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58
103. 유학이 어떠냐?
태영의 집에 와 있으라고 할 순 없다.
아무리 친여동생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누나조차도 바이호르미어 패치를 주사한 줄을 모르니 누나의 집으로 부를 수도 없다.
터니엔디에 근무할 직원들의 기숙사로 이용하기 위해 구입한 아파트 중에 한곳을 이용할 생각이다.
이미 구입한 아파트나 연립 주택 중에 이사를 나가서 빈집이 많다.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이틀 정도를 잠들겠지만, 깨어날 때를 제외하고도 한번은 들러서 봐주어야 한다.
고청림과 임상규의 전역 회식을 하던 날.
박준혁을 꼬셔서 백정연과 함께 여행을 가도록 해 두었다.
모친과 같이 가겠다고 하는 것을, 태영이 어머니 두 분만 갈 곳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박준혁의 어머니인 박민서 여사에게 바이호르미어 주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재희야.”
“네, 오빠.”
이젠 오빠 소리가 비교적 쉽게 나온다.
“SAT 점수가 그 정도면 국내를 고집할 필요가 없는데, 미국 유학이 어떠냐?”
“네?”
아무래도 저 애가 예상하지 않은 질문을 계속하는 모양이다.
“국내는 신학기를 봄에 시작하니까, 네가 내년 초에 검정고시에 합격을 해도 대학은 내 후년이나 될 거야. 물론 그래도 늦는 것은 아니지만.”
“네.”
“그에 반해 미국은 가을에 시작하니, 내년 가을 학기부터 가능하지.”
다만, 미국은 총기 사고가 빈발하는 나라이니 방어 문제를 해결해 주면 된다.
“……그.”
“왜? 생각 안 해 봤어?”
“……네.”
“내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시점을 계산하다 보니 생각이 그리된 거지.”
“네.”
“네 생각이 우선이니까, 혹시 생각이 있으면 알아봐. 학비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또 울려는 표정이다.
이제 우는 건 그만하자.
“말이 너무 딱딱하다. 오빠한테.”
“네, 알았어요. 오빠.”
선을 딱딱 그어서 구분을 명확히 했던 때가 8월.
그동안에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물론 톡은 했다.
오빠라 불러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고 갑자기 친숙하게 말하기는 어렵겠지.
이해한다.
“자, 그럼 그건 네가 생각해 보고. 마음의 결심이 서면 그냥 진행해 봐.”
“네.”
“그리고 정작 오늘 너와 의논하고, 동의를 구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이남욱의 처리에 대한 이야기다.
***
태영은 오영배가 보내 준 차에서 내려 클럽 하우스로 들어갔다.
겨울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제법 춥다.
그래서인지, 클럽 하우스 내에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에이, 무슨 한겨울에 골프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카운터로 갔다.
예약자의 이름을 대자, 그때부터 안내인이 거의 달라붙다시피 한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2층의 식당으로 올라갔다.
오영배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 앉아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의 테이블이 비어 있는데, 몇 곳의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다.
이 겨울에 골프를 치러 오다니, 미친 인간은 오영배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태영이 테이블로 다가가거나 말거나 오영배는 시선도 주지 않고 반찬을 입으로 넣고 있다.
옆에 있는 두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멀뚱멀뚱한 얼굴이다.
“이 추운 날에 골프라니, 미친 거지?”
오영배 맞은편 의자를 당겨 털썩 앉으며 툭 던졌다.
“말을 조심해 주지?”
오영배의 옆에 앉은 50대 후반의 남자가 태영의 말투를 지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오영배의 또 다른 옆자리 사람이 콧김을 뿜어낸다.
“원님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이방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 하고 끼어든다니까, 오영배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뭐?”
굳이 주위를 쳐다보지 않았다.
너희들을 두고 하는 말이야, 하는 사인을 주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하는 말인 것을 알 거다.
부르르 떠는 것이 바로 전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오영배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억지웃음을 웃고 있다.
같이 화를 낼까?
아니면 모르는 체하고 조금 더 두고 볼까?
그것도 아니면, 저 둘의 입을 막을까?
