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65
110. 저 방 나 줘
“알아. 엄마에게 다 들었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해?”
“오빠.”
“왜?”
“언제부터인가, 아마…… 그때부터일 거야.”
“…….”
“그 동영상 문제를 해결한 후.”
“…….”
“그때부터 나의 모든 생각은 오빠를 기준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내 모든 것은 오빠에게 향하고 있었어.”
“…….”
그냥 묵묵히 들어 주었다.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빠는 늘 바쁘고, 나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것은 맞다.
영상이 사라졌다고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새봄의 얼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커다란 선글라스와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벗는 순간, 이새봄을 알아보는 사람과 마주칠 수 있다.
“오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톡을 보내도 답신도 못 받고…….”
“그만, 그 방 너 주마.”
태영은 말을 자르고 대답을 해 버렸다.
너무 쉽게?
아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의 처절한 고백이다.
그래서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고,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에서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김영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다.
식당에서 만날 때의 모습.
태영이 처음 보아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새봄의 모친인 김영은은 몇 달 동안 애를 끓이며 지켜 봐 왔을 것이다.
지켜 본 정도만이 아니었으리라.
“진짜지?”
불편한 동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태영이 끝까지 거절했을 때, 진짜 몸을 던질지는 모른다.
그 부분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하면 안 된다.
진짜 그리되면.
군 동기 친구의 원망과 그 부모의 원망을 감당할 수 없다.
결혼해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방 하나 내어 달라는 것인데.
끝까지 안 된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방 한 칸 세 내어 주는 거, 아니 셰어하우스로 쓴다고 생각하자.
나중에 발목 잡힐지 모르지만.
이새봄도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까.
이건 가정을 해도 되니까.
“그래.”
그래, 아직 어리니까 얼마든지 생각이 바뀔 수 있지.
이제 스물셋인데.
***
“최 군, 우리 봄이 잘 부탁하네.”
“야, 너 이씨. 내 동생 눈에 눈물 나오게 하기만 해 봐. 내가 널 죽이고 형무소 간다.”
김영은의 당부에 뒤이어 나온 이한봄의 말이다.
“오빠, 죽을래?”
거기에 이새봄이 주먹으로 이한봄의 배에 한 방 먹인다.
이새봄의 아버지 이찬용은 근엄하고 슬픈 얼굴이다.
그 얼굴로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짐을 들었다.
“네 동생 결혼시켜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내 집에 제 마음대로 빈방 하나 차지하고 들어앉는 고집불통의 철딱서니 눈에 눈물 날 일이 뭐냐? 내가 울고 싶다, 이 모지리야.”
“아무튼, 아무튼, 아무튼, 내 동생 울리기만 해 봐.”
“너부터 좀 울려 보자. 어디를 때려 줄까?”
태영과 이한봄은 티격태격했다.
물론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한 태영의 방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여전히 근엄하고 슬픈 표정의 이찬용.
김영은의 얼굴에는 뭔가 시원하다는 느낌이 있어 보인다.
이건 순전히 착각이겠지?
태영은 간편복.
이새봄은 패딩 코트를 꺼내 입고, 지하 주차장에서 전송을 했다.
“오빠, 안 추워?”
차가 떠났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하며 가벼워 보이는 태영의 옷을 보고 물었다.
“안 춥다.”
“진짜 이상해.”
“뭐가 또 이상한데?”
“이 추운 겨울에, 그 복장으로 안 춥다고 하는데 그럼 이상하지 않아?”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한 사람이 내리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새봄이 폴짝 뛰듯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규칙 하나.”
“응.”
“우리 집에 누구도 데려오지 말 것.”
“오키.”
대답을 하며 팔짱을 끼어 왔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규칙 둘, 내 방과 내 컴퓨터 방에는 내 허락 없이 들어가지 말 것.”
“또?”
“규칙 셋, 내 생활에 터치하지 말 것. 나도 네 생활에 터치하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 아침밥은 챙겨 줘도 되지?”
“챙겨서 너나 먹어. 나 신경 쓰지 말고.”
“와, 치사하다. 한집에 살면서 아침 정도는 같이 먹어 줘야 하는 거 아냐?”
그 아프던 애가 그리 비실비실 하더니, 언제 아픈 적이 있었느냐는 것처럼 완전히 살아났다.
상사병이 혹시 꾀병?
