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12
057. 부탁과 부탁(1)
“야, 씨파 뭐 하는 거야? 이 씨발 놈아.”
유진애에게 하는 짓을 본 손용인이 고함을 질렀다.
기태연의 남은 한쪽 눈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얼굴은 마치 붉은 무 ‘비트’ 같다.
“손용인.”
“씨파, 너 이 개새끼야.”
기죽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제법 목소리를 높였지만 속삭임이 맞다.
쇄골 부위가 욱신거리는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긴다.
“지금이 11월 초, 옷은 다 찢어도 얼어 죽지는 않아. 그런데 말이야.”
“말해.”
“다들 출혈이 심하지 않아서 그걸로 죽지도 않을 거야. 그지?”
“퉤, 흐으으.”
못된 놈.
또 침을 뱉으려 하다가 쇄골에서 주는 통증으로 비명을 지른다.
“부러진 뼈들은 치료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어찌 된다?”
“…….”
이성열의 고개가 푹 꺾인다.
스스로가 잘 알기에 그럴 것이다.
이대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어찌 될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러니, 묻는 말에 빨리 대답하고 마치자. 그래야 치료라도 받을 것 아니냐? 그렇지?”
“…….”
“이성열, 너는 그리 생각 안 하냐? 아, 입을 테이프로 붙였으니 대답을 못 하는구나.”
손용인의 태도는 순간순간이 변한다.
이놈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하다.
이놈도 사이코패스? 아니면 소시오패스?
어떻게 분류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네 보스 손용인은 너희들이 어찌 되는지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그래 보이지?”
이간질은 안 되겠지만, 약간의 불신은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한 것이 많지는 않아. 그러니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흐읍.”
손용인은 여전히 분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대답을 안 하거나, 늦게 하면 그때마다 관절을 하나씩 부러트려 줄 거야.”
“……뭐?”
“관절과 대답 중에 선택은 네가 해. 같은 질문을 또 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상관없어.”
“…….”
“첫째, 너 혼자 한 짓이야? 아니면 공모자가 있어?”
위니가 준 정보가 많기에 굳이 묻지 않아도 된다.
답을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조금 더 공포심을 심어 줄 필요는 있다.
“…….”
“대답을 안 하네.”
발리송 나이프를 들어 칼끝을 손용인의 무릎 위에 수직으로 세웠다.
“대답 안 하면 누른다. 알아서 해.”
“호, 혼다다, 혼다 호자다.”
말까지 더듬는다.
“음, 대답이 1초만 늦었으면, 이걸로 무릎에 구멍을 내 버리려고 했는데.”
이제 허세가 많이 줄기는 했다.
“참고로 난 인내심이 별로 많지 않아. 그러니 대답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눈앞에서 발리송하듯 나이프를 휙휙 돌렸다.
“우리 누나를 납치해서 어찌하려고 했어?”
“…….”
이번에는 칼끝을 코앞으로 스윽 밀었다.
“교…… 교환 조건으로 네… 네 회사를…… 바…… 받으려고 했다.”
“너는 자꾸 반말한다? 이거 뭔가 조금 문제가 있네.”
“…….”
“아무튼 답을 했으니 넘어가지. 다음부터는 대답을 해도 반말이면, 반 정도 찔러 놓고 답을 들을 거야.”
태영은 질문을 멈추고 잠시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누나가 차에 잘 있는지 다시 확인했지만 목적은 누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편안한 모습이다.
안쪽의 상황을 모르니 그럴 것이다.
누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창고로 향했다.
“위니.”
[네, 마스터.]“김 전무님은?”
[어림도 없는 소리 말고 꺼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안 가니까, 그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고 돌아섰습니다.]누나와 식사 중일 때 위니가 알려 준 내용으로, 김경훈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스카우트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데.
“알았어. 지금 저 안에 있는 전화기에 있는 자료들 모두 옮겨서 보관 좀 해 둬.”
[네, 마스터.]위니와 대화를 끝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용인.
이놈과는 첫 만남부터 악연이다.
“손용인.”
“……네.”
“이후에 다시는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접근하거나 건드리지 마라.”
“…….”
“대답.”
칼끝을 팔꿈치로 가져갔다.
“……네.”
팔을 피하려 하다가 어렵게 대답했다.
“방금 네가 한 대답을 약속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약속을 믿겠다. 그런데 그 말을 어기고 또 건드리면…….”
“…….”
“그다음은 상상에 맡기는데…….”
그러곤 묶여 있는 다른 자들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아무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
“참고로, 오늘 이 정도는 내 성격상 시작도 하지 않은 거야.”
“…….”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재미있을 거야.”
기태연의 표정은 ‘두고 보자’이다.
“방금 너희 보스와의 약속은 너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
[마스터, 자료 모두 옮겼습니다.]“알았어.”
창고 한쪽에 보이는 페인트 깡통.
자동차 키를 제외한 지갑, 동전, 일반 소지품들을 깡통에 모두 집어넣었다.
스마트폰은 1개를 제외하고 모두 USIM을 빼냈다.
