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27
172. 분할 계획
~웅~
(오늘까지 출장이라 했는데, 내일 오전에 잠시 볼 수 있겠니? 우리 회사에서.)
이새봄을 학교에 내려 주고 차를 출발하려 하는데 도착한 어머니의 톡이다.
출장이라고 했을 뿐, 인도네시아에 탐사를 간다고 하진 않았다.
그러니 톡을 받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차를 출발시키면서 전화를 했다.
[태영이니?]“네, 어머니. 출장 끝났어요.”
[회사?]“봄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지금 학교 앞입니다.”
[그럼, 지금 회사로 올 수 있어? 나는 곧 도착 예정인데.]“네, 그럴게요.”
전화를 끊고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여전히 손유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함께 자리해서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이다.
“개소리들 하고 있네. 살인을 밥 먹듯이 한 거를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영상까지 쥐여 주었는데, 구속했다가 풀어 준 주제에.”
살인마도 인권이 있다는 많은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들어왔다.
얼굴을 가리고, 심지어 목소리도 변조했다.
그래도 태영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어쩌다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개소리’ 하고 말았다.
군 입대 전.
학교를 다니며 하루하루를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이야기는 강 건너 불구경도 아니었다.
강 건너에 불이 난 줄도 몰랐으니까.
그만큼 바쁘게 살았고, 세상을 돌아볼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 들려오는 그런 유의 이야기는 태영이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새끼들, 초등학생인 곽유안을 폭행한 것과 입원 환자인 김세진을 폭행한 것은 왜 한마디도 안 해?”
전역 후.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입대와 군 생활, 그리고 전역의 사이에 고려를 다녀오고 28세기를 다녀왔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알바 자리를 찾아서 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영양가 없는 추측이 난무한다.
현장을 두고 제 입맛대로 해석한다.
가는 동안 끝없이 들려오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들.
맞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자기의 말이 정확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것들은 제 딸과 아내도 그렇게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릴 거야.”
대신 때려 줄 수도 없고, 짜증만 난다.
아니다.
간혹 아내와 자식들을 조선 시대의 노비 취급하는 놈들이 있고, 남편을 노비 취급하는 여자도 있으니 그건 맞지 않다.
“유사 범죄?”
참 웃기는 소리다.
살해의 증거가 명백한 자료들을 보내 주었는데.
“그걸 풀어 준 것이야말로 범죄 아닌가?”
심지어 시신 발굴 작업까지 했다.
언론에서는 시신 발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를 했다.
그 범행의 주체가 된 자를 잠시 잡아들였다가 조사하는 시늉을 한 후에 풀어 주었다.
“경찰이 막아?”
어머니의 회사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의 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종종 보았더니 이제 눈에 익은 모양이다.
“아버지도 오셨네요?”
사장실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먼저 보였다.
“그래, 어서 오너라. 너 왔다고 이리 오라고 하더구나.”
“어째 봄이와 함께 살더니 얼굴 보기가 쉽지 않네?”
어머니의 말씀이다.
어머니는 봄이를 유난히 예쁘게 보시니 한번씩 보고 싶은 모양이다.
“봄이와 한 번씩 찾아뵙겠습니다.”
“괜찮다. 신혼인데, 너희 둘이 재미있게 살면 되지.”
신혼이라니요.
결혼한 적이 없는데?
신혼이라고 하면…….
그래, 신혼이라 치자.
“그 살인마 놈 죽었다는 뉴스 너도 봤지?”
역시, 며칠간은 그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네, 대부분 잘 죽었다고 하는데, 아닌 사람들도 있는가 보던데요?”
“제정신이 아닌 거지. 그런 놈을 구속했다가 풀어 주었으니.”
“어머니, 왜요?”
그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좋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응, 다름이 아니고, 다음 주가 레피우스 주총 아니니?”
“네, 그렇죠.”
“그때, 의제를 하나 추가 상정했으면 한다.”
주총이라고 해 봐야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다.
미 상장 회사의 주총은 회의실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다.
“어떤 것을요?”
“네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이유를 말하자면.”
“네.”
“그 약 말이다.”
“…….”
왜 자꾸 뜸을 들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걸로 회사가 알려지면, 코스피가 아닌 나스닥에 상장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엄마 생각이다.”
“아,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겠네요.”
뜸을 들인 이유가 더 큰 시장을 바라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서운하게 생각할 거라는 거지.”
“서운해한다고요?”
“일단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 그 이야기를 마저 하자.”
“네.”
“우선, 지금은 원료를 자체에서 직접 조달하잖니?”
“그렇죠.”
