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399
044. 이새봄
다들 퇴근을 했고, 태영만 회사에 남아 있었다.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톡을 보고 전화기를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
[응, 맞아. 그런데 여긴 어디냐?]이한봄은 태영이 회사를 만든 것을 모르니 이상하긴 할 것이다.
태영이 그 일을 처리한 후에, 한 달이 더 지났다.
거두절미하고 찾아오겠다고 하다니.
뒤통수를 한 대.
“잠시 기다려라. 내가 그리 갈 테니.”
태영은 폰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간편한 복장의 이한봄.
“뭐야?”
그 뒤에 두 명의 여자가 서성거리고 있다.
한 명은 50대 초반 정도, 다른 한 명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이한봄의 모친과 이새봄?’
아마 맞겠지.
그럼, 뒤통수 한 대는 취소, 아니 보류.
“어서 와. 어서 오십시오.”
이한봄의 모친과 이새봄의 눈은 태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새끼…….”
저놈은 욕쟁이가 맞아.
그날도 욕을 무지 많이 했어.
~턱~
뚜벅뚜벅 걸어온 이한봄이 태영을 포옹했다.
산업 단지 건물의 복도에는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퇴근 시간도 지났기에 사람의 흔적이 없다.
그래도 창피하게 이놈이 이렇게 껴안는다.
“고맙다. 진짜 고맙고, 고마운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봄이, 불쌍한 내 동생 봄이.”
“…….”
“네가 해 준 일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손 놔라.”
“그래, 놓으마. 아무튼 봄이는 살아났고, 살아난 봄이가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이한봄이 포옹을 풀었다.
그사이 이한봄을 대신하며 태영의 품으로 밀고 들어오는 가벼운 움직임.
여자의 체취와 호흡이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오…… 오빠.”
오빠?
이한봄과 태영이 군 동기이기에 친구는 맞다.
그렇지만, 이한봄은 태영보다 2살이 많다.
혹시 이새봄과 같은 나이가 아닐까?
“고마워요.”
또 다른 한 사람의 두 손이 태영의 손을 잡았다.
이한봄의 어머니다.
지극히 짧은 감사의 말이지만, 마음이 느껴진다.
한 손을 이한봄의 모친이 잡고 있다.
그래서 남은 한 손으로 이새봄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제 사무실로 잠시 들어가시지요.”
“그래, 그래요.”
이한봄의 모친은 대답을 하고 손을 놓았다.
그렇지만 이새봄은 아니다.
두 팔로 태영을 더욱 힘주어 껴안고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두 팔에서 전해져 오는 작은 떨림이 있다.
“이새봄.”
“봄아.”
이한봄과 모친이 이름을 불렀지만 요지부동이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태영은 어쩔 수 없이 두 팔을 엉덩이 아래에 받쳐 이새봄을 안아 올렸다.
그 상태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힘이 다르니 팔을 풀어내는 것이야 쉬운 일이다.
그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안고 들어갈 수밖에.
군 동기 모임 일로부터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괴로워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근심이 사라져서 그렇겠지만.
딸을 말려야 할 모친이나, 동생을 말려야 할 군 동기 놈이 ‘너 알아서 해’라는 표정이다.
그리고 아무런 행동도 안 한다.
“야, 여긴 뭐 하는 데냐?”
대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이한봄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물었다.
“자, 여기 앉아요.”
귓가에 새근새근 들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대회의실 의자에 앉혔다.
그래도 팔을 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태영만 엉거주춤한 자세다.
앉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한번 힘주어 끌어안더니 천천히 팔을 풀었다.
그래도 완전히 풀지 않고 태영의 어깨를 잡고 있다.
태영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상태다.
이새봄의 모습.
선글라스로 인해 눈은 보이지 않는다.
코끝이 서로 닿을 것 같고 입술도 닿을 것 같은데,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새봄이 숨을 쉬면서 내뱉는 호흡이 태영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새……봄…… 씨.”
태영이 자신의 목을 두른 팔을 툭툭 치면서 살짝 떼어 내려 하자 얼마간 버텼지만, 잠시 후에 팔에 힘을 풀었다.
“감사해요…….”
습기에 젖은 작은 목소리.
이새봄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물기에 젖은 맑은 눈이 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마스크도 얼굴에서 떼어 냈다.
‘흐흡.’
바로 호흡이 멈췄다.
예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에 영상 속의 모습은 타인의 얼굴 윤곽에 이목구비가 합성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실물의 이새봄.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강인목이 환상적으로 예쁘다고 했던 말.
이제 제대로 이해가 된다.
물기에 젖은 눈동자가 실내등에 반짝거리는 모습이어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정말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태영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차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그때 허리춤을 잡는 이새봄의 손.
“잠시만 기다리면 차를 준비해 올게요.”
태영이 이새봄의 손을 빼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마치 어린아이의 손이 꼼지락거리듯, 잡았던 허리춤을 천천히 놓았다.
