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85
030. 방문자들(1)
“내가 뭘 도와줄까?”
한참 동안 침묵해 있다가 물었다.
“복수하고 싶습니다.”
“…….”
“칼이라도 들고 찾아가서 찢어 죽이고 싶지만, 가능한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습니다.”
“…….”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이제 감정을 많이 가라앉혀서 말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가만히 안재희를 바라보았다.
“내게 도움을 받으면 복수가 가능할까?”
“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왔다.
“왜?”
“그 집. 외부에서 집 안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단 한곳도.”
맞다.
창문 너머에서 집 안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제가 다친 것을 어찌 알고 119에 알렸겠습니까?”
모의고사에서 전국 수석 5명 중에 한 명.
똑똑한 거 인정한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병원에 돈을 보내, 저를 치료해 주라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마지막 말은 자신의 정확한 포지션이다.
“…….”
복수의 대상을 그놈으로 한정하는 것은 범위가 좁다.
그 정도로 간단히 끝내면 안 되지.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또한 자신을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아니야. 내가 너에게 빚이 있지. 그것도 크게.’
잠시 네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 못 했거든.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그런 일을 그냥 해 줄 사람은 결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영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덧붙인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태영의 말실수에 안재희가 저리되지 않았으면, 태영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좋다.”
“아…….”
아이는 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리며 태영의 발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흐윽, 흐으으으윽.”
“그럼 되었다. 일어나라.”
“네.”
눈물을 닦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재희의 사정.
만나겠다고 한 후에 조금 더 알아보았다.
어떻게 도울지 생각을 해야 했다.
안재희의 결심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안재희는 소파에 앉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으로 눈을 닦아 내어 얼굴과 손에는 얼룩이 졌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눈물을 훔쳐 낸다.
“고개 숙이지 말고.”
“네.”
“앞으로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한 달 안으로 주소 하나와 날짜를 보내겠다.”
“……?”
의문을 실은 눈이다.
“그날 밤 늦게, 집 안의 모든 것을 그냥 두고, 중요한 것들 몇 가지만 챙겨서 여행을 가는 것처럼 그 집을 떠나라.”
“네.”
“그리고 내가 보내 주는 주소로 이사를 해라.”
“네.”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대답한다.
“이사 간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 대상에 네 아버지도 포함된다.”
“네.”
“주민 등록은 옮길 필요 없다. 옮겨서도 안 되고.”
그놈이 심부름센터 사람을 고용했다.
일주일에 한번, 안재희 가족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비밀을 감추어야 할 것이다.
주민 등록을 옮기면 심부름센터에서 주소를 알아낼 수 있다.
개인 정보 보호법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에도 오늘 이전과 같은 행동에서 조금도 변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기본을 갖추어라. 그 기본에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는 네가 생각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너에게 힘이 생겼을 때, 네 복수를 시작하게 해 주마.”
“그렇게 하겠습니다.”
녹음기를 튼 것처럼 거의 같은 대답을 한다.
“네가 기본을 갖출 때까지 네 학업 비용과 가족들의 생계는 내가 책임지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은 장차 네가 갚아야 할 빚이다.”
빚이라고 했지만, 말만 그렇다.
태영이 진 빚이 더 크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네, 말씀하십시오.”
“유재구 같은 놈과 어울리지 마라.”
태영을 바라보는 얼굴이 경직되고 몸도 경직되었다.
두 손을 파르르 떨고, 꽉 잡은 손은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갔다.
“흐흐흐윽, 끅, 끅, 끅.”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목이 메여 운다.
“잘못……했습니다. 흐윽……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겨우 숨을 내쉬자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말 했다.
“그래, 믿으마.”
“그놈도 복수의 대상에 포함시켜도 되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상대가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태영이 그놈을 엿 먹이면서 말려 죽이려 하고 있다.
‘이 아이에게 기회를 주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면 태영이 손을 쓰는 것도 느슨하게 해야 한다.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명맥만 유지하게 해야 한다.
“좋다.”
“감사합니다.”
안재희는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크로스백에서 두툼한 뭉치 하나를 꺼냈다.
금융권을 통할 필요 없는 현금이 많아서 좋다.
“이건 앞으로 한 달간, 너와 너희 가족이 생활하는데 쓸 돈이다.”
돈뭉치를 건네주었다.
“……가…… 감사.”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한 손으로 입을 막는데, 또 운다.
이 아이는 언제쯤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될까?
“이사할 집 주소를 받으면, 네 통장 번호를 보내라. 이후부터 그쪽으로 송금해 주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이후, 네가 알고 있는 그 전화는 사용되지 않을 거다.”
“네?”
그것이 유일한 연락처인데?
그 표정이다.
“집 주소를 보내는 전화 번호, 그게 그때부터 연락 가능한 번호다.”
