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75
120. 아저씨 말 잘 듣고
“모시고 내려오겠습니다.”
“그래.”
잠시 후에 염기선의 부축을 받은 도승준과 임은이가 내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때가 되었습니까?”
도승준은 여전히 절뚝거렸지만, 태영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물었다.
“아이만 먼저.”
그 대답에 임은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애, 하일에게는 충분히 이야기했죠?”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쉽게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임은이에게 묻자 걱정스러운 대답이다.
지금까지 부모와 함께 살던 5살 배기.
부모를 떠나 전혀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다.
떨어지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조건 설득하세요. 지금, 애 친부가 오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한국을 뜨는데, 설득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네.”
“엄마가 아픈 것은 애도 알죠?”
“……네.”
“아빠가 엄마 병 때문에 치료를 위해 어디를 좀 가야 하니, 아저씨와 함께 얼마간 같이 있으라는 뜻으로 설득하세요. 아이 엄마의 설득이 가장 잘 먹힐 거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임은이는 벌써 눈물이 핑 돈다.
자신의 병을 생각하면 오늘로 영영 작별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이를 보내는 심정이야 가슴이 찢어지겠지만, 애를 고아원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방법이 없다.
오히려 김명준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데려가겠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다.
~띵동~
벨 소리가 울리고, 인터폰 화면에 김명준의 얼굴이 보였다.
[일행 없습니다. 주변에도 사람은 없습니다.]“음.”
위니의 말에 답하면서 염기선에게 눈짓을 하자 문을 열어 주었다.
~탁~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김명준이 들어왔다.
“너?”
김명준에게 도승준은 이미 아는 얼굴인 듯하다.
“살아 있으니 다시 만나네요.”
“쯧.”
혀를 차면서 임은이를 찬찬히 바라본다.
“그때, 그…… 맞네, 맞지?”
주어, 목적어 모두 생략하고 임은이에게 물었다.
임은이는 고개만 까딱했다.
“기선아…… 하일이…….”
“네, 형수님.”
염기선이 2층으로 올라갔고, 거실에는 어색한 침묵만 감돌았다.
태영은 이 재미있는 광경을 웃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아이의 엄마가 되어 주어서 고맙네.”
김명준의 어색한 목소리다.
하룻밤의 풋사랑.
5년이 지나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눈앞에 그 아이의 엄마가 서 있다.
“양육비 한 푼 주지 않은 주제에…….”
태영의 말에 김명준이 돌아본다.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인생을 망쳐 버린 원흉이 하는 말로는 어울리지 않아.”
“…….”
“무릎이라도 꿇고, 고맙다고 해야지.”
김명준이 처한 현재 상황을 이들은 모른다.
태영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모를 것이다.
도승준도 임은이도 태영을 돌아본다.
말이 심하다고 느껴졌으리라.
그러나 김명준의 무릎이 천천히 내려갔다.
태영도 진짜 꿇을 거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던져 본 말이다.
“고맙네, 아니 고맙습니다. 사연을 들어서 내가 모시고 가겠다는 말은 못 하지만, 아들만은 꼭 잘 키우겠습니다.”
이제는 존대까지.
임은이의 눈에 솟구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흐윽……흐으으으응.”
그리고 곧바로 통곡이 되었다.
임은이가 두 팔로 김명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 미우나 고우나 애 아비인데.
김명준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은 임은이의 팔을 잡았다.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도하일을 안은 염기선이 2층에서 내려오다가 정지 화면처럼 섰다.
도승준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그 눈에도 빛이 반짝거린다.
“엄마.”
그 엄숙하기까지 한 만남의 식.
그것을 그만 끝내라는 듯 도하일이 발버둥을 치며 제 엄마를 불렀다.
임은이는 김명준의 머리를 감싸 안았던 팔을 풀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이 아이에 돌아갔다.
“……그, 하……일……아.”
임은이의 목소리가 갈라져 띄엄띄엄 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도하일이 염기선의 품에서 내려 제 엄마에게 달려갔다.
김명준은 도하일의 그 모습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친자 확률 99.998%입니다.]위니의 말이다.
태영은 왼손에 찬 시계를 보았다.
이들과 시계가 한 공간 안에 있기에 가능한 분석이다.
“네가 하일이구나.”
김명준이 손수건으로 눈을 닦아 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도하일에게 아는 체를 했다.
무릎은 꿇은 상태다.
“아저씨가 우리 엄마 때렸어?”
지금 모습은 김명준이 임은이를 구타하는 모습이 아니지.
그래도 울고 있는 엄마를 본 아이의 눈에는 그리 보이는 것이 맞다.
