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29
074. 실종자(3)
미운 정도 정이라 했다.
그런 것들과 얽혀서 도연태에게 혹시 미운 정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의 아픔.
그러니 미운 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찌 단정한단 말인가?
그에 대한 진심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이런 때는 참 답답하다.
“그냥 줄 리는 없지요.”
“그럼?”
“짧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박준혁에게 했던 설명을 조금 더 쉽고 편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금액은 빼고 설명했다.
박준혁의 어머니도 금액은 묻지 않았다.
설명을 하는 20분 정도의 시간.
깊은 한숨과 탄식.
‘그 나쁜 인간 잘 되었다. 천벌을 받아야지.’라는 중얼거림의 반응을 내보였다.
“그래서, 그 결과가 이겁니다.”
태영은 통장을 꺼내 박민서 여사 앞으로 내밀었다.
“…….”
박민서 여사는 통장을 들어 보지도 않았다.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태영에게 다시 밀었다.
“왜요?”
“내가 내 힘으로 얻어 낸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지금 아들이 내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그러니 그 안에 돈이 얼마가 들었든 상관없이 내게 더 이상은 필요 없다.”
액수도 확인하지 않기는 했다.
그래도 너무 욕심이 없으신 거지.
“제 것이 아닌데 제가 가질 수는 없지요. 그리고 어머니, 저 돈 많아요.”
“그래도 네가 일하는데 써 주면 더 좋지 않겠니?”
“그럼, 거기에 든 것을 준혁에게 미리 상속을 좀 해 주십시오. 물론 증여가 맞지만, 그걸로 준혁에게 시킬 것이 있거든요.”
“상속?”
“네.”
“돈 몇 푼 건네준다 한들 상속은 무슨 상속? 그냥 주면 되는 것 아니야?”
“한번 펴 보십시오. 그게 세금이 제법 나올 것입니다.”
“푼돈도 상속세를 내는 거야?”
“네.”
“그래,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네. 아들이 나 때문에 고생고생해서 만들어 온 것인데, 통장을 열어 보지도 않고 이리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한 장을 넘겼다.
이름과 계좌 번호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것 없다.
~사락~
두 장, 세 장.
통장의 내지가 넘어가는 소리.
얼굴이 노래졌다가 파래졌다가 한다.
“후웁.”
숨도 거칠어졌다.
예전, 20대 초반에 도연태의 회사인 영보엔지니어링.
거기서 경리 업무를 했다.
지금은 누나의 회사인 메이스타에서 경리팀장으로 자금과 회계 일을 총괄한다.
통장 속에 표시된 저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후웁…….”
가슴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 ……그러니까 이것이…… 그렇다고?”
창백한 얼굴에 눈만 빨갛게 되었다.
고여 있던 눈물이 양 볼을 따라 주르르 흘렀다.
“아까 제가 말씀을 다 드렸지만, 사실상 제대로 받아 낸 것은 없습니다. 받아 낸다면 그 돈을 이용해서 이제부터 제대로 받아 내야지요.”
“그……렇구나…… 그래.”
“실제 돈 관리는 저희 어머니가 하고 계신 건 아시지요?”
“그래, 알지.”
“준혁이는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
그 부분에서 뭔가 모르게 단호하다.
“준혁에게 말했지만, 영보엔지니어링을 준혁에게 줄 생각입니다.”
“……어찌?”
“저 믿으시죠?”
“믿지. 당연히 믿지, 그럼 믿고말고.”
“그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저희 어머니를 한번 만나십시오. 준혁이랑 같이.”
“그래, 그러마. 꼭 그러마.”
그러곤 가방 속에 통장을 찔러 넣었다.
얼굴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결연해졌다.
아무래도 준혁이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 메이스타에 계속 다녀도 되니?”
“그럼요. 일하시던 분이 갑자기 일을 안 하시면 심심하잖아요.”
“그래, 맞아. 그래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일도 재미있어.”
“괜찮은 카페 하나 차려서 하셔도 되구요.”
“아니야.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정들어서, 돈 있다는 표시 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그래도 되는 거지?”
***
“출발일이 화요일로 정해졌습니다.”
조병원을 대신해서 온 류지현.
본인의 소개로는 행정 사무를 지원하는 일이 주된 임무라고 했다.
아닌 것 같지만.
국정원이라고 해서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총 들고 싸우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전화로 하지 않고, 사람을 보낼까?
그것도 오전 7시에 회사로 왔다.
태영은 시간에 크게 상관없다.
부하 직원을, 그것도 행정 사무를 본다는 여직원이다.
이 새벽에 외근을 보내다니.
조병원 미친 거야?
“그래요? 돌아오는 날은 어찌 됩니까?”
이번 주까지는 안 된다고 했었다.
출발일을 차주로 잡기는 했는데, 하필 화요일이다.
미래이오티 인수 절차 진행이 차주 수요일 예정이다.
일주일을 미루거나 아니면 유 부장에게 맡겨 둬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다음 주 화요일입니다.”
