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79
024. 출생의 비밀
“최태영 손님, 정란실로 모시겠습니다.”
“네.”
점원의 안내에 뒤따라갔다.
앞에서 마주 스쳐 지나가는 중년의 손님들을 막 지났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응?”
태영이 고개를 돌려 보았다.
박준혁의 어머니가 얼음이 된 듯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어머니, 왜요?”
박준혁이 인형처럼 굳은 자신의 어머니 팔을 잡았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맞추고 선 중년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박민서?”
중년인의 입에서 나온 박준혁 어머니의 이름이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모친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며 그 중년인을 지나쳤다.
눈가에서 반짝거리는 것은 불빛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가 말 못 할 사연?
“이거 왜 이래? 박민서 맞는데, 맞잖아?”
중년인의 약간 능글맞은 웃음.
그자는 손을 뻗어 스쳐 지나가는 모친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팍~
태영이 재빨리 그 손을 쳐 냈다.
“악.”
“함부로 잡지 말아요.”
“어떤 새끼야? 네가 박민서 아들이야?”
태영은 이미 눈치 챘다.
장년인의 퉁퉁한 얼굴.
턱살과 볼살을 덜어 내고 주름까지 제거하면, 박준혁과 무척이나 닮았다.
태영은 말없이 두 손가락을 뻗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그 주둥이 닫고 꺼져라.”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장년인은 자신의 두 눈 앞으로 다가온 태영의 손가락을 쳐 내려 했다.
“준혁아, 어머니 모시고 들어가라.”
“그래.”
“미안합니다.”
태영은 점원에게 사과를 하고, 중년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꺼져.”
모친의 입에서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말이 나왔다.
사연이 짐작되지는 않는다.
다만, 박준혁의 어머니가 결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박민서, 나 도연태야. 나 몰라?”
중년인은 태영의 눈길을 피하며 자신의 이름을 크게 말했다.
“위니 알아봐.”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하고는 도연태를 향했다.
“꺼지라구.”
다시 한번 말했다.
“어린놈이 어른에게 건방지게.”
그 말과 함께 손이 태영의 얼굴로 날아왔다.
~착~
그 손을 꾹 잡아 주었다.
“아악.”
“꺼지라고. 우리 말 몰라?”
비명을 지르는 입을 손가락으로 움켜잡고 비틀었다.
그리고 뒤로 휙 밀었다.
“개새끼, 넌 죽었어.”
비틀거리던 도연태가 입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침을 퉤 소리가 나도록 뱉고 돌아섰다.
정란실이라고 이름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모친을 바라보고 있고, 모친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태영은 말없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식사를 하러 온 자리다.
분위기상 제대로 식사하기는 틀린 것 같다.
점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분위를 보고 뒷걸음으로 다시 나갔다.
태영은 일어서서 점원을 따라갔다.
“저기요.”
“네, 손님.”
“모친께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으니,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세요.”
태영은 만 원권 두 장을 꺼내 점원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점원이 방긋 웃고 돌아섰다.
“괜찮다. 밥 먹자.”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모친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환하게 웃는다.
웃음 속에 회한이 남아 있었다.
태영이 벨을 누르자, 곧 점원이 들어왔다.
“오늘 맛있는 것으로 추천해 주세요.”
“네, 백화 살이 좋은데, 잘 숙성되어 있어서 특별히 더 맛있습니다.”
백화 살, 흰 꽃이 피었다는 의미.
마블링이 좋은 부위를 일컬어 하는 말인 듯하다.
“그럼, 그걸로 일단 6인분을 주세요. 부족하면 추가하기로 하고.”
“네, 손님. 기본 반찬 세팅하겠습니다.”
모친은 메뉴판에서 백화 살을 찾았다.
그리고는 시선이 태영을 향했다.
“이렇게 비싼 것을 어찌 먹어?”
“괜찮습니다, 어머니.”
“이거 6인분이면 평소 우리 한 달 생활비인데. 아들, 이거 취소하고, 탕으로 하자.”
“어머니, 저 그 정도 형편은 돼요. 그리고 오래 아프셔서 몸을 회복하는 데는 고기가 좋아요.”
박준혁의 어머니는 한참 동안 태영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 고맙다.”
식사하는 동안, 박준혁은 도연태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모친도 말하지 않았다.