잠시 후에, 임은이가 김명준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를 도하일에게 설명했다.
“엄마도 가는 거야?”
“아니, 엄마는 아빠와 함께 병원에 입원해야 하기 때문에 하일이가 함께 갈 수가 없어.”
“그럼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럼, 엄마가 병이 낫지 않아. 엄마가 계속 아프면 하일이는 좋겠어?”
“아니 싫어. 빨리 나아서 나랑 놀아 줘야지.”
“그래, 빨리 나으려고 하일이와 잠시 떨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아저씨를 따라가. 알았지?”
도하일은 제 엄마를, 그리고 도승준을, 염기선을, 김명준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열심히 궁리를 한다.
그래 봐야 답은 하나다, 이놈아.
“몇 밤?”
“백 밤.”
“그렇게 오래?”
“그래. 그러니까 울지 말고, 잘 먹고, 아저씨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알았지?”
“히잉, 싫은데.”
다시 한번 더 열심히 설득했다.
몇 번을 설득하고 달래기를 반복하자, 도하일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잘 있으시오.”
김명준이 태영을 향해 하는 인사다.
“잘 가.”
“하일이 키워 주어서 정말 고맙소. 은이 씨 꼭…… 반드시…….”
“네, 하일이 잘 부탁합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길고 긴 작별의 시간.
김명준이 여전히 울먹거리는 도하일을 안고 대문을 벗어난 뒤에 끝났다.
임은이의 흐느낌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것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잦아들었다.
“자, 두 사람.”
“네.”
“야제의 범행에 대해 언론에 나오는 것은 3일 후가 될 거야.”
류지현의 말로는 그랬다.
3일 후에 경찰의 기자 회견을 통해서 공표될 거라고.
“네.”
“그 후, 적당한 때에 두 사람은 자수해.”
“네.”
“야제의 죄를 모두 네가 뒤집어써서 야제가 풀려나는 일이 없도록 잘 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오늘 나가야 해.”
“네, 그리하는데……?”
임은이도 가느냐는 의문이다.
“두 사람은 택시를 불러서 서울로 가고…….”
도승준과 염기선은 담담했지만 임은이는 또 놀란 표정이다.
“임은이 씨는 거처를 옮길 겁니다.”
“……호…… 혼자요?”
“내가 옮겨 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집은 구해 뒀습니다.”
“네.”
“염기선, 돈 남아 있지?”
“네, 많이 남았습니…….”
“같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염기선의 대답 중에 도승준이 물었다.
미련이 계속 남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
“나 빼고 세 사람만 남으면 작별이 더 힘들어. 그리고 그때 홀로 남게 된 임은이 씨는 어찌하라고? 그러니 나 있을 때 작별해.”
“……네.”
태영의 말에 도승준과 임은이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임은이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나가.”
“네.”
염기선은 짐을 챙겨 오겠다고 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한참 후에 보스턴백 한 개와 캐리어 백 한 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캐리어 백은 태영의 앞에 놓는다.
“이건 형수님 가방입니다.”
“그래.”
도승준과 염기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서서 인사를 했다.
“잘 가.”
“오빠, 부디 잘…….”
“그래, 은이야, 은이……야.”
또 한참 동안 작별 인사, 도승준과 임은이의 포옹과 흐느낌이 이어졌다.
이미 도하일과의 이별이 있은 뒤이기에 길지는 않았다.
이렇게 가고 나면 다시는 서로 얼굴 볼 일이 없다.
한 사람은 형무소로, 한 사람은 다른 세상으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음의 정리를 마친 도승준이 태영에게 짧게 말하고 돌아서 현관을 열고 나갔다.
~탁~
그러곤 밖에서 움직임 없이 한참 동안 있더니, 염기선은 자신이 임은이를 업고 가겠다고 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네.”
태영은 밖으로 나갔다.
둘은 아직 대문 앞에 서 있고, 염기선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택시를 불러야겠지.
“상어.”
“네.”
“쌍열이, 이젠 없다.”
“네?”
“밀항하더라.”
“아…….”
그럴 줄 몰랐겠지.
밀항하는 놈들을 고기밥으로 만들었지만,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다.
태영은 안으로 들어왔다.
임은이는 소파에 앉아 있다.
“자, 우리 가기 전에 잠시 집을 점검하고 오죠.”
“네.”
태영은 2층으로 올라가 방마다 확인을 하고, 불 켜진 방 한곳의 불도 껐다.
“위니, 도청 장치, 감시 장치 이런 거 체크.”
