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51
096. 레피우스
“그럼 서영이와 태영이 정해라. 나머지는 현베스트에서 할 테니까.”
“저는 10%.”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누나가 바로 대답했다.
“저는 20%, 그리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태영의 말에 아버지가 물었다.
“네, 제 연구실로 300평방미터 정도, 직원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위치로 주시면 좋겠습니다.”
“넓네?”
“그 정도는 있어야 해요. 연구실은 클린 룸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 화장실은?”
“간이 침실하고 화장실도 따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도록?”
“네.”
“거기서 뭘 만들려고 하는구나?”
“네, 시작은 그렇구요, 거기 부지가 넓으니까 숲속에 별도의 연구동도 하나 신축해 주세요.”
“음, 그리하마. 내부 공사는?”
“내부 공사와 설비 들이는 것은 제가 다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레피우스가 비록 지금은 CMO에 목을 매는 바이오 기업이지만, 네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데?”
“CMO가 뭘 말하는데요?”
누나의 질문이다.
“위탁 생산,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아버지가 바로 대답했다.
사실상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법인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과 유사하다.
일반 제조 분야에서는 OEM으로 부르고, 제약 분야에서는 CMO라고 명칭을 달리하는 것 같다.
“제가 IT 쪽을 전공해서 앳윌플레이를 만들었나요, 뭐.”
“그렇네. 앳윌플레이나 어피션도 네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지.”
“참 신기해.”
누나는 태영에게 눈을 맞추며 웃었다.
“좋아, 백 평. 내부 집기와 집기 예산은?”
“그건 제가 모두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아버지와의 합의는 그 정도면 된다.
“그럼, 남은 45%는 현베스트에서 31%, 내가 개인으로 14%로 하지.”
“현베스트에서는 경영 간섭 없는 거지?”
현베스트, 어머니, 누나, 이렇게 힘을 합치면 55%가 된다.
그것 때문에 장난처럼 하는 말이다.
“그럼요, 제가 바이오 분야를 뭘 안다구요. 걱정되면 의결권 위임장 써 드릴게요.”
“우리도 황금주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버지의 중얼거리는 말씀이다.
태영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첫 번째가 신정현 모친의 병을 낮게 해 줄 약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태영아.”
“네, 아버지.”
아버지의 부름에 대답하며 돌아보았다.
바이호르미어 주사 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직은 느끼지 못하신 듯하다.
“네가 만드는 제품 말이다.”
“네.”
“그 원리를 조금만 말해 줄 수 있니?”
“그러죠, 뭐.”
회사에서도 간부들에게 개략적인 것을 말해 주었다.
김성태 전무의 요청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보안 유지에 대한 다짐을 두 번이나 하고, 베갯머리에서도 말하면 안 되는 것으로 말해 두었지만, 글쎄.
“오, 그래?”
“네, 어차피 일부만 말씀드리겠지만, 외부의 그 누구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아버지는 바이오 분야에 계셨으니 들어 본 용어일 수 있습니다. 원소 매핑이라고.”
“원소 매핑?”
이 시대를 기준으로 가장 근접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태영이 물리 화학 분야를 공부하지 않았으니 정확히 맞는 용어인지는 모른다.
“네, 이건 물리 화학 분야이니까, 절 찾아왔던 나사를 비롯해서 입자 물리 연구소, 응용 물리 연구소, 그리고 고분자 연구소 같은 곳에서 원소 매핑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네, 저는 이미 구현했다는 거죠.”
“그…… 왜?”
“왜 밝히지 않느냐구요?”
“그래.”
“그걸 밝히면, 제가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과 기업에게 시달릴 텐데, 제명에 살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네.”
“그리고 각종 학회나 정부 연구소, 첨단 연구 기관 같은 곳에 불려 다니기 바쁠 텐데, 일은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맞네.”
아버지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바빠서 못 간다고 하면, 안 온다고 지랄할 것이고…….”
지랄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을 살폈지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다.
“세계적으로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술 공개는 당연히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정부는 정부대로 국가의 발전을 위해 기술 제공을 해 달라는 요구를 할 것이고…….”
일부러 한 부분마다 말을 잠시 중단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안 해 주면 인류의 역적으로 몰아갈 것이고, 정부는 언론을 앞세워서 나라를 위하지 않는 이기주의라고 몰고 갈 것입니다.”
“……그래.”
“언론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마구 휘갈겨 쓸 것입니다. 그런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밝힐 수 있겠습니까?”
