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72
117. 나도 데려가 줘
“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낮에 욕조 안의 약재 바꿀 때, 나 깨어 있었어.”
뭐? 깨어 있었다고?
그런데 낮이라고?
가만, 그럼 12시간 이상을 깨어 있었다는 말 아냐?
“그때부터 오빠가 나를 씻기고 옷을 입힐 때까지 계속, 쭈욱.”
마지막에는 깨어 있었다는 것을 안다.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까.
“늙지 않을 거……라……고…….”
헉, 그 이야기를 했나?
“어떤 병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미쳤었군. 왜 정신이 돌아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한 거지?
절대로 몰랐을 리가 없는 위니는 왜 알려 주지 않은 거야?
그보다 태영은 왜 느끼지 못했을까?
“……고려로 돌아가야 한다며?”
“……하.”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얘가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디까지 이야기를 한 것일까?
“내가 잠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오빠가 무심결에 중얼거렸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들었다고 해도,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럼,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저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고려로 돌아갈 것인지 상상이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내 몸이 불과 나흘 만에 이렇게 건강하게 바뀐 것도 말이 안 되지.”
맞아.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말이 안 되지.
“그래서 고려로 돌아간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오빠의 말을 믿기로 했어.”
“…하…….”
“이 모든 것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오빠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아.”
“…….”
“나도 데려가 줘. 고려로.”
뭐? 뭐라고 하는 거야, 얘가?
태영은 간이 떨어져 내릴 만큼 놀랐다.
그와는 달리 이새봄은 그 말을 끝으로 태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태영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처분만 기다리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무엇을 말하지?
저 애의 마음속.
위니가 알아낼 수 없고, 말해 줄 수도 없는 것.
그러니 물어볼 수도 없다.
“봄아.”
“응, 오빠.”
‘오빠도 봄이가 좋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봄이 너…… 말이야.”
“응.”
“소득세 신고도 해야 하니, 그 이야기를 해 주기는 해야 하는데…….”
“으응? 응.”
“내가 좀 별일을 한다는 걸 너도 느꼈으니까…….”
“응.”
“딥페이크로 인한 그 문제로 네가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네 오빠에게 들었을 때, 나는 네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
“…….”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그때, 군 동기 모임에서 강인목이 태영에게 해 준 이야기가 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딥페이크로 고통받고 있는 군 동기의 여동생을 구해줄 때.
그때까지는 이렇게 일이 꼬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으니까.
일이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구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 가정은 쓸데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가정은 해 볼 수 있는 거다.
“나는, 네 얼굴로 장난친 그놈들을 망하게 했다.”
“……?”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놈들이 그 짓을 해서 모아 둔 재산을 빼앗아서, 음…… 하여튼 설명하기 어렵지만, 몇 단계를 거쳐서 네 이름으로 된 증권 계좌에 들어갔다.”
“한이 오빠 통해서 만들어 달라고 했던?”
“맞아.”
“그런데?”
“그 돈이 조금 불어나서 너는 지금 무척이나 부자야.”
“……?”
“궁금하지 않아?”
“아니.”
“왜?”
“난, 오빠만 있으면 되니까.”
아, 이건 진짜 병이다.
또 화가 끓어올랐다.
표정이 변하지 않도록 애쓰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돈이면, 여기서 평상 동안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다.
고려로 가겠다고 하지 말고 그냥 여기서 잘 살아라.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 돈으로 가까운 곳에 아파트 한 채 사고, 우리 집에는 종종 놀러 오기로 하고, 그 집에 가서 살면 안 되겠니?”
“그렇게 하면 오빠가 고려로 갈 때, 나도 데려가 줄 거야?”
어찌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니?
“꼭 그러고 싶어?”
“응.”
“고려는 중세 시대야. 흔히 말하는 암흑의 시대. 역사 배웠으니 알지?”
“응.”
“중세 시대에 여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힘든지도?”
“응.”
“드라마와 영화에 그려지는 중세보다 훨씬 더 비참해. 그런데도?”
“그래도 오빠만 있으면 돼.”
정말 미치겠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물론, 글로 읽는 중세 여인들의 그 비참한 삶과 현실로 부딪쳤을 때의 차이는 머릿속에 없을 것이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잠시 떠올랐지만, 애써 지운 것.
그걸 말해 주면, 생각이 바뀔까?
그래도 현재 써 볼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이것이 먹히기만 하면 되는데.
잘 되면, 이새봄이 사람을 피하며 골방으로만 파고드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복학도 가능할 거다.
그래서 고려로 따라가겠다는 것을 포기하면 더 좋고.
“혹시 말이야. 너 말고 딥페이크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조금은, 내가 한이 오빠와 같이 얼마나 많이 조사를 해 봤을 것 같아?”
