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95
140. 입성
“네, 맞습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연결해 주는 결연 같은 것을 해 보심이 어떨까 해서요.”
[그거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요. 임원들과 회의를 한번 해 봐야겠소.]“네, 그럼 명절 잘 보내십시오.”
[그래요, 최 사장도 명절 잘 보내시오. 그리고 그 사람은 명절 후에 한번 만나자고 하니, 그때 함께 봅시다.]“네, 알겠습니다. 연락 주십시오.”
해양 연구 기지를 맡길 사람 이야기다.
말을 꺼낸 지는 제법 되었는데, 이제야 생각이 정리된 듯하다.
그나마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먼저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전화가 끊어지자, 대회의실을 힐끔 보았다.
“위니, 회의실에 기다리는 놈들, 조사했지?”
[지난번에, 자신을 김윤기라는 가명을 대고 찾아왔던 진병선 사장, 그리고 윤병광 박사, 또 한 명은 정현인 박사입니다.]위니가 찾아낸 정보이니 사실이라는 말이다.
“만나 보자.”
[변성준에게서의 전화입니다. 오늘 3회 전화 왔었습니다.]“그전에도 몇 번 왔다고 했지?”
[이틀 전에 5회, 3일 전에 3회 왔었습니다.]“문자는?”
[만나자는 뜻을 두 번 보내왔습니다.]“도움이 안 되는 놈. 이놈은 정말 야비하게 뒤에 숨어서 뭔가를 조종하려는 것 같은데.”
변성준은 앞에 나서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놈이다.
그리고 태영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데, 그날 NRS에서의 일 때문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조백려와의 일만 해도 그놈은 마치 방관자처럼 행동했다.
뭉개 버릴 수는 있지만, 이유 없이 그렇게 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일단, 저놈들이나 만나 보자.”
~벌컥~
노크도 없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가 깜짝 놀란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
윤병광이다.
저놈이 공식적으로 소개한 것은 ‘윤’이 전부다.
“윤? 김윤기 씨도 오셨네요.”
옆에 앉은 사람, 이 사람이 정현인이다.
정현인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둘을 보다가 태영에게 시선이 향했다.
“난 정현인이라 합니다.”
정현인이 명함을 내밀었다.
태영도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김윤기는 누구요?”
명함을 받은 정현인이 물었다.
“저기 저 사람이요.”
진병선을 가리키며 대답해 주었다.
“진 사장님, 김윤기는 누구입니까?”
“그, 그게…….”
그날, 진병선이 ‘김윤기’라는 이름의 명함을 준 것은 아니다.
“이름을 속이는 것은 사기꾼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기는 한데…….”
태영은 한마디 툭 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오, 본의는 아니었소.”
윤병광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지만,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받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진병선도 명함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처음부터 건네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놓기만 했다.
진병선은 태영을 흘겨보는 걸 잊지 않았다.
호퍼스드론.
진병선의 회사 이름이다.
회사명이 거지 같지만.
그 아래에 대표 이사 진병선이라고 쓰여 있다.
“흥.”
태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곤 명함을 손끝으로 툭 쳐서 돌려보냈다.
명함이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그리고 진병선의 옷에 툭 부딪힌 후에 아래로 떨어졌다.
진병선이 놀라 손으로 막았지만, 명함은 손을 잘 피하며 사라졌다.
“전해 들었을 때, 예의가 없다고 하던데 정말이군요.”
정현인의 말이다.
웃긴다.
예의가 없다니?
“이름을 속이고 접근한 사람에게 예의를 차려야 하나요?”
“……으음.”
이놈도 싸가지가 없기는 비슷한 건가?
항상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 보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야?
“내가 잘못한 것이라구요? 이 무슨 개소리인지.”
대화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럼, 이들의 목적과 상관없이 겉돌게 된다.
“미안합니다. 내가 실언했습니다.”
어, 별일이네?
그럼 조금만 참지 뭐.
“네, 뭐. 좋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약속하지 않았는데.”
“통화가 워낙 어려워서 약속을 못 했습니다.”
1번 폰으로 오는 전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심지어 진동도 아닌 무음이다.
“10분간 시간 내드리겠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아니면, 그냥 일어서구요.”
쓸데없는 소리다.
기다린 것은 저 사람들의 뜻일 뿐 태영과는 무관하다.
“그럼, 먼저 윤 박사가 하고 있는 군사용 드론과 관련해서 배터리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정현인이 10분을 받아들였는지 서둘러 말을 시작했다.
“기술 제휴, 비용은 이미 말했습니다.”
“국방력을 높이기 위해 나라에서 원하는 일…….”