“…….”
“…….”
“…….”
태영의 말이 실로 공감이 되는지 아버지부터 어머니와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세계 각국에서 대놓고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술지 게재나 논문으로 게재하는 형식을 요구하게 될지 모른다.
안 봐도 뻔하다.
세계의 석학들은 학술지에 게재해서 명성이 높아지는 것이 좋겠지만, 태영은 아니다.
“저 혼자 돌아왔다고, 저를 마치 동료들의 목숨을 대가로 살아온 것처럼 떠들었던 언론들의 행패를 보십시오. 그들이 저를 그냥 두겠습니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나갔다.
“……그래.”
“정부의 관료들이나 세계적인 기구들의 자기 이기주로 자신이 거기에 뭔가를 했다면서 숟가락 얹어 보겠다고 달려들 것도 눈에 뻔히 보입니다.”
“…….”
“저와 함께 사라져 버린 군인들, 그들의 가족들에게 정부에서 어떻게 대했는지 보십시오.”
“그래…… 네 심정 알 것…… 같다.”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것은 아무도 베껴 가지 못합니다. 제가 주지 않으면.”
“납치나 그런…… 것은…… 혹시?”
그 와중에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한마디가 나왔다.
“뭐?”
“……그?”
괜히 납치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와 누나의 표정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
태영이 가진 첨단 기술을 탐내서 납치해 갈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누구도 저를 어찌 못 합니다.”
“……그래. 진짜지?”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히 한마디 던졌던 아버지의 뻘쭘한 표정.
여전히 걱정되는 어머니의 표정.
누나는 어깨를 살짝 올렸다.
“그럼요.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좋다, 네가 그리 말하니까 믿으마.”
잠시의 소강상태.
다들 이 걱정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럼, 네가 만드는 건?”
소강상태의 끝을 알리듯 아버지가 물었다.
“터니테크가 만드는 제품은 모두 말씀드린 원소 매핑 기술이 적용된 것입니다.”
“하…….”
어머니와 누나는 원소 매핑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약간은 멀뚱한 표정이다.
“정말 실현이…… 가능한 것이었구나.”
“네.”
“뭔데? 왜 그래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놀라는 표정과 말이 띄엄띄엄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물었다.
“그…… 그럼 장비가?”
“네, 나노 기술 원소 매핑을 하는 프린터로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3D 프린터 비슷한?”
“네, 아버지.”
“프린터로 출력해서…… 그 제품을 만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정말?”
“그러니까 평소에 제가 묻지 말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믿을 수 없으실 테니까.”
“하……하…….”
아버지는 한참 동안 헛웃음으로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대신 표현했다.
“비밀이…… 아니, 더 이상 묻지 않으마.”
“네.”
“당신도, 서영이도 태영이의 일에 대해서 궁금해해지 마.”
아버지는 괜히 어머니와 누나를 윽박질렀다.
물론 계면쩍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은 어머니도 누나도 안다.
“당신이 궁금해했지, 난 무슨 말인지 의미도 몰라요.”
“저두요.”
어머니의 말에 누나도 장단을 맞추었다.
“자,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우리만 윽박지르지 말고, 저녁 식사나 하러 가요.”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가 일어섰고, 곧 뒤따라 모두 일어섰다.
“미래철강.”
자리에서 일어서던 어머니가 불쑥 회사 이름을 말했다.
“네.”
“그 특허도 지금 네가 말한 것과 연관이 있니?”
“네, 어머니.”
“네가 그 계약하고 언론에 나온 지 아직 1주일 되지 않았는데, 그 주식이 몇 배 올랐다.”
“그래서 철강 회사들이 저를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단지 전화를 받지 않을 뿐이다.
“혹시 박유진 씨는 그 뒤에 연락 있었습니까?”
“다행스럽게 아직은 없다.”
박유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아버지와 누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도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찾아오겠다던 박유진의 남편 강창석이 오지 않은 것이 조금은 의외다.
***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수요일 오전.
윤종규 전무가 누군가를 앞세우고 터니테크의 대회의실로 들어섰다.
앞선 사람이 회의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포스로 인해 제법 넓은 회의실이 꽉 차는 듯하다.
뒤이어 들어온 윤종규를 뒤따라 들어오는 세 사람이 있다.
“김희종이오.”
주변을 압도하는 포스.
강력한 카리스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웃음기 하나 없는 건조한 얼굴로 태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태영입니다.”
