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83
128. 오늘부터 1일
“언제?”
모른다. 언제쯤 가능할지.
R존에서 사용하던 동급 성능의 컴퓨터를 한 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위니가 가지고 있는 차원과 시간 궤적을 계산하는 프로그램.
그것으로 시기를 계산해 내야 한다.
그걸 계산할 컴퓨터는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다.
그 후, 차원과 시공간을 넘어가게 해 주는 R버너를 만들어야 한다.
R버너의 가동은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땅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사용하면, 전국이 정전될 것이다.
정전 이전에 모든 송전 선로에서 불이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초대형의 발전 설비를 별도로 구축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R버너를 설치할 장소는 탐사선.
그래서 탐사선을 준비하는 것이니까.
“몰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니까.
“……나, 고려로 따라간다고 하지 않을게.”
그때, 고려로 따라가겠다고 했었다.
반드시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다.
“결혼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게.”
“……그래.”
“대신, 그때까지만 우리 사귀면 안 돼?”
“……?”
띵.
말하는 것이 뭔가 수상하다 싶은 바로 그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남겨질 가족을 두지 않겠다는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었다.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고려에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겠다.
결혼해 달라고 하지도 않겠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사귀자고?
“……흐음.”
헛기침만 나온다.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태영이 결심한 것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다.
새로운 가족은 아내와 아이들이다.
부모님과 누나는 이미 있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제외하고 생각했다.
“그래 줄 거지?”
뭐라고 대답할까?
이새봄과 한집에 산 지 이미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사용하는 방은 다르다.
이젠 종종 아침을 함께 먹고, 또 간혹 저녁도 함께 먹는다.
그중에 몇 번은 태영이 요리를 했다.
이새봄은 엄지를 올리며 맛있게 먹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얘를 똑바로 보면 심장이 떨렸다.
밥숟가락을 들어 올릴 때, 윤기 반짝이는 붉은 입술 사이로 숟가락이 들어갈 때, 입 맞추고 싶었다.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써야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어, 매번 참고 또 참았다.
빨리 이사 나가기를 바라면서.
눈에 반쯤 고인 눈물.
이 애는 왜 이렇게 간절하단 말인가?
자신의 목숨을 다할 만큼 태영을 향한 마음이 간절했었다.
간절한 소망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숨이 막혀 죽어 가고 있었다.
코밑까지 빠져든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렸다.
그 간절한 마음은 잘 안다.
이새봄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어느새 이새봄이 태영의 무릎에 앉았다.
“오늘부터 1일 하자.”
태영은 그렇게 대답했다.
흡.
대답과 동시에 이새봄의 두 팔이 태영의 목을 감았다.
곧바로 입술도 찾아왔다.
부드러운 입술이 감미롭게 느껴졌다.
숨결과 함께 찾아오는 약간의 술 냄새까지.
태영의 입술을 밀며 안으로 찾아드는 무언가를 느끼며 달콤함과 편안함이 들어찼다.
그래, 진작 이럴걸.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입술은 감미롭고, 호흡은 간지러우며, 마음은 행복하다.
다만, 밖에 이한봄과 그 친구들이 잔뜩 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그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지금은 둘만 있다.
[이한봄, 이리 옵니다.]이새봄과의 긴 입맞춤 중에 위니가 알려 온다.
이새봄의 얼굴을 밀어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으려 버텼다.
“누가 와.”
입술만 떨어질 정도로 밀어내고 말했다.
“흡, 흐흡.”
이새봄이 재빨리 목을 감은 팔을 풀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헛기침을 했다.
얼굴을 홍조로 물들었다.
약간의 술기운과 흥분된 혈류로 인해 더 붉어 보인다.
그나마 술기운으로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첫 키스다.
오늘부터 1일이라니.
참 쉽게도 대답했다.
~딸깍~
“둘이 뭐 해?”
위니가 알려 준 대로 이한봄이다.
“이야기 좀 하느…….”
“어, 우리가 있어서 귀가 키스를 못 했구나. 알았다. 난 나갈 테니, 마음대로.”
태영이 뭐라고 말하는 사이 이한봄이 제 마음대로 지껄인다.
하긴, 둘이 침대 끝에 아주 가깝게 앉아 있다.
이새봄의 몸은 태영의 허벅지에 약간 걸쳐 있다.
오해.
오해 아니지만, 설사 키스하지 않았더라도 오해할 만하다.
“넌 좀 패고 싶다.”
문을 닫으려는 이한봄에게 말했다.
류지현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아니 형님을 팬다고? 이 몹쓸 매제야.”
“아우, 저 주둥이.”
“오빠, 우리 바로 나갈 거야. 이야기 좀 더 하고.”
이새봄의 눈가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가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한봄도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린다.
“그래, 마우스 투 마우스, 그게 이야기잖아?”
