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1
051. 거울과 망원경(4)
“이래 가지고서야 대산도는 명주의 방파제 역할이지 않나?”
그랬다.
함교에 붙여 둔 대형 지도를 보니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대산도는 동쪽 거의 끝에 해당하는 섬이고, 그 남서쪽에 주산도라는 큰 섬이 제대로 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저기 보입니다. 대산도라는 곳이.”
송복기의 말에 망원경을 눈에 대고 동쪽을 바라보니, 섬에는 민가가 제법 보인다.
“여기 주민이 모두 얼마나 된다고 했더라?”
“네, 대장님. 대산도와 그 남쪽 독산도, 그리고 동쪽의 2개 섬까지 합쳐 총 2천5백 호 정도라고 했고,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만 명을 어떻게 내보내지?”
“내보내시게요? 그 사람들을 일꾼으로 쓰지 않구요?”
정하연이 물었다.
“글쎄, 보고. 저기 선착장이 보이는군, 저기 배를 좀 대봐.”
선착장이라고 해 봐야 작은 고깃배를 내는 곳이니, 명주의 잔교와 비교하면 거의 형식만 갖추고 있다.
“네, 대장님.”
태영 일행이 해룡호에서 내려 상륙하자 잔교 부근에 있던 주민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기는 하지만,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화 상단에서 파견하여 소작인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도주와 총관이 나타나 장원으로 안내를 했다.
장원의 규모가 상당한 데다 장원의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밭이 연이어 있었다.
논과 밭은 섬 전체에 고르게 개간되어 있어서 이만하면 사포와 율촌을 합친 것보다도 몇 배는 더 넓은 것 같다.
동쪽을 바라보자 제법 먼 곳에 큰 산이 빙 둘러 있고, 그 가운데 앞쪽으로 트인 넓은 들판에는 벼가 자라고 있었다.
“저기 오른쪽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성을 쌓으면 제법 괜찮겠어.”
태영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죠? 남쪽은 높은 산이 막고 있고, 그 자락이 동북으로 이어져 있어서 쏙 들어앉은 모습이 마치 호리병 같은데요.”
정하연이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좋아 결정했어. 여기를 우리 기지로 만들자구.”
***
백화 상단에 거울 800개와 작은 유리 500개를 넘기기로 했고, 모두 123만 5천 냥 중에 30만 냥은 은자로, 그리고 3만 냥의 금자를 받기로 했다.
“금자가 3만 냥이라. 금자 속에 파묻혀 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다가 금에 깔려서 압사해.”
“아, 깔려 죽고 싶지는 않아요. 그나저나 동전을 1천5백 만이나 받기로 했는데, 그건 쓸데가 있어요?”
정하연이 물었다.
“저걸 사포에 풀어서 송나라처럼 물건을 사고파는데 쓰게 하는 것이 어떨까, 아니면 무기를 만드는데 쓸까 생각 중이야.”
송나라 동전의 성분 비율의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순동이 아닌 황동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황동이 맞으면 탄피용으로 딱이었다.
동전의 무게도 150톤, 4만 관이나 된다.
“아, 사포에 풀어서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개경에는 동전을 사용 중이라고 하던데, 여기서 동전으로 거래하는 걸 보니 참으로 편리하고 좋은 것 같아요.”
“동전의 제조와 유통은 원래 나라에서 시행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마음대로 하면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동전이 동보다 훨씬 비싼데도 그래요?”
“그럼.”
동전이라는 것이 자신의 가치보다 통상은 제조 원가가 더 비싸다.
동전 1문을 만드는데 제조 원가가 1문이 넘는다는 소리인데, 송나라에서는 동전 1문으로 같은 무게의 동을 3개나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동으로 위폐를 만들어도 위폐가 훨씬 더 비싼 편이다.
그건 21세기의 현대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다만, 지폐로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거래에 동전이 많이 들어가면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야.”
