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88
033. 방문자들(4)
“(2분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폰을 가볍게 터치하여 시계가 보이도록 하면서 말했다.
10분간 주겠다고 한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다.
“(나사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며칠간 방문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조셉 설리반을 분명히 아는 것 같다.
그런데 모르는 체하고 자꾸 딴소리만 한다.
“(초대하면, 내가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웃긴 놈들이다.
“(설리반이 책임자로 있는 부서에서 증발 사건과 그 현상의 조사를 담당하고 있고, 얼마 전부터 우리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여태 입 다물고 있던 사람이 조셉 설리반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이놈이 자신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특히 우주 물리학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엮이는 것은 좋지 않다.
R존의 기술들은 대부분 우주 물리학이 기본이다.
28세기에 있을 때, 태영은 그 분야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아예 없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기는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세계 곳곳을 여행 다녔다.
생존자들의 무리에 들어가 함께 섞여서 말을 많이 익혔다.
그래서 우주 물리학에 지식이 없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공부할 수도 없다.
위니에게 도움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있다.
[조셉 설리반은 지금 CIA 한국 지부장과 만나고 있습니다.]위니의 전달 사항이다.
조셉 설리반이 입국했다는 것은 위니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CIA 한국 지부장을 만날 것도 예상했다.
다만, 이들과 같은 목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이제 알게 되었다.
“(조셉 설리반은 왜 함께 오지 않은 거죠?)”
“(그는, 다른 일을 보러 갔습니다.)”
이들은 조셉 설리반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데 태영이 묻는 말에는 대답한다.
“(CIA 한국 지부장?)”
“(……짐작이 맞을 것입니다.)”
놀라는 표정과 함께 잠시의 뜸을 들인 후에 대답한다.
“(10분이 지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최태영 군.”
고종필이 불렀다.
“네, 고 박사님.”
“최 군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사에서 여기까지 온 것을 감안하여 시간을 좀 더 내어 주면 안 될까요?”
“사전에 이분들로부터 만나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왜 만나러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저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겠지요. 난, 그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묻는 대로 대답을 해야 합니까?”
“그게…….”
“왜 그래야 하는 거죠?”
“흐음.”
“무엇이 되었든,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오세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나사에서 왔다고 하면 대답해야 해?
그리고 천문 연구원에서 왔다고 하면 만나 줘야 하는 거야?
거기에, 무한정 시간을 내어 주고?
묻는 대로 다 대답도?
어림없다.
문을 나오자 저 뒤쪽에 조교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감청 장비라.
권 교수나 저 조교는 알고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궁금했겠지.
“최태영.”
조교가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딸깍~
그때 마침, 소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못 들은 척 시치미 뚝 떼고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He seems to know something.}
{It feels like that, doesn’t it? However, I don’t think he will ever tell you.}
{Tell me if you have a good idea.}
{I don’t think will be able to hear anything coercively.}
대화를 들으며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조교가 뒤따라오지는 않았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만 들려왔다.
{Let’s think about it.}
{I think that better keep his number.}
추가로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뭐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어느 부분에서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것일까?
추측일까?
~타다다다닥~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
발자국 소리로는 고 박사이다.
“혹시 전화번호는 줄 수 있겠소?”
계단 위에서 태영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전화번호는 알려 줄 수 있다.
만약에 성가시게 굴면 차단하면 된다.
~우우우우우웅~
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빈 강의실을 찾는 중인데 처음 보는 번호의 전화다.
“여보세요.”
[조병원이야.]태영이 전역 전에 마지막으로 각종 서류에 서명하라고 한 군사 경찰.
국방부에 근무하는 소령.
미국 CIA가 같이 조사하자는 것을 막았다는 사람이다.
“난 이제 군인이 아닙니다.”
[너, 요즘 아주 바쁘더라?]“반말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바쁘더라니, 군바리가 민간인 사찰하는 겁니까?”
[뭐, 인마?]군바리라는 말에 욱하고 튀어나온 것일까?
반말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반응일까?
“그래, 용건이 뭡니까?”
[얼굴 좀 보자.]“나하고 얼굴 마주 보고 쎄쎄쎄 할 사이입니까? 꿈 깨요.”
[너는 전역을 안 시켜야 했는데, 진짜 실수했어.]“반말하지 말라니까, 자꾸 반말하면 나도 반말한다. 그래도 돼?”
[아, 그 새끼 참. 네 마음대로 해라.]“지금 조셉 설리반 따까리 하느라고 전화한 거죠?”
그래도 공식적인 나이가 많으니 좀 더 두고 보자.
[아, 그 새끼 정말.]“…….”
새끼라는 말이 아주 입에 붙었다.
잠시 가만히 두었다.