“일주일을 넘기는데? 그 이야기 못 들었나요?”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이 워낙 오지여서 오가는 일정 4일을 빼고 나면 실제로 조사하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저쪽에서는 가능하면 며칠 더 연장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나도 바쁜 사람입니다.”
“그 정도 보수면 1년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 푼돈을 보고 1년을?”
“네?”
“왜요?”
“일당 천 불이 푼돈이라고요?”
“천 불?”
“네.”
“내가 분명 만 불이라고 했는데. 그럼 안 갑니다. 가서 그리 전하세요,”
“아…….”
미모가 출중한 여사무원을 보냈다.
미인계로 일당 만 불을 천 불로 깎으려는 수법이야?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자, 아침 일찍부터 와서 소득은 없었지만, 안녕히 가세요.”
“저…….”
“왜요?”
“정말 만 불이었습니까?”
“장난해요? 조병원에게 전화해 보시든지.”
조병원이 태영에게서 나올 볼멘소리를 듣기 싫으니, 이 직원을 대신 보낸 거 맞다.
“아…… 그, 서류 작업을 제가 했는데, 액수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일당 천 불을 실수로 0 한 개를 더 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고쳐 쓴 거거든요.”
“터무니없어요?”
네 마음대로 터무니없어?
“하아, 이거……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한숨까지 내쉬며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그럼, 차이 나는 액수만큼 류지현 씨가 주세요. 그럼 돼요.”
태영의 그 말에 직원은 울려고 한다.
차이 나는 액수.
그 돈을 류지현이 해결하려면, 그곳에서 받는 월급을 몇 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만일 이게 연극이라면 조금 서툴기는 하다.
그래도 받쳐 주는 미모가 있으니까 연기자로 갔어야 하는데 국정원으로 잘못 간 거다.
“잠깐만요.”
폰을 꺼내서 전화를 한다.
[왜? 잘 안 된 거야?]수화기 저쪽에서 조병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들켰어?]“네.”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잘 한다.
아주 잘 하는 짓이다.
태영이 듣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럼…… 어쩔 수 없지. 날 바꿔 줘.]“네, 잠시만이요.”
“지현 씨, 연기는 괜찮았어요.”
전화기를 넘겨받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물론 놀리는 말이다.
연기는 서툴렀으니까.
태영의 말에 눈빛이 달라졌다.
표정도 싸늘하게 바뀌었다.
저 눈빛은 이 연극이 들켰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 바뀌기 시작했다.
본인의 입으로는 행정 담당이라고 했는데.
몸에서 은연중에 풍겨 오는 강한 기운.
행정 담당은 외부용이다.
[최태영.]“왜?”
[좀 봐줘라. 부탁하자.]“뭘 봐줘?”
[일당.]“지랄하네, 안 가.”
[우리 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절대 수용 못 한다고 한다. 지금 그것도 겨우겨우 합의가 된 거야.]“나 빼고 너희들끼리 가면 돼. 간단한 걸 가지고 그래? 나 바쁘다는 말 뭐로 들었어?”
류지현의 눈이 더욱 가늘어진다.
그것이 태영에게도 보였다.
태영이 조병원에게 반말로 툭툭거리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거다.
3분쯤 더 통화했다.
그 부처 책임자의 체면과 대통령의 체면까지 꺼내 들면서 태영을 설득했다.
젠장.
“대신, 그 차액은 조병원과 류지현의 빚이야. 치부책에 달아 놓겠어.”
조병원이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서 류지현이 가지고 온 서류의 토씨 하나하나까지 다 따졌다.
그렇게 꼼꼼히 확인한 후에 서명을 했다.
“류지현 씨.”
“네.”
“연기자로 나가 볼 생각 없어요?”
장난칠 상대는 아니다.
뭔가 기분이 나빠서 놀리는 말로 던진 것이다.
대화하는 내내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
철의 냄새가 배어날 정도로 강렬한 전투 성향이다.
서툰 연기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괘씸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다.
“까불지 마세요.”
헉?
까불지 말라고?
와, 이건 막강 반전이다.
처음에 태영을 찾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사람이 바뀐 것처럼 눈빛과 말투가 확 달라졌다.
역시.
“오호, 서명까지 했으니, 이제 잡힌 물고기다?”
“가는 곳에 나도 동행합니다, 파트장님은 어찌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식의 말투와 행동은 용납 안 합니다. 그러니 말조심하시고, 까불지 마세요.”
오, 세다.
“어떻게 용납 안 할 건지 기대하죠. 다만 이건 알아 두세요. 류지현 씨는 내게 칠만 이천 불의 빚이 있다는 걸.”
“흥.”
놀라는 기색도 없이 콧방귀를 뀐다.
조병원보다 말발이 더 세다.
성격으로나, 전투력으로나 모두 다 우위에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생각난 듯, 태영에게서 받은 서류를 뒤적였다.
중국 비자 받아야 한다며 가져간 여권.
“허, 너 완전 어린애네?”
그것을 다시 한번 펼쳐 보고 하는 말이다.
중국은 비자가 있어야 입국이 되니까 여권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여기 올 때, 분명히 태영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왔을 거다.
나이를 아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마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어설프게 연기를 한다.
“맞아.”
