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13
158. 공장 아닌 공장 부지
“왔어?”
“네, 부사장님.”
석인전자 신윤희 부사장은 박춘배 실장의 답을 들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통상적인 경우 일어서서 맞이한다.
대신 별실의 문 앞에서 통화를 마무리 중인 김희종 사장을 바라보았다.
“늦지는 않았네.”
김희종은 자리에 앉으며 싱긋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뒤따라 들어온 정선호 부장이 인사를 하거나 말거나 김희종을 쏘아보았다.
“…….”
신윤희와 동행한 석인에너지 오수혁 전무는 김희종에게 고개만 까딱했다.
오수혁은 사장인 한구상에게 공장과 관련해 결정한 내용을 전달받고 신윤희에게 바로 확인을 해 왔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윤희를 수행한 박춘배 실장이 김희종에게 인사했지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김 사장님.”
“우리, 밥은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
“신 부사장님 표정을 보니 식전에 이야기를 시작하면 체할 것 같아서.”
그 말은 맞다.
터니테크에 공급키로 한 공장 부지가 결정되었다.
얼마 전에 조성이 끝난 산업 단지 부지다.
지난해 12월 말, 3사 합의에서 정한 공장 제공 시한이 4일 남았다.
기일이 촉박하지만 시한은 지켜진다.
그러나 차이가 크다.
당시 3사 합의는 공장을 제공하기로 했다.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공장 건물이 서 있고 비어 있는 공장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제품 생산을 하려면 생산 설비를 들여 놓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산 인력을 훈련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기간을 공장 제공 후 3개월로 잡았다.
그 3개월 안에 터니테크의 반제품을 양사에 공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합의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청구하는 예상 손해액을 배상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건물을 세우는 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산업 단지이기에 신축 허가 등의 행정 과정이 많이 간소화된다.
그래도 공장을 세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처음의 약속과 달리 공장부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건설은 잘 모른다.
그쪽도 표준화가 잘 되어 있어서 공기 단축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것을 기대할 수밖에.
“김 사장님이 제안했다 들었습니다.”
신윤희는 김희종에게 물었다.
“누가 제안했느냐가 그리 중요하겠소?”
책임 회피?
아니면 자신감?
그것도 아니면 만용?
“최 사장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법무 팀도 밥값은 해야지.”
저 말은 그 건에 대해, 법으로 간다는 전제를 깔아 둔 것이다.
“이길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요?”
신윤희가 보기에 김희종은 최태영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저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손발 비벼가며 사정하는 일반적인 중소기업으로 본 것이다.
몇 번의 만남 정도뿐이지만, 최태영의 나이가 어리다고 결코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기술적으로 증명했다.
결과가 나온 대표적인 곳이 ‘메이스타’ 그리고 ‘별하나’이다.
같은 제품은 낼 수도 없고, 비슷하게 내면 시장에서 무조건 패한다.
박 실장도 작은 회사라고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사준전자가 정보가 부족해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김희종이 보이는 저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뭘까?
처음 만남부터 김희종은 터니테크를 마땅치 않아 했다.
“계약 위반을 하면, 손해 배상을 많이, 아주 많이 청구할 생각이오.”
“…….”
“법무팀……에도 그 중요성을…….”
김희종은 법무팀 이야기를 하며 말을 줄였다.
그 말에 김희종을 수행하고 온 정선호가 싱긋 웃는다.
아무래도 저놈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사준전자의 실질적인 오너가 이 위험한 결정을 승인한 것일까?
아니면 이 부문의 사업을 총괄하는 석진우 사장이 승인한 것일까?
계속해서 궁금증이 머리를 떠돌았지만, 김희종이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사장이라도 김희종과 석진우는 급이 다르다.
김희종은 한 사업부를 맡은 사업부장이지만, 석진우는 여러 사업부를 총괄하는 부문장이다.
석진우가 이 결정에 찬성했다면, 누가 석진우를 설득했을까?
“그 결정, 되돌릴 생각은 없습니까?”
어제, 사장 대신 전략 기획실 전무로부터 사준전자와 발을 맞추기로 했다고 전달받았다.
“내일 퇴근 시간 전에 그 뭐…… 터닌가 하는 회사에 통지할 것입니다.”
터닌가?
말을 저렇게 하면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요?”
“4일 후가 약속 일 아닙니까?”
“……나흘 남은 거죠.”
“뭘 그리 걱정하시오?”
“그날, 최 사장이 오 회장에게 하던 거 기억 안 납니까?”
“오 회장이 물러 터진 거지. 내가 오 회장이면 결코 그냥 두지 않았을 거요.”
“진심입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 능구렁이가 뭘 생각하는 것일까?
“어린놈이…….”
김희종의 반응은 역시다.
능력보다 나이를 보고 상대를 평가한 것이 맞다.
한 사업부를 맡고 있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이 없어도 될까?
전 세계적으로 지금 터니테크가 만든 제품을 복제해 보고자 하는 데는 한두 곳이 아니다.
