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6
021. 도움이 필요하오
태영과 같은 케이스?
생각해 보니 많을 것 같다.
그렇게 사라져서 전혀 다른 차원의 9백여 년 전의 고려 땅으로 간 것처럼.
비슷한 일들은 많이 일어난 모양이다.
당장, 태영이 직접 본 것만 해도 수없이 많다.
수마트라섬의 피디지 현장만 봐도 그렇다.
그 수많은 죽음의 흔적.
김정표와 오석현의 유골이 있었고, 그 유골에 인식표가 걸려 있었다.
그 외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유골과 장비들.
“(한번 보시겠습니까?)”
조셉은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 PC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손으로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날짜와 지역,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의 숫자가 명시되어 있다.
각 화면의 배경은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단체 사진이다.
“…….”
곁눈질하듯, 그렇게 넘기는 화면을 보았다.
“(러시아 4차례, 영국 2차례, 차이나의 발표는 1회이지만, 우리가 수집한 정보로는 5회가 넘습니다.)”
중국? 납득이 된다.
거긴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사는 곳이니까.
영국 2차례에 케네스가 사라져 버린 1차 대전 시기의 증발이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터 설리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소.)”
태영은 일단 오리발 내밀기로 했으니 그렇게 말했다.
“(아는 바 없습니까?)”
조셉 설리반의 눈동자 속에, 네가 감추고 있는 것이 뭐냐는 질문이 잔뜩 들어 있다.
대충 나이를 짐작해 보았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기준으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대충 30대 후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정보 집단이다.
프로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리면 필패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
그리고 정보의 공유?
아니야, 생각도 하지 말자. 그건 절대로 불가.
그럼 어떻게 할까?
이들의 인력과 정보력, 그리고 그 집요함을 피해 갈 수 있을까?
태영도 지지 않고, 조셉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잠정적인 행동 수칙은 그냥 지금과 같이 평행선을 유지하자, 라는 것이다.
저들은 집요하게 무언가를 캐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태영은 모른 척할 것이다.
이 행동 수칙이 지속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상황이 바뀌면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정말이오?)”
한참을 계속 그렇게 바라보던 조셉이 헛기침을 한번 하면서 다시 물었다.
“(이제 나가 주시겠습니까?)”
“(…….)”
조셉과 제프리는 몇 번을 머뭇거렸다.
태영이 계속해서 쳐다보지 않자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연락처입니다.)”
문 쪽으로 가는 발자국 소리.
방문을 열어 둔 상태로 나가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지난 8주간, 종적을 감추고 무얼 했는지도 궁금하구요.)”
나가기 전에 한마디 툭 던진다.
~딸깍~
그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소리.
“후.”
태영은 짐 가방을 그냥 두고 돌아섰다.
조셉 설리반이 남겨 둔 명함을 보았다.
희미한 은빛의 명함 용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다.
“두 달간의 행적을 열심히 추적해 봐. 그리고 마음이 바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야. 조셉 설리반.”
잘 찢어지지 않는 용지로 만들어진 명함.
손으로 비벼서 가루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태영은 뉴욕에서 며칠간 보내기로 한 생각을 접었다.
조셉을 만난 이상 편안하게 구경하기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니.”
[……예, 마스터.]“애틀랜타로 가자. 귀국해야겠어.”
[……네, 내일 출발하는 가장 빠른 애틀랜타행 비행기 표와 인천행 항공편을 알아보겠습니다.]“그래.”
돌아가서 복학 신청도 해야 한다.
복학 신청도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하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이젠, 태영의 이름으로 된 스마트폰을 확인할 시간이다.
~띵띵띵띵~띠디디디디딩~띵띵 띵띵띵띵띵띵~띠디디디디딩~띵띵띵띵~
태영이 미국에 와서 거의 꺼 놓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신호음을 들었다.
부재중 전화 121통.
“많이도 와 있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에게서 온 것이 가장 많다.
“통화가 안 될 거라고 말해 두었는데.”
그래도 무심하기는 했다.
이동 정보를 완벽하게 감추려면 전화를 꺼 두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박준혁의 이름으로 된 부재중 3개.
김정표의 친구인 임석은 이름의 부재중 1통.
아마, 휴가라도 나왔었다 보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남겨진 부재중 전화도 많았다.
그건 알 바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연락을 해야지.
~띠리리링~
[……태영이니?]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곧바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머니.”
[……이 녀석아, 대체 왜 이리 연락이 안 돼?]뒤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다.
