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67
112. 곧 알게 될 거야
“심지어 나까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지 못하게 막았지.”
사람이 아니네, 그 정도면.
“너도 참 어렵게 산다.”
“맞아. 그래서 불의와 야합하고 타협, 아니, 아니. 그냥 받아들여 버렸어.”
“…….”
“지금의 아내와 이혼,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아들은 말라 죽어.”
그렇겠지.
남편을 말려 죽일 정도의 아내라면 혼외자는 벌레로도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자네 말을 들어 보니, 내가 모른 체하면 아들은 고아원 행이지?”
“당연한 것을 물어?”
“아무 준비 없이 이 일을 정리할 수는 없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이 말을 기다렸다.
정말 오래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은 있다.
“오래 기다려 줄 수 없어.”
그래도 너 잘했다고 해 줄 수 없다.
“나로선 있는지도 몰랐던 아들을 지키려면 준비를 해야 하니까, 기다려 줘.”
“얼마나?”
“일주일은 넘기지 않을 거야. 그 안에 사표 내고, 아들을 데리러 가겠네.”
“생각은 있어?”
상관할 일은 아니니, 그냥 툭 물었다.
“일 년쯤 숨어 죽은 듯이 살다가 변호사를 하거나…….”
“하거나?”
“그것도 와이프의 집안에서 못 하게 막으면, 10년쯤 뵙지 못한 노모가 시골에 혼자 계셔. 농사나 지으러 가지 뭐.”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를 고아원에 보내는 것이 찜찜해서 기다리고.
대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노을빛이 아름답다는.
애 친모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거나, 일부러 모르는 체하거나.
3개월 남았다고 했으니 데려가겠다고 할까?
아니, 데려가지 못한다.
“잘 가게. 그리고…….”
김명준이 앳윌플레이를 되돌려 주면서 말끝을 흐린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지만, 애 엄마 한번 볼 수 있을까?”
방금 생각했던 것이 바로 김명준의 입에서 나왔다.
“……애를 제 엄마 손에서 넘겨받도록 해.”
그 말을 해 주고 발을 옮겼다.
“이름, 말해 주지 않을 건가?”
“내 이름 말인가?”
“그래.”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류지현의 새해 인사다.
어제, 새해 둘째 날을 가족들과 보내고 있는데, 류지현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이번 사건 관련해서 경찰 측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니 협조를 요청한다고 했다.
‘물어봐.’라고 했더니 경찰이 만나자고 했단다.
‘못 가. 오면 시간은 내줄 수 있어.’라는 말로 수락했는데, 류지현 혼자 왔다.
“너희 회사는 신년 휴가가 언제까지기에 이렇게 조용해?”
류지현이 사람이 없는 사무실을 휘 둘러보고 물었다.
“우린 5일부터 출근해.”
“좋은 회사네.”
“사장이 좋은 놈이라고 해 줘.”
“그래, 그래. 네가 좋은 놈이다. 잘났다, 사장 놈아.”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지는 않아. 오고 있을 거야.”
태영의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답을 한다.
권력 기관간의 묘한 라이벌 의식 그런 것인가?
“커피?”
“주면 좋지.”
커피 두 잔을 준비해서 마주 보고 앉았다.
경찰에서 협조 요청한다고 할 때, 느껴지는 것.
흔히들 생각하는 협조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동영상 속의 인물들 중에 꽤 많은 경찰 고위직이 있었다.
류지현을 통해 건네진 USB에는 몇 명만 들어 있다.
문서 파일과 스프레드시트 파일도 류지현에게 주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자료도 많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소속 기관명.
그곳의 고위직은 전방위적으로 로비한 정황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많은 이름들 중에 경찰의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만나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놈들은 복귀했어?”
“아니, 아직. 그리고 난 부서가 바뀌었어.”
“진급은 안 해?”
“아마도?”
“축하할 일이 생기겠군.”
“고마워.”
“오는 모양인데?”
“너 귀, 무지하게 밝다?”
~똑똑~
류지현의 말이 끝났을 때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회사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갔다 오지.”
“그래, 처음부터 싸우지는 말고.”
“내가 투견이야?”
“왠지 싸울 것 같아서.”
문 앞으로 나갔다.
포기 처리된 강화 도어 밖에 보이는 그림자.
남자 둘과 여자 하나다.
~딸깍~
도어 열림 스위치를 누르자 EM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을 당겨 열어 주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30대 후반의 남자, 그리고 40 중반의 여자가 입구에 서 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남자는 뻣뻣하다.
여자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다.
셋 모두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사이에 여자는 날카로운 눈으로 태영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번 스캔하고 지나갔다.
젊은 쪽이 자리를 비켜 주고 나이 든 쪽의 남자가 들어선다.
태영이 돌아서서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대회의실 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류지현이 앉아서 의례적인 인사를 했고, 태영은 상석으로 가서 섰다.
“문종대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조상경입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은 간단하게 이름만 말했다.
“박수정입니다.”
태영을 다시 한번 유심히 바라보던 여자다.