동전 1천5백만 문을 거래 대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한 것은 현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물론, 동괴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말이다.
이 시대는 광산이 발달하지 않았고, 채광 양도 많지 않아 광물 자체가 귀한 대접을 받는 시기이다.
해머 드릴이나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 없이 순수하게 사람의 힘으로 곡괭이 정도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고려에서 개경 외에는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시험적으로 사포와 율촌에는 도입할 수도 있을 거야.”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송나라 사람들이 동전으로 거래하는 것을 보니 정말 편한 것 같아요.”
옆에 있던 김웅겸이 찬성을 한다.
“동 3천 톤은 명주에 있으니 바로 가져올 수 있고, 동전으로 1천5백만 개 받으면 그건 150톤 정도 되고, 나머지가 20,700톤 정도인데 그걸 명주로 가져오는데 서너 달이 걸린다는 말이죠?”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하는 물음이다.
“그래.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그 넉 달 사이에 대산도를 정리하거나 사포를 다녀오자고.”
“기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는데요.”
“그렇긴 한데, 동의 무게로 따져보면 이해가 돼. 마차에 대략 2톤을 싣는다고 봤을 때 1만4백 대가 있어야 해. 하루에 마차 1백 대를 동원하면 104일이 걸려.”
“계산을 그리하니 그렇긴 하네요.”
“마차 1백 대가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차 수배하고, 운반을 위한 포장하고, 싣고 내리는 시간도 있으니, 그 기간도 쉽지 않을 거야.”
현대처럼 열차나 대형 트럭 같은 수송용 차량들이 발달한 것이 아니고, 아스팔트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흙길을 마차로 운송해야 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대장님, 나머지 모두 팔면, 단번에 사포로 다 가지고 갈 수 있겠습니까?”
김웅겸이 물었다.
“아니야, 여러 번에 나누어 옮겨야 해.”
“보관해 둘 장소가 있어야 되겠네요.”
“송나라 사람들 중에 도둑과 강도들이 너무 많아서 그건 안 돼.”
“네,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죠?”
태영의 말에 정하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고, 김웅겸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서 대산도를 우리 전진 기지로 삼고, 무거운 것은 거기다 두고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대산도 거래를 받아들인 거야.”
“역시.”
김웅겸이 엄지를 척 내민다.
“그런데, 송나라 사람들이 도둑이나 강도가 많다는 것은 뜻밖인데, 어찌 아세요?”
“여긴 땅이 넓고 도망칠 곳도 많아서 도둑질을 하고 숨어 버리면 못 찾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리된 거지.”
어찌 아는지는 말을 못 하겠다.
태영의 인식 속에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을 뿐이다.
“정 실장, 현청에서 증서를 언제까지 준다고 했지?”
대산도 거래 증서 이야기이다.
동전과 동괴의 거래는 백화 상단에서 거래 허가를 받을 것이니, 그쪽에서 알아서 할 문제다.
“네, 사흘 뒤에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류로 달라고 하길 잘하셨어요.”
“당연하지. 자기들끼리의 거래야 땅 문서만 있으면 되지만, 우리는 고려인이니, 소유 증명서를 받아 두어야 해. 그래야 뒷말이 안 생길 테니까.”
“와, 그런데 떼부자 되었어요. 일부만 팔았는데도, 금자 3만 냥에 은자가 30만 냥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고려 황실의 1년 세수가 은자로 따지면 10만은 되려나?
그건 알 수가 없지만, 그만큼 안 될 수도 있었다.
금자로 일부를 받고, 동괴로 받기로 한 것도 많지만, 은자로 환산해서 백만 냥이 훨씬 넘는 돈이 손에 들어오는 것으로 거래되었으니 정말 떼부자가 맞긴 맞다.
“남은 게 아직 훨씬 더 많아. 그러니 진짜 떼부자가 되는 거지.”
“그 많은 돈 다 어디다 써요?”
“넘치면, 사포 길바닥을 은으로 포장하지, 뭐.”
