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24
069. 인수 조건(3)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 볼까?”
어머니의 집안은 부모님과 1남 3녀의 형제다.
베이비붐 세대를 약간 지나간 때였지만, 자녀가 많던 시대였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하던 때였다.
딸 셋에 아들 한 명.
별로 이상할 구성은 아니다.
“자기들은 외롭지 않았겠지.”
영상으로 보이는 어머니 맞은편의 이모.
박유진은 어머니를 제외해도 형제가 둘이 더 있다.
저들은 몰라도, 어머니는 가족들이 그리웠을 것이다.
태영이 사무실로 들어섰고, 곧바로 사장실로 갔다.
유리로 된 벽.
안쪽이 흐리게 보이도록 바닥에서 눈높이까지 뿌옇게 처리된 내부.
두 사람의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문을 열자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니에게는 이미 톡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을 알려 두었다.
“어서 오너라.”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빴는지 인상을 약간 찌푸리는 박유진.
어머니의 언니, 태영에게 이모다.
“네, 어머니.”
대답을 하며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음?”
태영이 ‘어머니’ 하고 불렀으니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여긴, 네 이…… 아, 아니다. 그냥 이름만 알고 있어라. 박유진이라 부르면 된다.”
이모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저 말의 뜻은 어찌 대해야 할지를 정하는 행동 지침이다.
한마디로 남이라는 뜻이다.
“최태영입니다.”
태영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니? 이모에게 이름을 부르라니? 애를 그렇게 가르치니?”
대신, 어머니에게 화난 어조로 물었다.
애를 그렇게 가르쳐?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나?
“내가 쫓겨나면서 ‘너는 이제 가족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고, 아직 그 말이 취소되지 않았거든.”
“변한 것이 없구나.”
“그러는 박유진 씨의 말투는 더 고압적이고 더 안하무인으로 바뀌었네?”
“뭐라?”
“뭐긴, 쫓겨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거지.”
수십 년 만에 만난 형제의 냉랭한 대화이다.
어머니는 쫓겨난 사람.
이모라고 불러야 하는 상대는 쫓아낸 사람 중에 한 명.
“못된 것. 이렇게 회사 차려 놓고 사장이랍시고 앉아 있으니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못된 것?
진짜 싸가지다.
“사장이 되어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
“무엇이라?”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어투가 왜 저리 노인 같지?
고려에서 자존심만 가득 찬 양반들의 어투같이 느껴진다.
진짜 특이하다.
“지랄을 해요, 지랄을.”
태영이 껄렁하게 툭 던졌다.
생애 처음으로 존재를 알게 된 이모다.
어머니가 쫓겨난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오늘은 막돼먹은 놈으로 행동할 것이다.
“뭐?”
흥분한 박유진.
어머니는 태영을 말리는 대신 피식 웃는다.
너 알아서 해라, 그런 모습이다.
“내쫓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고, 지금은 무슨 생각으로 찾아온 건데?”
“이…….”
치를 떠는 것 같은 박유진.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듣기는 할 거니까, 말하고 꺼져 주지?”
다시 껄렁하게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이이, 이…….”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고.”
“…….”
“…….”
“…….”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말없이 시간이 흘렀다.
~부스럭~
박유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머니 한번, 태영을 한번 본다.
~타닥~타닥~
바닥을 소리 나게 차면서 걸어 나갔다.
태영이 뒤따라 일어서서 회사 출입구로 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상황에 관계없이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위니, 워처 하나 딸려 보내서 추적해. 이상한 것 있으면 내가 대답하지 않더라도 계속 알려 줘.”
[네, 마스터.]문을 닫고 소파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휴지로 눈물을 찍어 내고 계신다.
누나를 품에 안고 찾아간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했으니, 23년이 지났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많이 그리웠을 언니다.
그렇게 막말을 해 댔으니 어머니도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이해한다.
태영은 가만히 기다렸다.
“흠, 흐음. 못 보일 꼴을 보였구나.”
눈이 빨갛게 변한 어머니.
헛기침 몇 번 하고 휴지는 손에 꼭 쥔 채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때, 미안했다.’ 그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이리 모질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
“…….”
“……네 할아버지는 엄마를 내쫓았다고 해도,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이 바로 저 언니다.”
그래도 이름으로 지칭하지 않고, 언니라고 한다.
“말리는 시누이요?”
“……그래, 그 표현이 딱 맞네.”
아비가 딸을 내쫓았다고 해도, 형제들마저 연락을 끊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물으면 연락 않고 지낸다 대답하고, 몰래 만날 수 있는 거다.
그게 형제이고, 그래야 형제가 맞다.
형제는 어릴 때부터 서로 옥신각신해 가며 더욱더 끈끈해진다.
그렇게 위해 주고 보살펴 주는 관계다.
재산을 놓고 타투는 사이가 아니라면, 보통의 형제들은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된다.
남자가 고아이기에 결혼을 부모가 반대했다.
그래서 쫓겨나고, 형제들마저 연락을 끊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커피 할래?”
셀프 커피 코너를 가리키며 물었다.
