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78
123. 조셉이 살아 있다
“우리 생각?”
‘잘못했다. 아버지가 그랬다고 해도,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되는데.’ 같은 후회와 사과를 담은 우리 생각은 아니다.
‘미안하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자기변명적인 우리 생각도 아니다.
‘우리는 널 용서했다’ 같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우리 생각도 아니다.
‘네가 사장이라면 부자이니 우리에게 돈 좀 주면 안 돼?’라는 것이 바탕에 깔린 우리 생각이다.
“…….”
“우리 생각, 아주 웃겨.”
그래도 한 번 더 긁어 주었다.
“그만 가 보마.”
태영의 말끝에 박유은이 일어섰다.
박유진과 박상덕에게 나가자는 신호를 했다.
박유진이 어머니를 향해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박상덕은 들릴 듯 말 듯 ‘씨발’ 소리를 몇 번 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박유은이 아버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유진은 ‘실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병신.’이라고 중얼거리며 나갔다.
언니에게 병신이라.
잘 가라는 말도, 잘 있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태영은 박유은이 돌아서며 아주 작은 쪽지 한 장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한번 비아냥거려 줄까 하다가 쪽지 때문에 참았다.
어머니는 테이블 위에 있는 갑 티슈에서 휴지 한 장을 빼서 눈을 닦았다.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쓰다듬어 주었다.
“어머니.”
어머니도, 아버지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태영도 두 분의 기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러곤 쪽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니?”
“납골당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안치단 번호가 씌어 있습니다.”
아무도 부모의 생존 여부는 말하지 않았다.
쪽지의 내용을 보면, 외조부와 외조모는 모두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쪽지를 손에 들고 어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매정하게 내쫓아도, 납골당에 있는 사람들이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꼭 안아 주는 모습을 보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두 분만 있을 수 있도록.
“위니.”
[네, 마스터.]“셋은 사람 아니니까 버리기로 하고, 박유은에게 당분간 한 기 붙여 둬.”
오늘 보여 준 행동과 말이 진실인지 가식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야, 좀 빨리 오면 안 되냐?”
다들 퇴근하고, 사무실에는 보안 경호 요원 한 명이 지키고 있고, 회의실에 류지현이 앉아 있다.
“야, 너 때문에 퇴근도 못 하고 있는 우리 경호 요원에게 미안하지 않냐?”
사실상 태영이 일부러 늦게 온 거지만.
좀 덮어씌우면 어때?
“아,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류지현의 사과에 보안 경호팀 직원이 웃었다.
“이제 퇴근해도 됩니다.”
“네, 사장님.”
“이제 다음 달이면 소속이 바뀌네요?”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
경호 요원은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터니테크의 보안 경호팀은 모두 이달 말 일자로 소속이 바뀐다.
그래 봐야 업무는 동일하다.
“내놔.”
둘이 남게 되자 바로 손을 내밀었다.
“뭘?”
“에이, 정말.”
“무엇인지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그리고 맡겨 놓은 거라도 있어?”
“아우, 정말. 너 정말 패고 싶어 죽겠어. 부탁하자, 한 대만 딱 맞아 주면 안 되냐?”
“네가 더 아플 텐데?”
“아욱, 아욱. 정말 속이 터져 죽겠다.”
놀리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하긴 누가 국정원 직원을 감히 놀릴 수 있겠어?
태영이니 놀려 먹는 거지.
“밥은 먹고 화내는 거야?”
“사 줘.”
“나가자.”
“어디로 가? 그냥 배달 음식으로 하자.”
“사무실에 음식 냄새 풍기지 말고…….”
“나가면 너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여기서.”
그건 그렇네.
룸이 있는 식당으로 가도 서빙 직원이 수시로 들락날락할 거다.
“할 수 없네. 치킨?”
“치맥.”
“차 가지고 왔다면서?”
“한 캔 정도는 깨고 가면 돼.”
큰일 났군.
이거 이러다가 밤새 잡혀 있는 거 아닐까?
[마스터.]“음.”
류지현과 대화 중인 것을 뻔히 아는 위니가 태영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조셉이 생존해 있습니다.]헛, 정말.
그럼 잠시 자리를 피해서 확인해 보자.
“그래, 그럼 시키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너 도망칠 거 아니지?”
“도망칠 거야. 그러니 얌전히 기다려.”
대답을 하고 회의실을 나와서 사장실로 들어갔다.
“위니, 조셉 설리반?”
[네, 2분 전에 신호가 잡혔습니다. 엘리슨과 함께 있습니다.]통신이 되는 지역에 접어든 모양이다.