이새봄의 모친과 이한봄.
괘씸하게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좀 말리지.
다른 사람들 같으면 매정하게 손을 뿌리쳤을 것이다.
자살 시도를 몇 번이나 했다고 했다.
그러니 어린아이 달래듯이 할 수밖에.
“나도 같이.”
태영이 다실로 가는데 이한봄이 따라왔다.
“너.”
다실에 들어가자마자 정색을 하고 단 한마디를 꺼냈다.
“미안, 어쩔 수 없었다.”
이한봄은 정말 고양이 앞의 쥐처럼 행동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동생에게 이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걸 설득시킬 방법이 없었거든.”
“약속을 아주 쉽게 생각하네.”
“야, 그건 절대 아니다. 진짜 절대 그건 아니야.”
태영도 안다.
동생에게 설명하지 않고는 설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억지로 이해한다.
그런데 오늘 왜 같이 온 건데?
“이유 불문.”
속으로 어찌 생각하든 매정하게 잘랐다.
“우리 엄마는 저녁에는 커피 안 마셔.”
태영의 말에 반응하는 대신, 모친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말로 피해 갔다.
에이, 정말 뒤통수 한 대.
“여기 홍차.”
뒤통수 한 대 대신 찬장을 열고 홍차를 꺼내 주었다.
태영에게 홍차는 친근하다.
영국식 홍차가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고려에서 홍차를 마셨다.
고려에서는 커피를 구하기가 힘들기도 했고.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이새봄이다.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는 중이다.
어깨 부근에서 말캉한 느낌이 전해진다.
팔이 태영의 가슴으로 오며, 백 허그를 해 온다.
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고마워요.”
인생을 구렁텅이에서 구해 주긴 했다.
그래도 오늘 처음 본다.
이름은 강인목에게 처음 들었고, 통화를 한 적도 없다.
태영이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다.
그때, 그렇게 처리해 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감사해요.”
계속해서 들리는 목소리.
그렇다고 거리낌도 없이 이렇게 터치해 오는 것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무장 해제하고 덤비다시피 한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새봄.”
이한봄이다.
“응, 오빠.”
“네가 그러면 차 준비를 못 해.”
“……알아. 그런데 오빠가 나, 살 수 있게 해 준 거…….”
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절절한 느낌이 있다.
“…….”
태영은 이한봄과 이새봄이 주고받는 짧은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새봄은 팔을 풀지 않고 그냥 조금 느슨하게 하기만 했다.
이새봄이 태영을 끌어안은 모습이다.
큰 키다.
눈높이에 이마가 보였다.
이새봄이 고개를 들자 물기로 촉촉한 눈동자,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보인다.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죠?”
태영이 물었다.
“……네.”
“그러려면, 지금처럼 하면 안 돼요.”
“…….”
대답 안 한다.
이 시대로 돌아온 후.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다.
접근하지도 못하도록 했다.
태영은 흔히 말하는 훈남이 아니다.
보통의 평범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남자들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호감을 가지고 여자가 접근해 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곳의 기준으로, 결혼 같은 것을 생각할 나이가 아니다.
그래도, 나중에 고려로 돌아갈 때.
아내와 딸,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남겨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첫 번째 원칙은, 반드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돌아온 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대에 점점 패치 되어 가고 있다.
현실 나이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귀는 정도는 상관없지 않아?’라고 합리화시키는 생각이 간혹 고개를 든다.
그래도 여전히 곁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얘는 대체.
“자, 커피 다 내려 왔다.”
이한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커피 머신에서 내려진 진한 커피를 머그잔에 붓고 있다.
“아, 정말, 내 여동생이 아니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눈꼴시어 못 봐 주겠다.”
이한봄이 던진 말이다.
“오빠!”
“아, 미안, 내가 잘못했다. 요놈의 주둥이.”
이새봄이 고함을 빽 지르자 이한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제 입을 톡톡 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쳐서 아프냐?
내가 한 대 때려 줄까?
세 잔의 커피.
뜨거운 물로 잔을 데우고 다시 뜨거운 물을 반쯤 채운 머그잔.
티백 홍차 한 개를 쟁반에 받쳐 들고 대회의실로 갔다.
평온한 표정을 한 이한봄의 어머니가 앉아 있다.
“엄마, 여기 홍차. 홍차는 홍차인데, 무지 고급으로 마시네.”
고급스러운 홍차 맞다.
영국 왕실에 공급되는 홍차라고, 제법 비싸다고 했다.
“우리 봄이, 예쁘지 않아요?”
티백의 이름을 확인하던 이한봄의 어머니.
잠시 놀란 모습을 보이다가 티백을 머그잔에 담그며 물었다.
“네, 예쁘죠…….”
예쁘죠 다음에 ‘사랑스럽고’를 말할 뻔했다.
조심하자.