“나는 잘 모르지.”
“우리나라의 예쁜 연예인들, 예쁜 가수들이 정말 많은 피해를 보고 있어.”
그것은 들었던 것 같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예쁜 아이들 몇이 나와 같이 피해를 봤어. 내가 아는 한 명은 포기했고.”
“포기?”
“한강에…… 아직 찾지 못했고.”
심지어 아직 찾지 못했다고?
“어디에 가서 하소연도 못 하고, 고소도 고발도 안 되고, 법이 그곳까지 미치지도 않고…… 생각 같아서는…….”
거기에서 말을 중단한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오빠는 몰라.”
모르는 것은 맞다.
언론에서 공감한다는 말들은 잘 한다.
공감?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 보지 않고 어떻게 공감해?
“그 영상과 이미지가 사라지긴 해도, 그래도 사람들이 널 알아볼 걸 염려해서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거지?”
“…….”
고개를 끄덕끄덕.
“네가 그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
“너, 부자라고 내가 알려 줬지?”
“……으응.”
“돈이 있으니 대응이 가능하지 않을까?”
“……잠깐…… 잠깐.”
손을 들어 말하지 말라는 신호.
잠시 멍한 자세로 앉아서 눈만 초롱초롱 빛낸다.
입술을 여러 모습으로 일그러뜨렸다.
그런 모습까지 새삼스럽게 예쁘긴 하다.
제법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상대편으로 전화가 걸리는 소리.
컬러링이 아닌 소리다.
[봄이 언니?]반쯤 죽어 가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영은 그것을 못 들은 것처럼 해야 한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래, 나 새봄.”
[흐응, 언니…… 왜애? 나 정말 죽고 싶은데, 같이 죽어 주려고 전화했어?]아마 저쪽도 딥페이크의 피해자인 모양이지만, 무슨 대화가 저러냐?
아무리 이새봄과는 이미 알고 있는 사이라고 해도.
“잠시만 울지 말고, 너희 삼촌 변호사라고 했지?”
[흐윽, 그래. 그래 봐야 아무것도 해결 못 하는 멍청이, 바보, 쪼다, 빙다리 핫바지.]변호사인 삼촌에게 그 일을 상의한 모양이다.
아마도 삼촌이 해결 방안을 제시해 주지 못했겠지.
그래서 화풀이를 하는 거다.
“너, 딥페이크 대응 모임을 만들면 참여할래?”
[……대응 모임? 방법이 있어?]“내 영상, 사진 포함해서 내 얼굴이 덮어씌워진 거 모두 사라진 거 너 알지?”
[……그래. 언니, 진짜진짜 부럽다. 난 정말 죽고 싶어.]“방법이 있으면 할 거야?”
[……있으면 무조건 하지. 어차피 죽을 생각도 몇 번은 했는데 무슨 짓을 못 해? 그런데 우린 돈이 없잖아?]“잠깐.”
손으로 송화구를 막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얼마?’ 하고 물어온다.
“200억.”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 정도로 대답해 줬다.
태영의 대답을 들은 이새봄.
눈이 네 배쯤 커진 것 같다.
“흡, 흐으읍…… 진짜?”
너 돈 많다고 하고, 부자라고 해도 눈 한번 깜박하지 않던 녀석이다.
태영만 있으면 된다고 대답했었다.
그때로부터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
이새봄의 몸이 조금 떨렸고 눈이 빨개졌다.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있어. 가능해. 도와줄 사람이 있거든.”
[진짜? 언니 진짜야?]“그래, 진짜야. 그럼 너 할 거지?”
[하지…… 한다고. 그런데 어떻게?]“일단 우리가 공동 대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네 삼촌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다음에 우리 같은 피해자를 불러 모아야지.”
[그래, 내가 아는 사람도 둘이나 있어. 아, 언니도 한 명은 아는구나. 아무튼 물어봐야 되겠지만, 그 둘도 틀림없이 할 거야.]“그래, 일단 네 삼촌을 만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약속 잡을 수 있지?”
[그래, 언니 고마워, 진짜진짜 고마워.]이새봄도, 전화기 건너편에 있는 사람도 무척이나 기뻐한다.
목소리에 희망이 솟아오르는 같다.
권해 보기를 잘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은 성가심을 덜어 내려고 벌인 일이다.
나중에 더 큰 성가심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래도 이새봄의 눈빛이 달라졌다.
거기에 기대를 걸어 보자.
***
“위니.”
제법 신나 하는 이새봄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새봄은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껏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된장찌개는 다 식어서 다시 인덕션에 올려야 했지만, 그것조차 좋다고 했다.
[네, 마스터.]“메티 원에 딥페이크 추적 앱을 가동시키면 가능해?”
메티1은 15대를 만들었다.