외국의 회사는 얼마나 많이 복제 시도를 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국내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시도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허가 없다.
그것을 복제해서 내놓아도 터니테크는 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
복제한 쪽에서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낄 수는 있겠지.
그렇다면 애초에 복제하겠다는 시도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복제 시도는 했고, 성공한 곳은 없다.
연구소의 답은 간단했다.
‘10년쯤 달라붙으면 원리 정도는 알지 모르겠습니다.”
‘생산 가능성은 별도입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생산이 가능할지에 대한 것도, 기간의 예측도 불가능합니다.’
그들을 무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국내 또는 해외의 최상위권 대학의 석·박사 과정을 마친 뛰어난 인재들이 내놓은 답이다.
그래서 반드시 터니테크와 함께해야 했다.
“뜻은 이제 알았습니다.”
“식사를 마저 합시다.”
체할 것 같은데, 식사를 마저 할 생각이 드냐?
뜨거운 물이 가득한 물컵을 김희종의 얼굴에 던져 버리고 싶다.
“저희는 행보를 달리하겠습니다.”
여태 아무 말이 없던 오수혁 전무가 한마디 툭 던졌다.
“달리요?”
“네, 어차피 회사도 다르고, 의사 결정하는 사람과 책임자도 다르니까요.”
“……알아서 하세요. 그쪽은 어차피 내가 관계하는 일도 아니고.”
오수혁은 2차 전지 분야이다.
그러니 김희종이 맡은 사업 영역과는 다르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밥값은 더치페이.”
신윤희가 일어서며 밥값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 놓고 더치페이라니.
비즈니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래도, 저 인간에게는 밥값이 아깝다.
“……허허.”
신윤희가 별실의 문을 열 때 김희종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 나가겠습니다.”
정선호가 빼딱한 어투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오 전무님, 따로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시죠.”
***
~똑똑~
“네, 들어와요.”
사장실 입구에는 유제범이 서 있다.
“사준전자와 석인전자에서 온 공장 건 보고 드리겠습니다.”
“회의실로 갈까요?”
“네, 앳윌플레이에 띄우는 것이 보기가 편하실 것입니다.”
“갑시다.”
유제범은 앞장서서 회의실로 들어섰다.
태블릿으로 앳윌플레이를 켜면서 두 장의 지도가 비춰졌다.
유제범이 의자에 앉았지만,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약속한 일정에서 며칠 남았죠?”
“1일 남았습니다. 연락이 온 것은 이틀 전 오후 5시경이니까, 날짜로 보면 4일 전에 통지했구요.”
“2개월 되는 날이 내일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들리는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현장 조사했죠?”
“네, 어제 직접 갔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석인전자와 사준전자는 자사에 공급할 터니테크의 제품을 생산할 공장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시가에 제공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터니테크로서는 장점이 많다.
공장 부지의 확보와 공장 건설에 필요로 하는 시간 단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미 완성된 공장에 생산 설비를 설치하고, 직원이 충원되면 제조가 가능하다.
합의 후, 예정일이 다가올 때, 유제범은 그들과 매주 통화를 했다.
답은 아직 내부 협의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위치는 어디입니까?”
“석인전자에서 제공하겠다고 하는 지역은 진위면에 있고, 지도의 우측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준전자는 청북읍에 있고 좌측 부분입니다.”
“두 곳 현황은 어때요?”
“양쪽 모두 공장이 아닌 공장 부지입니다.”
“처음 약속은 공장이었는데?”
“네, 그래서 담당 부서에 확인을 했는데,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공장은 건물이 서 있는 것이지만, 공장 부지는 구획 정리가 되고, 바닥이 평평하게 닦인 황무지일 뿐이다.
“일단, 계속하세요.”
“네, 양쪽 모두 산업 단지의 조성은 되었고 일부의 회사들은 공장의 신축에 들어가 있습니다.”
“벌써?”
“네, 다만.”
태영의 질문에 유제범이 단서를 달아 대답한다.
“다만?”
“저희의 경우에는 입주계약을 승계해서 지금부터 건축에 들어가도 3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법은 찾으면 있을 거야.
“우리가 향후 3개월 이내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면 청구하는 예상 손해를 배상하는 거죠?”
저들은 약속한 기간 안에 공장이 아닌 공장 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장과 공장 부지는 다르니 약속을 어긴 것이다.
그렇지만, 길고 긴 법적인 다툼의 여지가 생긴다.
법적으로 붙으면, 저들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법무 법인 송이길과 계약이 되어 있어도, 그들의 힘이 대기업 법무팀의 힘에 필적하지 못한다.
“네, 그렇습니다.”
터니엔디의 공장 규모가 충분하니까, 생산과 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분이 나쁘다.
“가격은 어찌 됩니까?”
“진위 쪽은 평당 270만 원, 청북 쪽은 250만 원을 말했습니다.”
