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00
045. 한번 해 봅시다
“차기원이오.”
점잖게 나이 든 사람이다.
50대 후반, 아니면 60대 초반 정도.
“최태영입니다.”
태영은 차기원을 대회의실로 안내했다.
“군이나 국정원에서 무슨 짓 안 합니까?”
자리에 앉기도 전에 차기원이 물었다.
짓이라.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
차기원은 태영이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네, 찾아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똑똑똑~
회의실 문을 노크하는 사람은 유제범이다.
빨리 사람을 충원해야, 부장쯤 되는 사람이 이런 심부름을 안 하지.
“김경훈 씨 오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김경훈이 대회의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둘이 아는 사이가 맞다.
그리고 국장님?
공무원의 직제와 직급은 모른다.
김경훈이 차기원을 부르는 호칭.
그 정도이면, 고위 공무원이었을 것 같다.
퇴직 공무원으로만 알고 있었다.
고위 공무원일지라도, 증발 사건으로 자식을 잃었다.
청와대 앞의 농성에 참여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서 오시게.”
차기원이 김경훈에게 하대는 하지만, 그냥 막 하는 하대는 아니다.
“네, 제가 늦지는 않았지요?”
김경훈이 회의실 문을 딸깍 소리가 나게 닫았다.
“때맞춰 잘 왔네.”
“최 대표가 제 아들 선임병이었습니다.”
“그런가?”
김경훈의 말에 차기원이 태영을 돌아보았다.
“맞습니다.”
김경훈은 주머니에서 푸른색 융으로 단장된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귀중한 것을 보관하는 것처럼 고급스럽다.
차기원이 잘 보이도록 놓고, 뚜껑을 열었다.
“제 아들의 유골과 군번입니다.”
인식표와 군번은 같은 말이지.
“어떻게?”
“최 대표가 가지고 왔습니다.”
“그…….”
차기원이 태영을 바라보았다.
“최 대표가 전해 주면서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국장님에게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 만에 저렇게 준비한 것도 대단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들의 유골과 인식표다.
저런 고급의 보관 상자를 구입해서 넣은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태영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내보였다.
“…….”
설명을 바라는 표정의 차기원.
그 설명은 김경훈이 하겠지.
“내, 아들은? 보았소?”
“……죄송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릅니다.”
차기원의 눈이 붉어졌다.
그래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못난 놈.”
아들이 그리울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으니까.
“…….”
침묵의 시간이 얼마간 지났다.
“흐흠.”
차기원이 헛기침을 하고 태영을 보았다.
“신정현 양에게 듣기로, 무언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들었소.”
“네, 말씀 편히 하십시오. 저는 아직 학생입니다.”
“알고 있소. 그래도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고, 한 회사의 대표인데, 그럴 수는 없지. 그리 이해하시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했다.
“저는 몇 명인지 모릅니다.”
운을 떼었다.
물론 언론에서 발표한 것은 알고 있다.
태영을 포함해서 353명.
태영을 빼고 352명이다.
“가족들이 또 다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차기원이나 김경훈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 일에 대해 정부에서 어떤 대책이나 지원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어리고, 아직 학생이기에 사회생활을 해 보지 않아서,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
그렇게 말하던 차기원이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아는 것이 정말 없는가? 그렇게 묻는 것 같다.
상관없다.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뭐가 되었건 그분들을 돕고 싶습니다.”
“…….”
차기원이 다시 태영에게 시선을 주었다.
“세상이란 것이 말이오.”
“네.”
“어느 날 주행 중, 내 앞에 가던 트럭에서 묵직한 짐이 떨어졌소.”
뜬금없이 무슨?
“그 짐이 내 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쳤소.”
예를 들려는 모양이다.
“에어백 터지고, 보닛은 열리고 시야가 가려졌지.”
“안 다치…….”
“해서 급히 차를 세우고, 나갔소. 4차로 중에 2차선인데.”
질문에 상관없이 차기원은 말을 이었다.
그럼 위험한 상황인데, 다치진 않았다는 거다.
“부동액은 줄줄 흐르고, 연기도 나고, 냄새도 났소.”
“많이 놀라셨겠군요?”
김경훈이 걱정을 덜어 내며 물었다.
“많이 놀랐지. 그래도 정신 차리고 비상등을 켠 후에 삼각대를 세웠소.”
