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68
113. 키다리 오빠
“그리고 지금 여기, 내게 와서 윽박지르고 고함치면서 수사 대상인 손유재의 부하에게서 뇌물을 받은 저 사람. 박수정 씨 같으면 어찌할까요?”
조상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꽝~
조상경이 씩씩거리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며 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쪽팔려서 진짜.”
문종대의 탄식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말이 걸어지는 모양이다.
“갑시다. 더 쪽팔리기 전에.”
문종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경찰이 대부분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좋은 경찰은 알려지지 않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태영이 하는 말을 힐끗 돌아보더니 문종대가 회의실을 나갔다.
좋은 경찰이 대부분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굳이 여러 사람에게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
아, 이미 척을 졌구나.
“점심 사 줄 거야?”
다들 나가고 나자, 류지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공무원 월급이 짠가? 어찌 틈만 나면 밥을 사 달래?”
“싼 거 먹을 테니까, 싼 거. 그럼 되지?”
***
“여전히 집에 있다고?”
[네, 마스터. 그분은 지금도 자신의 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태영은 지난해 말, 그러니까 31일에 안재희를 깨우기 위해 집을 나선 후, 지금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사이에 김명준을 만나기는 했다.
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몇 가지 작물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인근의 땅을 둘러보기도 했다.
류지현이 데리고 온 경찰들도 만났다.
집에 들어가기 위해, 위니에게 이새봄의 근황을 물었다.
1월 1일에 자신의 집에 한번 다녀온 후에는 외출도 하지 않고 집 안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이라.
위니가 지난번에 ‘아내에게 하는 남편의 헌신적 사랑의 표현’이라고 표현한 후, ‘그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대로 고정되었다.
“위니가 부를 때의 이름을 바꾸자.”
‘그분’으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은 막연하기도 하고 광범위하다.
그러니 바꾸는 것이 맞다.
[마스터와 동일하게 부를 수는 없습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음, 원래 이름이 이새봄이니…….”
[그럼 ‘새봄 님’으로 부르면 되겠습니까?]“그래, 그게 좋겠다.”
“봄이 뭐 해?”
[공부 중입니다.]“원래 전공이 뭔데?”
그러고 보니 학교도, 전공도 들은 기억이 없어서 물었다.
[고한대 미디어학부생입니다.]“어, 머리는 좋은가 봐.”
고한대 미디어학부 다니면 머리는 좋다고 봐야 한다.
[…….]태영과 이새봄은 동갑이다.
딥페이크 사건이 없었으면 2월에 졸업해야 할 것 같은데, 휴학은 언제 했지?
위니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걱정되시나 봅니다?]대답 대신 역으로 물어온다.
위니는 항상 지시한 것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하거나, 자신이 가진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을 빌려 대답한다.
그래서 위니의 이런 반응 또한 무척 생소하다.
“죽음에서 건져 올렸는데, 걱정되지 그럼.”
[하루 3회, 식사 꼬박꼬박 잘 챙겨 드시고 계십니다.]“집에서 쫓아낼 방법이 없나?”
[…….]위니는 답하지 않았다.
4일 동안이나 약재가 가득 담긴 수조 속에 있었다.
거기서 깨어나 한 요구가 터무니없기는 했지.
고집을 부리는 통에 허락하긴 했지만, 앞으로의 일들이 난감하다.
새해가 되어 24세.
한창 뜨거울 나이의 청춘 남녀가 한집에서 살다니.
아무리 태영이 셰어하우스 같은 것으로 생각을 하자고 해도,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내일 약속이 어디였지?”
[고비로텍과 프리모바일 두 곳입니다.]연초로 예정된 자율 주행 차량 관련 회사 방문이다.
“간단하게 두 회사 기술을 요약해 줘.”
[고비로텍은 전방과 좌우의 사물 인지와 판단, 제어 기술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리모바일은 커넥티드카 분야입니다.]전방과 좌우의 인지와 제어는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런데 커넥티드카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기계와 관련된 분야의 전공자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회사의 직원 수, 주주 구성, 경영 상태 등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자료를 받았다.
그러나 스타트업 회사.
경영 상태가 지극히 나쁜 회사의 경우에는 그런 자료들을 믿을 수 없다.
단순히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 역할만 할 뿐이다.
“사물 인지를 하려면 장비로는 센서와 카메라, 소프트웨어로는 센서로부터 들어온 정보의 분석과 각각의 데이터를 종합해서 얼마나 빠르게 처리해 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은데?”
위니로부터 배운 자율 주행 관련 지식이다.
[센서 기술이 현재 수준에서는 자율 주행 시스템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에는 부족합니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이미지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과 정보의 양, 그리고 센서에서 들어온 정보를 복합 처리하는 속도가 매우 낮아 어려움이 있습니다.]위니가 해 주는 설명으로 개략적인 이해는 된다.
