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95
040. 뜻밖의 만남(2)
백정연의 말도 또래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그럴 것이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구요.”
“네, 근데 준혁이와 절친이면, 나하고 준혁이도 친구인데 서로 편하게 말하면 안 돼요?”
“말 편하게 해도 되는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기로 하구요. 이야기나 해 보세요.”
“네, 그럼.”
태영이 거절하자 잠시 얼굴이 붉어진다.
“저는 올해 4학년으로 졸업반입니다.”
백정연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백정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을 해도 취업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야기 중에 정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는 이유가 취업 시장이 얼어붙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학교의 명성이 높지 않으니,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4학년이 되면 누구나 하는 절대적 고민이다.
이제 가을 학기로, 오래지 않아 졸업이니 그 고민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면 가점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영어 동아리방 회원의 대부분이 그런 목적으로 회원이 되었다고도 했다.
영어 동아리는 취미적인 특성이 아니라 현실 지향적이다.
~딸깍~
자리를 떠났던 정희영이 테이블 위에 커피가 올려진 쟁반을 내려놓았다.
“제 마음대로 사 왔어요.”
태영과 박준혁의 앞으로 커피를 하나씩 밀어 준다.
커피 한잔을 당겨 놓은 백정연이 동아리의 이야기를 마저 했다.
태영이 와 주면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준혁아, 다음 수업 있어?”
백정연의 이야기를 듣다가 시계를 보았다.
“아니, 비었는데. 왜?”
“나는 다음 수업 있으니까, 네가 동아리방 한번 가 보면 어떠냐?”
“오케이. 그러지.”
복학 전부터 복학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꽤 부대끼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척하면 서로가 왜 그러는지 알게 되었다.
“정연아, 가 보자.”
“어…… 응, 그래.”
백정연이 태영을 한번 쳐다보고는 박준혁을 따라갔다.
백정연과 박준혁.
초등 이후에 처음 본 것이면,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폭풍 성장을 하는 시기다.
많이 변했을 것이고,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마주쳐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동아리는 다음에 봐도 된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오늘의 만남은 충분했다.
***
“어서 오십시오.”
인룸프로 사장 정기섭은 환한 얼굴로 태영을 반겼다.
“네.”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있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공장.
바닥은 왁스칠을 한 것인지 유리를 깔아 둔 것처럼 반짝인다.
“꼭 오지 않아도 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 회사인데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습니다.”
아파트형 공장은 칸칸이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목적별로 구분해야 했다.
승객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사무실이다.
끝부분이 공장으로 꾸며진다.
“어떤 물건을 만드시기에 이렇게 큰 사무실을 여덟 칸이나 잡으셨습니까?”
“IT 제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기섭과 함께 둘러보고 있는데 공장으로 예정된 곳에는 여러 사람이 작업 중이다.
“잠깐만요. 김 상무님.”
정기섭이 한쪽에서 일을 지휘하고 있는 한 사람을 불렀다.
“네, 사장님.”
정기섭의 부름에 다가오는 사람은 나이가 50대 초반 정도.
정기섭 사장과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여긴, 터니테크 사장님입니다. 김 상무님도 이름은 들어 보셨죠? 최태영 씨.”
그는 태영을 뚫어지라 바라본다.
“여기는 김경훈 상무님. 김 상무님은 우리 회사 정밀 시스템 사업부장으로 터니테크에서 외주 주문 제작한 자동 생산 설비의 검수와 설치 부분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최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김경훈 상무.
정기섭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부터 눈을 떼지 않고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
태영은 의아하게 바라보며 악수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그…… 왜 너만?”
김경훈 상무라 불린 사람이 태영에게 한 말이다.
네가 맞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동명이인이 아니라 동명십인도 있을 수 있으니, 그렇게 물을 순 있다.
“네, 맞습니다. 언론사 한곳에서 그렇게 부른 후에 그 별명이 생겼습니다.”
“후우~흐읍.”
김경훈이 숨을 깊게 들이쉬는데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빨개진 눈.
‘뭐지?’
“김정표 애비입니다.”
헉.
숨이 턱 막혔다.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언젠가 적당한 때에 찾아가려 했는데.
왜, 하필.
군에서 태영의 후임이다.
무기고 이전 중에 자신과 같은 트럭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구 13세기의 수마트라 섬.
그 죽음의 피디지에서 만난 김정표.
하얗게 탈색된 백골 위에 인식표만 남아 있었다.
군사 경찰의 취조 시에도 그 말은 못 했다.
김정표와 오석현의 이야기는 한 트럭에 타고 있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언론에도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상무님?”