“그래요?”
말을 툭 잘랐다.
“네.”
“나와 함께 사라진 군인 352명을 아십니까?”
“…….”
“아세요?”
“……그.”
“그들이 누구인지 압니까?”
다그치듯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물었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중이었다.
아직 보훈 지정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서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거야?
“……미안합니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필요한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나는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무기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군사용 무기에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분야는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분 화약 무기인데, 전력 사용이라면 뻔하지 않을까?
“네, 그래서요?”
“여기서 만드는 그 배터리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장비가 됩니다.”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충분한 기술이 있구요.”
“그럼?”
“대신, 비쌉니다.”
“원가가 어찌 되……?”
“원가 같은 거 묻지 마시고.”
“……네?”
“원가 공개하고 판매하겠다는 곳을 찾으세요. 그리고 거기서 공급받으세요.”
“하…….”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상대라 생각할 거다.
대부분 판매를 위해 협상을 한다.
공급자는 협상 과정에 많은 것을 양보한다.
그러나 터니테크는 상대가 양보를 요구하면 안 판다고 하는 곳이다.
“시간이 남았으니 한 가지 보여드리죠. 정 박사님이 뭘 하는지는 모르니, 그건 보여드릴 수 없고, 이거라도 구경하고 가세요.”
정현인은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군용 무기나 장비를 군과 민간 방산 회사와 공동으로 개발하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굳이 아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윤병광은 다르다.
벽면의 앳윌플레이를 켰다.
드론 소개 영상 중에서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군용 제품 영상을 플레이시켰다.
“헉.”
“저……저…… 저게.”
영상이 나오자마자 세 사람 모두 깜짝 놀란다.
모두의 눈이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드론을 따라다니기 바쁘다.
정찰용 드론과 전투용 드론이 교대로 움직이고, 마지막으로 수송용 드론이 움직였다.
~픽~
영상이 꺼졌다.
플레이 시간이 2분도 되지 않았다.
사양이 나오기 전에 플레이를 중단시킨 것이다.
“먼저 본 작은 드론은 정찰 및 정보 수집용 기본 모델, 크기는 보신 대로 스마트폰 정도의 크기, 주변 환경 동화 기능 있고, 이동 속도 시속 550Km, 조종 반경 250Km, 비행 40시간, 탑재 가능한 초정밀 카메라 20대, 통신을 통해 실시간 영상 전송이 가능하고, 자체 보존합니다.”
“…….”
“……그.”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것이다.
“저…… 저게 정말입니까?”
정현인의 질문이다.
“난 누구처럼 속이지 않습니다.”
그 대답에 얼굴이 시뻘게지는 윤병광과 진병선이다.
“만들어 드리는데 6개월, 공급 가격은 대당 120억, 최소 주문량 30대.”
이틀이면 30대를 만든다.
원가?
한 대에 수백만 원이 들어가겠지만, 원가 공개 안 하겠다는 말은 이미 했다.
“중간 매개자가 끼면 공급 안 합니다.”
“그…… 왜?”
“비밀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번째는 어떤 것입니까?”
정신을 먼저 차린 정현인이 물었다.
“전투용 드론, 기본 모델 기준으로 적재 중량 1.5톤, 비행 속도 850Km, 조종 반경 250Km, 체공 180시간, 탑재 무기 아직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진병선이다.
“제가 못 하면 남도 못 하는 줄 아나 봐? 그리고 제가 사기를 치고 다니면, 남도 사기 치고 다니는 줄 아나?”
“이…….”
모욕을 받은 자의 얼굴이 볼 만하다.
얼굴이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다.
“그 세 번째와 네 번째…….”
“나머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분과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많이 공개했네요. 자, 이제 그만 끝내죠.”
“……하.”
저들은 또 찾아올 것이다.
못 볼 것을 봐서 눈이 높아졌다.
높아진 눈으로 그 높이에 맞지 않는 다른 것을 보면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린 방산 기업이 아닙니다.”
“…….”
왜?
방산 기업이 아니라고 하는데, 뭘 봐?
“안녕히 가세요. 제가 늘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후에는 약속 안 하고 오시면 만나기 어렵습니다.”
[마스터, 박주한 회장 전화입니다.]“음, 자, 안녕히 가십시오.”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전화기를 들었다.
“네, 회장님.”
[아, 내가 간만에 전화했지?]“네, 정말 간만입니다.”
[최 사장이 말한 호주 회사와 MOU 체결했어.]“그래요? 축하합니다.”
철강 원석을 공급해 줄 작은 회사다.
공급계약과 함께 지분 참여를 하라고 했었다.
