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89
034. 방문자들(5)
“무슨 일?”
사라진 8일간,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지 않았느냐고?
대답 못 해 주지.
“이…….”
“한 달 넘도록, 두 달인가? 그렇게 조사를 해 놓고 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 다시 조사 시작하는 건가?”
“어이구,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말 안 하면 되지. 나도 나 취조하던 인간과 말 섞는 거 별로거든.”
“전역한 지 몇 달이나 되었다고 이렇게 뺀질…….”
~우우우웅~
조병원이 태영에게 투덜거리는 중에 진동 소리가 조병원의 주머니에서 울렸다.
“여보세요.”
[It will arrive in 10 minutes. (10분 후에 도착합니다.)]태영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수화기 부분을 귀에 바짝 눌렀지만,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온 목소리는 조셉 설리반이 맞다.
“곧 도착한다고 연락 왔다.”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에 전화를 끊은 조병원이다.
“시간 많이 못 내 드립니다.”
“나도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라.”
***
“Thanks for meeting me. (만나 줘서 고맙소.)”
“I see a face I don’t want to see again. (다시 안 봤으면 하는 얼굴을 또 보네.)”
조셉 설리반은 빙긋 웃으며 인사했지만, 태영은 불퉁하게 대답했다.
그 뒤로 보이는 브랜든 홀.
이름을 말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 한 명.
또 처음 보는 또 다른 외국인.
위장한 CIA 요원일 것이다.
비율이 안 맞다.
저쪽이 무려 다섯, 그리고 태영과 조병원.
“This is Dan. (댄입니다.)”
처음 보는 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면서 짧게 말했다.
가명일 것이다.
“Is it your name? (이름이요?)”
“Well. Just call me Dan. (으음. 그냥 댄이라고 불러 주시오.)”
“웃긴 놈들이네 진짜. 싸가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나?”
태영이 한국어로 말했는데, 댄의 표정이 확 바뀐다.
한국어를 알아듣는다는 거지.
한국에서 근무하면 그 정도는 알 거다.
“야, 최태영.”
조병원이 언성을 높여서 부른다.
언성을 높여 부르는 의도는 짐작이 된다.
“뭐요? 왜?”
“조심 좀 하면 안 되냐?”
“뭐가 문제인데? 불만 있어? 지들 이름도 말 안 하는 놈들인데, 그럼 뭐라고 해?”
대신에 바로 다다다다 반응을 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싸해졌다.
오히려 원하던 바다.
그래야 저들이 어떤 질문을 하든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다.
잠시의 침묵.
“(미안합니다. 우리 쪽 사정도 있으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브랜든 홀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사정이 있고, 나는 사정이 없나?)”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알리야 프랜시스입니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조금 무례했더라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도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던 여자.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너 같으면 악수할 기분이 나겠냐?
“(많이 무례했지.)”
한마디 하며 받아 주었다.
“(모리스요.)”
책임자로 보였던 이놈.
모리스가 성인지, 이름인지 모르겠다.
그는 딱딱하게 굳었다.
요놈도 싸가지다.
그렇게 서로를 소개해도 분위기는 어색하다.
태영이 계속 핀잔을 주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분위기로 자리에 착석했다.
종업원이 와서 음식 주문을 받았다.
“티본스테이크, 로마네 콩티.”
태영의 주문에 다들 시선이 돌아왔다.
티본스테이크가 좀 비싸기는 해도 문제없다.
로마네 콩티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와인일 것이다.
혹여 구한다 해도 한 병에 수천만 원이다.
소주가 최고이지만, 엿 먹이는 거다.
누가 오늘 저녁 값을 내는지 모르지만 배 아파서 뒈질 거다.
“손님, 죄송하지만 로마네 콩티는 저희가 보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종업원이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스크리밍 이글로 합시다.”
“……아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것도…….”
태영의 장난에 표정이 난감해진 종업원.
모리스의 표정이 더 다양하게 변했다.
태영은 와인을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기내에서 본 잡지에서 언급한 고급 와인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일 뿐.
“대신, 샤토 라투르가 있는데요. 혹시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그래요?”
그것도 모르긴 마찬가지.
로마네 콩티나, 스크리밍 이글보다는 싸거나 구하기 쉽다는 말이겠지.
“매우 고가입니다만…….”
비싸다고?
“비싸도 돈 내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안심하고 주세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리스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식비는 태영이 낼 거 아니니, 가격은 물어볼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왔어야지.