고기는 6인분만으로도 넘칠 만큼 많았다.
그래도 2인분이 더 들어왔고,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다.
“아들.”
박준혁을 바라보고 불렀다.
“네, 어머니.”
“……후.”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몰라도 말하지 마세요.”
박준혁이 조금 침울한 표정에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니, 아니다. 엄마에게 비록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이런 일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태영을 바라보았다.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아니다. 너도 내 아들로 생각하는데, 못 들을 것이 뭐가 있겠니?”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모친이 만류했다.
진짜 아들처럼 생각하시나 보다.
“그리고 너희 둘은 평생의 친구로 살아갈 텐데, 같이 아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뜨기도 곤란했다.
“엄마의 고향은, 제천 송학면의 궁벽한 시골이다.”
“…….”
박준혁도 처음 듣는 모양이다.
“준혁이 네 나이만큼의 세월 동안 연을 끊고 살았지만, 아마도 부모 형제들 중에 누구든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있을 거다.”
“…….”
“집은 가난했다.”
태영은 가슴속에 맺힌 한을 실타래 풀어내듯 말하는 모친의 느린 이야기를 속으로 씹어 보았다.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취업을 위해 상경했고, 비교적 쉽게 취업을 했다.”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 말을 이었다.
“다 큰 줄 알았는데,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기에 엄마는 너무 어렸고, 세상을 너무 몰랐다.”
박준혁도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고 세상이 이해해 주는 것도,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다 큰 줄 알았다는 말과,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박혀 들었다.
“요즘이야 직장 내 성폭행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만…….”
성폭행?
“그때만 해도 여자들은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일이었고, 그런 말을 꺼내면 꽃뱀이라고 하던 시절이다.”
후우.
이 말이 본론이다.
부끄러운 이야기.
자식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는 마음은 오죽할까?
“엄마는 경리 담당이었고, 업무적으로 사장인 도연태 그 인간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돈을 다루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너를 임신한 것을 알고, 중절 수술을 하라고 했다.”
“왜 결혼하지 않았는데요?”
박준혁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당시, 도연태는 결혼해서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개X끼…….”
박준혁이 씩씩거렸다.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는 않았다.
도연태에 관한 모든 정보는 식사 중에 위니로부터 이미 들었다.
“수술이 겁도 났지만, 내 몸에 깃든 생명을 죽일 수는 없었다.”
“…….”
“어느 날, 그자가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갔다.”
“흡.”
박준혁의 화가 느껴진다.
“날 붙잡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도연태의 팔을 물어뜯고 그 길로 도망쳤다.”
“흐읍.”
박준혁의 입과 코에서 거센 호흡이 나왔다.
“고향에는 갈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애를 가져서 어떻게 고향으로 가겠니?”
모친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 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고생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지금과 그때는 시대가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고, 상식이 다르던 때다.
그렇게 시작된 고생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너는 엄마의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모친은 입을 다물었다.
세 사람 모두 말이 없었지만, 박준혁의 거친 숨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밝혀지게 된 출생의 비밀.
위니가 보내 준 모친의 주민 등록 등본.
박준혁의 이름이 세대주로 되어 있고, 그 이름 아래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을 뿐이다.
서류상으론 아직도 미혼이다.
“가해자는 떵떵거리며 살고, 피해자는 어렵게 산다…….”
“씨발.”
태영의 말에 박준혁이 욕을 입에 담았다.
“준혁아.”
“죄송합니다, 어머니.”
모친의 말속에 들어 있는 지적에 박준혁은 곧바로 잘못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억울하지 않습니까?”
태영이 물었다.
“억울하다. 특히 저렇게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더 억울하다.”
모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잘 살고 있습니다. 돈 펑펑 쓰면서 위세 부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
“네. 아들은 미국에 유학 보냈고, 딸은 음악 공부하느라 유럽에 가 있습니다.”
“나쁜 놈.”
“어머니는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는데, 그리고 준혁이도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는데. 그들은 정말 잘살고 있습니다.”
“어찌?”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는 의미다.
“아까 제가 좀 늦게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랬지?”
“친구 한 명에게 이름을 확인을 좀 해 달라고 했더니, 식사 중에 문자로 왔습니다.”
“그랬구나.”
“혹시 퇴직금 받으셨습니까?”
“……?”