“잘 되었습니다. 그럼 본계약은 언제입니까?”
[3월 초에 하기로 했네. 혹시 같이 안 가 볼 텐가?]“아, 그게. 저는 그때 개학이라서요. 아무튼 잘 되었습니다.”
[그래, 학생이라는 걸 간혹 잊어. 아무튼 어쩔 수 없지.]“공사 진척은 어떻습니까?”
미드나니움은 제강 단계의 마지막 설비에서 해결된다.
그 마지막 설비를 위한 공사이다.
[4월이면 다 끝날 것 같다고 하네.]“그럼 5월에 저희가 제공할 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조선 회사와의 진행은 어떤가? 우리 쪽으로 여러 번 왔었는데.]“2월 중순에 4사 회의하기로 했습니다. 그 회의 때, 대부분 결정될 것입니다.”
[그럼, 그 결과 나도 좀 알려 주게.]“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명절 전날 밤.
태영은 여주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주소는 여전히 그곳이다.
이새봄은 명절이니 집에 다녀오겠다고, 부모님 집으로 갔다.
그것이 사흘 전이다.
집에 들어설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없다는 것은 특이한 느낌이었다.
약간의 허전함과 편안함, 그리고 쓸쓸함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할까?
그런 것을 느끼고 있자, 어제 오후에 여주로 갔다는 소식을 위니가 알려 주었다.
~딸깍~
집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현관문은 잠기지 않았다.
“태영이니?”
문을 열자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저 왔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아가도 와 있다.”
아가?
아가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
순간, 이새봄을 지칭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와, 엄마는 봄이를 벌써 아가라 부르는 거야?”
누나의 반응이다.
“그럼 이름을 불러? 아가라 부르니 좋기만 하구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가라 불러?”
누나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언니, 저는 그렇게 불러 주셔서 좋아요.”
이새봄의 목소리가 밝다.
“오빠, 나도 왔어.”
누나에게 말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나오며 반긴다.
아직 신발을 벗지도 않았는데, 태영의 품에 안겨 들었다.
“봐, 얼마나 보기 좋아?”
어머니가 누나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어우우우, 닭살.”
누나의 반응도 재미있다.
“어떻게 여기에 와 있어?”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하고 물었다.
“집에 갔다가, 아빠에게 떼를 썼지.”
이새봄은 차도 없지만, 면허증도 없어서 대중교통으로 이곳을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명절인데 함께 있지 않고?
“어서 오너라.”
식탁 앞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환하다.
이새봄이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산다고 했을 때, 펄쩍 뛰던 아버지다.
내일이 명절이다.
그런데 이새봄이 집에 있는데 얼굴이 환하다?
그냥 인정하기로 한 것인가 싶다.
“네, 아버지.”
“정리는 다 했니?”
택배로 잔뜩 들어온 약재들 정리에 대한 이야기다.
“네, 그것 정리하고 마무리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씻고 편안한 복장으로 나오자 식탁 위는 이미 진수성찬이다.
“어서 앉거라.”
어머니의 재촉에 태영은 빈자리에 앉았다.
그 오른쪽에는 당연한 듯 이새봄이 앉아 있다.
“아버지 술 한 잔 드릴까요?”
“그래, 이렇게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으니 한잔하자.”
태영의 질문에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이새봄이 일어섰다.
그러곤 쪼르르 냉장고로 가더니 소주 한 병을 꺼내 왔다.
그사이에 어머니는 소주잔을 꺼내 놓으신다.
“제가 한잔 따라 드릴게요, 아버님.”
“그래, 한잔 받자.”
아버지의 표정이 정말 환하다.
이새봄은 아버지와 언제 이렇게 가까워졌을까?
얼마나 살갑게 했기에?
일하는 중에 위니로부터 이새봄이 여주에 도착했다는 말은 들었다.
그렇지만, 정리를 하는데 바빠서 영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명절 전날의 저녁이 왁자지껄하게 흘러갔다.
“여보, 태영이와 온실에 좀 갔다 올게.”
식사가 끝났을 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요.”
어머니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대답이다.
집 밖은 여전히 추웠지만, 이제 2월에 접어든 겨울이라 매섭지는 않다.
아버지는 집 밖의 한곳에 있는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그 소리를 신호로 몇 곳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이 정도면 비닐하우스로 가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조명이다.
아버지는 말없이 발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곳은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하우스다.
농기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물품이 보관되어 있다.
불을 환하게 켠 후, 그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의 바닥은 블록이 정갈하게 깔려 있다.
작은 평상을 비롯해 책상과 의자도 있다.
이곳은 난로를 켜 둔 듯 훈훈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