그게 아니면, 상사병은 보고 싶어 하는 사람 옆에만 있으면 그냥 나아 버리는 것일까?
“까불지 말고, 난 외출해야 하니까 그리 알아.”
“알았어.”
“말로는 오빠, 오빠 하면서 맞먹는다?”
“왜? 존댓말 듣고 싶어? 요?”
“됐다. 나이도 동갑인데. 무슨 존댓말이냐? 나도 너에게 존대하기 싫으니 그냥 그대로 해라.”
“치이, 그럼 왜? 요?”
~땡~
올라가는 동안에 아무도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이기에 빠르게 도착했다.
“나 따라가면 안 돼?”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새봄이 방문을 열고 물어온다.
“안 돼.”
나가면, 박준혁의 어머니 박민서 여사와 안재희를 만나러 가는데 어찌 데려가니?
“치, 따라가고 싶은데.”
“우리 집에서 내쫓기고 싶지?”
“에이, 정말 치사해.”
~꽝~
한마디 하고는 방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
안재희가 잠든 침대 옆.
패치를 떼어 낸 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안재희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에 다녀온 박준혁의 어머니 박민서 여사는 개운한 모습으로 깨어났다.
51시간 만이었다.
몸이 많이 망가져 있어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대충 둘러대는 태영에게 몸이 훨씬 더 좋아진 것 같다는 말로 의문을 대신했다.
다쳐서 꽤 오랫동안 거동을 못 했다.
태영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 건넨 돈으로 치료는 했다.
그래도 다치고 난 뒤에 기간이 너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완치되지는 않았다.
그 정도 치료로는 다치기 전으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몸이 꼭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간 것 같다.’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며 그렇게 말했었다.
안재희.
이 녀석도 이렇게 찬찬히 보니 참 예쁘다.
이새봄과 비교되지는 않겠지만, 어디 가도 미인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물론, 아직 고2의 나이이니 젖살이 빠지지 않아서 미모가 제대로 피어나지 않은 때다.
젖살이 빠지고 제대로 가꾸기 시작하면 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될 것 같다.
“음.”
~깜박~
작은 소리를 내며 눈을 뜨는 안재희의 모습이 보였다.
“일어났어?”
“아, 오빠.”
안재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함몰된 부위가 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치명적인 이상 부위는 48시간 내에 복원된다고 하더니 정말이다.
태영의 예민한 눈으로 봐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안재희가 잠든 지 52시간 만이다.
“그래, 일어나 보자.”
“며칠 걸린다고 하시더니 아닌가 봐요?”
“이틀 지났는데?”
“네? 이틀요?”
“그래, 이틀.”
“방금 잠들었던 것 같은데, 아 잠깐.”
안재희는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졌다.
함몰 부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만져지지 않을 것이다.
통증도 없을 것이다.
두 손을 얼굴에 덮은 채로 태영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짜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다닥 소리가 나도록 뛰어서 욕실로 들어갔다.
“꺄악, 진짜 진짜야. 꺄아~아아아악, 와아아악.”
저리 좋을까?
거의 비명을 지르는 수준이다.
얼굴 함몰에 대해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덤덤하게 행동했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싫었을까?
“오오오오~빠아아아아~~~”
저 정도면 비명이다.
팔짝팔짝 뛰면서 욕실에서 달려 나왔다.
그러곤 그대로 태영의 품에 엎어졌다.
“고맙습니다. 고맙…… 흐으으으응…… 고…… 흐으으윽……니다.”
울음 때문에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다.
탱크톱의 끈 민소매 복장으로 이렇게 매달리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데, 매정하게 떼어 낼 수가 없어서 그냥 두었다.
“흐으으윽…… 흐으윽……흐윽.”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지난번에 태영이 잠시 안아 보자고 하며 어깨를 감싸 안았을 때도 이렇게 울었다.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더 펑펑 소리 내어 운다.
“흐으윽…… 오…… 오빠…… 흐윽…….”
“자, 이제 눈물 뚝.”
“흐윽. 흐으윽.”
“울음도 뚝.”
“네, 네에 흐읍.”
“다치기 전처럼 돌아왔네.”
“흐음, 네.”
“좋니?”
“흐으읍…… 그…… 그럼요. 흐읍. 어…… 얼마나 좋은데요…一 흐읍.”
숨을 한껏 들이쉴 때마다 울음을 참아 내느라 몸을 들썩인다.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다행이다.”