12대는 이미 용도가 정해졌지만, 아직 3대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
[앱 추적까지 가능하지만, 역 추적당할 수 있습니다.]“돈 문제도?”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꼬인다.
남의 얼굴로 범죄에 해당하는 장난을 치는 놈들.
그것을 이용해서 벌어들인 돈.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모조리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떤 흔적도 남겨서는 안 된다.
“방법은?”
[태성기술에 준비하라고 한 원료가 완성되면, 그것으로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어야 합니다.]“그러면 돈 문제까지 깔끔하게 처리 가능하다고?”
[네, 가능합니다.]“새로운 컴퓨터는 어느 정도?”
[페사티 급입니다.]페사티 급이 어느 정도이지?
그때, 위니가 영상을 보내 주었다.
현재의 메티 급과 페사티 급을 비교한 그래프.
거기에 몇 줄의 설명이 붙어 있다.
“아하, 그렇게 성능이 뛰어나야 한다고?”
[네, 마스터. 이곳에서는 아직 만들 수 없는 수준입니다.]그렇지, 지금 보이는 정도는 이 시대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알았어. 그럼 태성기술에서 1레벨 소재를 확보해서 원료로 재가공이 되면 진행해 보자고. 그리고 코믈라이저도 가능하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성분 분석기 코믈라이즈.
7D 프린터에서 사용하는 소재는 특수하다.
그래서 성분 지표와 순도를 코믈라이즈를 이용해서 확인해야 한다.
가지고 온 것은 탁상용 1대와 휴대용 1대.
일이 늘어나면서 장비가 부족하다.
추가로 만들어야 하지만,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 특수 소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되었고…….”
이새봄이 자신의 집을 구해서 나가는 문제를 이야기했었다.
이동에 집을 구할 때까지는 저 방에서 살겠다고 했다.
그것은 약속해 주었다.
“위니, 인근 부동산 중에 아직 퇴근하지 않은 곳이 있어?”
[이곳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부동산은 모두 퇴근했는데, 한곳의 PC가 켜져 있습니다.]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것은 허위 정보가 많다.
태영이 이 집을 구입하기 위해 조사할 당시에도 허위 정보가 많았다.
각 부동산의 개별 자료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확인해야지.
“매물이 있는지 확인해 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2분쯤 기다렸다.
[현재 이 단지 안에 매물 5개, 전세와 월세 합쳐서 22곳이 있습니다.]단지가 크니 장점도 있다.
“이 동에 있는 건?”
[전세 1개 있습니다.]아, 곤란하네.
[앞집이 이사 가고 싶어 하도록 해 볼까요?]“그게 가능해?”
위니의 데이터베이스에 방법론이 있는 모양이다.
같은 층에 4가구가 살고 있다.
[가능합니다.]“피해를 주지 않아?”
[약간의 피해는 어쩔 수 없습니다.]“가능하면 피해가 없어야 해. 집 내놓으면 바로 알려 주고.”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피해를 주기는 좀 그렇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쌍열 형제가 숙소인 펜션을 나섰습니다.]위니가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해 왔다.
“밤이 깊어 가니 이제 도망가려는 모양인데.”
[따라온 일행의 음식에 약을 섞어서 먹였다는 보고는 인지하고 계시지요?]아, 들었다.
이새봄과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흘려들었다.
“그래, 답은 못 했는데, 일행에게 먹인 약이 치명적인가?”
[유언을 적은 메모를 남겨 두었습니다.]“자살 위장?”
[네.]자신들의 도주 경로를 감추기 위해?
“진짜 나쁜 놈들이네, 영상 보내 줘 봐.”
[네, 마스터.]영상은 이미 펜션의 외부다.
희미한 가로등 한 개가 걸려 있는 곳을 걸어간다.
아직 잠들지 않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희미하게 어둠을 밝혀 주고 있다.
잘 포장된 길.
발자국 소리는 아주 작게 들린다.
그들이 스마트폰으로 비추는 곳은 사거리에 서 있는 마을 전체 지도다.
그곳을 한참 보다가 한 명이 손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대화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컹컹컹~
어디선가 개 짓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잠시 발을 멈추었지만 천천히 움직였다.
둘은 오른쪽으로 인가가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움직였다.
밤이 깊어 행인은 없다.
이제 집들이 없어 길을 밝히는 것은 별빛이 전부다.
별빛에 의존해서 한 방향으로만 이동했다.
파도 소리와 작은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길이 먼 모양이네.”
출발 시간으로부터 50분이 지났다.
드디어 선착장이 보이는 곳.
불 꺼진 여객 터미널이 있다.
둘은 숲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의 전등을 켰다.
숲속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갔다.
여객 터미널을 우회하는 것이다.
선착장을 지나가 다시 전등을 껐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