“알겠습니다. 혹시.”
“왜?”
“에뒨이라는 닉네임 말고, 본명을 알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는 신문 안 보고, TV도 안 보고 살아?”
그 말에 비로소 태영의 얼굴을 자세히, 마치 뜯어보듯 찬찬히 본다.
“아, 아아아. 최…… 최, 최…… 최태…… 죄송합니다. 이름을…… 부르기…… 그냥 에뒨 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떻게 부르든, 당분간 만날 일은 없다.
태영이 요구한 자격.
그것을 갖추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전국에 5명인 만점자 중에 한 명이라는 천재.
절대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제대로 도와서, 저 아이가 복수를 하게 해 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면, 조금은 안재희에 대한 미안함이 덜어질 것이다.
“이건 넣어라. 나가자.”
“네.”
대답을 한 아이는 돈뭉치를 메고 온 백팩에 넣었다.
***
“시간이 남았는데. 잔돈은?”
밖으로 나오자 카운터에 앉은 주인의 말이다.
“잔돈은 가지세요.”
거기서 멈칫거리며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 말하고 서둘러 노래방을 벗어났다.
“밥은 먹고 다니냐?”
“…….”
노래방 입구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었는데, 입을 다문다.
“가자, 밥 사 주마.”
“호…… 혹시, 사람들 있는 곳에서는 오빠라고 불러도…….”
“안 돼.”
동생이 없으니, 여동생 삼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에뒨이라 부르는 것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라서 이해는 하지만, 곁을 주는 단어는 안 된다.
“…….”
“어깨 펴라. 뭐 죄지은 거 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고개를 살짝 돌리는데 안면 함몰이 눈에 뜨인다.
안면 함몰.
한창 멋을 부릴, 미모에 민감한 나이에 안면 함몰이라니.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겠지.
‘조만간 고쳐 주마. 얼굴이 그리된 것 또한 내 책임이니.’
세상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하도록 고쳐 주마.
***
하네다 공항.
미국에서 돌아와 곧 오려고 했었다.
비록 이런저런 일로 늦어졌지만, 결국 왔다.
“リッツカ?ルトンホテルに行きましょう。(리츠칼튼 호텔로 갑시다.)”
“はい、 リッツカ?ルトンでいきます。 (네, 리츠칼튼으로 갑니다.)”
나이 많은 운전기사가 밝게 말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감회가 새롭다.
9백여 년 전과는 다른 차원의 지구.
그곳의 에도라는 작은 어촌, 지금의 동경에 왔다.
그곳에는 한서윤과 잔디 모두 함께 있었었다.
13세기에 총으로 무장한 사포군도 함께 있었다.
한규장은 관리를 잘 하고 있을까?
일본 전역을 손안에 넣겠다고 했는데.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이곳에서 고려에서 잡혀 온 송한이를 만났다.
모두 왜어를 쓰는 그 무리들 가운데.
태영을 향해 고려의 말, 아니 한국어인 ‘나리’로 불렀다.
그 한 단어로 자신이 고려인이라는 것을 밝혔던 사람이다.
다른 차원의 고려에 두고 온 사람.
송한이는 그날의 일로 고려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태영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태영과 함께 고향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왜구에게 죽임을 당했고, 오빠도 왜구에게 끌려간 자신을 구하러 갔다가 죽고 없었다.
병든 모친과 두 명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고향이 곡용이었는데.
‘다음에 곡용에 한번 가 봐야겠다.’
송한이를 만났던, 고려신사(高麗神寺)가 이 차원에서는 고려신사(高麗神社)라는 이름으로 있을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찾아본 내용으로는 그랬다.
한자로 보면 마지막 한 글자의 차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위니.”
예약된 방으로 들어간 태영은 위니를 불렀다.
[네, 마스터.]“도청 장치나 뭐 이상한 것 있는지 확인.”
[없습니다.]“그럼 얼굴 바꿀 대상들 정보 보여 줘 봐.”
[네, 후보 3인입니다. 설명 드리겠습니다.]“그래.”
후보 선별 기준의 첫 번째는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이다.
그 외에 나이가 22세에서 25세 사이일 것.
대학을 나온 사람일 것.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1번, 아이자와 마사시.]“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영상으로 보내 줘 봐.”
태영의 눈앞에 相澤 正志(あいざわ まさし)라고 한자와 히라가나가 표시되고, 그 옆에 사진도 표시되었다.
뻐덩니에 작은 눈이다.
“못생겼네.”
[다음, 2번 하시바 타이세이.]橋場 太晴(はしば たいせい)
이번에는 한자와 히라가나, 그리고 얼굴과 전체 사진이 한꺼번에 뜨고 신체 치수도 표기되었다.
약간 큰 키에 마른 체형.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얼굴이다.