몸을 축 늘어뜨리고 깊은 숨을 내쉬는 김경훈을 정기섭이 불렀다.
정기섭도 그 일과 김경훈의 아들인 김정표의 일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같은 회사의 임원인데, 어찌 모를까?
“……죄송합니다. 정표와 같이 돌아오지 못해서…….”
태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일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태영이 말을 마저 마치기도 전.
김경훈의 손끝이 마치 경련이 일어난 듯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태영의 눈에 보였다.
붉어진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
양 볼을 타고 주르르 흐르는 것보다 몸을 비틀거리는 모습에 태영은 재빨리 김경훈을 부축했다.
“……흐으…….”
태영의 귀로 김경훈의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의 떨림이 전해져 왔다.
축축하게 어깨가 젖어 오는 것도 알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모의 죽음은 땅에 묻고,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는다 했다.
이미 가슴속에 묻었을 수 있다.
그 아들의 선임.
유일한 생존자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까?
“……김 상무님.”
정기섭이 불렀지만, 김경훈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증발 이후 7개월이 흘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제 잊힌 사건일 것이다.
김경훈의 가슴은 타고 또 타서 재가 되었다.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잊으려 애쓰며 살았겠지만, 눈앞에 아들과 함께 증발했던, 그리고 혼자 귀환한 아들의 선임이 있다.
정기섭이 김경훈을 부축하여 한쪽에 있는 접이의자에 앉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온몸으로 소리 없이 통곡을 한다.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고 바닥을 밟은 발은 앞으로 뒤로, 그리고 옆으로 마구 움직였다.
김경훈을 달래거나 위로할 수도 없었다.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밖에는 없다.
‘인식표와 유골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때는 또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다시 돌아온 이 시간.
처음부터 살아왔던 이곳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곳이 될 줄 몰랐다.
그 차원의 고려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면, 이런 마음의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정 사장님.”
“네.”
“김 상무님 좀 쉬시게 하는 것이…….”
정신을 차린 태영이 해 줄 수 있는 말이다.
“그게 나을 것 같네요.”
정기섭은 직원을 손짓해서 불렀다.
태영은 접이의자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병원에 보내는 것이 맞는데.
말을 어찌 꺼내지?
“……좀 쉬세요. 제가 따로 연락 한번 드리겠습니다. 전해 드릴 물건도 있구요.”
남들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김경훈이 두 손을 살짝 떼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태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직원이 왔고, 태영은 자리에서 비켜 주었다.
전해 줄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
그래도 비밀을 유지해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경훈은 태영을 한번 돌아보고, 직원이 부축하는 대로 움직여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거참…….”
정기섭은 이 상황이 조금 계면쩍은 모양이다.
~우우우웅~
‘송이길 법무법인 대표 송길윤’
“네, 최태영입니다.”
[송이길의 송길윤입니다.]이 회사에 법인 설립과 사업자 등록, 공장 등록 등을 비롯해 관공서 관련 업무 전체를 위탁 처리했다.
대한민국 땅에서 제조 회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 실감 났다.
송길윤이 설명하는 동안 태영이 속으로 내뱉은 말은 모두 ‘씨발’이었다.
한국 땅에서 제조 회사를 못 하게 하는 것.
딱 그 느낌이었으니까.
제조 회사는 고용 효과가 높고,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서비스업과 유통업도 고용 효과가 높고 필수적이다.
그러나 제조업은 그것들 중에 기본이다.
나라가 망하려는 것일까?
“처리는 다 되어 가십니까?”
[네, 다 되었으니 다음 주에 완료될 것입니다.]태영이 그 일을 하고 있었으면 몇 달은 걸렸을 것이다.
아마도 올해 안에 제품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용 효과를 높이려면 제조 회사가 많아야 한다.
태영이 만드는 공장은 인력 수요가 많지 않다는 것이 결함이긴 하다.
그래도 제조 회사 설립과 공장 설립이 너무 어렵다.
“그 사람들이 사업 계획서 검토도 합니까?”
공장 등록 신청을 할 때, 제출 서류 목록에 들어 있는 ‘사업 계획서’ 항목을 보고 돌아 버릴 뻔했다.
그 기억 때문에 짜증 났던 것이 생각나서 물었다.
[요식 행위죠, 뭐.]“그러니까, 그딴 요식 행위가 왜 필요한지 그 사람들 머리를 까 보고 싶어요.”
법률 서비스를 대행하는 회사의 대표에게 따질 일은 아니다.
행정 기관에서 제조 회사의 사업 계획서를 요구한다.