“분양가 알죠?”
“네, 분양가보다 꽤 높습니다.”
“이익을 제법 많이 붙인 건데…….”
“석인의 이윤은 55억으로 26%, 사준은 70억으로 39%입니다.”
이렇게 나오겠다?
그들의 입장에서 중간에 취한 이득 55억이나, 70억은 사실상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실무진의 입장에서 성과가 있어야 하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정했든 그것은 그 회사의 결정이다.
결정에 대한 책임 또한 결정한 회사에 있다.
“진행합시다.”
태영은 며칠 전 늦은 밤, 신윤희 부사장과의 통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네?”
“한번 툭 던져 보고, 딴소리하면 더 이상 조정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들이 너무하지 않습니까?”
“반대급부는 다른 방법으로 지불해 주면 되니까.”
“아, 네.”
“제공하는 공장의 대금 지급은 1년 거치 3년 분할 상환하기로 했었죠?”
“네, 그렇습니다.”
“계약하면서 일시불로 지급해 버리고, 대신 이자만큼 깎아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동시에 등기 서류까지 한꺼번에 정리하세요.”
“…….”
유제범은 멍하니 태영을 바라보았다.
두 곳의 부지 대금을 합치면 520억이다.
거기에 취등록세와 기타 비용도 들어간다.
이자를 깎으면 얼마나?
그런데 그냥 지급하고 등기까지 마치라고 한다.
물론, 해외 차입을 통해서 들어온 돈이 넘칠 정도로 있어서 그 정도의 돈은 푼돈 수준이다.
차입금을 투자해서 발생한 이익으로 인해, 배당으로 들어올 예정인 돈도 수천억이다.
“더 있나요?”
“……아, 네.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유제범은 정신을 차렸다.
“응, 말해 보세요.”
“씨엘유텍을 설립하면, 메이스타를 제외하더라도 계열과 자회사 7개가 되지 않습니까?”
많기도 하다.
레피우스와 현베스트는 일단 무관하다.
외국 자본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현베스트는 태영의 공식 지분이 2%도 되지 않는다.
아버지 회사인 레피우스에 태영의 지분이 16%이지만 관계사는 아니다.
누나의 회사인 메이스타는 아주 밀접하다.
그러니 유제범도 잘 알고 있다.
신소재와 첨단 소재 기술을 가진 태성기술.
터니테크에서 개발한 제품과 자체 개발 제품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터니엔디.
드론과 관련한 사업 전문 회사 다이나믹 스카이.
보안 경호 회사인 터니가드.
자율 주행 시스템의 프리 모바일.
메타버스 플랫폼을 가진 리얼판타즈.
그리고 회사 설립을 진행 중인 탄소 포집 기술 관련 회사인 씨엘유텍.
그렇게 7개사가 있다.
머지않아 해양 연구 회사인 ‘뉴에이해연’이 설립될 것이지만, 그건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그곳까지 합치면 8개의 관계사가 된다.
그 외에 우주 항공 관련 회사 한곳을 인수해야 하는 시점이다.
회사 인수는 아직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방향을 못 잡고 있지만, 그곳까지 포함하면 9개사가 된다.
“벌써 그렇게 많아졌네요.”
“네, 저도 사장님과 함께하면서 정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현재 준비 중인 기획실을 전략 기획실로 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해서, 관계사의 업무 조율과 관리를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폐단이 더 많지 않을까요?”
“폐단이라 하시면?”
“일단 옥상옥이 만들어지고, 조직의 자율성을 해치게 되는데.”
“그런 부분이 저도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업무를 간섭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해 봅시다.”
“네, 그럼 추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사장님.”
“곧 개학인 거 알죠?”
“아, 사장님이 학생인 것을 깜박했습니다.”
“학년이 바뀌는 새 학기라 회사 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3월에는 주총도 많으니 그 점도 참고해서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해 주시구요.”
“명심하겠습니다.”
‘안재희가 곧 귀국한다고 했는데.’
유제범 부장이 나가자, 문득 안재희가 귀국한다는 톡을 보낸 것이 생각났다.
안재희를 따라다니는 사프캣을 통해서 인터뷰 영상은 보았다.
대답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태영이 면접관은 아니다.
“위니.”
[네, 마스터.]“안재희 아직 미국인가?”
[지금 인천 공항 수화물 찾는 곳에 있습니다.]~띠링~
그때 톡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다녀왔습니다.)
(지금 공항입니다.)
(수화물 찾아서 집에 도착하는 대로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화물을 기다리며 톡을 보낸 듯하다.
(그래, 마중 못 갔다.)
(대중교통으로 갈 생각 하지 말고 택시를 이용해.)
(그리고 주말에 한번 보도록 하자.)
태영은 답신을 보냈다.
(네, 오빠.)
(그럼 미국 다녀온 결과는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검정고시 원서 접수를 했다고 했다.
미국 대학에 합격하면 검정고시는 치를 필요가 없지 않나?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