“네, 일을 좀 하느라 전화를 계속 꺼 두었어요. 이제 돌아가요.”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고?]“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께도 걱정 마시라고 해 주시구요.”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니다, 오면 이야기하자.]아무래도 고소장과 소환 조사 이야기일 것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누나.”
[……야야야~, 연락 좀 하고 다니면 안 되냐?]누나는 통화가 되자마자 역정부터 냈다.
하긴, 역정 내는 것이 맞지.
“며칠 안으로 들어갈 거야.”
[……그래, 너 오면 죽었어.]“어이구, 그럼 안 돌아가.”
[……뭐? 쓸데없이 걱정이나 끼치고 말이야.]“그나저나 면허는 땄어?”
[……그래, 면허 따고, 차도 사고, 이사도 했고.]하긴 두 달이나 지났으니, 면허 따고, 집을 이사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집들이는? 집들이 선물 뭐 해 줄까?”
[네가 얼굴 비춰 주는 게 선물이야.]누나의 반가워하는 목소리.
덕분에 한참 동안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귀국해서 보자는 게 끝이었다.
(어머니 치료는 잘 되어 가? 며칠 안으로 귀국할 거니까, 돌아가면 보자.)
(고맙다, 친구. 어머니가 많이 좋아져서 널 꼭 보고 싶어 하신다.)
박준혁에게 톡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답이 왔다.
(그래, 귀국 후에 연락하마.)
다른 부재중 전화나 문자 같은 것을 보다가 임석은에서 멈췄다.
답을 해 주는 것이 맞을까?
(해외 있어서 연락이 어려웠다. 귀국하면 연락하마.)
임석은에게는 그렇게 답을 보냈다.
톡 메신저에 켜져 있는 빨간 표시의 숫자는 5백 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누나의 것이 가장 많다.
부모님의 걱정 숫자가 그다음을 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톡이 있었다.
전화와는 달리 메신저 톡에는 그 사람의 프로필이 링크되어 표시된다는 장점이 있다.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면서 대충대충 넘겼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있다.
박준혁과 만났을 때 함께 왔던 친구들의 톡이 몇 개씩 있다.
그냥, 언제 학교에 또 오느냐 하는 정도의 내용들이다.
“서은율?”
태영이 입대 전에 사귀던, 그리고 입대하자 두 달 만에 고무신 바꿔 신은 그 아이다.
빨간 동그라미 안에 새겨진 숫자가 30개쯤 된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는데, 어찌 알고?”
당연히 전화번호는 알려 준 적이 없다.
“차단.”
읽어 볼 필요도 없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서 온 연락이다.
차단 후 보내온 톡을 삭제하기까지 했다.
***
“슬슬 시작하자.”
인천으로 향하는 애틀랜타발 비행기는 밤 12시 직전에 출발한다.
태영은 석양이 넘어갈 즈음에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식사를 하기에는 이르기에 위니를 불렀다.
[……순서를 정해 주십시오.]“버뮤다부터 안틸레스까지 북에서 남으로.”
[……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불법 비자금 규모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야?”
[중국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일본입니다.]경제 규모가 큰 만큼 불법 비자금도 많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완전히 다른 금융 구조다.
“중국은 또 다르지.”
다른 나라도 비슷하겠지만, 거기는 최근 수십 년간 비약적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
모든 정보는 나라에서 통제한다.
동시에 당 간부들이 권력을 이용한 축재가 극심하다.
모든 정보의 통제.
사람도 완벽하게 통제한다.
미국의 유명한 IT회사들은 진출도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문호를 열어 주면 정보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이나 특허권 같은 것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자신들의 것이 아닌 기술을 저희들 마음대로 카피한다.
로열티는 당연히 없다.
그리고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한다.
생각도 그렇다.
선진국들은 권력자의 회사 소유를 상당 부분 제한한다.
한국도 그렇다.
회사를 운영하다가 국회의원이 되면 보유 주식에 대해 백지 신탁을 해야 한다.
한국이 그런 제도를 운영해도 부의 축적이 쏠린다.
하지만 중국은 제한이 없다.
정권의 실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더욱더 큰 부를 축적한다.
[……맞습니다.]“우리가 페이퍼 컴퍼니 만들고, 계좌 개설을 한 곳 중에 영연방 아닌 곳이 어디라고 했지?”
[……안틸레스는 네덜란드령입니다. 네비스는 네비스 연방으로 영국에서 독립했습니다.]영국에서 독립이라.