분명 세 번째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숟가락으로 국그릇을 ‘땡’ 소리가 나게 쳤다.
“내 손님이야.”
거참, 적절한 표현이다.
그래, 네가 초대했으니 네 손님이 맞지.
두 사람이 깨갱하는 느낌이 살짝 와 닿는다.
“아침은?”
태영을 보고 물었다.
“나는 먹고 왔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그린이 얼어 있어서 티업을 1시간 늦췄다.”
“대충 둘러보니 사람도 별로 없고, 상관없겠네. 난 4시 이전에 나가야 한다.”
“왜?”
“저녁 약속이 있거든.”
‘이새……봄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데.’
이 한봄이 장난을 쳤을지라도 거긴 가야 해.
“무슨 소리야? 나하고 저녁 먹고 화끈한 데 가서 술도 같이 한잔해야지.”
“저녁 약속까지 한 기억은 없는데?”
“뭐?”
“왜? 아니야?”
“미뤄.”
“미룰 수 없는 약속이야.”
“야, 씨바.”
“종종 내게 욕하는데, 나하고 욕 배틀 한번 해 볼래?”
“젊은 놈이 한참 어른에게 정말 계속 그럴…….”
오영배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계속해서 콧김을 불어 대던 한 명.
제법 들리게 중얼중얼한다.
태영이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입 모양으로 ‘씨바 새끼, 뭐?’ 하고 묻는다.
죽으려고 애 많이 쓴다.
태영은 씨익 웃으며 목을 긋는 시늉을 한번 해 보였다.
그러자 그자는 화를 참을 수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가 버렸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머리 올리고, 오늘 필드에 두 번째 온 사람에게 내기해서 벗겨 먹을 생각은 아니지?”
대화를 돌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내기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이놈들 비상금 주머니를 탈탈 털어 줘야지.
비기면 무조건 배판이라고 했지?
아웃코스를 모두 비기면 어찌 되나?
첫 홀에서 비기면 2홀에서 2배, 그다음 4배, 8배, 16배, 32배, 64배…… 7홀에서 벌써 64배나 되니, 상상만 해도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돈 많이 준비해 오라고 했잖아? 너 많이 번다며?”
오영배는 특유의 거들먹거림과 제스처까지 한다.
“그게 이런 곳에서 잃어 주려고 버는 돈이 아니거든.”
“초짜는 돈이 숭숭 나가야 분발해서 열심히 하게 돼. 그러니 너는 오늘 네 실력을 돈으로 때워라.”
참 특이한 논리를 편다.
오영배가 희희낙락하는 것을 보니, 골프에 자신이 있는 거다.
비기너인 태영의 돈은 무조건 딸 수 있을 테니.
겨울 골프장의 필드와 그린은 반쯤 얼음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형태로 공이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그룹 오너가 밤톨만 한 회사 사장 주머닐 털어 갈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아주 못돼 먹었다니까.”
“밤톨이 국내 최대 그룹 사장들을 오라 가라 한다고? 너 미쳤구나?”
“그래, 미쳤다.”
“현찰 박치기 알지?”
태영의 말에 대답했다가, 제 할 말만 했다가, 제 마음대로다.
“알았다, 알았다. 내 얇은 주머니 털어 가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털려 줘야지.”
아무튼 골프에서의 내기는 현찰 박치기라고 했다.
클럽을 떠나면, 내기로 잃은 것은 그대로 무효이니까.
“백 돌이는 되지?”
“백 돌이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백 타는 되느냐고?”
“지난번 처음 왔었는데, 그걸 머리 올린다 하더라고. 오늘이 두 번째고.”
“골프 은어는 인터넷에서라도 좀 배우고 오지?”
백 타 전후로 친다는 말 정도는 안다.
“그런 건 몰라도 된다.”
“너, 말이야.”
“왜?”
“몇 살이냐?”
사실, 태영이 이 시대와 고려와 28세기를 다녀오며 살아온 세월을 다 합친 것보다 오영배의 나이가 더 많다.
태영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이제 한번쯤 따져 볼 생각인 모양이다.
