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8
023. 만나지 말아야 할
(저의 목숨을 한번 구해 주셨습니다.)
(연락 주시지 않으면 저는 다시 죽을 것입니다.)
(제가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안재희가 연속으로 보낸 문자다.
답은 못 했다.
아니, 미국에 있어서 이 폰을 켤 수도 없었다.
단지 위니를 통해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답을 안 하니, 점점 더 강한 뜻을 담았다.
깡이 보통이 넘고, 협박도 보통 협박이 아니다.
(이 계획은 과장님도 모르십니다.)
(저의 계획을 막기 위해 과장님에게 연락해도 소용없습니다.)
거기에 날짜까지 못 박혀 있었다.
연락을 바라는 시한이 9월 말이다.
(혹시 해외에 계실 경우를 생각해서 여유 있게 잡았습니다.)
(한 달 이상 해외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도 연락 주시지 않으면, 그래 죽어라 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10월 첫 주의 신문과 방송에서 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약 1분 간격으로 보내진 연속된 문자.
“진짜 자살하려고 한 거야?”
중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목숨으로 하는 협박이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보내온 내용을 보면 기가 막힌다.
강남의 번화한 거리.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머릿속의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그래, 나도 너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으니 도와주마.”
어디까지 도와야 할까?
“마지막으로 한번 튕겨 볼 테니 실망시키지는 마라.”
이 정도 깡으로 이렇게 베팅을 할 정도라면 뭘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도운 것을 알리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
그렇게 답을 써 보냈다.
마지막으로 튕겨 보는 거다.
안재희가 정한 9월 말은 아직 1개월 이상 남아 있다.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어서 답을 했다.
그나저나 이 대포 폰을 버렸으면 어찌 되려고 그랬나?
이젠 정말 버려야 할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도와주십시오.)
10초쯤 후에 온 답문이다.
“빨리도 온다.”
이 정도면 전화기 들고 내내 액정만 보고 있었다는 말 같다.
~우우우웅~
문자 보낸 그 번호로 울리는 전화.
전화는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의 부재중 전화 기록으로 남았다.
통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것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문자로 왔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사람들.)
(저를 포함하여 제 가족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태영은 수신된 문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물론 안재희의 복수를 도와줄 힘은 있다.
그런데 얘는 태영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일까?
대체 뭘 믿고?
뭘 알고 인생을 건 승부를 보려는 거지?
(언제 퇴원하나?)
(퇴원했습니다.)
태영이 질문하자마자 답이 왔다.
‘다음 주 일요일, 강남역…….’이라고 쓰다가 멈추었다.
아니다.
카페 같은데 들어가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곤란해질 수 있다.
(다음 주 일요일. 오후에서 저녁 사이, 시간과 장소는 네가 정해라. 번잡하지 않은 곳으로.)
(남구로역 앞. 오후 4시. 장소는 노래방으로 하겠습니다.)
뜬금없이 노래방?
조금 놀랐지만, 외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곳이다.
미성년자의 출입에도 문제가 없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괜찮은 곳이다.
지정한 시간 동안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최적이다.
집이 남구로 쪽인가?
노래방에 4시면 한적한 시간대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지. 장소 정한 후에 알려 주면 가도록 하겠다.)
(제 얼굴 아십니까?)
(모른다.)
(제 사진을 보내겠습니다.)
잠시 후에 사진이 왔다.
아무런 꾸밈없이 찍은 셀카다.
현재의 자신 모습을 찍었다.
얼굴에 함몰된 자국이 남아 있고, 눈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애가 제법 예쁜데, 다친 자리가 흉하네.”
함몰 자국을 빼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예쁘다.
“위니.”
[네, 마스터.]“너튜브 방송으로 유재구가 죄가 없다는 논조로 패널들 불러내서 방송한 그 사람이 누구라고?”
[영상 보내 드리겠습니다.]“그래.”
태영은 거리를 걸으면서 그 방송의 요약본을 살펴봤다.
몇 곳의 언론에서도 동영상이 짜깁기된 것 같다며 유재구의 편을 들어 주었다.
“우리 편이면 무죄, 우리 편 아니면 유죄라는 사고방식이네.”
조져 버릴까?
에이,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임석은, 돌아왔으니 편할 때 전화하면 된다.)
임석은의 부재중 전화에 톡을 보냈다.
(휴가 가면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1분쯤 후에 임석은으로부터 답이 왔다.
***
다음 날.
태영은 경찰서에 출석했다.
“누가 그래요. 내가 폭력을 행사했다고?”
“고소인이.”
말이 짧다.
조사를 하는 자도 경찰인데, 경찰들은 다 이따위인가?
취객이 파출소에서 멱살 잡고 난동을 부리는 영상을 보면, 경찰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행태를 보이면 때리고 싶어진다.
