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57
102. 자랑해도 된다
저 사람은 자신이 재발한 말기 암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대체 어떻게 안 거지?
“3개월?”
어떻게 알았는지를 궁금해하는데, 남은 생존 기간을 물어온다.
잔인한 사람 같으니.
“네? 네.”
그냥 나온 대답이다.
자신의 암 치료를 하느라 남편이 조금 모아 둔 재산은 모조리 날렸다.
그래도 자신이 나았다고 좋아했던 남편.
그것이 1년 6개월 전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부터 밀려오는 통증.
참고 또 참다가 얼마 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암이 재발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때 의사가 말했던 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최대 6개월이라고 했다.
그게 최대라면, 최소는?
처음, 치료를 받았을 때.
의사가 암은 재발할 위험이 높다고 했다.
관리를 잘 해주고 수시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재발하면 치료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재발하면 죽는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검사를 자주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남편에게 돌아갔다.
“말해 봐.”
뜻 모를 질문이 나왔다.
남편에게 무엇을 말하라는 걸까?
자신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하듯, 남편에게도 잔인한 질문일까?
“……그날, 느낀 것 때문에…… 그것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고…….”
“했고?”
다행히 잔인한 질문은 아닌가 보다.
“그걸 풀기만 하면, 아내의 남은 생을 제가 함께할 수 있으리라 생각 했습니다.”
“염기선을 보낸 이유가?”
“…네, 그렇습니다. 설사 잘못되어 제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어쩌면 하일이는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일이가 네 아들이 아니라면서?”
“헉, 그…… 그걸 어떻게?”
“왜 아들을 구하려 한 것인데?”
“……아내의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임은이의 가슴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가슴으로 올라오는 뜨거움은 곧바로 눈물이 되었다.
“아내의 아이이기 때문이라…… 그 이야기를 해 봐.”
‘저 사람은 왜 저리 잔인할까?’
그 아픈 이야기를 왜 하라고 하는 것일까?
저 사람이 얻는 것은 무엇이길래, 그 처절하도록 아픈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것일까?
그가 조용하게 내뱉는 ‘그 이야기를 해 봐’라는 말.
절대로 거역할 수 없을 것 같다.
남편은 긴 한숨을 쉬고 자신에게 시선을 주었다.
고개를 끄덕.
해도 되냐?
해야겠지?
하고 물어보는 것 같다.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띠링~
(내일, 알지?)
이한봄이 보낸 톡이다.
“내일 저녁이 약속인데 오늘부터 확인하네.”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놈, 예약되었어?”
위니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네, 이남욱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습니다.]“상간여와 떠나는 크리스마스 여행이라니.”
이건 안재희와 관련된 일이다.
이남욱이 상간여와 크리스마스에 맞춰 여행을 간다.
~띠링~
(꼭 나와야 한다. 반드시, 꼭)
다시 이한봄에게 톡이 날아왔다.
이한봄으로부터 왔던 수많은 전화와 톡들.
횟수는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다.
티베트로 가기 위해 중국 성도에 있을 때 톡이 온 후, 한동안 뜸했었다.
그때 10일 걸릴 거라고 했으니까.
10일이 지난 후, 거의 매일같이 톡이 왔다.
그렇지만 티베트를 다녀온 후엔 일이 많았다.
이한봄의 톡에 답해 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제 온 톡.
(새봄이가 너 때문에 상사병이 걸렸다.)
(약이 소용없다.)
(이대로 두면 우리 봄이 죽는다.)
답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마지막 한 줄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정말 마지막 줄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상사병의 대상을 만나지 못한다고 죽기야 하겠어?”
이새봄의 행동에 이런 전조는 있었다.
지난번, 회사를 다녀간 이후 톡이 자주 왔다.
태영이 답을 한 적은 없다.
지난번에 이한봄을 보면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 때문이다.
‘흔들리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걸려 오는 전화 역시 받지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 약속을 몇 번이나 확인한다.
“아니, 일방적으로 제가 날 좋아하다가 얻은 병인데,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위니, 정말 상사병에는 약이 없어?”
[상사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약을 먹는다고 마음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이해는 된다.
“일단, 이즈음에 이남욱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안재희에게 알리는 것이 좋은데, 문제는 안재희가 동의할까?”
[평소에 보아온 마스터의 행동 방식과 다르십니다.]이남욱은 안재희 아버지 회사의 연구소장으로 있었다.
회사의 기술을 빼돌려, 안재희 아버지를 파멸시켰다.
그 대가로 얻은 부로 자신은 풍요롭게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갑자기 돈이 많아지면 딴생각을 하게 된다.
이남욱은 이제 부가 넘친다.