아무래도 전문 영역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맡는 것이 옳다.
~웅~
렌트한 자동차를 반납하고 나오는데, 전화 2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안재희로부터 온 톡이다.
(미국 대학 Regular Admission과 Rolling Admission으로 각각 지원했습니다.)
태영이 미국의 대학을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한 것이 12월 23일이었다.
이남욱이 상간녀와 떠나는 크리스마스 여행 때, 그자를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만났으니까.
(지원 마감일은 모두 1월 1일이었습니다.)
1월 1일이라고?
시간상으로 보면 마감일까지 8일 남아 있었다.
그 중에 바이호르미어 주사로 2일이 소요되었다.
주사와 관련한 사전 준비와 후 마무리를 하느라고 1일.
실제로 5일 안에 모든 것을 진행했다는 뜻이다.
“위니, 레귤러와 롤링 어드미션이 어떻게 달라?”
[레귤러는 정시 지원, 롤링은 수시 지원입니다.]“지원 방법이 그것만 있는 거야?”
[아닙니다. 그 외에도 미국의 대학 지원 방식에 얼리 디시즌과 얼리 액션이 있습니다만, 두 가지의 경우는 조기 지원 형식이어서 10월에서 11월 중순에 마감됩니다.]그때면 가을인데 지원해 볼 수 있는 시기가 지난 거다.
(Princeton, Harvard, Columbia, MIT, Yale, Stanford, Pennsylvania에 지원했습니다.)
위니에게서 설명을 듣는 사이에 지원한 학교 리스트가 7곳이나 찍혀 왔다.
워낙 명문으로 알려진 대학들이어서 태영도 일찍이 들어 본 이름들이지만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 학교들은 학교별로 특성이 조금씩 다르지 않아?”
태영이 잘못 알고 있는 정보일 수 있지만, MIT는 공대를 알아주고 스텐포드 역시 공대를 알아주는 것으로 안다.
[네,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는 미국 내에서 매겨진 대학 순위 최상위의 학교들입니다.]“허, 이 배짱 보소……가 아니구나. SAT 성적으로 보면 넣어 볼 만하네.”
[네, 그렇습니다.](Regular는 4월, Rolling은 2월 중에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태영이 답하지 않고 위니에게 묻고 답을 듣는 사이에 톡이 연속적으로 들어왔다.
(그래, 합격. 꼭 합격^^)
이제야 겨우 답을 보냈다.
보내 놓고도 이렇게밖에 써 보내지 못하냐는 생각에 조금 한심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발송을 눌러 버린 뒤다.
(학비가 비싸다고 합니다.)
저 말의 뒤에 생략된 말들이 많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형료 많이 들어갔지?)
답이 없다.
이런 경우에 답이 없는 것은 긍정의 의미다.
전형료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학교당 100불을 잡으면 700불이 들어간 셈이다.
생활비가 펑크 날 것이다.
(돈을 조금 보낼 테니, 유용하게 써라.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말고.)
“위니, 1천 보내 줘.”
[네, 마스터.]뭔가 더 해 줄 이야기가 없었나?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다.
손에 전화기를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진동음이 느껴졌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껴 쓰도록 하겠습니다.)
돈을 보낸다고 한 후에 7분쯤 지났는데, 아껴 쓴다는 답이 왔다.
안 그래도 되는데.
(운전면허 없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톡을 보냈다.
(네, 아직 18세가 안 되었습니다)
1분쯤 지났을 때 답이 왔다.
(언제 18세가 돼?)
(5월 21일입니다.)
(미리 준비했다가 면허 시험 칠 수 있을 때, 바로 따 두도록 해.)
(네, 오빠.)
오빠라.
답을 듣고 주머니에 폰을 집어넣자 집에 또 한 명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아이고,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집에 들어앉아 있는 골통에 찰거머리를 어찌할까 걱정이다, 걱정.”
***
안재희는 폰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 ‘키다리 아저씨’.
아니다.
“이젠 ‘키다리 오빠’라 부르는 것이 맞지. 오빠로 불러도 된다고 했으니…….”
‘키다리 오빠’의 도움의 손길.
그날, 노래방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름을 알게 된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오빠가 왜 자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이렇게 도움을 줄까 하는 의문은 갖지 않기로 했다.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에, 이다음에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갚자.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
“꼭,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 만남의 그날.
SAT 점수를 묻고, 토플과 토익 점수를 물었던 그날.
‘열심히 했구나. 애썼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에 온몸이 떨려 왔었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칭찬을 하며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그 선물이 얼굴을 고쳐 주겠다는 것이었다.
믿지는 않았다.