대체 왜 요구할까?
거기에 생산 공정도는 또 왜 달라고 하는 것인지.
잘못되면 고쳐 줄 것인가?
아니면 지도를 해 주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뭘 안다고 고쳐 주고 지도를 하는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산업 단지가 아니면 기간이 더 걸린다는 설명도 익히 들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그러려니 해야죠. 아무튼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습니다만,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네, 그럼요.]“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일들만 전문으로 하는 행정과 법률 대행 회사.
거기에 돈을 주고 맡기니 장점이 많다.
김경훈은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나가면서 김경훈이 있는 병원에 갔다가 박준혁의 이사 집에 들르는 것으로 끝난다.
정기섭 사장과 일 이야기를 마무리한 태영은 건물을 벗어나며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최태영 군?]김경훈은 최 대표나 최 사장이라는 호칭 대신에 이름을 불렀다.
아마도 자신의 아들과 같은 부대에 근무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네, 최태영입니다. 잠시 찾아뵐까 하는데, 병원 이름을 알려 주시지요.”
[……음, 오늘은 좀 피하고, 다음에 만나고 싶어요. 너무 정신도 없고, 생각도 정리를 좀 해야 해서…… 다음에 한번 봅시다. 어차피 우리는 한동안 더 일을 해야 하니까.]“네, 그리하시지요. 언제든 연락 주시면 됩니다.”
그래.
심적으로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다음에 보는 것이 좋을지도.
태영은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정현입니다. 사장님.]“오늘, 그 부대 증발 사건의 피해자, 내 후임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 네.]대답은 바로 나왔지만, 신정현의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언제든 내게 말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네.”
[고맙습니다, 사장님.]뭘요.
나는 그분들에게 너무 미안한데.
***
“아들, 고마워.”
“어머니, 자꾸 그러시면 제가 부끄럽습니다.”
박준혁의 어머니 박민서 여사.
이사가 마무리되어 가구까지 모두 배치되었다.
방문 하나를 열면 꼭 저 말을 한다.
이전의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몇 가지 안 된다.
귀중품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가까운 곳에 두고 사용하던 손때 묻은 것들이 전부다.
옷가지 몇 개와 주방에서 사용하던 그릇 일부도 포함되었다.
그 외에는 모두 새것이다.
침대와 책상, 장롱을 비롯하여, 가전제품까지 모든 것들은 태영과 준혁이 모두 새로 사 넣었다.
“그래요, 어머니 자꾸 그러면 태영이가 미안해해요.”
“너도 오늘 이사한다면서?”
“아, 아닙니다. 저는 좀 미뤘습니다.”
“왜?”
“사무실도 들어가야 하고, 바쁘다 보니 그냥 좀 미뤘습니다.”
“그래, 맞다. 회사도 준비 중이라고 했지?”
“네, 지금 공사 중입니다.”
“그럼 이제 사장님 되는 거야? 준혁이도 거기서 일하고?”
“네, 어머니.”
“너는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취직부터 되었네?”
박민서 여사는 박준혁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네, 그리되었네요. 어머니도 곧 일하러 가실 건데요.”
이제 몸도 다 나았고, 집에서 편안히 살면 된다.
그렇지만 놀면 뭐 하니, 라는 주장이 강해서 누나 회사에 추천해 주었다.
며칠 후부터 그쪽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래, 아들 고마워. 누나가 월급도 많이 준다더라.”
“누나가 잘 벌 것이니 많이 달라고 하세요.”
“자, 그럼 준혁아 짜장면 시키자.”
“네, 어머니. 전화번호 알아 왔어요.”
박준혁이 짜장면을 시키는 사이에 모친 박민서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야, 태영아.”
어머니가 나오지 않은 시간이 제법 되자 박준혁이 작게 불렀다.
“왜?”
“증권 통장에 이 돈, 정말 그게 한 달 만에 벌어들인 거냐?”
“맞아.”
“대단하다. 그것도 미국 증권에 투자해서 그렇게 벌다니, 사업 안 하고 그냥 증권 투자만 해도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겠네.”
“그건, 어머니가 투자 회사 만들면 사용할 투자 알고리즘 시험판으로 돌린 거야. 조만간 어머니가 금융 투자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야.”
“그래? 이건 역시 이유가 있었네.”
“그래.”
“그리고 동아리 말이야.”
“응.”
“우린 안 가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대신.”
“대신?”
“정연이 알바 자리 하나 줄 수 있나?”
“그렇게 해.”
~딩동~
짜장면이 온 모양이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