그 부를 이용해서 늙어 가는 아내보다는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 여자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유재구를 조지려고 내가 꺼냈던 한마디에 죄 없이 가장 많은 피해를 봤으니까. 그 아이에게는 내가 늘 마음으로 미안해서 그래.”
[지금, 그 대가로 많은 것을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부족하다.
위니가 조사한 이남욱에 관한 내용.
이남욱은 몇 달 전부터 20대의 여자를 사귀기 시작했다.
그 20대 후반의 여자와 관계가 깊어졌다.
젊은 여자를 만나면서 늙은 아내가 싫어졌다.
그 젊은 여자와 재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위자료 없이 아내를 내쫓으려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그런데 상간녀에게는 동거남이 있지.”
[네.]상간녀는 동거남과 모의를 했다.
이남욱을 꼬셔서 크게 한탕 하자고.
동거남은 동거녀가 늙은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고 하니 기분이 아주 나쁘다.
동거녀가 한탕 할 때, 자신의 힘도 필요하다.
한탕 후에는 돈만 챙기고 동거녀를 차 버리면 된다.
동상이몽?
맞다.
그 셋은 서로 다른 꿈으로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26일. 잘 기억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새봄과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에 일단 이한봄에게 톡을 보냈다.
***
희미한 조명.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 한쪽에 앉아 있던 안재희가 몸을 일으켰다.
“…….”
말없이 폴더 인사를 한다.
역시 안재희와의 만남은 노래방이 좋다.
“야위었구나.”
노래방 안은 따뜻해서 롱 패딩을 벗어 옆에 두고 있다.
안재희의 모습이 꽤 수척하다.
안면 함몰 부위를 보았다.
남구로역 부근에 있는 우수 노래방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 검어 보인다.
당시에는 함몰 부위의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복원 수술이 가능한지 경과를 좀 봐야 한다는 것까지가 태영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함몰 부위의 주변 살갗이 당겨져 얼굴이 비틀어진 느낌이다.
눈 주위가 더욱 당겨지며 한 눈이 원래의 눈보다 더 작아졌다.
거기에 눈의 균형도 틀어졌다.
아직 아름다움이 피어나지 않았을 나이이긴 하다.
그 예쁘던 얼굴이 많이 어색하다.
한참 멋을 내고 예쁘게 보이고 싶을 나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유재구 이 개새끼.’
안재희의 얼굴에 남아 있는 함몰 흔적 때문에 잊히던 기억이 떠올라 욕이 절로 나온다.
“아닙니다. 에뒨 님. 괜찮습니다. 그리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 얘가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오빠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에뒨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지가 언제지?
요즘은 위니에게도 ‘에뒨’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본 적이 없다.
너무 딱딱하게 대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호칭 고치자.”
“네?”
이건 갑자기 어색함을 느껴서 한 즉흥적인 말이긴 하다.
그럴 필요가 있겠다 싶다.
“네가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아니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호칭을 바꾸자.”
“네, 그…… 그럼, 호, 혹시……?”
“그래.”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오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부르고 싶은 대로 호칭을 바꾸자고 해도 어투는 너무 깍듯하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하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안재희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을 때.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다.
그보다, 안재희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학교에 가면 오빠라고 부르는 후배 여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어색한 느낌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 괜찮다.”
“감사합니다, 에뒨 님.”
“둘이 있을 때도 바꾸자. 내가 부담스럽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오…… 흐읍.”
끝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숨을 훅 들이쉰다.
“죄, 죄송합니다.”
안재희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완전히 달라서 그런가?
여전히 태영을 어려워한다.
이걸 어떻게 풀어 줄까?
“괜찮다. 차차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SAT가 어떻게 되었다고?”
어제, 오늘의 이 만남을 위해 톡을 보냈을 때, 약속을 정한 후 SAT 시험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SAT Test 1595점, Subject Test 796점 받았습니다.”
“그래?”
SAT 점수 제도에 대해 미리 확인해 두었다.
그래서 안재희가 받은 저 점수가 얼마나 대단한 점수인지 안다.
태영이 안재희와 노래방에서 만났던 때가 8월이었다.
SAT 점수는 시험을 치르고 2주나 3주 뒤에 나온다.
12월 시험이라고 했다.
시험 준비를 한 시간이 겨우 4개월 정도다.
대체 얼마나 독하게 공부했으면, 4개월 만에 저 정도 점수를 받아?
진짜 머리가 좋기는 좋은 건가?
“네.”
웃지 않는 표정으로 짧게 대답한다.
“검정고시는?”
“검정고시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2회 있습니다. 내년 2월에 공고하는 시험을 치를 예정입니다.”
1년에 2회라.