위니는 전파 신호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산골짜기를 빙빙 돌았으면, 전파 에너지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충전된 에너지가 부족할 거다.
“얼마 동안 통신이 되었어?”
[15초입니다.]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둘이 용케 살아 있었네. 블레이크와 트로이는?”
트로이는 부상이라고 한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둘은 확인되지 않습니다.]“흩어졌거나 죽었거나. 위치는?”
[냥강 줄기의 경장촌이라는 곳으로, 티베트 자치구에 있습니다.]“라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어?”
[280킬로미터입니다. 인근에 린즈시가 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규모가 제법 큽니다.]태영의 기억으로 조사단이 찾아간 곳은 지형이 무척이나 험난한 곳이었다.
추위를 견뎌 내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지금까지 생존했다.
그렇다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조사하러 간 지역 알지? 위성 전화기를 켰으니까.”
[네, 마스터.]“거기에서는 얼마나 멀어?”
[23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그래.
그 정도라면 생존 능력은 알아줘야 해.
그나저나 이걸 알려 줘야 해, 말아야 해?
‘어떻게 알았는데?’라고 물으면?
그래도 한 사람에게는 알려 줘야 할 것 같다.
일단, 치맥을 시켰다.
30분 후에 배달이 가능하다고 했다.
“무슨 치맥 하나 주문하는데 그리 오래 걸려?”
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류지현이 투덜거린다.
“너 별명을 공주님 말고, 투덜이로 해라.”
“또, 또 프린세스라니까.”
프린세스와 공주님이 다른가?
“아무튼, 조셉과 앨리슨이 살아 있어.”
“뭐, 뭐? 뭐어어어?”
고함은 지르지 않았지만, 손유재의 자료 이야기보다 더 놀란다.
심지어 눈빛까지 바뀌었다.
“……어, 어떻게?”
“뭐가?”
“어떻게 알았냐고? 어떻게?”
“간혹 내가 ‘말 못 해.’라거나, ‘묻지 마.’라고 했던 거 기억나지 않아?”
“그…… 그럼, 다른 사람들은?”
“몰라. 죽었을지도.”
“……야, 너……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냐?”
“쉬워 보여?”
“그, 그건 아닌데…….”
“나하고 같이 가지 않았으면 류지현도, 조병원도 거기 눈 덮인 산골짜기 어느 곳에 반쯤 묻혀 있을 거야.”
“말을 해도 꼭.”
“알아 몰라?”
“……알아.”
“그러니까.”
“……근데, 이…… 이거 알려 줘야 하는 거…….”
“너처럼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그게 문제인데, 그래도.”
태영은 류지현을 빤히 보았다.
“그들에게는 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보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어.”
“……하.”
이게 참 애매하지.
태영이 생각해도 애매하고 난감한 일이다.
“그러니까 입 다물고 너 혼자만 알고 끝내.”
“……틀린 말이 아니어서 더 황당하네.”
“발설하면, 뒷감당하기 힘들 거야.”
“……그래, 뒷감당…… 힘들 거야. 그래도 알려 주면 그들을 구해 올 수 있지 않을까?”
“외교적으로? 아니면 구출조를 보내서?”
“……?”
“외교적으로는 그들이 죽고 난 뒤에도 타결되지 않아. 구출조는 전쟁을 각오해야 하고.”
“그건, 그건 맞네.”
“그래.”
“혹시 너, 너는 손쓸 수 없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냐?”
이틀이나 사흘 정도 이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직접 데려오는 것은 못 해도 안전지대까지는 데려갈 수 있을 테니.
그렇지만 그조차도 태영의 비밀을 너무 많이 공개해야 한다.
류지현이 고개를 젓는다.
불가능하지.
스스로 생각해 봐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알면?”
“……그냥.”
“그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아무래도 말해 주면 CIA 측에 알려 줄 것 같다.
~삐~
치킨이 온 듯하다.
손유재 관련해서 도승준이 보내온 자료는 어디까지 넘겨주는 것이 맞을까?
그 범위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손유재는 여전히 목장의 낡고 허름한 창고 한구석에 자료를 숨겨 두었다.
그것은 또 어떤 파급 효과를 낼까?
“넌, 현장 조사는 나가지 않지?”
치킨에 함께 온 캔 맥주로 식사를 끝내며 물었다.
“그럴 일은 없지. 일은 저쪽으로 넘긴 거니까.”
“그래, 알았다.”
“너, 말해 봐.”
“뭘?”
“아직도 남아 있는, 너는 알고 나는 모르는 거.”
