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77
122. 인륜
어머니 회사인 현베스트.
“어, 아버지도 와 계셨네요.”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주 앉아 있다.
박유진이 온다고 한 날이다.
“그래, 어서 오너라. 세상에 뭔 일이래니?”
“왜요?”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인 놈이 저는 죽이지 않았단다.”
손유재 이야기.
물론 대부분 부하를 시켜서 죽였지.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적으로 대한민국을 달군 이야기다.
어제 시작된 손유재의 범행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직원들도 어제는 대부분 그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치를 떠는 모습이었다.
“악마야, 그 정도면 사람이 아니야.”
“발굴한 유해만 벌써 서른이 넘었다.”
두 분은 교대로 열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사람의 유해이니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겨울이어서 땅이 얼어 있다.
일부를 포클레인으로 판 뒤에 사람들이 직접 해야 한다.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릴 것이다.
손유재의 아들 손용인.
그놈의 숨겨진 산속의 가옥.
그 인근에도 저렇게 묻힌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날, 그 의자에 남아 있던 핏자국과 냄새로 봐서 몇 사람은 거기서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제 아비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그놈은 어떻게?’
손용인을 흔적 없이 제거하는 것은 쉽다.
그렇게 했을 때 경찰은 수사를 하겠지만, 범인은 찾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나는 부르지 않았죠?”
태영이 말을 돌렸다.
“그래, 못 오게 했다.”
“그 사람들, 회의실에 와 있는 것 같던데요?”
태영은 이미 그들이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회의실 안에는 두 여자와 두 남자가 와 있었으니까.
“그 전에 태영아.”
“네.”
어머니가 태영을 부르는 목소리의 감이 조금 다르다.
“그 아가씨, 이새봄. 네 집에 산다며?”
“네?”
“그 아가씨? 태영이 너 동거 중이야?”
아버지가 벼락처럼 놀라며 물어왔다.
허, 이 무슨 황당한.
아니, 이새봄은 어머니와 돈 이야기만 하고 갈 것이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간 거야?
그날, 이새봄이 어머니를 찾아간 것은 확인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는 않았다.
“아, 아버지. 그럴 리가요.”
“그럼 네 엄마 말이 무슨 말이냐?”
“아, 잠깐. 당신은 그냥 좀 있어 봐요. 내가 자초지종을 들었으니까.”
“그게 동거가 아니면?”
한집에 살면 동거가 맞기는 하지.
단지, 아버지가 생각하는 동거와 의미가 다를 뿐이다.
“아무튼 동거는 아니고, 몸이 회복된 이후에 방 한 칸을 쓰자고 했다고?”
어머니가 정리를 한다.
그래도 어머니에게 이야기는 제대로 한 모양이다.
이새봄이 이사할 때까지 부모님이나 누나가 모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녀석 입으로 모든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네, 그리고 인근으로 이사 나갈 겁니다.”
“음, 그래?”
어머니의 웃음에 담긴 의미가 짐작이 가긴 한다.
“네,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합쳐서 살면 어떠니?”
“네?”
태영은 어머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애들이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는 더 놀라신 것 같다.
“물론 나이는 어리지만, 그 아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왜?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아버지의 질문이다.
“아무튼, 참 예쁘고 예의 발라서 엄마도 그 애 같으면 나이 상관없이 무조건 찬성이다. 함께 살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 식만 올리면 되지. 요즘 그런 건 흉도 아닌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아버지의 언성은 여전히 높았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세우고 가만있으라는 신호를 주며 웃기만 하신다.
“당신도 한번 봐 봐요.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그거야……. 한번 보지, 뭐.”
아버지는 또 왜 이렇게 물러서시지?
“그렇게 예쁜 아이가 태영이 아니면 그냥 혼자 살 거라고 말하는데, 내가 가슴이 다 아프더라.”
“이놈 아니면 혼자 산다고?”
“네, 그래서 젊은 시절의 내 생각도 나고.”
맞다.
내용과 과정이 조금 다른데 비슷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집에서 내쫓겼으니, 가족들과 결별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 중에 몇이 회의실에 기다리고 있고.
혼자 살 거라고 말한 이새봄의 마음에 동조된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 일단 오늘 할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니까, 다음에 하죠.”
태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 그래. 내 정신 좀 봐.”
어머니는 곧바로 수긍하고 원래의 해야 할 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단하게 오늘의 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리를 좀 하자면, 나와 네 아버지는 그래도 면식이 있는 사이이니까.”
“네.”
“네 아버지는 가능하면 가만있고, 나는 좀 비아냥거리기로 하자.”