그럼, 검정고시는 일정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일정이 어찌 되는데?”
“내년 2월에 공고하는 시험은 3월에 치르고, 6월 초에 공고하는 시험은 8월에 치릅니다.”
그럼, 올해 하반기는 일정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
시험을 치를 수만 있었다면, 검정고시도 통과했을 수 있다.
“혹시 토플이나 토익 시험도 쳤어?”
그사이에 그것까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물었다.
“토플 원 플러스 등급, 토익도 원 플러스 등급입니다.”
원 플러스이면 최상위 등급이다.
“혹시 만점?”
깜짝 놀랐지만, 내색은 않고 물었다.
“토익과 토플에서 각각 한 개를…….”
허, 세상에 한 개 틀렸다고 오히려 잘못했다는 듯이 말하는 저 태도는 뭐야?
“그 정도 했으면 자랑해도 된다.”
“가,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잘하겠습니다.”
고1 때 전국 모의고사에서 만점 받은 5명 중에 한 명.
저 정도면 천재 맞다.
안재희의 대답을 듣던 중에 갑자기 생각났다.
오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부담을 풀어 줄 방법이다.
“……그래, 그럼 이리 와. 한번 안아 보자.”
“……네?”
안아 보자는 말에 놀라는 모습이라니.
하긴, 안아 보자는 말이 여러 의미가 있기는 하다.
태영이 안재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안재희가 놀란 모습으로 벌떡 일어섰다.
태영은 어깨를 당겨 안재희를 가슴에 안았다.
“열심히 했구나, 애썼다.”
등을 툭툭 몇 번 두드리며, 어른 말투를 흉내 내어 칭찬을 했다.
“으흐으으읍.”
그 말이 트리거였을까?
아니면 안아 준 것이 트리거였을까?
태영의 팔 아래로 자신의 두 팔을 끼워 등 뒤로 돌려 힘껏 당겨 안았다.
“으으으읍, 으아아앙.”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깨를 떨고, 가슴을 떨고, 온몸을 떨었다.
거친 숨을 진정시킬 생각도 하지 않고 통곡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눈물과 콧물로 가슴 부위가 축축해져 왔다.
그냥 그대로 두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안재희는 그렇게 태영의 품에 안겨, 아니 태영을 끌어안고 그간에 쌓인 서러움을 모두 토해 내듯 오래오래 울었다.
“이제 오빠라고 부를 수 있겠어?”
어깨는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 조용히 물었다.
“……네, 오…… 오빠.”
“그래, 그럼 되었다.”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통에서 휴지를 여러 장 뽑아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괘, 괜찮습니다. 제가…….”
“내가 닦아 주고 싶어서. 여동생이 생긴 기념으로.”
“훗.”
어이없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처럼 웃는다.
안재희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오빠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다.
이렇게 여동생이라고 선을 그어 놓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앉을래?”
“……네.”
태영이 자리로 돌아와 앉자 안재희가 태영의 옆으로 와서 앉는다.
“왜?”
“오빠 옆에 나란히 앉고 싶어서요.”
“그래, 나도 그게 좋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그리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도 나왔고 하니,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고 싶은데, 뭐든 원하는 것을 말해 봐.”
“……없습니다.”
“정말?”
“네.”
“사람이 이렇게 물으면 한두 가지 정도는 원하는 것이 있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 아니냐?”
“…….”
“……?”
“지금 저희를 보살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넘치고 넘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알아서 선물을 하나 줄 테니.”
“네?”
“연말에 엄마에게 친구들과 일출 보러 간다고 하고, 사흘쯤 시간을 뺄 수 있겠니?”
“네?”
“만들어 봐.”
“혹시, 왜…… 그러시는지…….”
“네 얼굴.”
“……?”
“선물로, 네 얼굴을 고쳐 주려고 그런다.”
“네?”
어이없는 질문으로 놀란 표시를 하며 함몰된 부위로 손이 올라갔다.
“아프지?”
함몰 부위를 살짝 눌러 보기에 물었다.
“……네 ……엄마에게 치료받으러 간다고 알…….”
안재희로서는 일반적으로 아프면 병원에 가듯,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가고 싶겠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지만.
“아니, 알리지 않는 것이 좋아. 조금 특이한 방법이어서 괜히 걱정해.”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엄마가 믿지 않으시겠지만.”
“여행을?”
“……네.”
“안 믿어도 허락을 받기만 하면 된다.”
“네, 허락은 받을 수 있습니다.”
“3일이야.”
이미 한번 했던 말이지만, 다시 말했다.
“네.”
태영은 얼렁뚱땅 설명하고, 간단하게 챙겨 올 옷가지와 준비물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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