“3일 만에 어떻게?”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들은 말로는 쌍꺼풀 수술도 5일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방학이 끝나면 눈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유학 이야기를 했다.
돌아와서 조사해 보니, 지원 마감까지 8일이 남아 있었다.
선물로 얼굴을 고쳐 주는데 3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5일이다.
그 짧은 기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
사력을 다했다.
자는 것은 포기했다.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원서를 모두 접수한 그날 오후.
‘키다리 오빠’와 만났다.
“‘이생망’이었는데, 이제 꿈을 꿀 수도 있고, 희망도 생겼으니.”
‘그래, 합격. 꼭 합격^^’이라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몇 단어.
그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꾹꾹 눌러 참으려 해도 눈물은 계속 솟아오른다.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학비가 비싸다고 합니다.’라고 써 보냈다.
미국 유학 정보는 인터넷에 널려 있었다.
그것들을 확인했다.
미국에 유학에 들어가는 비용에 낙담했었다.
학비와 생활비 등을 합쳐서 연간 1억.
아무리 아껴도 들어가는 돈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된 이후, 꿈에서도 상상해 보지 못한 돈이다.
장학금을 받으면 그래도 조금 낫다.
그러나 자신이 지원한 대학은 대부분 Merit Scholarship (성적 우수 장학금) 제도가 없다.
“Grant라도 되면…….”
Grant(재정 보조금)을 받으면 좋겠지만,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자신에게는 쉽지 않다.
국제 학생에게도 Grant를 주는 곳이 꽤 있다.
가능하다고 소개하는 정보도 많았다.
하지만 Grant가 가능한지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다 연말 연휴로 인해 문의를 해도 서류 마감 시한 안에 답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Grant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면.
그럼, EFC(가족이 학비로 부담 가능한 금액) 대비 COA(대학을 다니는데 드는 총비용) 비율이 높다.
그렇다면 Grant를 받을 수 있고, 유학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원 단계에서 Grant가 가능한 대학을 조사해서 지원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떨어져야 하는데.”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면 얼마나 들까?
1년간의 미국 유학비용으로 4년을 다니고도 남는다.
국내 대학 같으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을 자신도 있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니…….”
‘키다리 오빠’에게 학비 때문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떨어질 대상만 찾았다.
최상위권 학교만 골랐고, 그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떨어지더라도 지원을 했다가 떨어진 것이니까.
“만에 하나, 합격하면?”
그것도 문제다.
“그럼, 기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키다리 오빠’는 전형료가 많이 들어갔으니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돈을 조금 보내겠다고 했다.
몇 초 후에 자신의 계좌에 1,00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했었다.
그런데 또 울고 말았다.
선물을 주는 장소가 아파트였다.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몸을 달라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5분쯤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날.
얼굴에서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손으로 만져 보았다.
자국도 만져지지 않았다.
욕실로 달려가 거울에 비춰 본 얼굴.
‘키다리 오빠’의 말은 정말이었다.
눈도 떨리고, 입도 떨렸다.
온몸이 떨려 왔다.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명이 저절로 나왔어.”
그대로 달려가 ‘키다리 오빠’의 품에 뛰어들었다.
이분은 나의 생명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유재구가 자신을 마구 구타한 그날, 그 집에서 자신은 죽었다.
의사가 그랬다.
몇 시간 늦었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집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누군가가 봤다고 신고를 해서 119 구급대가 싣고 왔다고 했다.
밖에서 그 방이 보이는 창문은 없다.
찾아올 사람도 없는 그 집.
“그래, 말이 안 되지…….”
다시 찾아온 그 떨림과 눈물은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또 이렇게 눈물이 난다.
“나는 오빠를 만나기만 하면 왜 이리 울보가 될까?”
다시 얼굴을 만져 보았다.
자주 만져 보았기에 손이 기억하는 함몰 부위가 있다.
자국, 없다.
통증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함몰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사라졌다.
거울에 비춰 보면, 뽀얗게 변한 피부에서는 자신이 봐도 윤기가 흐른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물어오는 엄마.
수십 번을 물어온 동생.
‘나도 모른다.’는 말 이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묻다가 지쳐서 이젠 더 물어오지 않는다.
다니는 회사는 월급을 많이 주는데, 연말연시 휴가도 많이 줘서 정말 좋다고 자랑했다.
“병원에선 의사가 분명 안 된다고 했었는데…….”
지난해, 그 치료를 받은 후.
퇴원 당시에 의사는 ‘추이를 보면서 복원 수술이 가능한지 검사를 해 보자.’라고 했었다.
수술비도 걱정이었다.
그 생각과는 반대로 의사는 복원 수술을 하다가 실명하거나 뇌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할 수가 없다고 했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재희는 키다리 오빠가 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