그럼, 더 확실히 받아 주어야지.
생각과 동시에 반말로 대답했다.
“뭐?”
“류지현에 비하면 어린애 맞다고.”
여권에 표시된 생년월일이 그런데 어쩌라고?
“뭐라고?”
태영이 자신에게 반말한 것에 대한 분노다.
눈에서 불꽃이 파르르 일어난다.
“그렇다고 그게 네가 내게 반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니 너도 더 이상 까불지 마.”
“네가? 하, 어처구니가 없네. 정말.”
“이제 가라. 너 까부는 것 보고 싶지 않으니.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이상 까불지도 말고.”
“두고 보자. 누군가 한 명쯤 사라져도 모를 오지에 가서도 그딴 말이 나오는지.”
“그 정도면 협박인데. 왜? 거기서 사라지고 싶어?”
“뭐?”
얘는 황당하거나 말이 막히면 ‘뭐?’라고 반응한다.
성격이 단순한 건가? 아니면 불같은 것일까?
“현재 일에 불만이 많은가 봐?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일에 만족을 못 해? 그럼, 거기 가서 내게 말을 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도와줄 수 있으니까.”
~꽝~
뒷말이 끝나기 전에 류지현은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
“성격하고는.”
국정원 직원이라 하면 일단 한 수 접어주는 것이 맞지.
류지현으로서는 태영의 한마디 한마디가 몹시 거슬렸을 것이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화요일에 출발하면 실제로 일하는 날자는 오늘과 월요일이다.
그사이에 비자를 받아?
비자가 그리 간단한가?
아니면 국정원 권력이 그만큼 좋은 건가?
그나저나 뭔가 잊은 것이 있다.
“아씨, 위성 전화기 받아야 하는데.”
어차피 가지고 오지 않은 것 같긴 했다.
“위니.”
[네, 마스터.]“티베트는 통신 상황이 여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할 거야. 나하고 교신이 쉽지 않을 거거든.”
[마스터가 말씀하신 위성 전화기는 제 데이터베이스에 자료가 있습니다. 그 전화기는 딜레이 시간이 길고, 통신 사각 지역도 많으면서 통신이 원활하지 못합니다.]“긴급 상황이 생기면 대응이 쉽지 않다는 뜻인데…….”
[마스터와 통신이 원활하지 않을 뿐 다른 문제는 없습니다.]그건 맞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태영이 결정할 것과 인공 지능 위니가 결정할 것이 서로 다르다.
“긴급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지 않거든. 방법이 없어?”
[전용 통신 위성을 보내면 됩니다만, 남아 있는 소재의 양으로 통신 위성을 만들기에는 부족합니다.]소재를 구하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다.
28세기와 21세기의 기술적 한계를 그리 쉽게 뛰어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태성기술이 빠르게 정상 궤도에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도 태영이 필요로 하는 소재를 확보해서 원료를 생산해 내지는 못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행하고, 그다음을 보면 된다.
나머지 일반적은 것은 구매 대행을 하면 된다.
“소재가 문제네.”
[확보를 서둘러야 합니다.]“그래.”
통신 위성을 띄워 올리면, 통신에 관한 한 제약이 없어진다.
지금 이 시대와 28세기의 통신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그곳은 은하계 간의 통신이 기본인 시대였다.
통달 거리, 전파 음영 지역 같은 것의 개념도 다르다.
“아직 불가능하네.”
***
토요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증발해 버린 군인들의 가족.
2주쯤 전에 참석 희망자로 신청한 사람이 410명이었는데, 15명이 더 늘어서 425명이 되었다고 했다.
태영이 로비에서 기다릴 입장은 아니다.
반가워할 수도 있고, 탓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층 난간에 서서 보고있는 중이다.
차기원과 그를 돕는 사람들이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겸경훈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차기원을 돕고 있다.
연회장에서 나온 안전 요원 외에 보안 경호팀 직원들이 참석해서 질서 유지를 시키고 있다.
터니테크의 직원들과 심지어 메이스타 직원들까지 나와서 행사의 진행을 돕고 있다.
메이스타에는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누나가 자원자를 묻자 대부분이 자원했다고 한다.
준혁의 어머니 박민서 여사도 책상 한곳에 앉아 있다.
참석자들의 이름을 체크하면서 명함 크기만 한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끝나고 나가실 때 여기에 다시 오셔서 그 카드를 제시하시면, 참가비와 교통비를 현금으로 지급해 드릴 것입니다. 카드 분실하시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개의 테이블에 15개의 태블릿으로 참석자를 확인하고, 태블릿에 올라와 있는 사람의 얼굴을 대조 확인한다.
확인이 되면 서명을 하고, 카드를 받아간다.
“야, 나는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니 지금 줘.”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서 카드를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아, 그럼 참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참석 안 하시면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취소해도 참가비는 주나?”
“취소하시면 참가비는 드리지 않습니다. 선생님.”
“뭐?”
사람의 마음이 다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저런 싸가지들은 이런 장소에도 꼭 있다.
반말은 예사로 하고, 보나 마나 다음 순서는 폭력 행사일 것이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