그리고 헷갈리지 않도록 폰 뒤에 빼낸 USIM을 테이프로 붙였다.
그것들을 철제 캐비닛 속에 있던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자료는 모두 위니가 따로 보관해 두었지만, 이 폰들은 폰 상태로 쓰임새가 있을지 모른다.
특히 유진애의 폰에 있는 이 영상.
폰째로 잘 보존해 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손용인의 폰에는 없나?”
시간이 많으면 폰마다 열어서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했다.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기름통.
처음부터 기름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는 시너다.
시너통의 뚜껑을 열고 소지품을 넣은 통에 주르르 부었다.
찢어진 옷 조각에 시너를 적시고, 소지품을 수색하면서 나온 라이터로 불을 붙여 통 속에 툭 던져 넣었다.
~화르르르르~
잘 탄다.
모두들 경악에 찬 눈빛을 보냈다.
지갑, 돈, 신용 카드, 사진 등 온갖 것들이 재가 될 것이다.
USIM을 건들지 않은 폰 한 개.
청 테이프에 붙여서 벽의 높은 곳에 매달았다.
“이게, 청 테이프가 약하면 언젠가 떨어지기는 할 거야.”
“씨파.”
손용인은 여전히 욕을 내뱉었다.
“암튼,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개새끼야.”
“그 전에 누가 결박을 풀어서 저기를 올라가서 폰을 손에 넣으면 빨리 돌아갈 수 있어.”
욕을 하거나 말 거나 할 말만 했다.
쇠사슬을 자르지는 못한다.
~찌익~
태영은 기둥에 매달린 자.
그중에 2명의 입을 막은 테이프를 뜯어내 주었다.
한 명은 코를 테이프로 막고, 구멍을 내 주었던 자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으로는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렵다.
눈이 반쯤 풀려 있다.
저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서 풀어 주었다.
“흐읍, 프읍, 푸웃. 퉤.”
숨을 크게 쉬고, 침도 뱉고, 핏물도 뱉고.
“……사, 살려 주세요.”
이제야 겁이 나는 모양이다.
“누가 죽인대?”
“그…… 그럼……?”
“어떻게 하든 결박을 풀어서 저 폰으로 도움을 청해야지.”
테이프로 매달아 놓은 폰을 가리켰다.
“하, 씨…… 씨파.”
“자, 또 보지 말자.”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불도 끄고 밖으로 나왔다.
누나는 언제 태영이 나올까 하고 유리창에 손을 가리고 밖을 보고 있었다.
~덜컥~
누나가 차 문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태영의 말에 누나가 문을 닫았다.
“위니,”
[네, 마스터.]“유진애 폰의 영상 속 그 사람들, 죽지 않았을까?”
위니에게 질문하며 마당에 있는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뜯어냈다.
[영상 속에서는 사망하지 않았는데,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그렇지? 죽었으면 어딘가에 파묻었을 수 있는데, 이 부근 아닐까?”
[주변은 모두 산이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는데 흔적이 희미한 발자국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방법이…… 에이,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닌데…….”
[네.]태영은 경찰도, 수사 기관도 아니다.
그러니 무턱대고 땅을 파 볼 수도 없다.
“또 한 번 공격해 오면, 영상 부분도 대응하기로 하고. 당분간 관심 끄자.”
[네, 마스터.]블랙박스의 메모리를 뺐다.
블랙박스는 한데 모은 후 밟아서 부수고, 메모리는 폰을 넣은 비닐 봉투에 넣었다.
그러곤 누나가 탄 차를 제외한 모든 차의 타이어에 펑크를 냈다.
네 개의 바퀴가 모두 바람이 빠지며 주저앉았다.
누나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것이다.
그래도 비밀을 말할 수는 없다.
한 가지를 말하면 모두 말해야 한다.
누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고려의 이야기나 28세기의 이야기를 할 순 없다.
~웅~웅~
(이야기 좀 하자.)
이한봄이 몇 번째 톡을 해 온다.
지금 상황이 답을 할 여건이 아니다.
그래도 답은 해 주어야 한다.
(지금 정신없다. 미안, 이해해라.)
***
“혼자 갈 수 있겠어?”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를 불러내서 함께 식사를 했던 호텔 입구다.
지금은 마음의 안정되어 웃기도 한다.
오는 동안 누나는 숱한 질문을 했었다.
대답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요령껏 피해 갔다.
대부분은 웃어넘기는 것이었지만.
“후! 아직도 심장이 좀 떨리기는 하는데…….”
누나의 차가 이 호텔 지하 주차장에 있다.
“떨리면, 내가 데려다주고.”
“너, 이 차 버리러 가야 한다면서?”
“누나를 데려다주고 버리러 가면 되지.”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그런데 진짜 수십 명과 붙어도 이겨?”
태영이 대부분의 질문에 대답을 피해 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누나가 질문한 것.
‘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그런 위험은 수없이 있을 것이다.
태영도 그리 생각한다.
그래서 누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수십 명과 붙어도 이긴다고 했다.
‘어떻게?’, ‘그거 진짜야?’ 같은 질문을 쉴 새 없이 했다.