역시 앞의 두 사람처럼 자신의 이름만 말한다.
“최태영입니다.”
악수는 없었다.
“회사 좋네.”
“젊은 친구가 능력 있나 봐?”
문종대와 조상경이 한마디씩 한다.
‘젊은 친구’라.
기선 제압? 아니면 비아냥거림?
둘 모두이겠지만, 표정에 비열한 웃음이 묻어 있는 것으로 봐서 후자 쪽이다.
“늙은 친구는 능력이 없나 보네.”
태영의 응답에 조상경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문종대는 피식 웃었다.
류지현도 피식 웃었는데, 박수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저쪽의 말로는 정보의 출처가 최 사장이라고 하던데, 몇 가지 좀 물어보지.”
문종대가 류지현 쪽을 흘깃 한번 보고는 태영에게 말했다.
“같이 말을 까도 될 것 같아요?”
문종대의 말을 무시하고, 박수정을 향해 물었다.
“네?”
“그쪽이 프로파일러 아닙니까?”
“……그.”
왜 당황하지?
프로파일러라는 것을 알아서?
“저쪽에서 아무 양해 없이 말을 까고 물어오는데, 나도 같이 까고 대답하면, 프로파일러의 판단으로는 오늘의 만남이 어찌 될 것 같아요?”
프로파일러가 그런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다.
같이 반말로 대답하기 전에 한번 경고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튼 것뿐이다.
박수정의 표정이 재미있다.
마치 편의점에서 계산 전에 무언가를 주머니에 살짝 넣다가 카운터를 지키는 사람에게 들킨 표정?
잠시 멍하게 태영을 보았지만, 금방 표정을 바꿨다.
“음, 우리가 결례를 했습니다.”
박수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종대 쪽으로 얼굴을 돌려 썩은 미소를 한번 내보였다.
조상경은 한 대 치고 싶은 표정이다.
“박수정 씨는 내 시선의 방향, 손의 움직임이나 고개의 각도 같은 것도 유심히 보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
뭔 소리인가 싶을 거다.
“그쪽에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것은 어떤 생각인지 몰라도, 만일 내가 그쪽을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성희롱일까요, 아닐까요?”
“아, 그…….”
“혹시 내 생각이 잘못되었나요?”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수정은 제대로 한 대 맞은 표정으로 허둥지둥한다.
위니야, 이 사람이 진짜 프로파일러 맞아?
왜 이리 허둥거리지?
“하, 참.”
조상경의 반응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을 바꾸지요. 그 자료 누가 만든 것인지, 그게 전부인지, 누가 보관하고 있었고,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된 것인지 말씀을 해 줘야겠습니다.”
“취조하듯 하시지 말구요.”
“뭐? 취조?”
태영의 반응에 조상경이 바르르 떤다.
“거 좀 가만있어.”
“가만 좀 있어요. 협조 받으러 와서 그러면…….”
태영을 힐끗 보는 박수정이다.
문종대와 박수정이 그런 조상경을 말렸다.
“그래, 이야기 좀 듣게.”
박수정은 조상경에게 눈을 흘긴다.
“이미 알고 계시듯, 만든 자는 야제 손호철.”
“그건 이미 알고.”
또 조상경이다.
이놈의 입을 꿰매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한 대 쥐어박아 옥수수를 털어버리면 조용하려나?
“그것이 전부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지요. 나도 전해 받은 것이니까.”
“전해 받아? 누구에게?”
“이 사람 좀 내보내면 안 될까요?”
조상경의 격한 반응에 태영이 문종대에게 물었다.
“아악, 씨발.”
조상경의 반응이 생각보다 과하다.
“가만 좀 있어라.”
문종대가 조상경을 노려보며 낮게 말했다.
“누구입니까? 그 사람과 최태영 씨와 관계는 어찌 됩니까?”
물어온 사람은 박수정이다.
즉답을 해 줄까, 빙빙 돌려줄까?
“얼마 전, 날 납치하려는 자들이 있었는데요.”
“신고했어요?”
“신고는 무슨. 납치에 실패했는데.”
“그래도 해야죠.”
“에이.”
손을 털며 무슨 소리 하느냐는 제스처를 했다.
‘믿을 대상에게 신고하는 거지.’라는 말은 생략했다.
“아무튼, 그 일과 상관이 있어요?”
“맞아요.”
“야제의 부하?”
“그날 날 납치하러 온 자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이번 반응은 문종대다.
“세상은 때때로 비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
“경찰이면 그런 일은 아주 많이 봐 왔을 것 같은데.”
김명준 판사와 혼외자.
그 혼외자를 건달의 손에 맡겨 기른 임은이.
임은이가 낳은 아이라고 자기 자식처럼 돌봐 준 도승준.
그들 모두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많기는 해도, 잘 납득되지 않는데요?”
“왜요?”
“자신의 조직이 납치하려던 대상에게 그런 자료를 전하는 일은 처음이라서요.”
“최태영 씨 올해 나이가 몇이나 돼요?”
박수정이 물었다.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다.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테고.”