“말이 짧네. 같이 반말하기로 할까?”
“뭐?”
“네가 먼저 반말 했잖아?”
“하, 씨.”
“욕도 해? 그럼 어디, 욕 배틀 한번 해 볼까?”
“…….”
정말 때리고 싶을 거다.
“말조심할 거야?”
“그럽시다.”
태영이 세게 나간다고 움츠릴 경찰이 아니다.
그런데 순순히 그러자고 한다.
주변에 있는 다른 조사관들의 시선 때문인 것 같았다.
되받아치는 것을 본 주변의 조사관들.
조사를 받으러 온 다른 사람들.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이거 한번 볼래요?”
태영이 USB 메모리를 내밀었다.
“뭐요?”
“그날, 나도 조사관님이 말한 주소에 있었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과 조폭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고, 혹시나 해서 내 폰으로 촬영한 거.”
“촬영을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이 싸움 같은데요.”
“뭐?”
“또, 반말?”
주로 범죄자들을 취조하면서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이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다.
“줘 봐요.”
조사관은 자신의 PC에 USB를 꽂았다.
영상을 띄웠는지 이어폰으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의 시선에는 모니터의 뒤쪽만 보였다.
그래도 그 영상을 같이 보고 있다.
경찰 조사관은 태영을 한번, 모니터 한번을 계속 돌아보았다.
“하, 씨발.”
폭력배들이 태영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으로 폭력배들이 맞고 있다.
“전혀 다른 사람이잖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비슷하지도 않다.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다른 조사관들도 자신의 일을 멈추고 PC 부근으로 몰려들었다.
영화처럼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며 입이 헤벌어진다.
“야, 멋지네. 저놈, 저거 누구지?”
심지어 한 사람은 영상의 동작을 따라 하기까지 했다.
“와! 열 몇 명을 순식간에 조져 버리네.”
“아주 날아다니는구나, 날아다녀.”
이 사람들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영화 같은 액션에 감탄이나 하고 있다니.
“날 고소한 사람들을 무고로 고소해도 되는 거죠?”
“……으으음.”
태영을 조사하던 조사관은 맥이 탁 풀렸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다.
신음을 토해 내는 모습이 안돼 보이기는 한다.
얼마나 황당할지 충분히 짐작하지.
“그리고.”
“그리고?”
“조사관님이 보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들이 나를 구인해 가겠다고 우리 집으로 왔거든요?”
“……?”
그냥 태영을 바라본다.
“아버지를 밀쳐서 전치 1주의 상해를 입혔고, 집을 무단으로 침입했습니다.”
“증거 있어?”
“또 반말? 반말 배틀 다시 할까?”
“그래서 증거 있어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물어왔다.
“집 안팎의 CCTV에 찍혀 있더군요. 그것도 고소 사유가 되죠?”
고소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만 풍겼을 뿐이다.
“…….”
답을 안 했지만, 못하지.
“가도 됩니까?”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가 손을 들어 잠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사람 누구인지 압니까?”
“나야 모르지요. 그냥 싸움 구경하다가 얼결에 찍은 것뿐인데요.”
“하! 젠장.”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복사 좀 한 뒤에 가시오.”
메모리를 돌려주겠다는 소리다.
“USB는 가져도 됩니다.”
태영은 조사실을 나갔고, 뒤에서 책상 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우당탕 소리가 났다.
조폭들을 고소하지 않을 것이다.
가택을 무단으로 침입하고 아버지를 밀쳐서 상해를 입힌 경찰들도 고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응징은 할 거다.
응징을 한 사람이 태영이라는 것을 알려 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태영아.]전화를 꺼내 박준혁을 누르자 곧바로 전화기 건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왔다. 병원이냐?”
[그래, 세브란스.]가깝다.
“지금 가도 되나?”
[그럼, 무조건 환영이지.]“30분 후에 보자.”
30분 후.
병실 앞에 도착했다.
“어? 어머니.”
병실 문을 열자, 병실 가운데 서 있는 준혁의 모친이 보였다.
환자복 상태다.
“괜찮으십니까?”
태영은 손에 들고 있던 몇 가지 선물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고마워, 아들.”
준혁의 모친이 태영을 끌어안으며,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래, 친구의 어머니인데.
또 다른 아들이 되어 드리면 되지.
“왔냐?”
세면장 안에서 박준혁이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래. 어머니 많이 좋아지셨네?”
“지금은 재활 치료 중인데, 병원 산책을 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회복되셨다.”
두 달이 지났다.
“고마워. 이제 곧 일 나가도 될 거 같아.”
“당분간 일은 나가지 마시고, 회복에 신경 쓰세요, 어머니.”
“그래, 그래.”