10병쯤 마셔 줄까?
비싼 거라면, 그만큼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와인 먼저 드리겠습니다.”
음식 카트에 와인과 얼음 통.
와인 잔이 실려서 먼저 들어왔다.
와인을 따는 절차는 왜 저렇게도 거창해 보이려고 애쓰는 걸까?
종업원이 태영의 잔에 와인을 조금 따르고 기다렸다.
“…….”
‘좋네.’
고개를 끄덕여 주라고 했던 것 같다.
남의 돈으로 마시는 비싼 와인이라서 더 좋다.
아까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태영의 귓가에 손으로 가리고 말해 준 와인 값은 정말 비싸긴 했다.
“(학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서 이미…….)”
“(식사 끝나고 이야기합시다. 식사 중에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 소화가 안 되어서.)”
알리야가 말을 꺼냈지만, 태영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얼마나 더 다녀야 학교를 마치나요?)”
그래도 밥만 먹을 수는 없으니, 가벼운 이야기라 생각하고 일리야가 물었다.
그 전에 모리스와 눈빛으로 나눈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외부에서 누군가가 찾아오지 않으면 할 만합니다.)”
“(후후, 이해합니다. 혹시 졸업하면 천문 연구원에서 일할 생각 없나요? 고 박사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데요.)”
이해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그나저나 고종필은 왜 오지 않은 거지?
“(나에 대해 뭘 알고 추천해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전공이 그쪽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아니구요.)”
식사를 기다리는 사이.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조셉 설리반과 조병원이 한 무리.
나사의 사람들과 태영이 한 무리다.
식사가 들어온 후, 여전히 가벼운 이야기로 식사를 했다.
먹느라 바쁘고, 서로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는 사이.
디저트가 들어왔고, 와인이 남았다.
“(우주의 에너지 변화는 우주 물리학과 무관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알리야다.
“(유성이 지구로 날아온다는 설정의 영화가 우주 에너지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보는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우주에 있는 초대형의 입자 가속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요…….)”
식사가 끝나자 작심이라도 한 듯, 세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설사 안다 해도 모른다.
“(내가, 그것도 기계 공학 전공자입니다.)”
“…….”
“(전공 과정 반 학기를 마치고 군에 갔다 와서 복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초보 대학생입니다.)”
무슨 말인가 한다.
“(그런 내가 세 분이 말씀하시는 우주 에너지에 대해 알 거라고 생각합니까?)”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태영의 질문에 브랜든 홀은 말을 하다 말고 알리야 프랜시스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우주 에너지가 미스터 최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동시에 그 에너지의 흔적이 몸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들 봐라.
알리야 프랜시스가 하는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그러니까, 전기의자에 앉아서 실험실의 생쥐가 되어 달라는 소리군요. 맞아요?)”
그렇다고 대답하기만 해 봐라.
속으로 벼르면서 알리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목을 확 꺾어 버릴까?’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경찰과 CIA의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혐의 없음이 되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보다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 외에 당신이 의도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데?)”
“(…….)”
대답 못 하지?
차이가 없거든.
“(그것이…….)”
“You’re really kkago it. (까고 있네, 진짜.)”
‘까고’라는 말을 영어로 Opening부터 시작해서 Cutting, Biting, Peeling, Exfoliating, Sharp, Severing, Harsh, Pungent, Acerbic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보다가 그냥 kkago라고 했다.
당연히 못 알아들을 거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놀란다.
‘만일 강제로 그렇게 하려 들면, 나와 싸우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당신들 모두 목을 걸어야 해.’
목을 거는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다.
한편으로는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혹시 헬륨 에너지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시대의 휴대 가능한 에너지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주종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소 에너지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쉽게 상용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많은 돈을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쏟아붙고 있다.
헬륨 에너지 상용화.
아직 때가 아닐 수도 있다.
믈라유 왕국에 열린 피디지.
그 피디지 자리에 있던 군용 박스에서 휴대형 헬륨 에너지 발전기와 플라즈마 포가 나왔다.
그것을 내몽골 지역에서 마주친 이슬람 반군에게 사용했다.
앞으로 백 년 이상 지난 미래에 만들어진다.
“(자자, 이것은 합의점에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 같군요.)”
태영이 막말을 해서 싸늘해진 분위기를 조셉 설리반이 정리했다.
“(합의점? 저 사람과 내가 무언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요?)”