옆에 영업을 담당하는 정우찬 부장이 서 있지만, 눈길만 한번 주고는 자리에 털썩 앉는다.
명함도 주지 않았다.
뭐가 저리 기분 나쁜지 티를 팍팍 낸다.
물론 터니테크를 사준전자 같은 회사의 사옥이나 회의실에 비할 수 없다.
터니테크의 사무실과 회의실은 빈민가의 움막 수준일 테니.
[김희종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쥐방울만 한 회사에 사장이랍시고 아직도 대학생인 어린애 하나를 컨트롤 못 해서 내가 꼭 여기까지 와야 해?’라며 윤종규를 강하게 질책했습니다.]저들이 올 때 위니가 설명해 주었던 상황이 잠시 떠올랐다.
쥐방울만 한 회사.
어린애.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방문한 이상 회의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민규인이라고 합니다.”
김희종의 뒤에 섰던 사람이다.
명함에는 상무 직함이 쓰여 있다.
태영은 이미 이름을 말했으니 더 말할 필요 없이 악수만 했다.
“정선호입니다.”
“서진근입니다.”
명함을 보니 정선호는 부장, 서진근은 수석 연구원이다.
김희종은 명함을 주지 않았다.
이런 경우, ‘너는 내 명함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의미다.
상관없이 모두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김희종은 태영이 내미는 명함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힐끗 쳐다본 뒤에 관심 없다는 표정이다.
태영은 두 사람의 중간 지점에 명함을 내려놓았다.
“정우찬입니다.”
정우찬 부장이 모두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김희종은 정우찬이 건네주는 명함 역시 받지 않았다.
정우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하다.
태영이 하듯 김희종의 앞, 태영의 명함 옆에 자신의 명함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래, 날 보자 했다고?”
김희종이 태영을 빤히 보며 물었다.
“보자고 한 적 없는데요?”
대답을 하며, 두 장의 명함을 당겨 왔다.
정우찬 부장의 명함을 정우찬에게 주고 태영의 명함은 명함 지갑에 넣었다.
꿈틀.
눈가와 입가의 근육이 살짝 꿈틀거렸다.
사준전자는 큰 조직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열정과 노력으로 세계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해서 세계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거대 기업.
그런 기업이다.
그런 조직에서 여럿이 있지만, 사장이라는 직책.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좁쌀보다 작은 회사.
나타난 줄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신경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회사가 제품 한 종류를 내놓았다.
문제는, 그것이 자신들의 관련 제품군 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해 오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경쟁 가능한 제품을 재빨리 만든 후, 회사의 명성과 압도적인 마케팅 능력으로 누르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문제는 전략 분석실에서 나온 보고서다.
동일한 성능이 아니라 비슷한 제품도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했다.
만일 다른 분야에 요 좁쌀이 뛰어드는 순간.
1년 이내에 그 분야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왔다.
납품을 받아 줄까, 아니면 회사를 인수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뭐?
“무슨 소리요?”
김희종이 윤종규 전무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
“난, 갈 시간이 없으니 제휴가 되었건, 협업이 되었건 하고자 하면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오라고 한 적은 있습니다만.”
태영이 윤종규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며 대신 대답했다.
“그게 뭐가 다른가?”
계속 반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오늘만 참기로 했다.
그러니까 네가 결정권자이면 네가 와서 결정하고 가라 그 말이다.
이 사람이 말귀가 어두운 모양이다.
“기분까지 상해 가면서 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도 아쉬운 것 없구요. 그러니 기분이 나쁘면 지금 가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약이 오르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
~웅~
김희종이 뭐라고 하려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새 전화기가 진동했다.
(최 사장, 10분쯤 늦을 것 같아. 미안.)
그렇지 않아도 신윤희 부사장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다.
“신윤희 부사장 일행은 10분쯤 후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윤종규 전무를 향해 말했다.
사준전자에서 온 사람 중에 김희종이 가장 고위직이다.
그를 향해서 말해야 맞지만, 무시해 주기로 했다.
“기다리지.”
답은 김희종이 했다.
콧김이 테이블 건너 태영에게 올 것같이 씩씩거리면서도 더 이상은 말을 안 한다.
침묵이 이어졌다.
태영도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고.
~막아? 막을 거야?~
신윤희 부사장 일행이 도착할 때가 되어 가는데, 바깥에서 소란이 있었다.
그 소란은 고함으로 시작되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