~우우우웅~
그때, 태영의 품 안에 있는 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모르는 번호인데?
하긴,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다.
세면장으로 들어서며 통화로 밀었다.
“여보세요.”
[최태영, 너 최태영 맞지?]“누구십니까?”
[나야, 나. 강. 병.장.]“아, 강인목.”
군 동기다.
제 자신을 또박또박 강. 병.장.이라고 하는 장난을 잘 쳤었다.
일병 때부터 ‘강.일.병.이다’ 그랬던 것 같다.
병과는 다르지만, 부대 내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기.
같은 날 입대하고 같은 부대로 배치 받은, 군에서 만난 친구다.
하지만 같은 날에 전역하지 못했다.
조사를 받느라 그들보다 20일 늦었으니까.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반가움은 남아 있다.
사회에 나가면 꼭 다시 만나자고 했던 기억도 있다.
[야, 히어로. 이 멋진 놈아.]“내 연락처는 어떻게?”
히어로라고 부르는 의미를 알기에 웃음이 났다.
그러나 바뀐 번호를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중대장에게 물었더니, 임석은이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더라.]아, 그랬구나.
[전역 당일에 너하고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면서?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가르쳐 주더라.]강인목은 부대 내의 상급자나 하급자와도 격의 없이 지내던 친구다.
대한만국 최상위 대학인 한국 대학교에 다니는 수재이기도 하고.
[언제 우리 얼굴이나 한번 보자.]“그래, 난 언제라도 가능해.”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 저녁에 볼까?]“그러지, 뭐. 몇 시에 어디로?”
[문자로 보내 줄게.]“그래, 알았다.”
“어디 가야 해?”
세면장에서 나오니 박준혁이 물었다.
“응, 군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기인데, 얼굴이나 좀 보자고 하네.”
“그래?”
“그래, 어머니하고 나가서 점심이나 할까? 어머니 외출 가능하시죠?”
“그럼, 가능하지. 새로 생긴 아들하고 밥도 한 끼 못 했는데 같이해야지.”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야, 내가 사야지 왜 네가 사?”
“너는 돈도 없으면서 뭘 사? 아껴 두었다가 어머니 편하게 모셔. 그리고 이사했나?”
“아니, 아직.”
“그럼 집하고, 병원을 계속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아니, 사실상 여기가 편하기도 하고, 여기서 계속 생활하면서 그날 이후에 집에 세 번 다녀왔다.”
“그래?”
“어머니 혼자 계시니까, 어머니 입원실의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낮에는 학교 가고 하다가 방학 후에는 그냥 여기서 쭉 지낸다. 집에는 꼭 가져올 물건 가지러 가느라 간 적밖에 없다.”
“고생 많이 했네.”
학교 가고, 병원에서 그렇게 수발하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그 일을 두 달 넘도록 해 왔다는 말이다.
“고생은 뭘.”
“이왕 그리된 거, 어머니 퇴원 때까지 집 구하는 걸 미뤄라. 생각 좀 해 보자.”
“그래? 왜?”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간호사에게 외출 요청해. 나는 차를 부를 테니까.”
외출하는데, 그런 절차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단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앞에 나가는 것 아니고?”
“어머니가 아들, 하고 불러 주셨는데, 맛있는 거 사드려야지 대충 때우면 되겠어?”
“하여튼. 자, 여기 차용증.”
그때, 빌려 준다고 했고 차용증도 주었다.
돌려받겠다고 생각하고 빌려 준 돈이 아니다.
그냥, 박준혁에게 생긴 큰돈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 제대로 잘 썼네.”
태영은 잘 접어서 위 주머니에 넣었다.
박준혁이 병실을 나갔다.
그사이 한우를 잘한다고 알려진 식당에 자리를 예약하고, 택시를 불렀다.
병원 입구로 내려가 잠시 기다리니, 택시가 들어왔다.
“기사님, 우가원이라는 식당 아시나요?”
“네,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버지보다 2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택시 기사이다.
“거기 고깃집이니?”
“네, 어머니.”
“고깃집은 비싸지 않아?”
가격을 먼저 걱정한다.
언제나 늘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긴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러셨다.
“그리 부담되지 않아요. 앞으로 자주 모실게요.”
“그래, 새로 아들이 한 명 더 생기니 정말 좋구나.”
“새로 아들이 한 명 더 생겨요? 아이쿠, 좋겠습니다. 어디 잃어버렸다가 찾기라도 한 겁니까?”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물었다.
“그럴 리가요. 아들 친구인데, 이렇게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니까, 아들이 한 명 더 생긴 것 같다는 거지요.”
“아이고, 그러시구나. 요즘 젊은이들은 친구 어머니를 아주머니 하고 부르는 사람이 많던데.”
개나 하는 버르장머리이지.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