안겨 있는 안재희의 어깨를 잡고 살짝 밀어냈다.
그대로 있고 싶다는 거부의 힘이 잠시 느껴졌지만, 천천히 밀었다.
“어, 흐읍, 어떻게 하신 거예요? 흡…… 저는 한숨 자고 일어난 것이 전부인데…….”
눈물로 젖은 얼굴에 웃음이 어려 있다.
“비밀.”
“흐읍. 히잉. 흐읍.”
“약속해 줄 것이 있다.”
“네……. 흐읍.”
“네가 잠든 사이에 치료된 이 모든 일은 비밀.”
“……아, 아무에게도, 무슨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뜻을 바로 알아듣는다.
“맞아.”
“제 얼굴…… 물을 텐데요. 저를 아는 사람은.”
이 부분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분장이었다고 해.”
“음, 그럼 분장을 할까요?”
눈가에 눈물이 배어 나왔지만, 얼굴엔 미소가 돌아와 있다.
“아니, 그 예쁜 얼굴을 왜 못생기게 감추냐.”
“흠, 그런 건 제가 알아서 잘 해요.”
“그래, 이제 돌아가자.”
“배고파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고픈 것이 당연하지.
“가다가 저녁 먹고 가자, 그럼.”
“넵.”
박준혁의 어머니 박민서 여사와는 함께 점심을 먹었었다.
박준혁 그놈은 지금 백정연과 재미있게 놀고 있겠지?
***
“오빠.”
식사를 마쳤을 때는 제법 밤이 깊었다.
안재희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으면, 대중교통으론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리다.
그래서 태우고 가는 중이다.
“응.”
“제가 깨어난 시간이 52시간……이라고 하셨죠.”
“응, 왜?”
“제가…….”
“왜? 뭐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리 머뭇거려?”
“어느 책에서 봤는데요.”
“응.”
얘가 이렇게 뜸을 들이는 성격은 아닌데?
“아니…… 아니에요.”
“말해 봐.”
“다음에요.”
다음으로 미루는 거야 뭐 어쩔 수 없지.
***
안재희가 질문하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상당히 궁금했다.
안재희를 그 아이의 집 앞에 내려줄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여전히 책에서 봤다는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말하겠지. 그래 잊어버리자.”
도승준 무리에게 빼앗은 전화기.
그중에 한곳에 선불 USIM을 꽂았다.
이제부터 도하일을 친부에게 보내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여보세요.]전화를 받은 쪽의 주위에 잡음이 제법 깔렸다.
크게 떠드는 소리는 아니지만, 소음으로 봐서 집은 아니다.
“김명준 판사님?”
[누구야?]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일단 반말로 시작한다.
반말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태영의 비위가 뒤틀렸다.
“네 애비다.”
[……하, 이런 뭔…….]“네 혼외자 말인데…… 네 와이프에게 데려다줄까, 기자를 부를까?”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뭐?]이 부분에서 놀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송화구를 손으로 막은 모양이다.
그래도 들린다.
‘판결에 앙심을 품은 어떤 놈이 전화질을 했어.’라고 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 누구야? 거기 어디야?]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했는지,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대답을 해.”
[야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그리고 내가 혼 외자가 어디 있어?]입이 걸다.
하긴, 태영이라도 그렇게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없지.
[마스터, 인태프 심었습니다.]그럼, 전화 통화를 더 할 이유가 없다.
“다시 전화하지. 그때도 지금처럼 소리 지르면, 친자 확인서를 네 와이프에게 보낼 거야, 사본은 기자 열 명 정도에게 뿌려 주고.”
[야이이…….]“그럼 다시 통화하자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에 열이 나서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우웅~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전원 버튼을 눌러 전원을 껐다.
***
김명준은 담배를 찾았지만, 패딩 조끼에는 담배가 잡히지 않았다.
한쪽에 서 있는 삐죽 머리 두 명.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귀에 커다란 링을 꽂아 넣은 둘이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담배 한 대 달라고 할까?
에이, 저런 놈들에게.
호텔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혼외자라니.’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얼마나 철저했는데.’
와이프가 싫어서, 성 접대를 많이 받아서, 기분이 울적해서, 같은 핑계로 수많은 여자들과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었다.
피임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친자 확인서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진짜일까?
“아, 그때, 그…….”
생각을 떠올리다가 5년쯤 전이었나?
아니 6년쯤 전이었나?
그때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