[너, 미국에서 애들 좀 팼다면서?]“누가 누굴 패? 내가 누굴 팰 수나 있는 사람이요?”
태영의 말도 차츰 짧아져 간다.
조병원이 계속 반말을 고수할 것 같다.
[CIA 애들.]“아, 내 방에 침입했던 놈들?”
[침입?]“그리고 CIA가 무슨 애들이야? 말씀은 똑바로 해야지.”
[침입이 맞아?]“그게 아니면? 날 붙잡아 가려고 물리력을 행사했던 놈들인데.”
조병원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반응이다.
“그놈들이라면 난 정당방위요.”
[아무튼.]“그놈들이 잡아가려 해서 방어한 거밖에 없어요.”
[여하튼 말이라고.]“그리고 미국에서도 시비 안 거는데, 한국에서 그것도 군에서 왜 시비를 걸어?”
[너, 대한민국은 속인주의인 거 몰라?]“공부 좀 하시지. 우리나라 법 적용 기준도 모르시나?”
대한민국은 속지주의가 원칙이다.
해외의 한국인에게는 속인주의 적용이 맞을 거다.
어차피 법과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니니 시치미 떼면 된다.
[아무튼,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라.]“아니 뭐, 내가 조병원이가 전화하면 네, 기다렸습니다, 하고 대기 중인 사람인가?”
[야, 야.]“오후에 전화해서 저녁에 보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 친구도 아니고.”
[어찌 되었거나 시간 좀 내라.]어쩔 수 없나?
“일당 비쌉니다.”
[그래, 주마. 줄 테니까 얼굴 좀 보자.]“조병원 말고, 또 어떤 놈들이 오는데?”
[아, 그놈 잘 하면 진짜 나하고 맞먹겠다. 그리고 놈들이 뭐냐, 놈들이? 조셉 설리반이 갈 거다.]“거기서 예외가 있으면 바로 나갑니다.”
학교로 찾아왔던 NASA의 그 사람들.
그들이 동석할 것 같아 다짐을 받아야 했다.
[혹시 한국 지부장이 말해 주지 않은 사람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해?]“당연한 거지. 중개인인데 정확해야지.”
[알았다. 확인해서 추가로 더 있는지 알려 주마.]~우우우우웅~
조병원과 통화를 종료하자 곧이어 다시 전화가 울렸다.
[신정현이에요.]“네, 어쩐 일로?”
[일할 곳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해서, 연락 드렸어요.]“그럼,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만나요. 위례 쪽에서.”
[회사는 어디인데요?]“터니테크, 얼마 전 창립한 회사인데 위례에 있어요. 시간하고 위치는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터니테크, 태영이 만든 회사다.
돌아가야 하기에 이름을 Returnee Tech로 생각했다.
그것은 R존의 기술을 이용할 것이다.
너무 속보여서 Re를 뺐다.
[네, 감사합니다. 음, 최태영 씨 회사. 맞죠?]“…….”
[창립 회사라면 고생이 많겠네요.]필요한 칸수는 다 확보했다.
다만 두 칸을 사용 중인 회사가 있었다.
거기를 비우는 기간이 2주 남았다.
그때부터 1주간 공사를 하고 입주할 것이다.
***
(일이 생겨서 오늘은 못 보겠다. 내일 보자.)
박준혁에게 톡을 보내고 학교를 벗어났다.
수업도 없고, 시간은 남았다.
초가을의 오후 햇살이 천천히 넘어가는 중이다.
중랑천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전역 후, 처음으로 박준혁과 만났던 그날, 중랑천을 걸었었다.
그 후, 시간이 애매하면 중랑천을 걷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멀리 사람들이 걷거나 뛰어서 운동을 하고 있다.
~후우우웅~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전거.
그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R존에 갔다 왔소?”
스쳐 지나갈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웬 R존?
R존을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결단코 태영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없어야 맞다.
낙서로 끄적거린 일도 없고, 입 밖으로 낸 일도 없다.
그런데 R존이라니?
간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다.
“…….”
“고개…….”
태영이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리려 하니, 빠르게 말했다.
“고개 돌리지 마시오.”
태영이 고개 돌리지 않자 천천히 말했다.
이 사람을 확인하려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래도 누구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싶다.
“R존? 그게 뭔데요?”
천천히 말하며 멈추었던 고개를 순간적으로 돌렸다.
~팟~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가 들렸던 위치에 초가을의 햇살만 남아 있다.
“위니.”
[그는 순간 이동 능력자입니다. 북쪽 90미터 지점에서 등을 보이고 빠르게 걸어가고 있습니다.]‘하, 대체 뭐냐? 순간 이동 능력자라니.’
이게 무슨.