줘도 그냥 주지는 못하지.
뭔가 받아 내든지, 아니면 류지현의 꼭지가 돌도록 놀려 먹든지.
***
차가 없을 때에는 늘 지상 출입구를 이용했지만, 차가 나온 뒤부터는 늘 지하로 다니게 된다.
오늘도 평소처럼 외출을 위해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기다리고 있네.”
[자동차는 1대, 인원은 5명입니다.]태영이 엘리베이터 룸에서 주차장으로 나가 차를 세운 곳으로 이동했다.
그때, 자동차 사이에서 몇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걸음걸이는 성큼성큼.
그러나 소리 나지 않게 다가온다.
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태영의 앞으로 다가온 사람은 네 명이다.
아마도 운전자는 차에 있는 모양이다.
“최태영?”
가장 앞에 선 자.
앞머리와 윗머리는 짧고 뒷머리를 어깨까지 길렀다.
스마트폰과 태영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다른 자들은 태영의 주변을 에워쌌다.
복장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메이커의 패딩 점퍼.
얼굴에서 보여 주는 것은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이다.
“누구?”
일부러 물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안 경호팀 직원들이 구둣발 소리도 요란하게 주차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초대하는 분이 있어 데리러 왔어.”
앞에 선 자는 약간 억양이 이상한 한국어.
그리고 반말이다.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중국인이거나 조선족일 가능성이 높다.
반말의 의미는 저자보다 태영이 어려 보여서가 아니다.
포식자의 위치에서 하찮은 것을 대하는 방식이다.
“(데려가라.)”
고개를 돌리며 중국어로 명령했다.
주위의 셋이 접근했다.
지하 주차장에는 곳곳에 CCTV가 있다.
차량마다 블랙박스도 있다.
그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그 말에 처음 태영을 확인하던 자가 피식 웃는다.
“꼭 뭐라도 되는 양 버티네.”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자.
피식, 비릿한 웃음을 띠며 가소로운 듯 말했다.
그때였다.
“사장님.”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태영이 있는 방향으로 오던 이진기가 불렀다.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경호팀을 내려오라고 했다.
싸우자고 들면 앞에 있는 자들이 상대도 안 된다.
조백려가 이들을 보낸 것을 알기에 가 볼 생각으로 이런 방법을 쓴 것이다.
“응, 어서 와요.”
앞에선 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보안 경호팀 직원들의 복장과 무장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전투복으로 보이는 검은 옷.
방검복을 입었고, 옆구리에는 가스총과 삼단봉이 매달려 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이자들이 강제로 날 데리고 가려 하네요.”
그 말을 미처 마치기 전.
경호팀 직원들이 위치를 잡았다.
동시에 가스총과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딱~딱~따닥~딱~따닥~딱~
삼단봉을 펼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너희들 뭐야?”
이진기의 고함에 중국인들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한국어 구사자는 태영과 경호팀 직원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대충 훑어봐도 자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알 것이다.
물론, 저들의 품속에 칼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싸움이 벌어지면 이쪽이 무조건 이긴다.
크로스백 안에서 1번 스마트폰을 꺼내 조백려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번 노래방 사건으로 폰에 저장되어 있던 번호다.
[전화를 해?]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은 모양이다.
바로 받으면서 답을 하는데, 의외라는 반응이다.
하긴 놈들이 잡아서 데리고 가면 전화할 수 없을 테니까.
“네가 보낸 애들이 싸가지가 없네.”
[음? 호호호, 그래?]잠시 멈칫하다가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너 양아치야?”
[뭐?]“이놈들 모두 다리 하나씩 분질러서 보내고 싶지만, 오늘은 그냥 보내 준다.”
[야~]조백려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리고 초대를 하고 싶으면 앞으로는 정중하게 초대해. 이렇게 양아치처럼 굴지 말고. 알았지?”
[뭐라. 이…….]말을 들을 필요 없으니,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크로스백으로 집어넣었다.
“야, 모두들 꺼져라. 오늘은 그냥 보내 준다.”
태영의 말에 침을 뱉으면서 돌아서는 일부, 그중 일부는 계속 뒤를 돌아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지 그들 일행이 있는 자동차로 갔다.
[조백려가 전화하고 있습니다.]무음이라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으니 위니가 알려 준다.
“안 받을 거야. 무시해.”
[네, 마스터.]꼭 만나고 싶으면 방법은 많다.
사무실로 심부름꾼을 보내도 된다.
우편이나 택배, 그것도 아니면 퀵을 이용해 초청장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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