방금 전의 상황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준비할게요. 어머니도 드실 거죠?”
“한잔 더 하고 싶다. 진하게.”
“네.”
커피 코너에서 커피를 준비하며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커피를 절반쯤 마실 동안 말없이 기다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어머니가 고개를 몇 번 저었다.
“알고 온 것은 아닐 터이고?”
진정이 되자, 새삼 태영이 온 것을 궁금해하며 물었다.
“회사 하나를 인수하려고 현장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어떤 회사?”
“미래이오티라고 규모가 제법 커요.”
“전망은?”
“놔두면 바로 망하는 회사요.”
태영의 대답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참, 나. 내가 알고 있는 미래 계열이면 철강하고 건설이 상장 회사인데?”
“네, 맞아요. 철강에 투자 좀 하셔도 돼요.”
“그래? 그러지 뭐. 그 망하는 회사는 왜?”
“공장 부지가 국가 산업 단지에 있는데, 위치가 좋아요. 그 부지 보고 사려는 겁니다.”
“바로 망하는 회사인데도?”
“제가 살려 내면 되죠.”
“그건 말 되는데, 왜 굳이 그런 회사를?”
“산업 단지의 입지 선정과 신청을 포함해서, 그만한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바로 해결되니까요.”
“그건 그렇네.”
“돈도 돈이지만, 시간 많이 걸리고, 인력도 많이 투입해야 하는 일이라, 인수가 쉽고 편하죠.”
“처음부터 하려면, 몇 년은 걸리지.”
“네, 이미 입주해 있는 망할 것 같은 회사를 인수하면 그 과정이 모두 생략되고, 단번에 해결되니까요.”
“단순하지만, 그 말에는 공감이 된다.”
“돈으로 때우는 겁니다.”
“맞아.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그보다 적은 돈으로 확보한다고 볼 수도 없고.”
“제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돈은?”
“원래는 어머니에게 말씀드려서 펀드로 투자받는 것을 생각하고 왔는데, 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직접 해외 투자를 받으려구요.”
“그것도 좋지, 한 단계를 거치지 않으니까. 규모는 얼마나 돼?”
“2천억이요.”
실제로는 5천억 정도를 더 들여올 생각이다.
“뭐?”
그 정도에도 깜짝 놀란다.
놀라는 것이 당연하지.
어머니 회사에 1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한화로 1조가 넘는다.
그것으로 투자 금융 회사의 사장이 되었지만, 농업 종합 자금 대출을 회수하려 할 때는 피가 말랐다고 했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니 유재구 그놈을 더 조져 버려야 하는데.
“오늘 밤에 통화하려구요.”
이번에는 스캇 플레처의 회사에서 투자받을 것이다.
“그럼 외화 차입으로? 아니면 외화 투자로?”
“사실 두 가지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데요. 일단 외화 차입으로 하려구요. 터니테크 이름으로.”
“그 정도 규모면, 외국환 은행장 신고도 해야 하고, 기재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는 거 알지?”
“몰랐는데요?”
해외로 돈을 보내는 것도,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는 것도 복잡한 법적 규제와 절차가 있다고 했다.
보내라고 한다고 뚝딱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영이 그런 것들을 알게 뭐람.
언제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있어야 알지.
“몰라?”
“네.”
“우리 회사 현베스트 자금 들어올 때 모르고 진행했니?”
“제 회사 설립할 때, 맡겼던 법무 법인에서 법적인 부분과 회계적인 부분은 모두 처리해 주었죠. 저는 에런 젠킨스의 위임장을 받아서 대신 서명만 했구요.”
“얘 봐, 얘 봐. 세상에.”
어머니는 대책이 안 선다는 표정이다.
법 관련 일이란 해 본 적이 없고, 회계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자료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오히려 헷갈린다.
“새삼스럽게 공부할 수도 없고, 그 일은 그쪽의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는데요, 뭐.”
“그래도 조금은 알아 두어야 하지 않니?”
“그거 공부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이번에도 거기에 맡겨서 해결할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처리하면 되긴 되지.”
“어머니가 체크만 한 번씩 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러자. 그나저나 에런과 한번 통화하게 해 줄 수는 없니?”
“통화요?”
“그래, 그 큰돈을 투자해 놓고 얼굴도 한번 못 보는 사람인데, 궁금하지.”
“오늘 통화하면서 제가 물어보죠.”
눈앞에 앉아 있는 에런 젠킨스.
만나자고 하면 황당해지지만, 통화야 뭐.
에런 젠킨스 명의의 전화기도 스캇 플레처의 전화기도 태영의 책상 속에 있다.
잠시 얼굴을 바꾸고, 영상 통화를 할까?
태영이 아무 곳에서나 그 전화기로 전화를 해도, 지역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적당한 때에 위니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그래, 거북해 하면 안 해도 되고. 나도 편하기는 해.”
“그렇죠?”
“그럼, 그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간섭도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하니까.”
“물어보기는 할게요. 그나저나.”
“응?”
“막상 인수는 하지만, 사람이 문제인데…….”
