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83
028. 상처, 그 아픔(1)
나서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다는 아니고, 열다섯 명이 참가했는데, 분기에 한번 만나기로 하면서 첫 모임이 2주 뒤다. 가능하면 참석해라.”
“내가 왜?”
“너도 동기인데? 가장 유명해진 동기.”
“또 오늘같이 원숭이 우리에 집어넣으려고?”
“거긴 좀 다르지.”
“아무튼 알았다. 그때 봐서 시간 되면.”
“꼭 와라. 꼭 시간 내서.”
“그래.”
같은 날짜에 부대로 간 자대 전입 동기가 꽤 많다.
병과는 섞여 있었고, 그래서 부대에서 자주 본 사람도 있고, 자주 못 본 사람도 있다.
그중에 15명이라.
군 동기는 학교 친구들과는 다르다.
일단, 머리가 커서 만난 것부터 다르다.
서로 간에 성향이나 공감하는 방법도 전혀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다.
미래를 염두에 두면, 그들과 연결점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려나?
아무튼 병원에 가서 박준혁을 만나고, 이제 부모님에게 가자.
***
“아버지, 저 다녀왔습니다.”
여주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마당에 계셨다.
마당에 있는 두 대의 자동차.
아버지의 낡은 4륜 구동 RV 차와 누나의 차다.
누나의 차는 비싼 차답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아버지는 자동차용 먼지떨이로 정성스럽게 누나의 차를 닦고 계신다.
“어서 오너라. 귀국해서도 바쁘구나. 이제야 집에 오는 것을 보니.”
“네,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이제야 왔습니다.”
“들어가자.”
“네.”
식사 시간.
태영은 미국 여행 중에 만난 사람 이야기를 했다.
말이 잘 통해서 얼마간 동행하게 되었다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 사람이 한국에 투자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서 금융 투자 회사, 아니 지금으로 보면 자산 운용 회사를 만들라고?”
“네, 어머니.”
“미국에서 만난 그 친구가 얼마나 투자할 수 있다 한다고?”
“시작으로 3억 달러, 최대는 예정한 바가 없지만 대략 100억 달러까지 생각하고 있다 합니다.”
“100억 달러면 한화로 대체 얼마냐?”
“10조가 넘는 돈이지.”
에런 젠킨스와 스캇 플레처의 이름으로 된 태영의 것이다.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다.
위니가 추적당하지 않도록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할 것이다.
그것을 태영의 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과 대화 중에, 어머니가 과거에 증권 애널리스트였다는 말을 했더랬습니다.”
“오래전인데…….”
아쉬움과 미련이 말속에 묻어난다.
“시작하면 금방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분이, 그럼 너를 믿고 한국에 투자할 테니 너의 어머니가 자신을 대신해서 자산 운용사를 운영해 주면 어떠냐 하더라구요.”
둘러대야지.
어쩔 수 없다.
“손 놓은 지 오래되어서…….”
“한 달만 떠나 있어도 어찌 돌아가는지 모른다는 곳이 거기 아니야?”
어머니의 우려에 아버지의 걱정이 더해졌다.
“지금의 투자 기법은 전혀 모르는데…….”
그러면서도 미련은 계속 남긴다.
“아이, 엄만, 뭘 걱정해?”
“그럼 걱정 안 해?”
“그쪽이 잃으면 물어내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산 운용하다 보면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는 거지.”
누나는 해 보라고 부추긴다.
“넌 어찌 생각해?”
어머니는 태영을 똑바로 보고 그렇게 물었다.
“어차피 자본 싸움 아닙니까?”
“자본이 크면 유리하긴 하지.”
“나중에 그 사람이 예측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측 시뮬레이션?”
“네, 정확도는 얼마나 좋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구요.”
위니가 가진 데이터.
태영이 상상하는 범위를 훨씬 능가한다.
증권 시장의 그래프도 모두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는 데이터로 손질을 좀 하면 된다.
그것조차도 위니에게 말해 두었다.
“그건, 보안이 철저해야겠구나.”
“네, 아마도 제한을 걸지 몰라요. 그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의 범위를.”
“그렇다고 해도, 나쁘지 않네.”
“아버지는, 아버지의 그 돈에 어머니가 운용하는 자산을 이용해서 제약사나 생활 건강 제품 관련 회사를 인수하시면 어때요?”
“아, 그거 좋은 방법이다.”
역시.
상황이 변하니, 아버지도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인수가 비싸면 창업을 해도 되구요.”
한마디 더 덧붙였다.
“투자금이 언제쯤 들어올 수 있다고?”
어머니의 질문이다.
“3개월에서 4개월 정도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슬슬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구나.”
“네, 그렇죠. 어차피 시간 남지 않아요?”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되니까, 많이 남지.”