“원료 전담 회사를 분리해서, 그곳은 코스피나 코스닥으로 올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설명은 충분했고, 이유도 납득이 된다.
“그래서 원료 담당 회사를 설립하거나 분사의 형태로 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아버지의 의견이다.
“음, 그건…….”
그쪽은 어머니가 전문이다.
“설립, 분사, 분할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분할이 좋아요.”
분사와 신규 설립을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거기에 ‘분할’을 추가했다.
“분할?”
“설립은 새로이 만드는 과정이고, 업력이 짧아서 상장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럼?”
“분사는 설립과 유사하지만, 모회사가 100% 지분을 가져요.”
“그럼 분할은?”
“분할에는 물적 분할과 인적 분할이 있는데요. 물적 분할보다 인적 분할이 좋아요.”
“그게 어떤 차이가……?”
아버지는 궁금한 것 같은데, 태영도 궁금하다.
“물적 분할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갖는 방법, 인적 분할은 모회사의 주주가 자신의 지분대로 자회사의 지분을 가지는 방법.”
“인적 분할이 좋겠네요.”
“그렇지?”
어머니의 표정이 밝다.
여기 세 사람이 합친 레피우스 지분이 80%가 넘으니 그냥 정하면 된다.
주총의 형식은 갖출 것이지만, 결정된 것과 같다.
“저는 찬성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약의 시험에 대해 발표한 후에 진행하면 시비 거는 곳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 시비가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가능성은 열어 두는 것이 좋다.
“그렇지. 그래서 약의 임상 시험을 발표하기 전에 증자까지 끝내려 한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래, 그럼 그대로 상정한다?”
“네, 그럼 대표는 누굴 생각하십니까?”
아버지께 물었다.
“박홍균 상무라고 기억나?”
“아, 아버지 전 회사 입사 동기분요?”
전에 다니던 회사의 입사 동기라고 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그곳에서 근속 연수가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와서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옮길 당시로 보면, 자신이 이미 다니고 있던 곳의 조건이나 환경이 훨씬 더 좋다.
그럼에도 그곳을 그만두고 아버지와 뜻을 합쳤다.
“그래, 그 정도는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네, 괜찮네요. 긴 이야기는 안 해 봤지만, 능력도 있으면서 의리 있는 분 같았는데.”
“그래, 멋진 놈이지.”
“그분, 새 회사에 주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래, 지난번에는 인수하면서 일이 그렇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대표가 되면서 주주가 되면 더 좋죠.”
“그리고 태영아.”
아버지와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되자, 어머니가 부른다.
“네.”
“박유은 말이다.”
박유은은 어머니의 맏언니다.
지난번 만남에서 둘째인 박유진은 여전히 욕을 했지만, 박유은은 조금 달랐다.
외조부모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과 번호를 쪽지로 알려 주기도 했으니까.
“형편이 꽤 많이 힘든 것 같은데, 엄마가 좀 도와줘도 될까?”
한번 만난 것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납골당에도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다.
물론 태영에게는 함께 가겠느냐 하는 의사조차 묻지 않았다.
“그건 어머니의 뜻이니, 제가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잘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네 의견을 들어 보고 싶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조금 도와준다고, 어머니에게는 표시도 안 나겠지만, 받는 입장은 다릅니다.”
“그렇지?”
“처음 왔던 박유진은 당연한 권리처럼 요구했고, 박상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박유은에게 주면, 박유진이 모르고, 박상덕이 모르겠습니까?”
“…….”
“한번 주면, 계속 줘야 합니다.”
“…….”
“그리고 받은 후에도 그건 자신들이 받을 권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받아야 하는데도 말이죠.”
“……으음.”
“줄 거면 제대로 많이 줄 것이지, 거지에게 동냥 주듯 주느냐고 욕할 것입니다.”
“…….”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기억해 보세요.”
“…….”
“제가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
“제가 본 바로, 박유진은 죽고 난 뒤에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
“혹시 그리될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거지가 되어서,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 때까지 모르는 사람으로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 도와주게 되면, 각서 쓰고, 영상 녹화하고, 다시는 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공증을 하고…… 아마 그래도 또 오겠지만.”
“…….”
어머니는 끝까지 태영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의견을 말하지도 않고 들어 주었다.
“그들은 상식도 양심도 없는 벌레들이거든요.”
마지막 말은 해서는 안 되는데, 그래도 해 버렸다.
어머니의 형제들인데.
친구들의 이야기 속의 형제들.
또 친구들이 전하는 이야기 속의 형제들.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먼 사이다.