~탁~
이새봄의 말에 끝까지 한마디 더 하고는 문을 탁 닫고 사라졌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밖은 왁자지껄하다.
“오빠아.”
다시 이새봄의 입술이 찾아왔다.
***
이한봄과 친구들은 모두 돌아갔다.
소파에 기대어 잠든 이새봄.
자신의 방으로 생각하는 손님방으로 안고 가서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이제 남은 뒷정리는 태영의 몫이다.
[마스터, 1시간 전에 안재희 양에게서 톡이 왔었습니다.]아, 맞다.
폰을 꺼냈다.
(지원한 대학 인터뷰는.)
(화상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중에 2곳에서.)
(대면 인터뷰가 가능한지.)
(알려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대면 인터뷰하지 않아서 안 된다면.)
(그곳은 포기하려 합니다.)
여러 줄에 걸친 인터뷰 이야기가 보였다.
한국에 있는 학생을 미국으로 인터뷰하러 오라고?
미친것들.
(그쪽 상황도 알 겸 다녀오도록 해. 다녀오는데 필요한 돈을 보내 주마.)
(함께 가 주고 싶은데, 일이 많아서 시간을 뺄 수가 없다.)
1시간이나 늦었지만, 답을 보냈다.
미리 다녀와 보는 것이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해서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빠.)
즉각 답이 왔다.
“위니, 안재희에게 3천만 원 보내 줘.”
[네, 마스터.]폰을 주머니에 넣고, 테이블 위에 남은 음식들을 치웠다.
음식 찌꺼기와 빈 술병들도 치웠다.
진공청소기로 그들이 놀았던 흔적을 지워 냈다.
마지막으로 물걸레 청소기까지 돌렸을 때는 시간이 제법 지났다.
청소기 소리에 혹시 깨지 않았나 싶어 문을 열어 봤지만, 곤하게 잠들어 있다.
술기운도 있어서 그럴 것이다.
샤워를 하여 남아 있는 술기운을 모두 털어 냈다.
“피곤한 하루네.”
제법 힘든 하루였다.
몸을 누이면 바로 곯아떨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잠들 수는 없다.
밤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니.”
[네, 마스터.]“이새봄의 동향.”
[네, 마스터.]“왜 내게 알려 주지 않아?”
[‘새봄 님’은 경계 대상이 아닙니다.]하, 이거 참.
위니가 ‘새봄 님’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태도는 더욱 달라졌다.
“그래, 알았다.”
위니와 입씨름할 필요는 없다.
사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고, 키스도 했다.
‘오늘부터 1일’이라는 어느 광고에 나왔던 말로 둘의 관계는 명확해졌다.
그러니 위니의 생각을 정정해 줄 필요는 없다.
다만, 아버지에게 어찌 설명하지?
그건 천천히 생각하자.
“그자들과 조백려.”
[네, 마스터.]“어떻게 하고 있어.”
[모두 풀려났습니다.]그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짐작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으니.
“이유는 폭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동료들을 불러 손을 썼습니다.]뭔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조백려는?”
[입원 중입니다. 내일 MRI 촬영을 포함해서 검사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습니다.]태영의 특별한 신체 능력에 대해 위니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염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 힘으로 따지면, 상상을 초월하는 것도 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염력으로 사람의 신체 내부를 건드리는 것은 위니도 알아내지 못한다.
“내가 손을 쓴 거야.”
[아, 알겠습니다. 마스터.]“변호사는 어디 있어?”
[동료들과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유흥 주점에 있습니다.]단란주점?
룸살롱?
[영상 보여 드릴까요?]“응, 어찌 노는지 한번 보자.”
사실 룸살롱에서 노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다녔던 학생이 그런 곳에 갈 일이 있겠는가?
입대 전의 대학생 나이를 기준으로 보면, 재벌 아들이 아닌 다음에는 당연히 없다.
그래서 그쪽은 잘 모른다.
[지금 전송합니다.]위니의 대답과 함께 룸살롱의 영상이 전송되어 왔다.
“허, 개판이구만.”
엉덩이 만지기, 가슴 주무르기.
누구 하나 그 어떤 제지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더 이상하다.
심지에 입에 술을 머금고 파트너 상대에게 입으로 전하기도 한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
접대부는 모르겠지만, 저기 앉은 변호사들은 법을 빙자해서 타인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자들이다.
법은 정의롭지 않다던 그 말이 또 생각난다.
“에이, 눈 버렸네.”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곳을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일단, 빼고.”
[네, 마스터.]유흥 주점의 영상이 사라졌다.
“열둘은 어디 있어?”
[인천입니다. 해안의 창고 건물인데, 외관은 창고이고 내부는 사무실과 운동 시설입니다.]“영상 보여 줘.”
