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56
101. 해결사의 승부수(3)
비명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발목 부위에서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와 인조 대리석 위를 흐르는 것이 보였다.
~웅~
이진기의 전화다.
“도착했습니까?”
[네, 사장님, 제왕빌딩 인근입니다.]“대기하고 있다가 두 다리에 깁스하고 목발을 짚은 자가 나오면 사진과 얼굴 대조하고 태워요.”
[네, 알겠습니다.]그때다.
~으아아아아~
로비에 쓰러진 자 중에 한 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기절시켰지만,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고통에 깨어난 모양이다.
~덜컥~타다닥~
[상어 맞은편 방에 있던 자들입니다.]문 열고 무력화시킬 터였는데, 나와 주었으니 잘 되었다.
“어떤 놈이야, 나와. 으윽.”
[무력화 완료했습니다.]둘이 로비로 뛰쳐나가 소리를 질렀지만, 둘 모두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상어 방, 자물쇠 부수고 문을 두드려 줘.”
[넵, 마스터.]사프캣을 통해서 대화를 하면 아주 쉽지만, 사프캣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다 보니,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연락을 하려면 이게 문제다.
~툭툭툭~삐걱~
자물쇠를 자르고 문을 반쯤 밀어 열었다.
불이 꺼진 안쪽의 의자에 상어가 앉아 있고, 문으로 시선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상어가 중얼거리는 소리다.
어렵게 몸을 일으켜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문 쪽으로 왔다.
그러곤 이미 반쯤 열린 문을 당겨 열었다.
복도를 통해 로비 쪽을 둘러보았다.
상어의 눈에 TV 화면에 나타난 글씨가 보였다.
[감사합니다.]상어가 작은 말로 감사를 표했다.
두 팔 아래 목발을 제대로 끼우고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동을 지시하는 TV 화면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야제의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기절? 깨어날까?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문을 열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는 층이니 어쩔 수 없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다.
그래도 상어는 28층을 지나 27층으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왜 또 내려가지? 설마 계단으로 계속 내려갈 생각인가?”
상어가 갇혀 있던 곳은 29층이다.
저 속도로 앞으로 남은 27개 층을 내려가려면 하루 종일 걸린다.
사프캣을 통해 물어볼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에이, 왜…….”
몸을 비틀고 있는데, 27층의 복도로 가는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작은 공간이 있고, 다시 문이 하나 보였다.
빌딩의 구조상 대부분 이런 형태다.
다시 문 하나를 열고 나간다.
한쪽은 창, 반대쪽은 엘리베이터 룸이 보였다.
다섯 대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27층에 정지해 있던 엘리베이터 하나의 문이 곧바로 열렸다.
27층부터 18층까지의 버튼, 그리고 1층과 지하 1층 버튼이 있다.
운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위니, 중간에 서지 않고 직행 처리해 줘.”
상어가 1층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고 위니를 불렀다.
[네, 마스터.]“다른 엘리베이터 모두 지하로 보내고.”
상어가 사라진 것을 알아도 계단으로 달려야 한다.
그래서는 상어를 잡지 못한다.
1층.
상어가 역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중앙 현관을 벗어났다.
도승준이 나오는 것을 본 보안 경호팀이 차 문을 열고 태웠다.
“이제 된 거지.”
서랍 속에 넣어 둔, 천으로 된 작은 가방 한 개를 챙겨 들고 회의실로 갔다.
염기선은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다.
“염기선.”
“네, 넵.”
얘는 아직도 떨고 있다.
“상어는 구했는데.”
“합, 가 감사합니다.”
태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인사를 한다.
“상어의 아들을 구해 오면, 그 차로 너도 같이 가도록 해. 그리고 이걸로 당분간 생활비 쓰고.”
그러면서 천 가방을 염기선의 앞으로 던졌다.
“네?”
“그날 너희들에게서 빼앗은 돈이야.”
“넵. 가, 감사합니다.”
“거기 가거든 당분간 밖으로 나가지 말고, 식사는 모두 배달 음식으로만 먹도록. 그리고 외부로 통화하면 안 돼. 알았지?”
“넵,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감사,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 후, 도하일과 그의 엄마를 구한 2팀에게 연락이 왔다.
이곳으로 와서 염기선을 함께 태워서 데려가라고 시켰다.
***
“오빠.”
“아빠.”
거실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상어.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 아내와 아들이 들어왔다.
도승준의 눈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염기선이 그 뒤에 서 있었다.
잘했다, 염기선.
“으흐으으윽.”
“아빠, 으아아앙.”