“(…….)”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선 태영의 질문에 설리반도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내게, 실험실의 생쥐가 되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고, 나는 거지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거요. 내 말이 틀렸나?)”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상대 못 할 개차반으로 여겨 주면 더 좋고.
그렇다고 강제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만 해 봐.
그 뒤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울지.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다들 입 다물고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다.
잠깐, 순간 이동 능력자.
이들이 추정하는 것처럼 태영의 몸에 무언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순간 이동 능력자도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에이, 잊어버리자.
“(자, 그럼 이렇게 하죠.)”
합의점 이야기를 꺼낸 것은 만남을 정리하려는 수순이다.
“(어차피 이야기는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듯합니다.)”
당연하지. 태영이 답해 줄 생각이 없는데.
“(오늘 회의는 이 정도 하고. 덧붙인다면, 그쪽에서 제안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 같으니 좋은 방안을 생각해서 오세요.)”
좋은 방안이 있을 리 없지.
“(예를 든다면, 졸업 후 나사에 특채를 하는 방법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오늘 회의라고?
대체 언제 회의를 했는데?
그리고 특채해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갈 줄 알지?
어림도 없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웅~
진동으로 해 두니, 문자 오는 소리다.
(우리 호텔에 왔다구요? 시간 가능해요.)
오늘 식사한 요금을 결제하는 사이.
조영희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호텔에 왔는데 혹시 자리에 있느냐고.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 주세요.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웅~
다시 답이 왔다.
“(자. 그럼, 다시 한번 뵙기를 희망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조셉 설리반과 모리스 일행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다음에 또 찾아올 것이다.
“최.”
“왜?”
“저 사람들하고 연결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고종필?”
“맞아. 고 박사가 한번 시간 좀 내 달라고 하던데.”
“왜 같이 안 오고?”
“저들에게는 네가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따로 보고 싶다고 하더라.”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인가?
학교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데 왜 직접 이야기 안 하고?”
“전화번호도 모르고, 내가 중간에 다리 역할을 좀 해 줬으면 하더라.”
“알아서 하세요.”
***
“어서 와요.”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조영희의 집무실은 앤티크 한 느낌의 가구들로 꾸며져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넓고 웅장하다.
재벌들의 사무실은 이 정도인가 싶다.
“두 번째 보는데, 이제 국내이니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 자리를 권하면서 물었다.
“네, 편하게 하십시오. 저도 그게 편합니다.”
“오늘 여기 무슨 일로?”
취향을 물어 커피를 주문하고 비서가 나가자 조영희가 물었다.
“혼자 살아 돌아왔다고 미워하는 사람만큼이나,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죠.”
“그래?”
“제 몸에 바늘을 꽂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네요.”
“응? 뭐? 아니? 그런?”
“쫓아냈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오겠지만.”
“미국?”
“네.”
“콩티 찾았다는 룸?”
“네, 맞습니다.”
로마네 콩티가 그렇게 특별한 와인인가?
식당에서 그걸 주문했다고 호텔 사장에게 보고가 돼?
뭔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빙긋 웃으며 바라본다.
“혹시 콩티를 최 군이 시킨 거?”
“네.”
“일부러 엿 먹이려고 그런 거지?”
“맞습니다.”
“호호호! 대단해. 혹시 내가 도와줄 만한 거 없어?”
“글쎄요, 아직 학생이라서 딱히 필요한 것이.”
“그렇긴 하네.”
“그래도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시간을 많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그래, 혹시 또 오게 되면 연락하고. 잠시만.”
조영희는 인터폰으로 비서를 불러서 뭔가를 지시했고, 5분쯤 후에 비서가 들어왔다.
“이거. 자, 혹시 필요할 때 쓰도록 해.”
조영희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열자 빳빳한 종이에 금박으로 새겨진 글씨가 보인다.
그 종이 가운데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있다.
종이에 인쇄된 내용이 파격이다.
연간 12회 호텔의 일반 룸을 무료로 사용.
연간 24회 식당 무료로 사용.
메뉴는 정식 코스 요리까지.
스위트룸을 사용하고 싶을 때는 추가 요금만 결제하면 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룸 무료 사용이 가능한 GVIP 카드? 이걸 왜 저에게?”
“아들 같아서 주는 선물이야. 애인과 함께 오면 좋고.”
그렇게 말하면서 찡긋, 한쪽 눈을 깜박인다.
아들이 군 생활 중이라고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데,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런 선물을?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