태영의 말에 모두 다 웃었다.
“그나저나, 세금을 3할이나 내려고 하니까 무지 아깝네. 우리가 가지고 온 물건이 은자로 5백만 냥어치는 되는데, 세금으로 1백5십만 냥이나 내야 하잖아?”
세금으로 그렇게 큰돈을 내야 한다니까 다들 입이 쩍 벌어진다.
그렇겠지. 얼마나 큰돈인데.
“그나저나 서너 달을 어찌 버티죠? 대장님.”
한참 만에 김웅겸이 물었다.
“대산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걸?”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에 나왔고, 이런 재미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고, 불과 며칠 안 되었지만 새로운 것들을 정말 많이 봤을 것이다.
이곳의 문물이 앞서거나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해외에 나가서 움직여 보면 사람들의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번 상행은 여기 온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대장님, 손님 왔습니다.”
“응, 모셔 와.”
말이 끝나자 스미스가 들어왔다.
사실상 백자 접시의 거래는 뒷전으로 밀려 버려 사흘이 지난 뒤에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처음 방문이니 자기 접시 이야기를 다시 하려나?
“어서 오세요. 스미스 자작.”
“우리는 망원경이라는 것을 몇 개 사고자 해서 왔습니다.”
“그래요? 스미스 자작같이 먼 길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망원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네, 우리에게 잉글랜드의 금화 11,600개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몇 개의 망원경을 살 수 있을까요?”
금화를 1만 개? 금화가 금자 기준으로 얼마나 큰가를 확인하면 된다.
“금화를 하나 줘 보시겠습니까?”
“네.”
스미스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태영의 손에 올려 주었다.
태영은 금화를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대략, 금 1냥 기준으로 5개쯤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가림아. 이거 무게 좀 달아 봐.”
“네, 대장님.”
가림이는 금화를 받아서 저울에 올렸다.
송나라와 무역을 하려면 정확한 저울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8그램에서 조금, 아주 미세하게 부족합니다.”
“순도 확인해 봐.”
“네.”
대답을 한 가림이는 시금석에다 금화를 살짝 문질러 미세한 금 조각이 시금석에 묻어나도록 한 뒤에 병에 담아온 약물을 그 위에 떨어트리고 작은 확대기로 시금석을 찬찬히 흩어 보았다.
“9할이 조금 넘을 정도로 좋은데요. 송나라 금화하고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순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래, 알았어.”
이것 역시 시금법을 비서실 직원들에게 가르치고, 연구소에 시금을 위한 약품 개발을 시켜서 나온 것이다.
“아, 그런데 무게는 어찌 그리 금방 확인하고, 저것은 또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다른 일에도 참으로 관심이 많다. 하긴 지금 사용한 시금법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
“순도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저렇게 하면 금의 순도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확인이 가능하지요.”
“호, 그것참 신기하군요. 그것을 좀 배울 수는 없습니까?”
“아, 미안하지만, 가르쳐 드릴 수가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
“안타깝군요. 잉글랜드 사람이 아니면서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도 신기하고,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망원경이 몇 개나 필요합니까?”
태영은 말을 끊고 본론을 물었다.
“음, 7개나 8개쯤, 그리고 나머지는 거울을 구입했으면 합니다.”
태영은 종이를 꺼내어 거기에 글을 쓰면서 잠시 계산을 했다.
“망원경 8개와 거울 15개를 드리면 우리가 조금 손해이지만, 멀리서 오신 분이니 그렇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영은 계산 내용을 기록한 종이를 스미스에게 건네주었다.
“그것, 그것 좀 볼 수 있을까요?”
스미스는 종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보아하니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종이를 만지다가, 가까이 눈을 대고 자세히 보고는 코로 냄새까지 맡아 봤다.
뭐하는 거야, 대체?
“이것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매끈한 표면에, 냄새도 나지 않고, 또 이렇게 작은 글씨를 써도 번지지 않는 종이가 있습니까?”