“네, 그러시면 됩니다.”
“그래, 이야기는 태영이 네가 주로 하면서 진심을 파악하자. 그럼 합의된 거지?”
“네, 어머니.”
“나도 찬성이야.”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여기 앳윌플레이를 두고 갈 테니 상황을 좀 보시고,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오시라고 하면 그때 오십시오.”
“그래, 그러마.”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덜컥~
노크 없이 벌컥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네 사람의 시선이 한꺼번에 태영에게 향했다.
“왜 네가 와?”
이미 한번 본 적이 있는 박유진.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네가? 네가라니? 말조심 좀 하지?”
가능한 범위에서 아주 나쁜 놈처럼 행동할 거다.
가장 예의 없이 행동할 예정이기도 하다.
최대한 무시하고 모욕을 줄 생각인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뭐?”
박유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야.”
박유진의 옆에 앉은 남자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직 저놈의 입에서 이름이나 관계를 듣지 못했다.
그래도 박유진의 남편인 강해찬인 것은 안다.
소리를 지른 이유?
제 아내가 어른인데, 태영이 반말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나 보면 막 짖고, 아무나 막 물려고 하는 개가 한 마리 있었네.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야, 야 하냐? 너?”
“뭐? 너? 어린놈의 새끼가 뭐라?”
“출신이 깡패야? 새끼, 새끼 하는 것 보니 깡패 맞네?”
“이 씨ㅂ…….”
“제부, 정신 좀 차려요. 싸우러 왔어요?”
강해찬이 욕을 하려는데 중간에 말을 끊고 들어온 사람.
박유은, 어머니의 형제 중에 맏언니다.
“아, 정신이 나간 거구나. 정신 병원으로 가야 할 개 한 마리가 이리 온 거야?”
태영이 그 말의 꼬투리를 잡아서 다시 비아냥거렸다.
“씨발, 오늘 내가 사고 치고…….”
“제부.”
강해찬이 박유은을 바라보다가 씩씩대면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너도 말조심하고.”
이번에는 태영을 향해 말한다.
“말려 줘서 고맙긴 하지만, 난 그쪽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누구시길래 나보고 너라 그래?”
“그…….”
“하, 완전 개판이네.”
드디어 말을 꺼낸 이놈.
어머니의 동생이면서 4형제 중에 막내인 박상덕이다.
태영에게는 외숙이 된다.
“그래, 여기 개 네 마리. 개판 맞아.”
태영은 네 사람을 향해 손끝으로 넷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박상덕은 이빨을 앙다물고 부르르 떤다.
표정으로는 한 대 칠 기세이다.
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왔을까?
그리고 어머니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언니가 왔다.’라고 하면.
‘네, 언니. 용서해 주세요.’라고 할 줄 아는 모양이다.
‘내가 네 이모다.’라고 하면?
“원래 내가 개들과 말로 대화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개…….”
태영은 염력으로 강력한 파장의 힘을 밀어냈다.
“흡.”
소리 지르려던 박상덕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흐읍.”
“으음.”
강해찬과 박유진도 낮은 신음을 뱉었다.
박유은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이대로 머리를 회의 테이블에 처박아 줄까?
배 속을 한 번씩 만져 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류지현의 상사들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어 곧 퇴원한다고 했다.
그렇게 몸속을 건드려 주면 20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힘을 풀었다.
“이렇게 넷이나 와서 회의실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오시기 전에,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좀 알아보자고.”
“흐음.”
이제 몸이 풀리는 모양이다.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돌리고, 바짝 긴장했던 어깨를 폈다.
“자, 그래서 너는 누구야?”
박유은을 향해 물었다.
“네, 큰이모. 이름은 박유은이고.”
“난 이모 없는데?”
“뭐라?”
이번에는 박유진이다.
“아, 25년 전의 우리 어머니에게 친정이 있기는 있었는데 말이야. 이야기나 한번 들어 봐.”
“……?”
“그때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내쫓겼다고 하더라구. 그래도 손주가 생기면 용서하겠지 생각해서, 딸을 품에 안고 친정을 방문했나 봐.”
이들은 잊어버린 과거일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미화된다.
그리고 남에게 했던 나쁜 짓은 빨리 잊어버린다.
“그랬더니 친부라는 인간이 ‘어디 감히 발길을 들이느냐? 너 같은 딸을 둔 적이 없다’라고 하며 내쫓았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박유은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눈을 내리깐다.
“친부는 그렇다고 해도, 형제들까지 그러지는 않겠지 생각하고 연락했더니, 형제도 똑같았다고 하네? 그럼 어찌 되지?”
