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85
130. 어머니의 눈물
“일정 안에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요청한 것 외에 다른 소재 사업은 유 대표님의 역량이 닿는 데까지 마음껏 확장하면 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샘플로 사용한 원료 잔량은 오늘 중에 터니테크에 도착하도록 해 주세요.”
“상당히 많은 양인데요?”
“공간은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공장 매각 이야기 들리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연락 주시구요.”
“네.”
확장성을 고려해서 공장 부지는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윈썸 히터 5대, 여기 두고 갑니다.”
“외부로 나가도 됩니까?”
“보안 구역 안에서만 사용하세요. 공식화는 메이스타 통해서 이루어질 테니까, 그때 이후에는 나가도 됩니다.”
20대의 코믈라이저 중에 5대는 이곳에 남겨 둔다.
샘플용 7D 프린터 2대도 여기 그대로 있게 된다.
이젠 모든 제품의 생산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기본적인 원료와 소재만 있으면 만드는데 제약이 없어진다.
통신 위성?
2레벨 소재가 나오면 그것도 가능하다.
“자, 우린 이만 갑시다.”
“네, 나가시죠.”
모두 주차장으로 나왔다.
넓은 주차 공간에 차는 절반 정도다.
“한슬이는 나랑 가자.”
“네.”
“저는 사장님 차 타면 안 돼요?”
김한슬의 대답에 뒤이어 신정현이 물었다.
“신 대리는 김 전무님 모시고 가야지.”
김한슬은 조수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있다.
“신 대리, 눈치도 없이.”
김지열이 핀잔을 준다.
무언가 오해를 하는 것 같지만, 저들은 이새봄의 존재를 모르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태성기술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수고들 했습니다.”
답을 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사이드 미러로 김지열의 차가 따라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김한슬.”
“네, 선배님. 아, 아니 사장님.”
“오늘 본 소감이 어때?”
“……그……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맞아. 그게 정답이다.
“대학 마치면, 유학 가도록 해라.”
“네?”
유학을 가도 더 많이 배운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넓은 세상으로 나가 볼 필요가 있다.
“언젠가 태성기술의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러려면 공부를 더 해라.”
“…….”
“충분히 공부해서, 오늘 본 것에 대해 말해 줄 때, 네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
“……네.”
“네 전공이 신소재 공학이지만, 유학에서 현재의 전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
“왜? 돈 때문에?”
“……네.”
“올해 안에 너희 집 생활은 모두 복구될 거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네 지분의 빚을 탕감할 수는 없겠지만, 네가 가진 지분으로 발생하는 배당금이 제법 될 거야.”
“아…….”
“김 전무님 배당금도 있고.”
“아버지 지분을 남겨 두셨습니까?”
“많지는 않지만, 남겨 두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 전무님 연봉도 충분하니까, 유학비는 걱정 말고.”
“……네.”
“돌아올 때, 최고가 되어서 와라.”
“고…… 고맙습니다.”
김한슬의 손이 태영의 손목으로 왔다.
잡으면 운전에 방해되지.
대신 태영이 김한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
~띵동~
어렵게 벨을 찾아 눌렀다.
가로등이 없는 주변은 제법 어둑어둑하다.
제법 잘 디자인된 집으로 2층 구조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측면이 보이지만, 정면으로 보면 괜찮을 것 같다.
30초가 지났는데 답이 없다.
“없나?”
화장실에 갔다면 답을 못 할 수도 있다.
“위니, 워처 보내 봐.”
[네, 마스터. 보냅니다.]위니가 워처를 보내고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마스터, 들어가 보시기를 권합니다.]“그거 무단 침입이야.”
[조금 전에 목을 매달았습니다. 지금 들어가야 구할 수 있습니다.]“뭐?”
권준성이 거의 매일 싸웠다고 하더니.
태영은 곧바로 담을 넘었다.
~꽝~
문이 잠겨 있었지만, 태영이 당기자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1층부터 2층이 통으로 트인 거실.
가녀린 여인의 몸이 하얀 실내복을 입고, 거실 2층의 난간에 매달려 있다.
난간에 걸쳐진 줄이 여인의 목에 걸려 있다.
식탁 의자가 바닥에 넘어진 것이 보인다.
권준성이 알려 준 이름은 이정아다.
“흐에엑.”
아마 태영이 벨을 눌렀던 그때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짧아서 죽지 않았던 거지.
그래도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온다.
한 손은 목을 감은 줄에, 한 손은 태영을 향해 마구 휘젓고 있다.
살려 달라는 뜻인지, 죽게 내버려 두라는 뜻인지.
일단 그런 생각은 접었다.
신발 벗을 사이도 없이 들어서면서 이정아의 몸을 부양시켰다.