21세기의 과학 기술이 만들었지, 사포에서 만들었냐?
나도 몰라, 어찌 만들었는지.
아, 젠장. 사포로 돌아가면 한지 말고, 이런 종이 만드는 것도 좀 시켜 봐야겠다.
그나저나 사람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자꾸 일이 늘어나면, 나중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설마 왜구들을 잡아다가 농사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그것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볼펜을 가리킨다.
아, 짜증.
그래도 태영은 볼펜을 건네주었다.
마침 태영이 사용하던 볼펜은 3색 볼펜이었고, 중간 부분부터 뒤쪽은 투명한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어서 스프링도 보이고, 볼펜심도 보이는 물건이었다.
스미스는 태영이 했던 것처럼, 볼펜심을 밀어내는 빨간색 긴 버튼을 눌러 그것을 밀어내어 찰칵 소리가 나면서 볼펜 끝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자, 태영이 쓴 종이의 빈자리에 글씨를 썼다.
빨간색으로 글씨가 써지자,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히더니, 다시 파란색을 눌러서 Jonathan Smyth라고 쓰고는 얼굴 표정이 환해진다.
“하, 정말 기가 막히는 펜이군요. 이것도 살 수 있습니까?”
“그건 팔지 않는 물건입니다.”
볼펜 약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데, 그걸 어찌 돈 받고 파나?
그리고 받으면 얼마나 받아?
그러나 스미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온 얼굴 가득히 묻어났다.
현대 사회에서 불과 천 원이나 2천 원쯤 하는 값싼 볼펜인데, 하기야 이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는 구경할 수 없는 물건이긴 하다.
아니, 죽었다가 9백 년쯤 후에 깨어나면 널리고 널렸지.
스미스는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종이와 볼펜을 태영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것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까?”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기술적으로 지금 해룡호를 움직이는 증기 터빈 같은 것에 비하면 석유 화학 공업이 전혀 없는 이 시대에는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물건이다.
볼펜의 몸체를 플라스틱으로 만들지 않고, 대나무를 깎아서 만들면 만들어질까?
볼펜의 촉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건? 에이, 모르겠다.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지도 않을 물건입니다. 그렇게 알아주세요.”
개뿔.
만들지 못해서 그런 거지, 뭐가 곤란하고 뭐가 팔지 않을 물건이야?
“미스터 최. 잉글랜드에 올 계획은 있으십니까?”
때마침 스미스가 말을 돌렸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리스에 갈 예정이 있는데, 그때라면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스는 어찌 아십니까?”
그리스를 어찌 알기는.
“하하하. 그리스도 알고, 로마도 알고, 잉글랜드도 알고, 바이킹이 잉글랜드를 침략한 역사도 알고 있습니다.”
태영의 그 말에 스미스의 표정이 뜨악하게 변했다.
바이킹의 영국 침략과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이 부끄러운 것일까? 아니면 그런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일까?
괜히 말했나? 부끄러운 역사일 수도 있는데.
일반 서민들이야 모를 수도 있지만, 귀족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역사를 알 것이다.
스미스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리스를 가는 길에, 가능하다면 들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물건들과 또 다른 뛰어난 물건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조금은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과 말투에서 이 사람도 바이킹과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 잉글랜드 양모를 준비해 두신다면, 그것을 많이 구입하고 싶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도버 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숙적이며 친구이지만, 두 나라의 백 년 전쟁이 시작된 시초가 영국에서 프랑스로 양모 수출을 금지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만큼 영국의 양모가 질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전쟁이 발발할 정도였으니, 그 양모 들여다가 순모 옷감을 만들어 사포 사람들이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물론 백 년 전쟁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고, 아직도 백 년 이상의 세월이 더 흘러야 발발할 것이다.
“그때, 가능하다면 그 펜도 구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미스는 볼펜에 다시 한번 눈독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