이제 마음을 정하신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하고, 아직 그쪽에 몸 담고 있는 과거의 동료들을 만나 보면서 설립 준비를 하기로 하자.”
한국에서 자산 운용사를 운영하면서 다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으로 진출이 가능하다.
태영이 애런과 스캇의 이름으로 준비해 둔 것도 많다.
시간과 때를 맞춰 가며 어머니에게 드리면 될 것이다.
“너는, 내가 할 아이템을 준다면서?”
이번에는 누나 차례다.
“그랬지.”
“언제쯤 줄 건데.”
“그게 목록은 대략 2백 개쯤 뽑아 두었으니.”
“2백 개?”
“응, 일단 조사를 좀 하고, 만들 수 있는 회사들 수소문도 해야 하니까, 지금 먹고 노는 동안 즐기고 있어.”
“심심해. 오래 쉬었더니.”
“그거 줘서 판매가 시작되면 아마 휴일도 없고, 잠도 몇 시간 못 자게 될 거야.”
“야, 뭔데? 귀띔이라도 좀 해 줘.”
“기다려, 기다려 봐. 사업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진중한 맛이 없을까?”
“에이, 치사해, 정말. 알았어. 아무튼 지금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란 말이지?”
“그럼.”
사무실이나 공장 이야기는 누나와 둘이서 정리하면 된다.
“태영아.”
“네, 아버지.”
“농업 종합 자금 상환 독촉이 들어온 거, 다 갚아서 이제 빚에 대한 염려는 없거든.”
“네.”
아버지의 의도가 대략 짐작된다.
“어차피, 네 엄마 일이 진행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앞으로 사업을 하더라도 이 집과 농토는 그냥 그대로 두면 어떨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그건 아버지 알아서 하세요. 저도 주말이나 방학 때 와서 지낼 수 있으니 좋구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자.”
“네.”
“네 아버지가 이집 허물고 새로 지으려고 한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새로 지어요?”
“응.”
“여기 계속 살든, 주말에 전원생활만 하든 상관없이 좀 오래된 집이니까, 도시 주택처럼 짓고 싶으신 거지.”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저도 좋죠, 그럼.”
가족들과의 이야기는 대략 마무리가 다 되었다.
아직 태영은 학생이다.
하지만 학교를 꼭 졸업할 필요는 없다.
자퇴를 하고 2년을 줄인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
“유재구는 왜 조용하지?”
[분석 내용으로는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동영상 파문을 말하는 것이다.
태영이 미국과 카리브해 부근을 다니면서, 그곳의 풍광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고, 대응을 어찌하는지 추이를 볼 겸 내버려 두고 있는데, 날뛰지만 않으면 그냥 둘 생각이다.
오늘은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누나와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누나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 좋다고 한다.
집에서 10분 거리인 문정 지구의 산업 단지로 가 보기로 했다.
태영도 학교와 병행하려면 가까운 곳이 더 좋다.
“어서 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칸이 전용 면적 2백 평방미터 정도의 크기로 4개 구하라고?”
“응.”
“그 정도면, 완전 운동장이네.”
“나중에는 좁다고 할 거야.”
“아무튼 너는?”
“규모가 어찌 나누어져 있는지 몰라도, 그 정도 규모로 최소 5칸에서 10칸까지.”
“그렇게 크게?”
“그게 시작 수준이야.”
“한 층에 그렇게 나란히 붙은 곳이 있을까?”
“없으면, 누나와 나는 아래위층으로 해도 돼. 그래도 안 되면 위례나 감일, 성남, 판교 방향도 생각해 보고.”
“위례나 감일 지역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성남이나 판교까지 가고 싶지는 않은데.”
“나도.”
학교와 너무 멀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누나는 사무직이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근무했고.
명칭으로는 지식 산업 센터라고 해도, 아파트형 공장이다.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회사 설립은 언제?”
“자, 여기 연락처. 거기서 누나 이름 알고 있어.”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회서 설립과 관련한 법률 대리 업무를 하는 곳이다.
“너는 지분 참여 안 해?”
“난 30%. 나머지는 그쪽에서 하자는 대로 해.”
“야, 그래도 나도 경영학과 출신인데.”
“그 사람들은 실무 경험이 누나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나 되는 사람들이야.”
누나도 경영학과를 나왔으니,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나가 가지고 있는 지식대로 하면 안 된다.
“칫! 알았어. 알았다구.”
지금은 저리 투덜거려도 나중에 알게 될 거다.
여기를 보고 나면, 태영은 살 집도 구해야 한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같은 사람 맞아요?”
두꺼운 화장을 지우고 연한 메이크업으로 나타난 사람.
전혀 다른 느낌의 교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여인.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자리한 수심이 있다.
“네.”
짧게 대답하며 안쓰럽게 웃는다.