‘동생을 좀 믿어 봐.’
이런 대답이 전부였다.
아마도 이 질문은 차에서 내리면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리라.
“그럼, 걱정 안 해도 돼.”
“내 동생, 멋지다.”
누나가 팔을 툭 치고는 차에서 내렸다.
납치당해 끌려간 사람이 저 정도 편안해지기가 쉽지 않다.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충분히 말했다.
오면서 마음을 많이 다독여 주기도 했다.
물론 뒤처리 과정을 못 봤으니 저 정도 편안해진 거다.
“잘 쉬어.”
차에서 내린 누나가 문을 닫기 전에 한마디 더 했다.
“그래, 누나도. 나 때문에 고생시켜서 미안해.”
“그 정도야 뭐. 앞으로도 네가 지켜 줄 거지?”
“그럼.”
“그럼 되었어, 나 간다.”
그 말을 끝으로 누나는 차 문을 닫았다.
그리고 태영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호텔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라진다.
[마스터.]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위니가 불렀다.
“응.”
[그들이 폰을 내렸고, 연락을 했습니다.]폰에 깔려 있는 인태프를 통해서 확인했나 보다.
“생각보다 빨리 내렸네?”
태영이 그곳을 떠난 지 3시간이 조금 지났다.
[네, 그렇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자, 김경훈 전무가 어제 일을 이야기했다.
스카우트 제안 이야기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했다.
마치 너희들도 알고 있으라는 것처럼 김지열, 정우찬, 유제범, 경호팀의 이진기까지 앉은 자리에서 했다.
“전무님.”
“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많을 겁니다. 그때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알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위로와 격려를 해 줄 수밖에 없다.
“꼭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 그리하십시오.”
“네.”
“자, 다른 분들도 같이 알고 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학교를 좀 가야 할 것 같거든요. 출석 일수 모자라서 유급하지 않으려면.”
“그러십시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꼭 졸업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졸업은 해 두는 것이 좋죠.”
“네, 졸업장이 필요해서요.”
“네.”
“제가 학교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아지겠지만, 모두들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아침 회의를 끝냈다.
***
“어, 학교 왔네?”
“그래, 왔다.”
학교에 아무런 사전 연락이 없이 왔지만, 박준혁은 바로 태영을 찾아냈다.
수많은 동기들과 선후배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떠났고, 박준혁을 포함해 몇 명만 남았다.
“한 달 넘었지?”
“그런 것 같은데. 유급 아닌지 몰라.”
“유급은 무슨?”
“출석 일수 때문이지 뭐.”
“그건 좀 그렇네. 메커니즘 유 교수님하고, 재료 공학 박 교수님이 너를 좀 찾았다.”
“가 보지, 뭐.”
“그리고, ‘갑질 공무원을 고발합니다.’ 그 영상.”
“응, 재밌지?”
“무지하게 통쾌하던데.”
“조회 수가 좀 돼?”
“하루 사이에 5백만 뷰.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모자이크 처리해도 너인 줄은 알겠는데, 갑질 공무원은 어디야?”
“그냥 모르는 것이 좋아. 그래야 기자들이 널 찾아오지 않을 거야.”
“그래. 교수님들에게 가 봐야지?”
“갔다 올게, 점심때 보자.”
“그래.”
태영은 손을 흔들어 주고 교수 연구실로 향했다.
***
~똑똑~
유지상 교수.
명패가 붙은 문을 노크와 함께 열고 들어갔다.
“누구? 어? 최태영?”
태영을 반기는 사람은 조교다.
“네, 유 교수님께서 보자고 하셨다 해서요.”
“너, 연락 무지 안 되더라. 바쁘긴 바쁜가 봐.”
“네, 좀 그렇습니다.”
“들어가 봐. 교수님 계셔.”
“네.”
~똑똑~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수많은 탁자와 기구들.
탁자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어지럽다.
“어, 어서 와.”
“안녕하십니까?”
“그래, 앉아.”
그러곤 의자 하나를 밀어 준다.
다른 곳으로 잠시 가더니 쟁반 같아 보이는 부품 상자를 가져왔다.
태영이 앉은 테이블 위에 놓는데, 그 안에는 부서진 앳윌플레이가 들어 있다.
분해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억지로 분해하면 저렇게 부서진다.
“그거, 고칠 수 있어?”
부서진 모습을 한심하게 보고 있는데, 유 교수가 씩 웃으며 물었다.
“분해가 불가능하니 분해하면 안 된다는 글귀가 설명서에 붉은색 글씨로 크게 쓰여 있는데…….”
“누가 그걸 믿어?”
누가 믿느냐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설명서가 장난이야?
그것도 붉은색 진한 글씨인데.
장난으로 그런 문구를 설명서에 표시하나?
“아무튼 고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분해로 발생한 기계의 고장은 A/S가 안 되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그래서 널 불렀지. 네가 만들잖아? 너라면 고칠 수 있을 테니까.”
교수들도 이런 싸가지는 있다.
교수도 사람이니까.
뭔가 부탁을 하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따위의 부탁이라니.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