“네, 몰라서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람인데, 모를 리가.”
“그러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왜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연장자와 이야기하는 것 같죠?”
놀리기만 했는데, 별일이네.
“아, 그러니까 그자가 누구냐고?”
여태 잘 참던 조상경이다.
“말해 줬잖아?”
“이름을 말해.”
조상경이 다시 버럭 고함을 지른다.
“조상경, 야제에게 돈 좀 받아먹을 때 달콤했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태영의 말.
문종대도 박수정도 깜짝 놀란다.
류지현도 놀란 표정이지만, 문종대는 벌떡 일어섰다.
“뭐? 이…… 개…….”
조상경의 반응이다.
태영은 빈 의자에 두었던 태블릿을 톡톡 두드렸다.
회의실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앳윌플레이가 밝아지며, 조상경이 봉투 하나를 받는 사진이 나타났다.
“동영상도 있는데, 몇 시 뉴스에 나오고 싶어?”
“허윽, 이…… 이게 뭐야. 꺼, 안 꺼? 빨리 꺼, 이 새끼야.”
조상경은 태영의 손에 들린 태블릿으로 손을 뻗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몸을 굽히며 팔을 뻗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다.
“그래서 네가 함께 오겠다고 한 거구나?”
문종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조상경을 노려보았다.
“쯔쯔쯔.”
류지현은 집안끼리 싸우는 꼴을 보면서 혀를 찬다.
“창피해서 못 앉아 있겠네, 정말.”
박수정의 반응도 재미있다.
“내가 받은 자료를 남기지 않고 모두 보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
“그리고 그것이 원본일 거라 생각해?”
“이이익.”
“그다음에 더 중요한 거.”
조상경의 얼굴이 홍시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하얗게 변했다.
“그 자료가 손유재가 만든 전부일 거라고 생각해?”
“정말…….”
“경찰 일 오래 했고, 새대가리가 아니면, 그 정도 추리는 했을 거 아니야?”
“…….”
“과연 어떤 사람들의 비리 현장 모습이 손유재에게 남아 있는지, 그것을 내게 넘겨 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추어 두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최 사장님에게도 넘겨주지 않은 자료가 있습니까?”
태영의 말에 뒤이어 정신을 수습한 박수정이 물었다.
손유재가 가진 자료와 중간 전달자가 가지고 있을 자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끝이 짜릿할 것이다.
“다 주고 나면, 지금 이 사람 같은 사람들이 날 그냥 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료들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하게 둘까요?”
그러면서 조상경을 가리켰다.
“어떤 것을 가지고 계시는지 몰라도, 그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거 생각 안 하십니까?”
“생각했으니까 못 주는 겁니다.”
“당장 당신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걸 수 있는 죄목은 많겠지요?”
“…….”
“한번만 더 건드리면 대한민국 모든 방송국과 모든 너튜버에게 보내질 겁니다.”
“그……으…….”
“유치장에 가두면 못 할 거라구요? 날 잘 모르시네.”
“흠.”
“경찰이라면 이를 빠드득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두 다 보내질 수 있습니다. 특종에 목마른 기자들도 바글바글하더라고요.”
“…….”
모두 벙어리가 되고 태영 혼자 떠든다.
“아, 날 연행해 가면, 내가 경찰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특종으로 나올 것입니다.”
“…….”
“그거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 한 1년 정도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류지현은 이 상황을 상상했다는 듯,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웃는 모습이다.
“경찰에 대한 불신이 크군요?”
박수정이다.
“내게 맞았다고 날 고소한 어떤 건달들이 있었습니다.”
“네?”
“나와 경찰 간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겁니다.”
“네.”
“내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날 잡겠다며 압수 수색 영장 없이, 우리 집 문을 힘으로 밀고 들어왔죠.”
“그럴 리…….”
의외이겠지.
“흙 묻은 신발을 신고, 거실과 방을 짓밟고 다닌 사람이 경찰입니다.”
“아…….”
“그 건달들이 누군가를 폭행하려다가 거꾸로 얻어맞아서 부러지고 찢어져서는 날 폭행으로 고소했더라고요. 건달들은 그냥 두고 날 취조한 사람도 경찰이고.”
“…….”
“그들이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데, 다른 사람을 나인 줄 알고 공격한 것 같은데, 내 이름을 어찌 알고 고소했을까요?”
“…….”
“신기하지 않아요?”
“…….”
“마침, 그 건달들이 한 사람을 폭행하려 하고, 그 한 사람이 건달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는 기가 막힌 활극의 현장을 제가 봤지 뭡니까?”
“그래서요?”
“아, 재미있어 보여 골목 귀퉁이에 서서 폰으로 그 장면을 찍어 두었죠. 그 영상 아니었으면, 내가 형무소에 들어갈 뻔했지요.”
“…….”
“그 일을 사주한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잡았을까요? 못 잡았을까요? 안 잡았을까요?”
“…….”
“그 외에도 제법 많은 일이 있지만, 그렇게 몇 번 당해 보세요. 믿음이 가는지.”
“…….”
대답 대신 입만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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