2차로이니 바로 조치를 해야 한다.
“그 상태로 4차선 바깥으로 차를 뺄 수가 없었지.”
“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이었는데, 경찰에 전화를 해서 짧게 상황 설명을 했더니, 허허.”
어처구니없는 웃음이다.
“경찰의 말이 ‘차번 기억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에어백이 가리고, 보닛이 가려진 상황이라고 했었다.
“에어백과 보닛 이야기를 하며 못 봤다고 했더니, ‘그럼 경찰이 못 잡으니까, 직접 잡아서 데리고 오세요.’ 그러더군.”
“…….”
그놈 몸통에서 머리통을 떼어 내 줘야 하는데.
말조차 밉살스럽게 한다.
그런 상황에서 차량의 번호판 볼 정신이 있나?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해서 ‘국토부 정책관인데’라고 먼저 말한 후에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시오?”
당연히 모르지.
“이거 속된 말이지만, 비상이 걸리더군.”
이 작은 사건 이야기의 예.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을 만큼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혹시, 생수 공급해 준 적이 있소?”
차기원이 물었다.
“……네.”
“많이 찾았는데…….”
그때 태영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네.”
“고마웠었소.”
“아닙니다, 국장님.”
태영도 김경훈처럼 차기원의 과거 직책을 불렀다.
“이제, 국장 아니오. 그리고 한번 해 봅시다.”
차기원이 결심한 듯, 해 보자고 한다.
그럼 된 거다.
증발해 버린 3백여 명의 군인들에게 태영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그들을 사라지게 한 것도 아니다.
정부도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정부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래도 그 가족들을 살펴 줘야 한다.
그 첫째가 보훈 지정일 것이다.
아직도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 핑계가 그따위로 많은지.
태영은 도울 수 있는 지식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남겨진 가족들을 조금이나마 보살펴 줄 수 있으면 된다.
이제 본론을 말할 차례다.
“이 건물의 다른 층에 회사 이름으로 구해 둔 사무실 한 칸이 더 있습니다.”
“얼마나 넓은데?”
“실평수, 65평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미터법보다 평수가 더 잘 와 닿을 것 같았다.
“운동장이네. 집기도 있소?”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은, 그 사무실의 경비 일체는 여기 터니……가 부담해 줄 수 있다는 말이오?”
이름이 어렵나?
“네.”
“가 볼 수 있소?”
“그러시죠.”
그 말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어서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텅 비어 있는 사무실.
“꽤 넓네. 우리 사람들, 어지간한 모임은 가능하겠어.”
‘우리 사람들’이란 피해자의 가족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미국 나사와 CIA에서 찾아왔었습니다.”
사무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태영이 제안한 일을 해 보겠다는 의사 표현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집기들이 없어서 말이 웅웅 울린다.
“그들이 왜?”
절대 하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인데, 평대의 말이 나왔다.
“제가 있던 부대가 사라질 때처럼,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로 사라진 케이스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음, 나도 뉴스에서 들었소.”
“개인으로 사라진 경우는 그 수를 알 수가 없을 정도구요.”
“그렇겠지.”
“그…….”
“우리나라 연간 실종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다음 이야기를 하려는데, 차기원이 다른 말로 이야기를 틀었다.
“모릅니다.”
“……최근의 통계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에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대답으로 매년 10만 명이 넘소.”
“네?”
“그게 정말입니까?”
태영이 놀랐지만, 김경훈도 정말 놀란 모양이다.
10만 명이 넘다니, 그것도 1년에.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통계라면 사실일 것이다.
“그중에 경찰이 찾아낸 숫자는 겨우 60% 수준이오.”
그럼 나머지는?
“또 우스운 것이 남자는 사라져도 실종 처리가 안 되니까, 사라진 성인 남자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남자는 그럼 뭔데요?”
김경훈이 답답한 듯 물었다.
“남자는 사라져도, 현행법상 가출이지 실종은 아니야.”
“하.”
저 실종 숫자에 남자는 포함되지 않은 걸까?
그러고 연간 10만 명?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대한민국은 주민 등록 번호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된다.
아마 그래서 정확할 것이다.
그런 관리가 안 되는 중국은?
그리고 주민 등록 번호 같은 것이 없는 일본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통계가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그들이 찾아온 이유가 뭐요?”
차기원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
개인 실종자의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라진 군인 중에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일?”
