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86
031. 방문자들(2)
개강 첫날 첫 수업.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 조금의 설렘은 있다.
그래도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혹시 서투른 것을 들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있었다.
“최태영.”
“네.”
“그 최태영이 맞아?”
“말씀하시는 그 최태영은 누구입니까?”
태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
저희들끼리 무언가 수군거리며 손가락질을 하는 학생들.
그런 행동에 별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저 질문에는 좀 민감하게 반응했다.
교수님에게 그러면 안 되지만.
“허.”
교수는 조금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다.
그렇기도 하겠지.
{와, 우리 학교 학생인 건 알았지만, 같은 수업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수업이 재미있겠다.}
{왜 재미있어? 뭐 특별한 일이라도 일어나는 거야?}
{모르지, 앞으로 기대해 보자구.}
속삭이듯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태영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이는 말이다.
얘들아, 다 들려.
신상은 모두 다 까발려졌다.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복학했으니 그런 관심은 더욱더 가까이 올 수도 있다.
어차피 감수해야 할 일이니 견뎌야지.
“그래, 말해 뭐 하겠나? 잘 지내보자?”
말꼬리를 의문형으로 올린다.
“네, 교수님.”
입꼬리가 잠시 올라갔지만, 계속해서 출석 체크를 해 나갔다.
강의실 입구에 있는 카드 리더에 학생증 카드를 터치했다.
출첵은 되었지만, 출석을 부르는 이유는 얼굴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오늘 첫 강이니까, 출석 점검하고 OT만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다들 잘 알겠지만, 나는 출석률을 많이 따져. 그러니 내 수업에는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조 편성하도록 한다. 알았나?”
~네~
“오늘 수업 끝.”
몇 사람이 대답을 하고, 교수님은 수업을 끝냈다.
OT가 원래 이 정도였던가?
복학 첫날, 오늘 받아야 하는 네 개의 수업 중에 한 개가 끝났다.
아는 얼굴이 없으니, 아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태영은 노트북을 백팩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별 과제를 위한 조 편성.
조원 수를 채우지 못해서 인원이 부족해진 조에 들어가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그냥 혼자 하지 뭐.
혼자 해도 되나?
{‘왜 너만’이 복학했다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계단 아래쪽에서 들리는 말.
여러 명이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보다 크다.
{네, 그렇다는데요.}
{2학년 복학이라고 했지?}
{어, 저기 저놈입니다.}
멀리서 보는 모습이라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 같은 무리 중에 한 명의 말이다.
‘저놈?’
대학에도 일진이 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에 박준혁이 차근차근 알려 주었다.
화석 취급을 당하거나, 꼰대 취급을 당하는 복학생.
현실 적응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머리가 크고, 성인이 되었으니, 중고생 때처럼 주먹질을 하거나, 빵 셔틀을 시키지는 않는다.
대신에 따돌린다.
아니면,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한다.
세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학교생활의 기억이 없는 태영에게는 도움이 된다.
“거기.”
중앙에 서서 마치 졸병들을 거느리고 오는 것 같은 모습.
그중 한 명이 태영을 불렀다.
하지만 태영은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야, 부르면 서라 좀.”
한 명이 팔을 뻗어 가로막았다.
“뭐야?”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과대 선배 보고 뭐야라니?”
실제 이놈은 과대가 아니고, 과대의 이방이다.
한마디로 권력자 아래서 기생하는 놈이다.
“네가 무슨 과인지, 그리고 과대인지, 선배인지 내가 어찌 알아?”
“뭐?”
“그리고 누가 날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는데.”
“하, 새끼, 존나 이상한 놈이네.”
“새끼?”
“그래, 왜? 선배한테 반말 찍찍 하는 놈에게 새끼라고 하기로서니.”
“등신.”
태영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가능하면 학교 선후배와는 싸우지 않는 것이 좋기는 하다.
어째, 개강 첫날부터 복학 생활이 무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 씨발, 저 새끼 뭐야?}
{야이 씨, 싸가지 존나 없네.}
{야, 가자가자. 뭐 저런 놈이.}
{에이 씨, 정말.}
뭐라고 웅성거리기는 하는데, 어릴 때의 일진들처럼 주먹이 날아오지는 않는다.
점심시간.
“별문제 없어?”
박준혁과 지난번 치킨집에서 함께 보았던 얼굴들과 점심을 마치고, 카페로 들어가서 앉았다.
“문제야 항상 있지.”
“하긴.”
“알려진 얼굴에, 호기심이 발동하면 못 참는 관종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적당히 참아라.”
“열심히 잘 참고 있다. 안 참으면 벌써 여러 사고 났지.”
“놈들이 별거 아닌 직함을 들고 위세를 부리기는 하지.”
“태영아, 준혁아. 우린 다음 수업 들어간다.”
태영과는 모두 학년이 다르고, 신청한 강의가 다르다 보니 수업도 다르다.
“그래, 또 보자.”