상어는 아내와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울음을 토해 냈다.
“으흐윽, 미안, 미안해 은이야.”
***
왁자지껄한 자리.
방학을 맞아 이제 학교에는 가지 않는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청림아, 상규야. 출소를 축하한다.”
어떤 친구 한 명이 꼭 저따위 말을 한다.
대체 군에서 전역한 복학생들에게 출소라는 말을 쓴 자들은 누구일까?
최초 발언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옆에 있으면 귀싸대기를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고 전역했는데 출소라니.
태영이 외형상으로 보이는 모습은 이들과 다름없다.
13세기 고려에서 8년을 살았고, 28세기에서 19년을 살다 왔다.
태영의 사고는 이들과는 제법 다르다.
그러다 보니 그 말에 거부감이 가슴속에서 밀려 올라왔다.
“야, 너 미필자지?”
누군가의 목소리다.
“야, 씨 왜? 나도 사회 복무 요원으로 마쳤잖아?”
“그게 군대야? 현역 안 갔다 왔으면 입 털지 마라. 쪽팔린다.”
이곳저곳에서 중구난방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그런 소란을 뒤로하고 고청림을 바라보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이다.
방금 그 말을 한 동기와 친분이 있었던가?
태영과는 학교에서 종종 보기는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챠악~
“그렇게 형무소에 가고 싶어?”
고청림이 손으로 스치듯 그의 뒤통수를 날려 줬다.
“아야.”
태영이 보기에 머리카락 날리는 정도였다.
몸에 손이 닿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그래, 네 출소를 축하해 주려면, 너는 형무소를 보내 주는 것이 맞네.”
태영이 한마디 얹어 주었다.
{씨발놈.}
그는 태영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알게 모르게 태영은 학교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저 정도의 반응만 보이는 것이다.
“청림아, 상규야. 전역을 축하한다. 한잔들 하자.”
태영이 잔을 들었고 다른 친구들도 잔을 들었다.
“난 담배 한 대 하고 올게.”
임상규가 한잔을 쭉 들이켠 후, 태영의 어깨를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못 끊었냐?”
식당 문을 나서며 물었다.
“안 끊은 거다. 끊고 싶지도 않고.”
“가능하면 끊지?”
“야, 씨, 너는 입대 전에는 담배 살 돈이 없어서 못 피운다고 했는데, 이제 돈 때문에 못 피우는 건 아니지?”
“그래, 지금은 그런 걱정 없지.”
“다행이다. 부대에서 뉴스 보고 진짜 많아 놀랐었는데.”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박준혁이 나왔다.
“준혁이도 담배?”
임상규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다가 박준혁을 발견하고 물었다.
“아니, 찬 바람 좀 쐬려고. 상규야, 복학할 때까지 뭐 할 거야?”
“일이 좀 있다. 그 일 해결되면 아르바이트 자리 알아봐야지.”
“알바는 태영에게 부탁해.”
“태영이? 회사 차린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르바이트생도 써?”
“그럼, 준혁이도 거기서 알바 해.”
“와, 최태영 출세했네. 그런데 학교는 왜 다녀?”
“그래도 다녀야지.”
“알바 들어가면 그때부터 태영아 하고 부르면 안 돼. 알지?”
박준혁이 단속을 한다.
“그럼?”
“사장님 하고 불러야지.”
“하, 그게 그리되네.”
***
도승준은 아들을 재워 놓고 임은이를 안아 들었다.
잠시 움직였다고 몹시도 힘들어하는 아내.
“오빠…… 힘들지 않아?”
“그래도 은이는 내가 안고 갈 수 있어.”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다.
억지로 힘을 내어 힘겹게 발을 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포근해.”
“그래.”
이 집은 마치 자신들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모든 가구와 이부자리가 새것이다.
깨끗하고, 따뜻하고, 포근하다.
언제 이런 집에 살아 본 적이 있던가?
“내…… 내가 하일이 어른 되는 거 보고 떠나야 하는데…….”
임은이는 도승준의 손을 꼭 잡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은이야.”
“어떻게 해? 오빠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서?”
“내가 저놈 잘 키워서, 꼭 제 애비에게 돌려보내 줄게. 그러니 은이는 걱정하지 마.”
“아…… 아니야. 그러면 안 돼. 하일이는 끝까지 오빠 아들로 살아야 해.”
“나 같은 건달의 아들로 사는 것보다는, 못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판사 명함을 가진 친부에게 가는 것이 낫지.”
“그래도…….”
“내가 비록 남들에게 주먹질이나 하고 다니는 놈이지만, 그래도 내 곁에 은이 네가 있어 줘서 사람이 되어 보려고 애를 많이 썼어.”