“푸후우우우.”
목을 조르던 줄이 느슨해지자 숨을 크게 들이쉰다.
두 손은 목을 감은 줄로 갔다.
태영이 몸을 부양시켜 이정아의 몸을 안아 올렸다.
그러곤 목을 감은 줄을 풀어냈다.
바닥으로 내려섰다.
이정아를 소파에 앉히고 싶은데 어깨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푸흐흐흑, 왜? 왜? 그냥 두지. 흐으으윽.”
거친 숨을 내쉰다.
원망의 말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죽게 버려두지 왜 살렸느냐고?
“어머니, 저 지혁이 친구입니다.”
일단 그렇게 말했다.
권준성에게도 돌아오면 아들은 되어 주지 못해도 아들의 친구는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지혁이 친구? 흐으으읍.”
거친 숨을 몇 번 토하고 나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 보인다.
이제야 움켜잡고 있던 태영의 옷을 놓는다.
오늘 오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
만일 며칠 후에 왔다면?
2층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죽음을 보았을 것이다.
친인척이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병원, 일단 병원을 먼저 가시지요.”
태영이 이정아의 손목을 잡으며 입구 쪽으로 이끌었다.
이정아가 팔을 비틀어 놓으라는 몸짓을 한다.
“흐읍, 나 안 죽었어. 그냥 놔.”
“정말 괜찮겠습니까.”
“흐으으윽, 흐윽,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더니, 병원 가는 것까지?”
방금 목을 매었던 사람이 따지듯 묻는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아, 네…….”
“너 신발부터 벗어. 그리고 본 적이…… 그래, 왜 너만. 맞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소리친다.
조금 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그 사람이 맞아?
“네, 맞습니다.”
대답을 하며 신발을 벗어 현관으로 던졌다.
“네가 지혁이 친구였어?”
“전우니까요.”
돌려서 대답했다.
어머니들은 아들의 친구를 알 수도 있다.
친구라고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는 나은 대답이다.
“전우…… 전우라면서 왜?”
눈을 들어 태영을 똑바로 바라보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애끓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 눈을 통해 보인다.
“이놈아, 네가 돌아올 때 내 아들 지혁이랑 같이 좀 오지.”
~퍽~퍽~퍽~
그렇게 말하며 태영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퍽퍽 친다.
그 가녀린 손으로 때려 봐야 간지럽지도 않지만, 가슴 한편이 천둥 치듯 울린다.
“좀 데리고 오지. 목을 잡아서라도 끌고 오지.”
~퍽~퍽~퍽~
태영은 그 주먹을 고스란히 맞았다.
‘때리세요, 실컷 때려 주세요.’
“이놈아, 같이 좀 오지.”
이제는 주먹질 대신 태영의 가슴옷자락을 잡고 흔든다.
그나마도 금방 멈추고 팔이 축 처졌다.
태영은 이정아를 껴안았다.
“어머니, 함께 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끄윽, 흐윽. 이놈 지혁아. 흐으으윽.”
이정아도 울고 흐느끼며 태영을 껴안았다.
아버지들은 그 아픔을 목으로 넘기는 사람들이다.
슬픔을 좀처럼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차기원이 그랬고, 김경훈이 그랬던 것처럼 권준성도 그랬다.
오직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소리 없이 운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어디서나 슬픔을 가감 없이 토해 낸다.
지금 이정아처럼.
이정아에게 권지혁은 단 한 명의 자식이다.
또 다른 형제가 없는 유일한.
그러니 이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한참을 흐느끼던 이정아의 몸이 꼼지락거렸다.
팔을 풀었다.
“아들 친구에게 목을 매는 모습이나 보이고, 차도 한 잔 줄 생각도 안 하고.”
그렇게 중얼중얼하며 눈물을 닦는다.
이건 또 무슨?
“흐음, 저녁 안 먹었지?”
“네.”
이분, 느낌이 왜 4차원 같지?
유일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 살아온 10개월.
아프고도 아픈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4차원이 될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밥 먹고 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은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
{나쁜 놈, 망할 놈.}
{같이 오지.}
{저렇게 환한 얼굴로 돌아온 전우도 있는데.}
주방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뒷모습이지만, 손이 얼굴로 올라가는 것으로 봐서 눈물을 닦아 내고 있다.
~팽~
키친타월을 북 소리가 나게 당겨 빼서 코를 푼다.
그것을 싱크대 한쪽으로 던지고, 다시 키친타월을 여러 장 빼냈다.
그러곤 눈을 닦고 얼굴을 닦는다.
권준성과는 왜 거의 매일 다투었을까?
짐작되는 것은 있다.
날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했을 것이다.
권준성은 이제 잊고 살자고 하지 않았을까?
