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30
075. 실종자(4)
“참석을 취소하시겠습니까?”
다시 묻는 직원.
“야, 뭐야? 참석하면 참가비 준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왜 나갈 때 주는 것을 지금 주면 안 돼?”
“그 뭐 하는 짓거리요? 정부에서 주는 돈도 아니고, 살아서 돌아온 병사가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주는 건데.”
누군가가 못마땅했는지, 보안 요원이 나서기도 전에 큰 소리로 나무란다.
“넌 뭐야? 이 새끼야?”
드디어 시비가 시작되는가 싶다.
“너라니? 새끼라니? 군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애비다, 이놈아. 왜?”
“야, 시끄럽다. 참석 안 할 거면 돌아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너 같은 놈이 있어서 사람들이 욕을 먹는 거다. 이놈아.”
또 다른 사람이 나섰다.
그 사람이 나서자 10여 명의 사람이 우르르 둘러쌌다.
“뭐야?”
“넌 뭐야?”
“새끼라니, 넌 어떤 새끼인데?”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다 한마디씩 하자 그 사람이 움츠러들었다.
분위기가 더 소란을 피우면 어찌 될지 모르는 험악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공동의 관심이나 정서에 반하면 저런 현상이 생긴다.
“자자, 폭력 행사는 안 됩니다. 물러나십시오. 그리고 참석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만 태도를 명확히 해 주십시오.”
이진기가 나섰다.
결국 그 사람은 비칠비칠 물러났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별 거지 같은 놈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지랄이야. 거 경비보시는 분, 저런 놈은 바로 잡아서 처넣어 버리면 안 되겠소?”
중간에 끼어들었던 사람이 이진기에게 큰 소리로 물어본다.
“저희 본분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고를 막는 것이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그리고 저희가 경찰이 아니어서 잡아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노여우시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이진기가 정중하게 그 사람에게 말했다.
“그래요. 에잉, 저런 놈들 때문에 분위기 망치고 기분 잡치면 안 되는데 말이오.”
그 말을 끝으로 분위기는 다시 숙연하고 조용하게 바뀌었다.
“박재천이요.”
그때, 태영의 귀에 기억이 있는 이름이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박재천 대령의 부인 선영란이 검은색의 수수한 한복을 차려입고 한 테이블 앞에 서 있다.
병기고 이전 수송 책임자, 박재천 대령.
태영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돌아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
아니면 김정표나 오석현처럼 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 어느 산자락의 수풀 속에 누워 인식표를 백골에 걸고, 비바람을 맞고 있을지.
~쿡쿡~
태영은 보안 요원들이 사용하는 무전기의 인후 마이크를 두 번 눌렀다.
이진기를 비롯하여 세 사람의 시선이 태영에게 향했다.
태영은 손가락 두 개를 펴서 위로 올렸다가, 박재천 대령 부인을 가리켰다.
국제 회의장에 딸린 부속 룸이 몇 개 있다.
귀빈을 모시는 장소, 연사가 기다리게 하는 장소도 있다.
진행자들이 준비하는 준비실, 휴식 공간도 있다.
그중에 한곳은 차기원과 일행이 사용하고 있다.
태영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모셔 왔습니다.”
숫자 2가 새겨진 방문 앞에 이진기를 대신하여 3조의 도승규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해 줘요.”
“네, 걱정 마십시오. 안에 김재윤 씨 있습니다.”
김재윤은 보안 경호팀의 여자 요원이다.
~똑똑~
노크와 동시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의 시선이 태영에게 돌아왔다.
김재윤은 태영에게 구호 없이 거수경례를 한다.
태영을 빤히 바라보던 박재천의 부인은 입 끝이 살짝 움직이더니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살아 돌아온 그분?”
“네, 맞습니다.”
“그래요.”
“혼자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속으로는 ‘제가 돌아온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다.
태영이 그랬듯이 또 다른 차원의 그 어느 시대에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른다.
태영도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다.
기대를 심어 주는 것은 때때로 희망 고문이 된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곳의 기준으로는 사망이다.
“사과할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이렇게 일해 줘서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요?”
“따로 뵙고 부탁을 좀 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늘 모임, 목적에 대해 혹시 들으셨습니까?”
“…….”
대답 대신 고개는 끄덕인다.
“차 국장님이 사단 법인을 준비 중입니다.”
“네.”
“그분과 함께 중임을 맡아 주실 수 있을까 해서 이리 모셨습니다.”