배재혁과 강동우를 포함해서 그들이 떠났다.
“어머니가 머지않아 퇴원해도 될 것 같은데, 지난번에 너하고 하던 이야기.”
“집?”
“응.”
“말 잘 꺼냈다. 혹시, 문정동 쪽으로 이사할 수 있나?”
“문정동? 거기 무지 비싼 동네 아니야?”
“네 빚이 자꾸 늘어나는 거지.”
“아주 목줄을 잡는구나. 그런 너는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갈 수 있어? 없어?”
“가능하지. 그런데 왜 그쪽으로?”
태영은 조금만 설명했다.
누나가 그쪽에서 작은 회사를 낼 거다.
일손이 필요할 것 같으니, 네가 거기서 알바 할래?
알바 끝나면 늦은 시간인데 집이 가까워야 하지 않나?
그런 이야기다.
“나야 그래 주면 좋고.”
“그럼 누나에게 그렇게 전하마. 적당한 때에 연락하라고 할게.”
“그래, 그나저나 너 그건?”
“너도 말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구나.”
“아, 내가 좀 그렇지? 이거 고쳐야 하는 거지?”
“그럼, 곧 사회생활을 하게 될 건데.”
“고쳐 봐야지.”
얼마 전에 박준혁과 모친의 증권 계좌와 공인 인증서를 받았다.
지금은 위니가 열일하고 있다.
“자, 나도 다음 수업 간다.”
“그래, 저녁때 보자.”
“응.”
박준혁도 가고, 태영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 후엔 1시간 공강이다.
“최태영 씨.”
카페가 있는 건물을 벗어나 강의동으로 이동하는데 누군가가 이름을 부른다.
빠르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남자 넷, 그리고 여자 셋.
그 뒤쪽에 카메라를 멘 사람도 여럿 보인다.
달리듯이 빠르게 다가오는 일곱이다.
TV 화면에서 보이던 익숙한 얼굴도 있다.
리포터? 기자인가?
누가 기자이고, 누가 기레기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저들은 저렇게 뭉쳐 다닐까?
서로 간에 약속을 하고 온 것일까?
“최태영 씨.”
그들이 거의 뛰다시피 달려오면서 태영을 불렀다.
여태까지는 태영의 소재 파악이 안 되었다.
그래서 인터뷰하자고 달려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학교에 와서 조금만 수소문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만만해졌다는 말이지.
“위니, 녹음 모두 막고, 녹화해.”
학교 안이기에 피하려고 해 봐야 마땅치 않다.
그냥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네, 마스터. 영상 촬영은 막지 않습니까?]“응, 촬영은 두고, 소리는 막아.”
[네, 마스터.]“최태영 씨, 사건 당시의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태영 씨, 어떻게 사라졌다가 8일 만에 나타났나요?”
“그때 입고 있던 옷은 어떻게 된 건가요?”
“8일 동안 어디에 있었나요?”
질문은 막말 수준이다.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다.
한마디로 개판이다.
기자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 아닌가?
잘못 생각했나?
그렇게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
카메라맨들까지 태영을 둘러쌌다.
그들은 계속 비슷한 유형의 질문들을 퍼부었다.
입을 다물고 그들과 눈을 맞추며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돌아왔나요?”
모두 죽어?
모두 죽었는지, 아닌지 네가 어찌 아는데?
그자에게만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자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주위의 다른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그자의 눈만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자가 마침내 눈을 피했다.
‘너…….’
목을 따 버리고 싶다.
질문은 계속되었지만, 가만히 서 있었다.
도망치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사이에 학생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10분을 넘어가자 그들의 얼굴에 슬슬 짜증이 어린다.
학생들의 숫자는 100명 넘게 모였다.
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이렇게 많이 온 것인지.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
손가락질과 욕도 있었다.
욕과 손가락질은 대부분 기자를 향했지만, 태영을 향한 것도 있다.
기자들도 학생들이 하는 욕설을 들었을 것이다.
“야, 씨발 말 좀 해.”
한 명이 무선 마이크 장치를 앞으로 쑥 내밀며 욕과 함께 반말로 큰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그와 눈을 맞추었다.
다른 곳으로는 일절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 사람만 계속 바라보았다.
“……뭐, 뭐? 왜?”
그자는 제풀에 놀란 것인지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곤 의미 없는 뭐와 왜를 반복했다.
“최태영 씨, 말씀 좀 해 주세요.”
“최태영 씨,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증발될 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또 다른 기자들이 같은 질문을 계속 퍼부었다.
참, 끈질기기도 하지.
대체 뭐를 말해 달라는 것일까?
반말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있는 그 상황.
다른 기자들은 열심히 질문을 했지만, 반말은 안 했다.
욕도 하지 않았다.
“번호 붙여요.”
“네?”
태영의 말에 멀뚱멀뚱.
누군가는 옆을 돌아보기도 한다.
“네, 1번 조아일보.”
