 전에도 그걸 생각하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앞에 서 있는 부하는 속도 모르고 지껄인다.
“너, 몰라서 물어?”
“…….”
“하, 저 새끼가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를 좀 굴려 봐, 머리를. 왜 그러는지.”
“네?”
“국정원으로 넘기면 CIA 요청에 대놓고 거절을 못 하니까 그런 거잖아?”
“아.”
“그놈들이 우리가 조사할 때도 지들이 조사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 거 알아, 몰라?”
“아, 압니다.”
“국정원 쪽에서도 조사에 참여하게 하라는 것을 내가 기를 쓰고 막았어. 그런데 뭐 어째?”
“…….”
“에이, 정말.”
“문자로 알려 줄까요?”
뭐? 문자로 알려 줘?
제 새끼 머리는 어깨 위가 허전해서 달고 다니는 거야?
“뭐라고 알려 줘? 뭐라고 알려 줄 건데?”
“CIA가 관심을 갖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책상 위의 서류가 날아오는 바람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 병신 같은 너를 믿고…… 내가…….”
“…….”
“에이 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누굴 보내서 알려 줄 수도 없고. 진짜.”
“…….”
“나도 모르겠다, 젠장. 성가셔 죽겠는데 이번 기회에 보안 등급 낮춰서 국정원으로 이첩해 버려.”
“…….”
“못 들었어?”
“넵,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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