“앉으세요.”
“네.”
교영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태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룸으로 잡았다.
교영은 태영보다 5분쯤 늦게 도착했다.
“식사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네.”
점원이 밖으로 나갔다.
“내 마음대로 시켰지만, 이해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본명, 아니죠?”
“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신정현입니다.”
“나는, 소개 안 해도 아실 것이구요. 동생 일은 미안합니다.”
“아뇨, 그쪽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그쪽? 그쪽이라…….
신정현의 동생도 증발되었다고 쪽지에 쓰여 있었다.
오늘 만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식사가 순서대로 두세 가지 단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식사 후 할까요?”
“네.”
식사 중에 그 이야기가 나오면 식사를 망칠 것 같아서다.
쉽게 그러자고 한다.
한번 힐끔 쳐다보고, 식사를 하고, 그렇게 반복되었다.
신정현은 그사이에 가벼운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자신의 이력이다.
졸업한 대학.
다녔던 회사.
“두 번 이직을 했고, 세 번째로 출근한 회사에서 6개월 다녔을 때입니다.”
동생의 증발 소식을 접했다.
“하늘이 무너졌지요.”
가족을 잃으면 대부분 그리된다.
신정현의 그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부대, 청와대 앞.
증발된 군인들의 가족이 모이는 곳에는 신정현도 참석했다.
회사는 자연스럽게 잘렸다.
결근이 출근보다 잦은 직원을 회사에서 계속 쓰지는 않는다.
항의할 수도 없고, 항의할 자격도 없었다.
한 달에 출근 일수가 절반도 안 되는데.
잘린 후에도 동생의 일은 자신의 발길을 그쪽으로 향하게 했다.
취업을 하고자 해도, 불가능했다.
정상적인 회사는 다닐 수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과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
차가 들어왔다.
“동생은 이름이 어찌 돼요?”
“신정석이고, 그때 상병이었어요.”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 벌써 눈이 빨갛게 변한다.
눈물도 고인다.
자식을 잃은, 형제를 잃은, 남편을 잃은, 아버지를 잃은 그 모두가 예외 없이 그럴 것이다.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십거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가슴에 칼이 꽂히는 아픔이다.
신정현이 폰을 들어 동생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셀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모르는 얼굴이군요. 미안해요.”
“…….”
“…….”
“나도, 원망 많이 했습니다. 이왕 돌아오려면 다 같이 돌아오지, 왜 혼자만 돌아왔느냐고요.”
“……그…….”
“…….”
“부모님 가슴이 많이…….”
“흐윽…….”
겨우 몇 마디를 꺼냈는데, 바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
왜?
태영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어깨를 들썩이고, 입으로 나오는 울음소리를 손수건으로 막으며 한참 동안 통곡하듯 울었다.
“……미안, 미안해요.”
“아닙니다. 왜?”
“이런 이야기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만…….”
“네.”
“엄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말을 꺼낼 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느라 잠시 동안 멈추고, 다시 말했다.
“……희귀 불치병을 앓고 계세요.”
희귀 불치병?
“아버지는 생활고에 힘들어 하셨고…….”
어머니의 치료비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동생이 ‘부대 증발 사건’으로 생사도, 행방도 모르게 되…….”
태영을 제외하고 352명이다.
“……아버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어요.”
하! 또 사람을 잡았군.
아들을 잃은 부모의 가슴은 피멍이 들었을 것이다.
대체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그 많은 군인들이, 젊은이들이 사라졌다.
태영이 인지하는 수준으로 정부는 관심도 없다.
아니, 귀찮아 죽겠다는 정도랄까.
그런 일이 한두 번이던가?
이 부분에 태영이 끼어들면?
어찌 될까?
그 부분은 생각을 하지 말자.
“그 일이 있고…….”
거기까지 말한 신정현은 한동안 어깨를 떨며 울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큰 위로다.
그리고 마침내 말을 이었다.
“한 달 넘도록 실의에 젖어, 술로 세월을 보냈어요.”
“희망을 잃었군요.”
자식은 부모의 모든 것이다.
아들이 증발하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 중에 또 하나가 사라졌다.
그래서 희망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네.”
“그런데요?”
“어느 날도 그렇게 술에 취해서,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서 돌아가셨어요. 으흐윽.”
그때라면, 태영이 여전히 군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시기다.
그런데 맨홀에 빠져?
왜 이 부분에서 느낌이 좋지 않지?
다른 사람이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태영과 함께 증발한 군인의 아버지다.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엄마의 치료비는 바닥이 보이지 않고…….”
모친이 병중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들었던 보험은 이미 해약해서 엄마의 병원비로 써 버렸고…….”
그래서 그런 일을 해서라도 치료비를 벌어야 했다는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리되셨고…….”
천천히 이어지는 말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