[없습니다. 마스터.]“아래층에도?”
[네, 아래층도 깨끗합니다.]태영이 내려가니 임은이는 세수를 하고 나와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었다.
“자, 가시지요.”
“네.”
태영이 캐리어를 현관에 두고, 집 안의 불을 모두 끄고, 보일러에서 실내 온도를 외출 상태로 조정했다.
***
“아파트라 전에 있던 곳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안재희를 치료해 줄 때 사용했던 그 집이다.
“네.”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아파트로 왔다.
임은이는 밥을 거의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몇 숟가락을 떠 넣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약은 몇 달분을 가지고 있습니까?”
“며칠 전에 받아서 3개월분입니다.”
힘없이 거실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임은이 씨를 보살펴 주기로 한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는데, 내일 아침에 오겠답니다.”
“…….”
“그래서 오늘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어서 제가 대신 있어 드려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조금 전까지 마음으로 의지하던 도승준과 염기선, 그리고 아들까지 함께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시한부의 삶을 이어 가고 있는 환자가 혼자 남겨지면, 그 허탈감을 견뎌 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
머뭇거리는 행동에 이어 한마디.
아무리 태영이 보살펴 주었고, 자신은 환자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태영은 외간 남자이다.
경계심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물론 어색하고 불편할 겁니다. 그렇지만 아픈 분이 그런 거 따질 필요 있습니까?”
“…….”
답을 안 한다.
이 경우, 긍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 있어 드리겠습니다. 조금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프면 저를 부르세요.”
“……네.”
생이 오래 남지 않은 암 환자의 통증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태영은 모른다.
드라마에서 제대로 전달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통증이 시작되면 극심할 것이다.
“두 분은 어떤 사이입니까?”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물었다.
“……?”
임은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도승준.”
“아…….”
그러자 입을 다문 채 시선은 발끝에 맞추었다.
“불편하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태영은 말을 할 듯 말 듯 하는 임은이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저와 승준 오빠의 동생인 예은이와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입니다.”
“아, 그렇군요.”
“후…… 오빠가 저렇게 된 것은 예은이…… 일로…….”
“……?”
“예은이가 중3 때, 옆 고등학교 일진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서…….”
하, 씨발.
세상이 참.
중3이면 겨우 16세.
태영이 알고 있는 임은이의 나이는 해가 바뀌어 31세가 되었을 것이니 15년 전의 이야기다.
그런 일은 요즘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듯, 한 번씩 언론에 나온다.
“그래서요?”
“그 전까지, 승준 오빠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그리고…… 모범 학생이었어요.”
자신의 생명 또한 많이 남지 않았음인지 별로 부담없이 과거를 말한다.
“…….”
모범생이 밤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런 죄를 저질렀다는 것.
여동생의 집단 성폭행의 인과 관계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 일로 법정 다툼이 진행되던 어느 날, 예은이가 목을 맸어요.”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견뎌 내기에는 너무 어렸던 모양이다.
오빠가 빡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런 일을 빡친다는 정도로 말할 수는 없다.
“저는 법은 잘 몰라서……, 그리고 그런 것을 알기에는 어려서 처리가 어찌 되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태영도 법조인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상식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렇지만 헌법에도 명시된 법조문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은 수없이 일어난다.
서민들의 법 지식과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 늘 벌어지는 것이다.
“그날, 승준 오빠는 칼을 들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가해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싸웠습니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은 많다.
그 법이 가진 한계에서 사람들은 더욱 절망한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오빠는 오랫동안 형무소에 있어야 했고, 집은 몰락했습니다.”
그랬겠지.
“오빠는, 왜 내 여동생을 죽게 만든 새끼들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겨우 상처 좀 입힌 자신은 감옥에 가야 하느냐고 울부짖었지만…….”
“…….”
“형기를 마치고 나온 오빠는 마치 숙명인 것처럼 주먹 세계에 몸을 담았습니다.”
사회와 법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도승준이 준 영상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손유재의 하수인으로 행동했다.
마치 그것이 복수이기라도 한 듯이 손유재가 지명하는 자는 모두 죽여서 묻었다.
도승준이 보내 준 영상 속의 모든 일을 그가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동생에 대한 복수하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겠지.
“어느 날, 저의 임신 소식을 알고…….”
임은이는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임은이는 이제 자러 가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비틀~
다행히 소파에 앉아 있었던지라 다시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으려 했다.
힘이 빠진 듯 스르르 몸이 기울어졌다.
태영은 임은이를 안아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들치고 뉜 후, 다시 덮어 주고 돌아서 나오면서 임은이를 바라보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