“추적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그사이에 한 번 더 순간 이동을 했고, 거리는 약 2백 미터 정도 멀어졌습니다.]“워처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구나.”
워처는 태영의 주위에 있었지만, 속도가 느리다.
초속 180미터의 속도를 내는 사프캣이 하필이면 태영의 주위에 없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도 워처를 상공으로 보내서 확인한 것입니다.]“영상은?”
[일부를 촬영했는데, 얼굴이 가려졌습니다.]학교에서부터 따라온 것일까?
저쪽은 태영을 아는데, 태영은 상대방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
태영의 정보는 각종 미디어에서 도배를 했으니 모를 수가 없지만.
그 사람은 순간 이동 외에 또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저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시공간 차원의 궤적이 현재의 지구, 그것도 같은 시대로 향하게 될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R존에서 보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정의 신호나 파동 같은 것이 있었나?”
[있었습니다만, 제가 가진 샘플 데이터에는 없는 형태입니다.]“또 나타난다면 찾아낼 수 있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왜?”
[파동을 감지한 시간은 2.5초였는데, 그것이 이동 준비 단계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의 9밀리초는 확실하게 달랐는데, 그것이 이동 순간으로 보입니다.]위니가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니.
[신호 샘플이 너무 작아서 감지가 가능할지 정확한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9밀리초.
지극히 짧은 시간이어서 사람이라면 인지가 쉽지 않다.
‘에이, 잊어버리자.’
***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약자 이름을 말했다.
흰색 셔츠 위에 검정색 조끼, 검은 나비넥타이의 여자 종업원이다.
웨스코르 호텔.
일 끝나고 만나 볼 사람이 생각났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네.”
식탁 하나에 의자 4개가 있는 룸이다.
가히 테니스를 해도 될 만큼 넓다.
2분쯤 지났다.
“왔냐?”
조병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는 짧은데, 군복 대신 양복이다.
“좋아 보입니다.”
“그래.”
“하긴 뭐 죄 없는 군인들 잡아 족치는 일이나 하고 있으니 살 만하겠지.”
전역 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빈정거림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너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랬겠냐?”
“그럼 원래 성격이 그런 거든지.”
부대의 행보관 유건영이 딱 그랬다.
“군복 입고 있을 때는 안 그러더니, 너 사람이 달라졌다?”
“그때야 같은 군바리였고, 지금인 민간인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말하는 거 하고는.”
“죄 없이 시달려 봐, 안 바뀌면 사람이 아니지.”
“아무튼, 너하고 그런 이야기로 신경전 벌일 일은 아니니, 먼저 이야기를 좀 하자.”
“뭘?”
“우리가 식사할 장소는 다른 룸이다. 그전에 이야기를 좀 하려고 30분을 앞당겼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말해 봐요.”
“원래 너와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은 조셉 설리반이다. 그런데 나사가 끼어들었다.”
“나사는 설리반과 정보를 공유한다고 그랬는데.”
“만난 적 있어?”
조병원이 약간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
“참, 나 원. 바보인가?”
“뭐, 인마?”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바보라고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친근감의 표시인지.
“그놈들이 학교로 찾아왔고.”
“그래?”
“시간을 10분 내줬거든. 그랬더니 거절할 수 없는 상대라 생각하고 내세운 거지. 그 정도 눈치도 없어요?”
“하…….”
조병원은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왜 나선 거요?”
“그다음은 모르는구나.”
“그다음이 뭔데?”
“짜식이, 이제 아주 대놓고 맞먹으려 하네?”
태영이 간혹 반말을 찍찍 내뱉자 웃으면서도 지적은 꼭 한다.
“그게 아니꼬우면 난 그냥 가고.”
“국정원에서 적극 지원하라고 제법 높은 곳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월급 아까운 놈들이 또 있네.”
“내 월급을 왜 네가 아까워해?”
“파견?”
어간의 의미를 파악하고 확인차 물었다.
“그리되었다.”
“나 때문에?”
“하이고, 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을 팰 수도 없고, 정말.”
한주먹거리는 너지.
누가 할 소리를 하고 있어?
조병원을 보내서 태영을 감시하라고 했다?
앞으로도 면면부절하게 생겼다.
“아무튼 알고 있으니,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 좋네.”
“좋을 건 또 뭔데?”
“미국에서 조셉 설리반 패거리들하고 싸움은 어찌 된 거야?”
“맞았다 그래요?”
“그중에 한 놈이 외부 활동을 제대로 못 하나 봐.”
“그놈들이 한 행동에 비하면 약과지.”
“약과라고?”
“CIA하고 적이 되지 않으려고 봐준 건데.”
“너…….”
조금은 황당한 표정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한번 젓고는 물었다.
“너, 진짜 무슨 일이 있었지?”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