저 사람은 군에 갔다 온 사람 맞다.
“…….”
“아, 2번. 한중일보.”
“3번, 세조신문.”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재빠르게 번호를 붙여서 7번까지 나왔다.
욕하고 반말을 했던 자가 4번이다.
그래도 질서가 잡혔다.
“질문하기 전에 자신의 번호를 말씀하시면, 내가 지명하겠습니다.”
~1번~1번~1번~2번~3번~5번~4번~
또 개판이긴 하다.
7명이 경쟁적으로 번호를 불렀다.
“1번, 질문하세요.”
일단 가장 먼저 자신의 번호를 붙였으니 우선권을 줘 야지.
“사건 당시, 그러니까 증발 당시의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막연하게 질문하시면 장황해지는데…….”
잠시 말을 멈추었다.
“네?”
~2번~4번~5번~3번~
또 마구 번호를 불렀다.
그쪽은 싹 무시했다.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대답이 어렵습니다. 꼭 찍어서 질문해 주세요.”
“아, 사라지기 전에 어떤 특이한 변화나 징후가 있었습니까?”
1번의 질문이다.
“비가 왔고, 천둥과 번개가 쳤습니다. 자, 다음.”
이건, 방송이나 신문에 이미 나왔던 내용이다.
육성으로 듣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돌아가서 확인하면 녹음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2번~3번~4번~1번~5번~
또 마구잡이로 번호를 불렀다.
“2번 질문.”
“실종된 후 8일 만에 나타난 이유가 뭔가요?”
“나도 궁금합니다. 좀 알려 주세요.”
그 기자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누구에게 물으면 이유를 대답해 줄까요?”
태영이 그렇게 응수하자, 몇 명은 웃었다.
“5번 질문하세요.”
“증발 후 8일 동안 어디에 있었나요?”
참 질문하고는.
저런 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것일까?
기자들의 머리는 새대가리다.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다.
“나도 궁금해요. 그 8일 동안 혹시 어디선가 나를 본 사람이 있는지.”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거의 비슷한 답으로 이어졌다.
“트럭은 몇 대인지, 무기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군사 비밀을 공개하라는 뜻입니까?”
“군사 기밀?”
“군 복무 안 했죠?”
기자의 얼굴이 벌게졌다.
창피할 것이다.
“군 복무 중에 체득한 군사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
“학교생활은 어떠십니까?”
다른 기자다.
“글쎄요, 오늘 복학하고 첫날이라서 생활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요.”
“왜 혼자 돌아왔습니까?”
혼자 돌아오다니? 대체 저게 질문이야, 뭐야?
“당신은 왜 살아 있습니까?”
그 기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하, 씨발.”
기가 막혀서 뒤로 물러서는데, 제가 질문한 것과 내용이 뭐가 다른데?
“돌아오지 못한 분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또, 이딴 식의 질문이다.
“그러는 기자님은 그분들에게 어떤 일을 했습니까?”
계속 받아치니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씨, 4번, 나도 질문 좀 하자.”
이번에는 4번이 나섰다.
“4번, 너는 예의부터 배워서 오세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야, 야. 나는 한 가지도 물어보지 못했다고, 씨발.”
몸을 돌리는데 4번이 소리쳤다.
“예의부터 배워 오라니까.”
“씨발, 뭐라?”
“하긴 너희 집에서 가르친 것이 그 꼴이겠지.”
저놈의 부모를 욕한 거다.
아마도 꼭지가 돌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학생들.
그중 누군가의 웃음.
박수와 웅성거림.
그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학생들은 태영의 앞을 막지 않고 길을 비켜 주었다.
달리는 발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래, 그렇게 꼭지가 돌아서 쫓아오는 것이 맞지.
달려오며 뭔가를 하려는 거다.
가볍게 피하며, 염력으로 발을 걸고 어깨를 밀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피했을 뿐이다.
~푸다닥~철퍽~
“악.”
비명을 지른 그자는 모래흙에 얼굴을 박고 한참 밀려갔다.
“으아아, 크어.”
비명과 함께 삐거덕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옷은 흙먼지로 엉망이다.
흙모래에 얼굴이 갈렸다.
한쪽 이마에서부터 볼을 지나 턱까지 빨갛다.
벌써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밀었지?”
“제가 밀었나요? 여러분, 제가 이분을 밀었나요?”
“…….”
“……?”
기자 4번의 고함에 태영이 다른 기자들에게 물었다.
다른 기자들은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바라보았다.
“아닌데, 저 혼자 알아서 넘어지던데.”
한 명이 자신이 본 상황을 말해 주었다.
계속 촬영 중인 카메라 기자도 있다.
영상을 보면 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 이…….”
얼굴을 흙에 갈아서 배어 나오는 핏물.
흙과 핏물이 섞이면서 기괴한 모습이다.
그 피가 금방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태영은 강의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갔다.
기자들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른다.
복학을 한 이상 기자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