이번에는 박유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
“친부가 딸 아니라 하고, 형제도 아니라 했으니 그냥 갑자기 친정이 사라져 버리고 고아가 된 거지. 그렇지 않아?”
“…….”
“아, 성인은 고아라고 하지 않으니까 좀 다르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 일 이후에 내게는 이모가 없어.”
다시 박유은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미안하…….”
“웃기시네.”
박유은이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로 가시를 박았다.
“이이…….”
박유진은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부르르 떤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박유진이 더욱 힘들게 했다고 했다.
그리고 태영은 외조부를 ‘친부라는 인간’이라고 칭했다.
이 말은 엄청난 모멸감을 주는 단어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정말 이상하지?
“뭐가 미안한데? 왜 미안한데? 누구에게 미안한데?”
“…….”
박유은은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이 맞다.
박유진은 잡아먹을 듯하고, 강해찬은 한 대 때리고 싶어 한다.
박상덕은 그냥 여기서 나가고 싶은 표정이다.
지난번에 박유진이 찾아온 이유,
이들은 돈이 필요해서 찾아온 것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아오면 어머니가 25년 전처럼 고개를 숙이고 빌 거라고 생각한 거다.
자신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연히 과거를 사죄할 마음은 없다.
“말해 봐. 누구에게 미안해?”
“…….”
한편으로 생각해 보자.
어머니도 형제가 셋이 더 있다.
그런데 25년을 만나지 못했다.
외로우셨을 것이다.
남형제와 여형제는 또 다르다.
태영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누나의 입장도 고려했다.
‘안 돼. 생각이 이런 식이면 용서하면 안 된다.’
이 일을 기회로 불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형제간의 교류가 생기게 된다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다.
피해를 입히지 않기만 해도 된다.
‘빨대.’
한번 빨아먹고 고마워할까?
아니, 그건 그냥 시음 수준이 될 거다.
그 이상 생각할 수가 없다.
저들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않으면 물러서면 안 된다.
‘누구에게’라는 부분에서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인륜을 모르는 놈 같으니.”
박유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말 잘했네. 인륜이 뭐지? 설명 한번 해 봐.”
“이이이…….”
“혹시 애비가 딸에게 ‘너는 내 딸이 아니다, 집에 발 들이지 마라’라거나, 언니가 동생에게 ‘너는 고아와 결혼했으니 내 동생 아니다. 그러니 연락하지 마라’ 그런 것이 인륜이야?”
~딸깍~
“맞네. 그게 인륜이면.”
오시라고 신호를 보내기 전인데,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한마디 했다.
아버지도 뒤따라 들어왔다.
“유현아.”
맏언니 박유은이 눈물이 글썽해지며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 없이 의자에 앉았다.
박유진이 어머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머니의 나이가 50초반이다.
지난해 말에 그 차량 사고가 발생한 후에 바이호르미어를 주사했기에 지금은 40대 중반으로 보인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너?”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비하면 아주 어리게 보이지.
거기에 박유진은 세파에 시달려서 원래 나이보다 더 늙었다.
얼굴 주름을 방지하기 위한 보톡스를 맞은 것인지, 아니면 필러를 채운 것인지 약간의 어색함이 있다.
“제부.”
박유은이 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제부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간결한 대답이다.
아버지 역시 누나를 품에 안고 처가에 갔었다.
얼마나 문전 박대를 심하게 당했는지 들었다.
“동생을 꼬드겨 간 고아 도둑놈의 새끼가 있을 뿐.”
이어진 아버지 말씀이다.
아마도 그때에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모양이다.
가슴에 박혀서 응어리로 남아 있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사과가 먼저 아닌가? 예의도 없고, 양심도 없네. 하긴 사람이 아니니까.”
“…….”
“…….”
태영의 그 말에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미안하다, 유현아.”
박유은이 눈가에 눈물을 반짝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저 정도 수준으로는 받아 줄 수 없다.
박유진과 박상덕, 그리고 강해찬은 고개를 돌려 박유은이 한 말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으니까.
말로 하는 사과조차 싫다는 뜻이다.
아니면 사과할 일은 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무릎 꿇고.”
“에이 씨.”
~꽝~
무릎을 꿇으라는 태영을 노려보던 강해찬.
주먹으로 테이블을 꽝 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태영은 피식 웃었다.
“사과도 싫고, 잘못을 인정하기도 싫으면 저렇게 가고, 다시는 안 보고 살면 되는 거고.”
“우리 생각만 하고 온 모양이다.”
태영의 말에 박유은이 작게 말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