“야제의 그늘을 어찌 벗어나? 거기를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는 걸 나도, 오빠도 잘 알잖아? 그런데…….”
“……?”
“이번 일 실패하고, 오빠가 이제 끝이라고 했잖아?”
“…….”
“기선이가 옆에 사람들 눈치 보느라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는데, 오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실패했던, 그 표적이 우리를 살려 줬어.”
“그…… 그게 진짜야?”
“그래, 맞아. 그리고 야제에게서 나와 은이를 구해 준 사람도 그 사람이야.”
“그럼 혹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래, 그래…… 다행이다.”
“그래서 은이가 죽으면 안 돼, 꼭 살아 줘야 해. 알았지?”
위니가 연결해 준 영상 속의 대화.
태영은 상어 도승준과 그 아내 임은이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상규가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임상규는 고민이 많은 친구다.
현실적으로는 2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태영이 긴 시간을 돌아왔기에 기억이 희미하다.
박준혁을 통하면 임상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다.
둘은 무척이나 친했으니까.
천천히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에 나온 아들 도하일.
임은이의 아들은 맞는데 도승준의 아들이 아니라고?
친부가 판사라고?
‘상어, 깡패의 순정이야 뭐야?’
세상에 깡패에게 순정이 어디 있어?
영화에 등장하는 주먹들의 의리 이야기?
모두가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일 뿐이다.
그놈들은 진짜 악당들이다.
당장 야제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승준에게 자료를 받은 대가로 임은이를 살리기로 했지만, 애가 곁에 있으면 어려움이 많다.
친부가 있으니 친부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
***
“헉, 누…… 누구……?”
방문을 열고 나오던 임은이가 깜짝 놀란다.
새벽에 도승준의 가족이 잠든 집의 문을 열고 2층의 거실로 들어갔다.
도승준은 거실 소파에서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임은이가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온 모양이다.
임은이는 너무 놀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통제 효과가 떨어져 갈 때쯤 찾아오는 지독한 통증.
그래서 잠에서 깨어났다.
약을 먹으려면 물이 필요해서 거실로 가는 길이다.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둠 속.
창을 통해 들어온 희미한 달빛에 보이는 거실의 소파에 남편은 잠들어 있다.
그 옆 소파에 검은 모습의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도둑은 아니니 안심해도 됩니다.”
“그럼, 누…….”
“도승준을 만나러 온 사람.”
“…….”
이해를 못 하겠지.
“이 집을 제공해 준 사람.”
“아…… 남편을 구해 주신…… 감사합니다.”
태영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임은이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앉으세요.”
태영의 말에 임은이가 앉는 것을 보고, 일어서서 거실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팟~
어둠에서 순간적으로 환하게 밝아진 거실.
밝아진 빛으로 인해 잠시 눈을 가렸다가 떴다.
선글라스에 짙은 갈색의 뉴스보이 모자를 쓴 사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젊다.
눈이 가려져 있지만, 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문 비밀번호를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관 비밀번호는 분명히 바꿨다.
각 창문의 문단속은 빠짐없이 했다.
겨울이어서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통해서 추위가 밀려든다.
그래서 빠짐없이 확인했고, 밖에서 꼬챙이 같은 것으로 결코 열 수 없는 구조다.
1층 창문?
염기선이 1층에 머무르고 있다.
그쪽은 모두 확인했다고 한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혹시 열어 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1층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혀 없다.
“도승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집주인이라고 한 사람이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마치 아랫사람 부르듯.
“도승준, 일어나 봐.”
그사람이 깁스를 한 남편의 다리를 툭 치며 다시 불렀다.
남편과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그가 어떤 짓을 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으음, 악. 헉.”
다리의 통증 때문인지, 남편은 쉽게 일어났다.
비명을 지르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잠 좀 깨지.”
“네, 깼습니다. 잠시 정신 좀 차리겠습니다.”
남편이 고개를 흔들며 빨리 정신이 들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
그 사람이 훨씬 젊어 보이는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남편은 깍듯한 존댓말이다.
약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을 구해 주고, 자신도 구해 주며, 집도 제공해 주었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뭔가 모르게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은 예기가 온몸에서 차르르 흘러나왔다.
세상에, 저런 사람을 건드렸다고?
미쳤지.
“말해 봐.”
“네, 네?”
“말 할 것 없어?”
“아…….”
“…….”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왔다.
“병원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다고 합니까?”
“네?”
아니, 뭐 이렇게 비정한 질문을 갑자기?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