“……차 국장님이 말씀하시기는 하셨는데…….”
수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적인 곤란함은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답은 차 국장님에게 하면 되나요? 아니면, 최 군에게?”
“차 국장님에게 하시면 됩니다.”
“차 국장님과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긴 이야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니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선영란과 헤어져서 다시 2층 난간으로 갔다.
“유성진이야.”
안내를 하는 직원들의 테이블 앞.
이름을 밝히는 거만한 표정의 뚱뚱한 여자.
[마스터, 여자는 유재구의 아내, 유성진의 어머니 장소영입니다.]유재구 쪽은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유성진은 명단에 없는데요, 손님.”
“뭐야? 왜 없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여자, 장소영의 고함질이다.
남편이 국회의원이니 어디를 가든 갑 중의 갑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생떼를 부리면 뭔가 되었겠지.
하지만 여기서는 어림없다.
~쿡쿡~
무전기의 인후 마이크를 두 번 눌렀다.
이진기가 태영을 바라보았다.
손으로 장소영을 가리키며, 두 팔을 앞으로 교차해서 X 표시를 했다.
이진기가 보안 경호팀 직원 둘을 불러 귀엣말로 뭔가를 지시했다.
“왜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명단에 확실히 없고, 사전 예약 기록도 없습니다.”
“야, 이년아. 제대로 찾아봐.”
역시.
“촬영 중이지?”
[네, 마스터.]“실시간 스트리밍?”
[네, 가능합니다.]“‘왜 너만’에 지금 올려 줘. 다른 데에 광고도 좀 해 주고.”
[네, 제목은 어찌할까요?]“유재구 국회의원 부인, 장소영. 증발 군인 가족 모임에 와서 행패.”
‘왜 너만’은 태영의 채널이다.
재미있을 거다.
장소영도 증발 군인의 가족은 맞다.
그렇지만 태영의 부모님과 누나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려 한 자다.
그런 자를 지원해 줄 수는 없다.
얼굴 나와서 초상권이니, 명예 훼손이니 하며 법적으로 덤비면, 한판 붙으면 된다.
조져 버릴 거다.
“송 기자에게 저 여자, 장소영의 인적 사항 포함해서 영상 보내 줘.”
[넵, 보냅니다.]“저 여자, 호스트바 영상 몇 개야?”
[32개입니다.]충분하네.
시비만 걸어 봐.
지옥이 어떤 곳인지 구경을 시켜 주지.
“그 영상도 한 개만 보내 줘.”
[네, 마스터.]위니와 이야기하는 동안 장소영의 고함질은 계속되었다.
그때, 보안 경호팀 직원이 경찰 두 명과 들어왔다.
경찰은 혹시나 발생할 분란을 대비해 요청해 둔다고 차기원 국장이 말했었다.
“이보세요.”
“넌 뭐야?”
경찰의 말에 장소영의 화가 바로 돌아갔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지금 저분에게 손찌검하려고 했죠?”
“내가 언제? 네가 봤어?”
경찰도 안중에 없다.
거의 막가파 수준이다.
주위에 사람이 몇인데, 네가 봤냐니?
너 어느 경찰서 누구야로 시작해서, 내가 잘라 버리겠다고 고함을 쳤다.
온갖 욕설을 다 하더니 결국 경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단체의 필요성.
권리 관철과 적절한 보상 요구.
그런 것들에 대해 차기원이 길지 않은 설명이 있었다.
곧 식사 시간이 된다.
식사를 시작하면 어수선해지기에,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내야 했다.
“받으신 카드 소지하고 계시죠?”
~네에~
단체의 대답이다.
“모임이 끝나고 나가실 때, 그것을 행사 진행 요원에게 제시하면 참가비를 현금으로 지급해 드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인사가 나왔다.
“식사 중이실 때, 지원 요원들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단 법인 참가 신청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윈하시면 서명하셔서 카드와 함께 제출하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얼마나 됩니까?”
“그것은 동일한 금액이 아닙니다. 교통비를 포함하고 있기에 주소지에 따라 차등해서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많나요?”
“실망하지 않으실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건 누가 주는 것입니까?”
그 질문에 차기원은 태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것이 정부에서 지급하면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 그러지는 못했고, 여기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여러분도 아시지요?”
태영은 단상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조용하다.
소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은 예상 밖이다.
“최태영입니다.”