영연방이 아니라고 해도 연방으로 봐야 한다.
“조세 회피처 중에 영국과 무관한 곳은 거의 없네.”
[……그렇습니다.]“한 달이면 되나?”
[……흔적을 제대로 지우고 깨끗하게 하려면 3개월이 좋습니다.]“그럼, 3개월로 하지.”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합니까?]“너무 크게 빠지고 움직이면 흐름이 들킬 수 있나?”
[완벽하게 감추기는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습니다.]“그럼, 일단 5백억 달러만.”
한화로 약 55조원 규모다.
한국만 본다면 대단히 큰돈이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몇 푼 안 되는 푼돈이다.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불법 은닉한 비자금을 털린 수많은 사람들이 뒷목을 잡을 거다.
하룻밤 사이에 소리 없이 사라질 거니까.
그래도 숨어 있는 불법 비자금 규모로 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하게 꼬리를 자르고, 깨끗한 돈으로 만들어서 9개사의 계좌에 예치해 두겠습니다.]“그래.”
8개의 조세 회피국에 9개 회사.
요즈음은 조세 회피국의 계좌도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그것들도 밝혀내서 세금을 내게 한다고 했다.
세금은 내면 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태영의 이름은 없다.
에런이 내고, 스캇이 낼 것이다.
~우우우웅~
전화?
에런 젠킨스의 이름으로 개통된 전화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드는데 함께한 변호사와 회계사, 그리고 계좌를 개설해 준 은행의 담당들이다.
아, 한 명 더 있다.
카리나?
“(하이, 카리나.)”
[(아직 미국에 계신가요?)]“(네, 지금 출국하려고 공항에 와 있습니다.)”
[(혹시 언제쯤 돌아오실 건지 물어도 될까요?)]왜 그러는 거지?
카리나를 만난 지 4주 이상의 시간이 지나긴 했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몰라요. 왜 그러시나요?)”
[(에이리……가 아빠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말해 주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긴,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아이에게 쉽게 해 주기는 어렵다.
힘들었겠지.
“(다음에 귀국하게 되면 에이리의 선물을 준비해서 찾아가죠.)”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해 주겠습니다.)]쓸데없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고려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마스터.]“왜?”
[……고소장과 관련하여 경찰이 부모님 댁에 방문하여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탑승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위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사이에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서가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태영이 해외여행 중이라서 출석이 불가능함을 전화로 알렸다.
그 후에 경찰이 집으로 찾아왔지만, 여전히 해외에 있어서 출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경찰이 왔다면 이번은 3번째이다.
지금 이곳 시간은 밤 10시.
서울의 시간은 낮 12시다.
“나 찾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상황은?”
[……본인이 없다고 말하자, 집 안을 보겠다는 경찰의 요구에 영장을 가져오기 전에는 안 된다고 막았습니다.]“안 들어갔어?”
그럴 리가 없을 거다.
[……경찰이 거칠게 밀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님이 넘어지셨습니다.]경찰이 행패를 부린 것이다.
“다치셨나?”
[……찰과상입니다.]하긴, 다쳤을 정도면 위니가 ‘사프캣’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이 넘어지신 틈에 한 명이 집 안으로 진입했습니다.]“그래?”
[구두를 신은 채로 집 안을 뒤지고 있습니다.]“이것들이 진짜. 그럼 어머니는.”
[……어머니께서는 누나와 서울에 계십니다.]그건 다행이다.
“계속 알려 줘.”
[……한 명은 현관 앞에서 아버님과 대치 중입니다.]“하아, 짜증.”
[……대치 중인 경찰이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욕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 연결해 드릴까요?]“그…… 아냐, 녹화해 둬.”
보거나 들으면 열 받아서 뒤집어질 수도 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으로 했다.
[……네, 녹화는 그들이 방문하는 순간부터 시작했습니다.]“정말 죽으려고 지랄 발광을 하는군. 돌아가서 보자.”
[…….]“그놈들 이름은?”
[……추승원, 고재일입니다.]두고 보자.
그것에 대한 대응은 혹시나 있을 비리를 캐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법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지만, 그놈들이 먼저 법을 어겼다.
같은 방법으로 대응해 주면 된다.
“으음.”
머릿속으로 짜증이 솟구치다 보니,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헛기침이다.
비록 영상을 연결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못했다.
다른 퍼스트 클래스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스터, 그들이 돌아갔습니다.]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