“사람?”
“네, 제가 아직 젊고, 학생인 데다 사회 경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는 사람도 없으니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요. 박준혁도 학생에 경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어떤 사람을 찾는지 엄마에게 말해 주면, 찾아보마.”
“에이, 그런 일까지 어찌 부탁드려요?”
“아니야. 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능력 있는 사람들과 교류가 많이 있으니까 가능할 거야.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마스터, 박유진이 자동차 안에서 한참 동안 울다가 이제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울면서 모친을 끝없이 욕했습니다.]거, 미친년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아버지도 이리 오시기로 했는데, 좀 기다렸다가 저녁 같이할까?”
“저녁까지 같이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아요. 두 분이 드세요.”
“그래?”
변성준을 대신해서 조백려인가 하는 여자와 만남이 약속되어 있다.
“네, 여러 일을 하다 보니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 내서 오기도 하잖아요?”
“할 수 없지.”
“맞다. 미래이오티가 있는 산업 단지가 제약 단지와 가까워요. 아버지가 거기 있는 회사 인수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되고 있나요.”
“마무리된 듯하다.”
“그래요? 어떤 회사인데요?”
“그 회사는 특별한 기술은 없고, 하청 생산으로 회사를 꾸리다 보니 회사가 꽤나 어려운가 보더라. 그건 네가 주문했다면서?”
“네, 그런 회사 아니면 아버지가 인수자로 나섰을 때 쉽게 회사를 넘기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제약 단지에 있나요?”
“제약 단지 인근인데, 부지가 넓어서 욕심을 내는 곳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아, 그래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몇 년 전부터 욕심을 낸 회사들이 고사 작전을 편 것 같아.”
“고사 작전이요?”
“회사가 망하면 여러 과정을 통해서 경매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헐값에 인수가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참 악질들이야. 정말.”
“기업의 세계는 어쩔 수가 없다. 서로 간에 피 터지는 경쟁이잖니?”
“아무리 경쟁이라도 그렇지. 하청 생산 회사를 고의로 고사시켜서 먹어 치우면 안 되죠.”
“아버지도 개인이니까 그쪽의 경계망에 걸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방해는 받은 모양이더라.”
“인수하게 되면 아버지가 견제와 압박을 받겠네요.”
“그렇지 않을까?”
“면적이 얼마나 되는데요?”
“하청 회사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면적이 넓어. 무려 3만 평.”
“와, 진짜 넓네. 인수 비용이 비싸지 않아요? 땅값만 해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실제로는 2천5백 평 정도가 회사와 공장 부지고, 나머지는 공장 옆의 딸린 임야야.”
뭐가 그래?
임야이면 논밭이 아니니까, 그냥 산이라는 말인데.
“그럼?”
“거기 사장이 회사가 잘 되면 확장을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해, 원래 자신 소유의 임야를 현물 출자 형식으로 미리 회사 부지로 편입시켜 둔 모양이야.”
“하, 너무 크게 벌렸네요.”
조금, 아니 많이, 바보같이 일을 처리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원래 그 지역에 땅을 많이 가진 토박이인데,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의 계획을 믿고 추진을 했단다. 그런데 일을 추진한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모양이야.”
“그래요?”
“아들이 만든 계획대로 추진했지만, 아들이 죽고 난 뒤에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써 둔 계획서 몇 장으로 그 내용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었겠지.”
“그렇겠지요.”
“그래, 능력이 안 되니까 하청 생산으로 돌아선 것 같고.”
세상에는 정상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이 벌어진다.
회사 건물이 번듯하다고 건실한 회사로 볼 수 없다.
반대로 허름한 건물에 있다고 곧 넘어질 거라 생각할 수도 없다.
거래를 하고 있어도 그 회사의 재무 상황을 모를 수 있다.
아주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
협업을 하다가, 상대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말하면 협업을 더 꺼려한다.
지속성의 보장.
그것은 품질의 보장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버지 회사에 저도 투자를 좀 할까요?”
“지분 투자?”
“네.”
“아버지로서는 너무 큰 회사를 인수하니까, 네가 인수 대금으로 지분 투자를 하면 일이 쉬워지지.”
“그럼 식사하면서 한번 여쭈어 보세요.”
“그래, 그러마.”
“그리고 두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주식 시장에서 나도는 풍문 많지요?”
“응, 많지.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의 수보다 유언비어는 더 많고.”
“혹시 그런 정보를 내부 공유하게 되면, 제게도 좀 보내 줄 수 있나요?”
“그래, 보내 주마. 그게 뭔 어려운 일이라고. 다만 지라시는 신빙성이 없는 거 알지?”
“네, 압니다. 제가 선별은 또 잘합니다.”
위니에게 증권가 지라시를 입수토록 해도 된다.
이것은 차후에 어머니와의 일 진행에서 정당성 확보를 위한 장치다.
[박유진이 동작구 사당동의 한 아파트에 찾아갔습니다. 만난 사람은 박유은입니다.]이름으로 봐서 어머니의 또 다른 언니다.
이 시간에 집에 있으면 전업 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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