“새삼스럽게 그게 왜 궁금한데?”
“내가 말을 안 하니까, 너하고 친구 먹자는 줄 아는 모양인데, 내 애들이 모두 너보다 나이 많다?”
“그래서?”
“언제까지 반말 찍찍 뱉을 건데?”
“네가 반말 안 할 때까지.”
“……?”
태영은 처음으로 ‘너’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너’라고 하지 않아도 말이 되었다.
그렇지만 방금은 ‘너’를 빼면 말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태영의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는지 빤히 바라본다.
“난, 내 동의 없이 내게 반말하면, 상대의 나이에 상관없이 같이 반말해. 몰랐어?”
“아, 씨발, 몰랐다. 그리고 대부분이 내게 그따위로 말할 생각을 못 하거든.”
“그렇게 착각하고 사는 것도 좋지.”
“그래,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니, 아니. 지금 동의를 구하면 안 되냐?”
말도 부드러워지고, 순해졌다.
“좋아. 체면도 있으니, 반 존대로 올려 주지. 이제 되었소?”
“그래, 거기까지 동의.”
“앞으로 날 지칭할 때 ‘너’라고 하면 무효.”
“아, 씨발. 이런 놈도 세상에 있네.”
콧김을 뿜어내던 사람, 그 옆에 있는 사람.
여전히 이름은 모르는데, 두 손을 부르르 떤다.
“자, 이제 슬슬 가 보자.”
“그럽시다.”
오영배가 앞장서고, 태영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이 식당을 벗어나 아웃코스 첫 홀의 위치로 갔다.
바람은 많이 불지 않지만, 오전 11시의 햇살에도 추위가 풀리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효원입니다.”
패딩 점퍼로 온몸을 똘똘 감다시피 한 캐디.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서 깍듯하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민재, 선정, 인월이라고 차례대로 소개했다.
여긴, 성은 빼고 이름만 말한다.
코끝과 볼이 빨갛게 변한 것이 여기서 제법 기다린 듯하다.
“추워요?”
“네, 괜찮습니다.”
캐디 효원은 괜찮다고 했지만, 제법 추워 보인다.
생활 전선에서 직업의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만,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태영은 옆구리에 찬 가방을 열었다.
티베트 갈 때 가져갔던 히터 윈썸 2개를 꺼내서, 스위치를 눌러 효원이라고 말한 캐디에게 건네주었다.
“와, 이게 뭔가요? 굉장히 따뜻한데요?”
다시 하나를 더 켜서 인월이라고 말한 캐디에게 주었다.
따뜻한 바람이 봄바람처럼 불어오자, 오영배가 격하게 놀라 물었다.
“야, 너 그거 뭐야?”
“너? 좀 전에 내가 한 말 잊었어?”
“아, 미안, 씨바, 그거 무지 궁금하잖아?”
“이거 내년 가을부터 오프라인으로 팔 거, 샘플로 만들어 본 거야.”
티업 할 준비를 해야 할 사람들이 윈썸 히터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진행이 안 된다.
“와, 고맙습니다. 이거 저희 주시는 것입니까?”
인월이 물으며 다짜고짜 태영에게 안겨 왔다.
“아, 이러면 안 됩니다. 그거, 라운딩 끝날 때 돌려줘야 합니다. 아직 시중에 나가면 안 되는 물건이라서요.”
인월을 떼어 내면서 잘라 말했다.
“야, 이거 내가 좀 만들어 팔자.”
오영배가 욕심이 나듯 말한다.
“안 돼. 그리고 그 물건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별하나’ 상점을 통해서만 팔 물건이야.”
“별하나? 그게 뭔데?”
“증발한 군인들 가족에 한해서 내어 주는 체인점 이름입니다.”
대답은 오영배가 데려온 일행이 했다.
“그런 게 있어?”
“네, 벌써 수십 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아, 맞다. 최 사장이 거기 유일한 생존자이지?”
“그런 일에도 관심을 좀 갖고 살아.”