이런 심각한 이야기 중에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퇴직금?
“도망쳤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회사를 다녔구요.”
“……흐음.”
조금은 민망한 표정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그래.”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도, 임신을 했으면 사실혼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혼?”
“네.”
모친도 법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를 것이다.
태영이 말하면서도 억지라는 것은 안다.
타인의 억지가 모친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다.
또 다른 억지를 조금 추가하기로서니, 그게 뭐?
“……그게.”
“사실혼이면 이혼 절차에 따라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받으셨습니까?”
“응?”
“재산 분할은 받으셨습니까? 양육비 받으셨습니까?”
“……?”
쏟아지는 태영의 질문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다.
“이혼을 하면 위자료 받고, 재산 분할 받고, 양육비도 받아야 합니다.”
“그런 거……니?”
“퇴직금은 그것과 상관없이 당연히 받아야 하구요.”
“……?”
잠깐 동안 말이 없다.
“하, 하하하. 그게 그리되네.”
박준혁이 쓴웃음을 소리 내며 웃었다.
“아들.”
“친구 말을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풀립니다. 어머니는 그렇지 않습니까?”
박준혁이 저리 말하는 것.
아마도 모친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기 때문이리라.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한 채로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임신하고, 이혼했다고 생각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부끄러운 과거에서 정당한 과거로 바뀌는 것.
그래서 미소가 나오는 것이리라.
그래,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어때?
“그래, 그러네. 그래, 이혼. 그게 맞아.”
모친은 그렇게 말하면서 작게 웃었다.
박준혁도 태영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런데, 기간도 많이 지났고, 증거도 없으며, 서류도 없는데. 법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태영에게 물어온다.
“그렇지?”
방금, 이 모든 상황을 정상적으로 돌리긴 했다.
갑자기 서류가 없다는 부분에서 침울해졌다.
“법으로 가면, 소멸 시효도 지났고,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것도 못 할 짓이지요.”
“그래, 그 인간은 아주 추잡한 인간이라서…….”
“지나간 과거와 상관없이 받아 낼 방법이 저에게 있습니다.”
“있어?”
박준혁이 물었다.
“그래.”
박준혁이 ‘어떻게?’라는 표정이다.
“저에게 맡겨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 맡기마.”
사실상 돈이 문제가 아니다.
태영이 생각한 것.
오늘의 일로 박준혁이 자신은 성폭행으로 태어난 자식이라는 인식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모친의 환한 얼굴이나, 박준혁의 얼굴에는 처음의 침울함이 사라졌다.
“……네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네 뜻대로 하거라.”
“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23년 동안 숨죽이고 살아왔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
입원 치료 중에 식사하기 위해 이루어진 외출.
어머니는 외출로 인한 피로함도 있었을 것이다.
도연태와의 만남.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사.
그로 인해 더해진 정신적 피로.
그래서인지 입원실 침대에 눕자마자 곤히 잠이 들었다.
박준혁은 병원 화단 한쪽에 앉았다.
잠시 친구를 떠올렸다.
“고맙다, 친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게 한 ‘부대 증발 사건’.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군인이 수백 명, 무기까지 모두 사라졌다.
어느 날, 한 명이 살아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로 바쁜 중에도 워낙 많이 나오는 뉴스였다.
TV에 나온 사진.
“친구.”
비록 혼자였지만, 친구가 살아서 돌아왔다.
학교에 찾아온 날.
조사를 받느라 20일이 더 지나서 전역했다고 했다.
친구들 몇 명과 치킨집에서 이런저런 것을 물었을 때, 웃으며 그랬다.
‘너무 많이 알면 다쳐.’
친구들끼리 종종 쓰는 말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 것 같았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
입대 전과는 조금 달랐다.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움이 간혹 한 번씩 느껴졌다.
더불어 묘한 어른의 냄새까지 풍겼다.
군 생활을 했으니, 조사에 시달렸으니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의 냄새가 낯설기는 해도 싫지는 않았다.
어느 날 밤, 토굴 같은 자신의 집에 찾아왔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라고?
자신이 살아오면서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돈을 던져 놓고 갔다.
“평생에 걸쳐서 갚아라.”
그렇게 말했다.
여행을 떠난다 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오늘의 만남.
자신이 가진 아픔에 대해, 위로하지도 소금을 뿌리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당당해라.’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