[네, 지금 전송합니다.]무척이나 넓은 공간.
사람들 100명쯤은 뛰어놀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한쪽에 사무실로 보이는 벽과 문이 있다.
그 앞쪽으로 운동 공간과 휴식 공간이 있다.
휴식 공간에는 단단해 보이는 소파와 테이블이 두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 늘어져 있다.
소파 개수가 너무 많다.
운동 중인 인원이 일곱, 소파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자들이 열넷.
조백려가 입국했을 당시에 들어온 인원보다 많다.
“하.”
술판을 벌이는 자들의 대화가 기가 차다.
태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잡아 족쳐야 했다는 소리.
다시 만나면 팔다리를 모두 잘라 내겠다는 말.
목을 따 버리겠다는 말.
술과 안주가 놓인 탁자를 꽝꽝 내려치는 자도 있다.
칼을 들어 실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자도 있다.
“이것들 봐라?”
[모두 마스터를 해치겠다는 말들입니다.]“경찰 이야기도 하는데?”
[네, 경찰까지 목을 따 버려야 했다고 합니다.]경찰은 겨우 다섯이 왔다.
그것도 특공대가 아닌 치안 경찰이었다.
맞짱 뜨면 경찰이 무조건 지는 판.
다만, 숫자에 상관없이 칼을 들고 공권력에 도전하면 작살이 난다.
“그래, 저기 캐비닛 안에 워처 들여보낼 수 있지?”
벽 한쪽에 철제 캐비닛 다섯 개가 일렬로 서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캐비닛이라도 워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은 있을 것이다.
[네, 가능합니다.]“보자.”
워처가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네.”
[라이트를 켤 수 있는 시간은 5분입니다.]“이동시켜 봐.”
워낙 개체가 작으니 라이트 시간이 짧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무기입니다. 소총과 수류탄도 있습니다.]“이것들이 한국 땅에 전쟁이라도 하러 왔나?”
[…….]“워처 나오게 하고, 사프캣 보내 봐.”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구멍을 내면 저들이 알게 됩니다.]“괜찮아. 불을 지를 걸 찾아보고 없으면 수류탄이라도 폭파시키자. 그 전에 출입구를 모두 봉쇄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사프캣이 다니며 출입구 손잡이에 레이저를 쏘았다.
순식간에 녹아 붙겠지만, 소리도 나지 않는다.
[캐비닛 구멍 냅니다.]“측면 상단에서 한 번에 모두 뚫어. 그리고 모두 확인해 보자.”
~슝~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사프캣이 깜깜한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캐비닛은 워처가 들어갔던 곳이다.
[두 번째로 이동합니다.]두 번째 캐비닛도 무기인데, 아래쪽에 큰 깡통 여러 개가 있다.
세 번째는 주로 총탄이다.
네 번째는 도검류의 무기들이 들어 있다.
다섯 번째는 통신 장비들이다.
창고 안에 있는 자들 중에 몇의 시선이 캐비닛으로 돌아왔지만, 금방 관심을 끊었다.
“부근에 인화성 물질은 없나? 휘발유나 석유 같은 것?”
[없습니다. 다만 두 번째 캐비닛에 총기 소제용 인화 물질이 있습니다.]“좋아, 거기 모두 구멍을 내서 흘려보내고 불을 붙이자.”
[네, 마스터.]30초.
사프캣이 보낸 영상을 확인하니 대부분의 기름이 흘러나왔다.
캐비닛 바닥에 고이고 다시 밖으로 흘러 나갔다.
“불.”
[네, 불 붙입니다.]불을 붙이자마자 사프캣은 빠져나왔다.
~꽝~꽈광~
캐비닛 내부에 압력이 차오르자 바로 폭발했다.
총기류와 기름통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뭐야, 저게 왜 저래?)”
비명이 터져 나왔고 운동을 하던 자들과 술을 마시던 자들이 정신없이 뛰었다.
일부는 캐비닛 쪽으로, 일부는 문 쪽으로.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서 셋이 달려 나왔다.
~꽝~꽝~꽈광~
열을 감당하지 못한 수류탄이 폭발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수류탄이 터지며 열 명 정도가 뒤로 튕겨 나갔다.
또 몇 명은 날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불길 속에서 총탄이 든 캐비닛이 넘어졌고, 종이 박스에 들어 있던 총탄들이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바닥에는 기름과 함께 불길이 타오르는 중이다.
“재미있네.”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그리 말하면 안 된다.
그러나 총기류가 불법인 나라에 총기류를 가지고 들어왔으니 죽어도 된다.
~탕~타다다당~탕탕~타당~
열기 속에서 총탄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보고 자야겠다. 오늘 힘들었거든.”
[네, 마스터.]“결말은 내일 아침에 알려 줘.”
[네, 알겠습니다.]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