[3번, 라노이에 타이치입니다.]李家 太一(りのいえ たいち)는 아주 잘생긴 얼굴이어서 쉽게 눈에 띌 것 같다.
“2번이 좋을 것 같은데.”
[야쿠자에 금액이 확인되지 않는 빚이 있고, 6개월 전에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지금도 야쿠자가 쫓고 있나?”
[아닙니다.]“인적 사항 다른 것은?”
[나이는 25세, 고아입니다. 니교가구샤 대학 국제경제학 전공, 학교를 마치는 동안에 아오주라 은행에서 대출 6백만 엔, 행방불명 이후 6개월 동안 이자를 내지 못한 상태로 연체되어 있습니다.]“그럼, 그 인물로 행세하려면, 빚을 갚아야 하네?”
[그렇습니다.]“스캇의 게좌에서 인출 가능하지?”
스캇 플레처는 라스베이거스의 일로 인해 개인 통장에도 돈이 제법 있다.
***
“내가 하시바로 일을 처리하고, 30분 정도는 은행 부근에 머무를 거야.”
[네.]“은행에서 누가 하시바의 이름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있으면 녹화, 추적해 줘.”
태영은 하시바의 얼굴을 파모니 졸의 4번으로 정하고, 얼굴 변경을 했다.
[은행에서 야쿠자에 연락할 것으로 생각합니까?]“괜한 걱정이지만, 그럴 수도 있으니까.”
무언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을 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일본에서 움직여야 할 때 주의하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알려 줘.”
[네, 가장 중요한 점, 일본은 한국의 주민 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이 없습니다.]“뭐?”
[주소지로 배달된 청구서나 고지서 같은, 주소지가 나오는 문서가 있어야 합니다.]“뭐가 그리 개판이야?”
[마이 넘버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한국의 주민 등록 번호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정식 신분증은 아닙니다.]“그래?”
[네, 그래서 아오주라 은행으로 가기 전에 은행의 청구서를 반드시 찾아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번 걸음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하, 짜증 나는 동네구만.”
[…….]“호텔을 벗어날 때까지, CCTV 정리.”
[넵, 마스터.]호텔이라는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곳이다.
그러니 이곳에 온 흔적이 남는 것은 좋지 않다.
“부근에 콜로니 만들기 좋은 곳이 있어?”
하시바의 주소지인 나카노구의 히가시코엔지 역 인근에서 택시에서 내리면서 물었다.
[히비야 공원 앞에 IDC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이 콜로니로 적절합니다.]“그건, 위니가 알아서 처리해.”
[네, 마스터.]하시바의 원룸 우편함에는 여러 가지 봉투가 보였다.
그런데 이름이 두 가지다.
6개월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아마, 집세를 내지 않아서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사는 듯하다.
우편물들만 챙기면 되니까.
하시바의 이름으로 온 우편물을 챙겼다.
“はしばさん ひさしぶりですね (하시바 씨, 오랜만이에요.)”
그때 뒤에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 아는 사람이다.
하시바의 신분을 이용하고자 한 태영이 그 사람을 알 리가 없다.
고개를 돌려 보니 40대는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다.
“はい。 おはようございます。 (네. 안녕하세요.)”
“(그동안 안 보이시던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별일 없었습니다. 갑자기 해외 지사에서 오랫동안 발이 묶여서 오지 못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가까운 사이는 아닌 듯.
더 이상 묻지 않고 넘어가 준다.
“(하나비 양이 몇 번 찾아왔었는데, 연락 한번 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편물을 가방에 넣고 간단히 목례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하나비, 하나비, 뭔가 익숙한 이름이다.
“아, 마쓰야마 성주의 딸.”
고려의 그때.
태영의 사포군이 한글 송산시로 사용키로 한 마쓰야마.
마쓰야마 성주의 딸 이름이 하나비였다.
통신용 비둘기를 날려 보내 지원을 요청하려 하다가 걸려서 결국은 비참하게 죽었지만.
“신라 호족의 후예, 여자 시장 화지(花枝), 잘 다스리고 있겠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일본을 다니다 보면, 그때의 기억이 참으로 많이 날 듯하다.
도시마다 각각의 사건들이 많았다.
분명 가는 곳마다 이런 추억들이 떠오를 것 같다.
태영은 아오주라 은행으로 들어섰다.
대기표를 뽑는 곳.
이것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대출 창구에 가서 이름을 말했지만, 신분증 항목에서 보여 줄 것이 하나도 없다.
몇 번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창구에 네 번을 불려가고 2시간이 지난 뒤에 대출금의 상환과 이자 처리가 끝났다.
첨단 IT 세상인데,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에 산다.
“자, 이제 증권사를 가야지.”
[일본에서는 노모라 증권이 가장 큽니다.]“미국계 합작사는 없어?”
[있습니다.]“그리 가서 만들지 뭐.”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