“네, 나사는 그날, 우주 에너지의 변화가 달랐다고 합니다.”
“우주 에너지? 그것과 무슨?”
“저를 철제 의자에 묶어 놓고 검사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런 개 같은 놈들…….”
말이 막 나왔다는 것을 느꼈는지 말을 끊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소?”
“못 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물러났소?”
“그냥…….”
“강제하지 않았소? 그들은 그만한 힘이 있기도 하지만, 그러고도 남을 놈들인데.”
“…….”
‘전멸을 각오하면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들은 태영의 능력을 모르니, 시도할 수는 있겠지.
시도하는 순간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국정원이나 군에서 나온 사람과 함께 만났소?”
“네.”
“그들은 뭐라던가요?”
“가만있었습니다.”
“월급이 아까운 놈들.”
그건 태영과 생각이 비슷하다.
“아, 제가 국장님에게 드린 부탁의 범위에 유재구는 제외합니다.”
“유재구 의원?”
“네.”
킬러를 고용해서 태영을 죽이려 했다.
안재희도 죽일 뻔했다.
당연한 듯이 언론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태영은 막을 능력이 되니 신고하지 않았다.
신고해 봐야 결론, 안 날 것이다.
안재희도 신고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묻히는 일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유재구와 얽힌 관계를 말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말 못 할 이유라.”
말을 멈추자 태영을 물끄러미 보던 차기원.
생략된 말속에 알 것 같다는 뜻이 들어 있다.
쌍칼과 포대기는 뭘 하고 있을까?
더 이상 그 일은 못 할 텐데.
***
“그러니까, 내가 생산 쪽을 맡아 주었으면 한다구요?”
“네.”
차기원이 떠나고, 김경훈과 둘이 앉았다.
김경훈에게 여기에서 일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지난번 만난 후에 위니에게 김경훈에 대한 조사는 했다.
부대 증발 사건이 발생하고, 다니던 회사를 퇴직했다.
아니, 권고사직을 당했다.
아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부대를 방문하고, 증발된 군인 가족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집회에도 참석했다.
그로 인해 결근이 잦았다.
일을 하고 있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맡은 일은 여러 곳에서 펑크가 났다.
결국, 회사에서는 사직을 권고했다.
그 이후, 여러 곳에 서류를 들이밀었지만, 어떤 곳에서도 오라고 하지 않았다.
전부터 친분이 있는 인룸프로의 정기섭 사장이 받아 주었다.
대신, 연봉을 낮추고, 월 1주 정도 결근해도 괜찮은 조건으로 입사했다.
급여가 많이 낮아졌지만, 김경훈에게 정기섭은 고마운 사람이다.
김경훈은 종종 일을 펑크 내기도 했다.
그래서 태영은 정기섭 사장과 계약을 했다.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니, 정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해합니다. 다만, 우리 쪽은 1주일 정도 후에는 일을 시작해야 하기에 기한을 이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거절하시면 다른 사람을 수소문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이틀 안으로 답을 드리죠.”
나이가 들면,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김경훈이 이곳으로 와 주면 좋다.
김정표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나마 도울 수는 있으니.
이제 차기원에게 기대해야 한다.
[응, 태영아.]김경훈이 떠나고, 태영은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에 택배 이야기 했었지? 정리 끝났어?”
[아니, 발송 물건 수량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어느 정도 숫자가 나오면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짜증 나.]“하하하.”
[거기도 취급점 같은데, 그런 사소한 것조차 배짱부리고 힘들게 하네.]“사무실로 올래?”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있으니 이건 정말 좋다.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왔다.
“방법이 있어?”
“부대 증발 사건.”
“응…… 왜? 그게 왜?”
그 이야기가 나오면 누나도 반응이 달라진다.
“오늘, 증발 사건 유가족을 도울 수 있는 책임자급 되는 분이 왔다 갔거든.”
“그래서?”
“응, 이야기를 하던 중에 누나 이야기가 생각나서 물었더니, 증발한 병사의 형이 택배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구.”
“그으래?”
누나의 반응이 밝아졌다.
“그 사람에게 여기 대리점이나 취급점 하나 내라고 하면 안 될까? 물량 책임져 주고, 물량 안 나오면 보상해 주면 되잖아?”
“좋은 생각인데? 보상은 네가 해 줄 거지?”
“내가 해 줄게.”
“연락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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