항상 가깝고 친근하면 좋겠지만, 멀어져도 박유진처럼 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아무 의견도 개진하지 않았다.
그간 어머니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어머니는 박유은을 도와줄지 아닐지 결정을 하기 전에 태영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니 말하는 것일 뿐, 도움을 주는 것에 상관하고 싶지는 않다.
태영에게는 남이지만, 어머니에게는 형제이니까.
다만, 도움을 받고도 욕을 한다면, 부모님 모르게 그 대가를 받아 낼 것이다.
그것도 처절하게.
“회사 이름은 ‘아슬레’라고 지을까 한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아버지가 분할할 회사 이름을 말했다.
“뜻이 있습니까?”
“레피우스하고 조합해 봐라.”
“저는 레피우스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요.”
***
“어서 와.”
“위험 수당이 입금되어서 온 거야.”
미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류지현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글생글 웃는다.
그런데 웬일이지?
또박또박 따지고 들지 않고, 예쁘게 웃는 표정이라니.
꽤 신경을 쓴 것처럼 잘 어울리는 옷차림에 저렇게 조병원의 말처럼 강한아 닮았고, 예쁘긴 하다.
웃으니까 더 예쁘다.
웃음을 지우고 얼굴이 싸늘해지면 얼음 마녀가 되지만.
“아무튼 와 줘서 쌩큐.”
류지현은 안내하겠다는 호텔 식당 직원에게 직접 가겠다고 하고 앞장섰다.
“뭐 신나는 일 있어?”
“왜?”
“집 나간 서방님 돌아온 표정이어서.”
“너, 은근 조선 시대 사람 같은 거 알아?”
조선 시대?
조선 시대가 아니고 고려 시대에 살다 왔다.
“여하튼 내가 실수를 두 번이나 했어.”
“왜? 무슨 실수를? 네가 실수할 때도 있어?”
“티베트, 그리고 수마트라.”
“묻어 버리지 않고 데려와 줘서 고맙기도 하고, 오늘은 용서해 줄게.”
“왜? 뭘?”
“그…… 에사믹.”
아, 그 방어복?
“에사믹이 뭐?”
“진짜 칼이 안 들어가네.”
“총은 안 쏴 봤어?”
“총까지 실험해 보기에는 목숨이 아까워서.”
칼은 위험하지 않나?
하긴 칼로 생긴 자상과 총상이 다르기는 하지.
~똑똑~
로즈룸 앞에서 노크를 하더니 그대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식사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테이블 위에는 식사 대신 찻잔이 놓여 있고, 네 사람이 앉아 있다.
조셉, 제프, 브랜든 홀.
그리고 제스.
류기현도 온다고 했는데?
그럼, 다른 방에 있다는 말이다.
“Hi Mr. Choi.”
조셉이 일어나 인사를 했지만, 환한 표정은 아니다.
그래, 환할 수가 없지.
제프와 브랜든 홀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Fortunately, you came back alive. (다행히 살아서 돌아왔네.)”
기분 나빠 보라는 뜻으로 한마디 했다.
그래도 인상을 구기지 않는다.
약했나?
전에 제프를 통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왔지만, 정작 얼굴을 본 자리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제프와 브랜든 홀에게는 고개만 까딱했다.
“반갑소.”
코드 네임 제스.
“네, 반갑습니다.”
간단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Eleven went first. All died. (열한 명이 먼저 갔고, 모두 죽었다.)”
제프가 간단한 말로 시작했다.
그걸 어쩌라고?
“(그리고, 너희와 함께 간 일행 중에 셋이 죽었다.)”
“(그게 우리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나?)”
짜증이 나서 쏘아붙였다.
“(아니다. 엘리샤의 보고서에서 네가 숲을 통해 도보로 가자고 했는데, 그들이 자동차로 갔고, 모두 폭사했다고 알고 있다.)”
알면 된 거지. 뭐가 또 필요해?
그리고 조셉.
너는 Hi밖에 할 말이 없나?
“(폭발 장소에서 적을 사살한 사람이 너라고 들었다.)”
“(맞다.)”
“(한 명이 생존해 있었다는데, 파악한 정보는 없나?)”
“(중국인,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엘리샤에게 확인하면 된다.)”
엘리샤가 한마디도 묻지 않고 총알을 먹여 주었으니 건질 것이 없지.
총알을 먹여 주지 않았다고 해도 곧 인도네시아 군이 올 텐데 방법이 없었지만.
“(그 흔적에 있던 사람은 어찌했나?)”
뭔가 취조하는 말투라 기분이 나쁜데, 리포트라고 생각해서 참는다.
“(그들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탈출이 우선이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