태영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으흠~ 으흐흠~
헛기침과 잔기침이 장내에 낮게 울렸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모두 사라졌는데, 혼자만 살아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너라도 살아와서~
굵직한 음성의 남자가 지르는 고함 소리.
~잘했다. 너라도 살아와서~
~그래, 잘했다~
뒤이어 이쪽저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고,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말에 태영도 울컥했다.
“오늘 이 행사비로 3억 가까운 돈이 들었고, 그 비용은 모두 최 군이 부담했습니다.”
옆에서 차기원이 괜한 소리를 했다.
그래도 그 말에 마음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연회장이니 식비와 대관료.
참가비와 교통비의 금액은 그보다 더 많기는 하다.
“부자야?”
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외침이 들렸다.
“아닙니다. 가난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럼?”
“저희 부모님은 귀촌하면서 대출받은 농업 지원 자금을 갚지 못해 허덕였던 서민입니다.”
“그런데?”
“전역 이후에 무언가 일을 벌이면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비용 지원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 농성장에 생수를 무한정으로 공급해 준 사람도 최 군입니다.”
역시 차기원이다.
차기원 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
“자, 질문은 잠시 후에 하셔도 되니 마저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곧 식사가 들어올 것입니다.”
차기원이 다음 이야기를 계속했고, 제법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진행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차기원의 설명에는 방점이 있었다.
사단 법인이 회원이 되었을 때의 혜택을 설명하던 부분에서이다.
“희망자에 한해서 터니테크의 소매점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립니다.”
~와아~
~그게 진짜요~
그 소식은 꽤 많은 소란을 가져왔다.
“네, 진짜입니다.”
참석자 중에 터니테크에서 만들어 공급 중인 제품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 학생도 있었다.
그걸로 수백만 원을 벌었다는 실종자의 동생.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대신 설명했다.
그 짧은 경험의 이야기로 추모의 장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제까지나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 해 본 경험이 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차기원도 흥미가 동했는지 그렇게 질문을 하자, 이십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제법 많다.
“질문 있습니다.”
손을 든, 소녀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다.
“네, 말씀하세요.”
“소매점의 권리를 받아서,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 하듯이 해도 됩니까?”
차기원이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영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학생들은 거기에 관한 한 반응이 빠르다.
“네, 된답니다.”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시장통 같은 소란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수백만 원을 벌었다고 하니 그럴 것이다.
이해가 다 되지 않은 사람은 옆 사람에게 묻기도 했다.
그래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사단 법인이 만들어지면, 그곳의 커뮤니티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소녀의 말에 모두 함성을 질렀다.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
해외, 특히 중국으로 나가는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태영도 이미 알고 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조장하고 있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수출은 않고 있으니까.
구매 대행을 통해 물량을 수집하고, 그것을 가져가는 형태가 해외로 나가는 수단의 전부이다.
소란 속에 식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 사장도 이리 오시오.”
차기원은 더 이상의 진행을 포기했다.
단상 옆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가며 태영을 불렀다.
“네, 국장님.”
자리에 앉았는데, 신정현이 빠르게 다가왔다.
왜?
“사장님, 나도 소매점 해도 돼요?”
툭 던지듯 물었다.
“회사 관두려고?”
“아뇨. 우리는 제한적으로 겸업이 허용되니까, 부업으로 해 볼까 하구요.”
“해요, 그럼. 대신에 회사일 소홀해지면 안 되는 거 알죠?”
“그럼요.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신정현의 급여가 적지 않다.
그래도 모친의 병으로 인해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
모친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직원.
그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해 줘야지.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 뒤쪽에는 정하니가 서 있다가 인사를 한다.
“하니 씨 어서 와요.”
“어, 두 분 아는 사이?”
“네.”
“나는 신정현 씨라고 부르면서 하니 씨라니, 이거 무척이나 수상한데?”
수상하긴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하니 씨 여기서 식사할래요?”
“아뇨, 인사만 드리려구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나도 고마워요.”
대답을 하는데, 정하니의 얼굴이 다가왔다.
아니, 얘는 지난번에도 놀라게 하더니.
“제 이름은 이진, 정이진입니다.”
“아, 이진 씨.”
“네, 하니는 거기에서만 쓰는 이름이에요.”
정이진은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갔다.
태영은 식사 시간 내내 수십 명의 인사를 받았다.
식사를 했는지, 밥상 구경을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직원들은 식사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매와 관련한 모든 것은 누나의 회사 이름으로 하게 될 테니, 누나가 무척이나 바빠질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서 이미 직원 충원은 하고 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