오영배가 태영을 향해 물었을 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귓등으로 흘리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회원으로 구성된 ‘별이 되어’라는 사단 법인이 있고, 그 사단에서 문서로 신청하면 ‘별하나’ 체인점을 열 수 있다고 합니다.”
부하 직원이 오영배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내용의 정확성으로 봐서, 제법 조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별하나’라는 명칭은 워낙 널리 사용 중이었다.
그래서 독점적 사용을 위한 상표 등록 같은 조치가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로고와 간판의 디자인 등록은 해 두었다고 태영도 들었다.
“그럼 ‘별하나’를 통해서만 공급한다고?”
부하 직원의 대답을 들은 오영배가 태영에게 물어왔다.
“그래.”
“와, 너 대체 뭐냐?”
“또 ‘너’라고 했지?”
“아, 씨. 실수. 그러니까 저 좋은 물건을 ‘별하나’에만 공급한다고?”
“그래.”
“별하나에서 사 가는 건 상관 안 해요.”
“박 전무, 별하나 체인점들 돌면서 독점 계약 좀 해 봐.”
“네, 회장님.”
박 전무라 불린 자는 식당에서 씩씩거리다가 태영이 목을 긋는 시늉을 해 준 사람이다.
“소용없을 거요.”
“왜?”
“‘별하나’ 계약 조건에 그런 거 못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계약이야 뭐, 해약하면 되니까.”
“오 회장 성격이 개차반이라서 내가 미리 경고 하나 하는데, 행여 그 사람들 건들 생각을 않는 것이 좋아.”
“하, 씨발 새끼.”
처음부터 느낀 거지만, 저놈은 욕쟁이가 맞다.
“건들면 어찌 되는데?”
“거기를 건들면 전쟁하자는 말이거든.”
“왜 그게 전쟁하자는 말이야?”
“나라를 지키는 의무와 사명을 다하던 군인,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군인들의 가족이지.”
“뭐?”
“그런 사람들은 건들면 전쟁이지.”
“……하, 씨.”
“…….”
“건들기만 해 봐. 멸망이라는 단어의 뜻을 실감하게 될 거야.”
“존만 한 게, 섬?하게 말하네.”
그 말을 하면서 염력의 파동으로 주변 공기로 압박을 가했으니 섬?하지.
“자, 가시지요.”
캐디의 말에 모두들 발걸음을 옮겼다.
첫 홀은 워밍업이니 내기 없이 지나갔다.
“위치는 모두 화이트 티, 핸디 없이 타당 백, 비기면 다음 홀로 이월하면서 자동 더블, 최 사장은 이번 홀까지 핸디 한 개. 다들 이의 있어?”
2번 홀 앞에 선 오영배의 말이다.
태영의 주머니를 탈탈 털겠다는 심보다.
대체 누구 주머니가 털릴지는 봐야 알겠지만, 화이트 티이면 딱 중간이다.
“없습니다.”
“그린이 얼어 있으니까, 더블 보기에서 배판 인정 안 하고, 이글은 따불, 홀인원 따따불, 알바트로스 따따불.”
“파 스리 홀에서 홀인원 하면 따따불 같이 되는 거요?”
“아니, 거기는 8배지.”
크게들 논다.
1타에 백만 원이면, 이건 도박이 심한 수준인데?
더블 보기 하면 배판을 부를 수 있는데, 그건 아니란다.
그린이 얼어 있어서 쉽지 않다는 거다.
“현찰 보여 봐.”
다들 허리 백을 열고 현금을 보여 주는데, 누런 잎사귀 20장을 한 묶음으로 백 속에 가득했다.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들은 늘 타당 백만 원으로 친다는 거다.
몇 홀 가지 않아서 이들 모두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2번과 3번 홀을 한 타나 두 타 정도의 승부가 나고 가볍게 주고받았다.
그런데 4홀부터 7홀까지 연속해서 무승부다.
분명히 들어가지 않을 퍼팅을 태영이 염력으로 밀어 넣어 무승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 사람이 윤 부사장이다.
그래서 연장에 연장을 거듭했다.
연장될 때마다 2배인데, 그렇게 8번 홀 앞에 왔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