“그 일도 다 알고 있으니 사실이 아니란 것도 알구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반응이 그래요?”
책망하는 말투는 아니다.
그렇게 예쁜데 너는 왜 본체만체하느냐 하는 말이다.
느낌이 그렇다.
태영이 하는 행동으로 봐서 이새봄의 접근을 막는 것이 보였을 테니까.
“저는 학생이면서, 이 회사가 제 회사입니다.”
“그럼 바빠서?”
“네.”
“강요는 못 하겠는데, 우리 애가…….”
“엄마.”
이한봄 어머니의 말에 이새봄이 조금 큰 소리로 불렀다.
“알았다. 이것아.”
차가 우러난 티백을 잔에서 꺼내 쟁반 위에 놓으며 딸에게 눈을 흘겼다.
“향이 정말 좋군요.”
“좋아하시면, 가실 때 한 박스 드리겠습니다.”
“다실 찬장에 스무 박스는 있는 것 같던데. 좀 많이 주면 안 돼?”
이한봄이 분위기를 바꾸듯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에이, 이 도적놈 이거.
다실에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렸어야 하는데.
정신이 번쩍 나도록.
여기서 때릴 수도 없고.
“그나저나, 네가 꼭 만나야 하겠다는 이유는 말하지 않았는데?”
태영이 이한봄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태영은 뻔히 안다.
이한봄은 대답 대신 이새봄을 손으로 가리켰다.
“뭐? 왜?”
“봄이가 너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해서.”
이한봄도 봄이고, 이새봄도 봄이다.
이한봄을 부를 때는 꼭 한봄이라고 하고, 이새봄을 부를 때는 그냥 봄이라고 부른다.
“그게 다야?”
“뭐가 더 있어야 해?”
“그럼 이제 다 된 거지?”
“야, 야.”
“만났잖아?”
이새봄과의 사이에 벽을 좀 쳐야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 일로 인해서 생겼던 정신적인 충격.
치유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남아 있다.
걱정도 팔자다.
신경 끄자.
이한봄 모친이 내비치는 의도나 이새봄의 의도가 뻔하다.
매몰차게 끊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눈을 마주 쳐다보기도 겁날 정도로 예쁘다.
저 예쁜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가슴 아픈 말을 할 수 없다.
‘에이, 너도 남자냐?’
속으로 그렇게 소리 질렀다.
이한봄을 타깃으로 잡고 핀잔을 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이 씨, 할 말 없게 만드네. 봄아, 우리 갈까?”
“오빠는 가. 엄마도.”
“넌?”
“나? 오빠랑 더 있다가.”
이새봄의 소심한 손끝이 태영을 가리켰다.
와, 진짜.
저렇게 예쁜 여자가 조금도 디펜스 치지 않고, 저래도 되는 거야?
“진짜?”
이한봄의 어처구니없는 표정.
이한봄의 모친마저 대책 없다는 표정이다.
“이새봄 씨, 날 오빠라고 부르니 말 편하게 해도 되죠?”
“네, 오빠. 그럼요.”
자신에게 말을 걸자 바로 환하게 웃는다.
지금까지 이새봄을 지칭해서 한 말이 거의 없다.
‘누가 널 보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냐?’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혹시 이것 때문에 나중에 문제되지는 않겠지?
“그럼 오늘은 가고, 다음에 또 놀러 와.”
“진짜? 진짜 다음에 또 놀러 와도 돼요?”
태영의 말에 반색하며 물었다.
“돼.”
“약속.”
새끼손가락은 왜 내미는데?
“그래, 약속.”
할 수 없이 걸어 주었다.
“그리고 이한봄. 너 백수지?”
“아니, 두 달 정도 연구 보조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시작했어.”
두 달이면 연말은 되어야 끝난다.
“나는 백수.”
이새봄, 너는 백수라도 알바 안 돼.
이새봄이 백수가 맞기는 하다.
그 일로 학교 안 나가고 방구석 폐인이 되었다고 했다.
휴학을 했을 것이다.
“거기 때려치우면 되지.”
이새봄의 말에 대한 대답은 않고, 이한봄에게 말했다.
“거기는 때려치울 수가 없어. 학교와 연결된 일이라 때려치우면 내가 애로 사항이 많아서 안 돼.”
“그래? 어쩔 수 없지. 새봄이는 생각 좀 해 보기로 하자.”
“나, 거기 끝나면 너희 회사 알바 할게.”
“안 돼, 그때는.”
“야, 좀 봐줘.”
“그건, 그쪽 일 끝나면 그때 이야기하고.”
“그래 알았다. 근데, 많이 주나?”
“일하지도 않을 놈이 많이 주든 적게 주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아, 그래도 많이 주면 좋지.”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이한봄 어머니가 웃으며 바라보았다.
“어머니, 좀 늦긴 했는데, 식사하러 가시겠습니까?”
“그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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