이름을 되뇌면 되뇌는 만큼 슬픔의 크기만 더 커진다.
그래서 그만 잊자고 했을 것 같다.
이정아는 ‘아들을 잃었는데, 당신은 잊혀?’라고 소리쳤을 것 같다.
안 봐도 눈앞에 그려진다.
태영은 거실에 보이는 TV를 틀었다.
뉴스 채널로 바꾸었다.
응? 25명?
그 안에 21명이 있는 것은 태영이 확인했다.
사무실처럼 된 곳에 있던 자들?
그곳에도 몇 명이 있었던 것 같다.
거기는 화물 창고.
지붕 가까이 붙은 환기구를 제외하고는 창문이 없는 구조였다.
출입구를 모두 봉쇄했으니, 탈출은 불가능할 터.
수류탄의 폭발과 불길에 노출된 총탄.
샌드위치 패널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까지.
살아서 나올 가능성은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추정되겠지.
그 안에 있던 중국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 흔적이 없으니.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숨 가쁘다.
어제 한밤중에 발생한 일이다.
아침부터 같은 내용으로 계속해서 몇 번을 방송하고 있을 것이다.
{못된 놈들, 우리나라에 총을 가지고 들어와? 잘 죽었다. 나쁜 놈들.}
저녁을 챙기는 이정아의 중얼거림이다.
{수류탄이라고?}
{대체 왜 그런 무기들을 갖고 들어와?}
{콱, 잘 죽었다.}
그래, 무기는 왜 가지고 들어왔지?
전쟁이라도 준비했나?
리포터는 국과수와 경찰 특공대의 인터뷰도 했다.
행인도 인터뷰를 한다.
맞는 말이지.
{저놈들 다 데려갔으니 대신 지혁이 좀 돌려보내 주면 안 돼?}
{값어치 없는 스물다섯 목숨 가져갔으면, 우리 아들은 보내 줘도 되잖아? 응? 응? 응?}
칼을 들고 칼끝도 닿지 않는 천정을 향해 마구 찌른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내가 그렇게 기도를 했으면 들어 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응? 응? 응?}
~탕탕탕~
그 칼로 도마를 힘껏 내려치는 소리다.
거실을 빙 둘러봐도 종교와 관련한 물품은 없다.
특정 종교의 신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들이 증발되었으니, 이 세상의 사람들이 믿는 모든 대상을 향해 빌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인천의 화재와 폭발 사고에 대해 다루었다.
고위 경찰이 나와서 앵커와 대화를 한다.
총포류가 어떻게 반입되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며, 중국 당국에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자, 밥 먹자.”
시간이 제법 지나자, 이정아는 태영을 불렀다.
“네, 어머니.”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거 보자, 끄지 마.”
“아, 네.”
태영은 껐던 TV를 다시 켜고 식탁으로 갔다.
급하게 준비한 저녁으로는 과할 만큼 여러 가지 반찬이 즐비하다.
몇 가지의 나물과 김치, 그리고 돼지고기에 감자와 양파가 들어간 된장국.
그 앞에 공깃밥이 놓였다.
“잘 먹겠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이름이 태영이지?”
여전히 얼굴에 눈물의 흔적을 매달고 물었다.
“네, 어머니.”
“너, 그냥 내 아들 해라.”
“…….”
이 뭐.
역시 4차원이 맞아.
“저희 어머니가 쫓아와서 어머니 멱살 잡을 텐데요?”
“아…… 그래, 그렇겠다.”
“…….”
“그럼 안 되겠구나. 그건 취소. 그런데 너 우리 집은 어찌 알고 왔어?”
“음, 단장님 오늘 출국하셨죠?”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말을 돌렸다.
“그것도 알아?”
“‘별이 되어’ 아시죠?”
“어, 알아.”
사무국 직원들이 연락은 했을 거다.
“거기에 조금 도움을 주셨는데, 어머니는 안 오셨죠?”
참가 여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참가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래, 안 갔지. 여럿이 모여서 떠들고 웃는 게 싫어서.”
“거기 오시는 분들은 떠들고 웃지 않으세요. 서로를 위로해 주고, 아픈 가슴을 다독여 주는 거죠.”
“그래?”
“네, 양재동에 본부가 있는데, 한번 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가깝네, 양재동이면.”
“네.”
맞다. 아주 가까운 곳이다.
“가면 뭐 해. 서로 붙잡고 울기나 할 텐데.”
“회장님은 아들을 잃었고, 부회장님은 남편을 잃으셨습니다.”
“…….”
“그리고 모두 함께 슬픔을 이겨 내기 위해 애쓰시죠.”
목에 남겨진 붉은색 줄이 새삼스레 선명하게 보인다.
“…….”
이정아의 눈에 또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