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36
181. 수신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몸은 마른나무처럼 말라 갔다.
그가 보고 싶었다.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은 남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를 만나지 못하고, 이대로 떠나기는 너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그가 보고 싶었다.
오빠에게 그와 마지막으로 한번만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식당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원을 풀었다.
이제 죽어도 상관없다.
그 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참 예쁘구나.’
그의 말이 다시 들렸을 때의 첫말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하늘에 올라온 것도 아닌데, 몸은 개운하고 따뜻했다.
‘칼을 댄 흔적이 없네.’
그의 말이었다.
성형 수술을 말하는 거라면 맞다.
하지 않았으니까.
‘이새봄,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어떤 병도 너에게는 오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네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프지도 않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럴 수도 있나?
‘에이, 내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잠든 애에게 하고 있나.’
또 그의 말이다.
물소리가 들리며, 몸을 감싸고 있던 따뜻한 물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내가 지금 발가벗고 있는 거야?’
느낌이 확실히 그랬다.
‘나는 돌아가야 하거든.’
그가 그 말을 하면서, 온몸을 씻어 주었다.
철이 들고 몸이 어른이 되면서 엄마도 해 주지 않던 일이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스쳐 지나갔다.
~꿀꺽~
아무리 참아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침이 넘어갔다.
~후우~
숨도 크게 쉬어졌다.
“위니, 이새봄이 깬 거야?”
그가 누군가에게 물었다.
누가 또 있나?
그럼 병원일까?
분명히 그는 고려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고려’
서기 918년부터 1392년까지 이 땅 위에 있던 과거의 나라.
그런데, 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어떻게?
수십 번, 수백 번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왜?
왜 꼭 가야 하는 것일까?
그가 간다면 따라갈 것이다.
그의 옆에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살아가자.
그래야 살 수 있다.
‘저기서 살 거야. 저 방 나 줘.’
그렇게 방 하나를 내놓으라고 했다.
‘나, 오빠가 오빠 집에서 내보내면 나가자마자 죽어 버릴 거야.’
생떼를 쓴 것이다.
억지이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그가 없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살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떼를 쓰는 것.
자신이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된다.
그래도 이 집에서 나가면 안 될 것 같았기에 그렇게 했다.
‘그만, 그 방 너 주마.’
그렇게 그는 허락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죽음에서 끌어 올려 놓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또, 다른 어떤 청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냥, 집 안에 살도록 해 주는 것.
딱 거기까지만 허락했다.
어느 날, 마지막 심정을 말했다.
고려로 떠나기 전까지 사귀자.
그것조차 받아 주지 않으면, 망부석이 되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오늘부터 1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것도 머릿속에 없었다.
어떻게 키스를 했는지도 몰랐다.
생애 첫 키스다.
뜨거운 기운이 그의 입 안과 자신의 입 안에서 얽히며 오갔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밀어냈다.
그 행동에 서운하고 한편으로 속상하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부터 1일’이라고 했지만,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와.’
누가 온다고? 그래서 밀어낸 것이구나.
맞다.
친오빠가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 왔고, 지금 거실에 모여 있다.
서운한 감정이 일시에 사라졌다.
‘흡, 흐흡.’
그의 목을 감았던 팔을 재빨리 풀고 머리와 옷을 다듬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헛기침을 했다.
~딸깍~
아직 호흡이 진정되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뭐 해?’
자신의 친오빠 이한봄.
뭐 하기는 이 원수…… 아니구나.
친오빠는 그와 군 입대 동기다.
입대 전에는 본 적도 없는 사이지만, 그가 자신을 알게 된 직접적인 당사자이다.
그래도, 태어나서 첫 키스인데 이렇게 강제로 떼어 놓다니.
‘이야기 좀 하느…….’
‘어, 우리가 있어서 귀가 키스를 못 했구나. 알았다. 난 나갈 테니, 마음대로.’
그의 말에 오빠는 제 마음대로 말하고 나갔다.
그 후로, 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냥 무심한 사람에서 한없이 챙겨 주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을 배려해 주었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던 메타버스.
어느 날 갑자기 메타버스 회사의 대표가 되어 보라고 했다.
사회 경험은 아무것도 없는데.
처음 얼마간은 일일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인수한 회사 임원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이라고 했다.
‘내 남자.’
잠든 얼굴이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듯 보인다.
‘그리고, 당신의 여자.’
자신처럼 딥페이크에 당한 친구들의 복수를 위해 출장을 가는 사람.
아마도 그가 몇 번 보여 준 것처럼 하늘을 날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새처럼.
함께 가고 싶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어서 혼자 가겠다고 한다.
그러니 참자.
‘잘 다녀와요, 무사히. 사랑해요.’
***
오영배의 비서라고 한 박의찬이 보내 준 주소에 있는 빌딩.
오늘 낮.
태영은 이새봄과 함께 자동차 전시장을 찾아 두 대의 차를 계약했다.
차를 인도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동급 차량으로 한 대의 렌터카를 알선해서 그것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여자 경호원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곳으로 왔다.
“사옥이라, 우리도 준비하고 있는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위니.”
[네, 마스터.]“사람이 많거나, 절대로 소리를 내서 안 되는 상황에서 위니에게 물어야 하는 일이 있잖아?”
주차를 하며 물었다.
어제 이새봄과 동기들 간의 회식 자리에서 그 필요성을 느꼈다.
위니와의 소통에서 딱 하나의 불편함이다.
[네, 항상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소설에서 본 것이지만, 뇌파를 읽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안 되는 건가?”
[한때 사용되었습니다만, 부작용이 극심해서 폐기되었습니다.]“부작용?”
[12,715가지의 부작용 피해 사례가 조사되었습니다.]“그렇게 많이?”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용자가 꿈을 꾸면서 그 꿈을 실현한 것이었습니다.]꿈을 실현하면 좋은 거 아닌가?
“꿈을 실현했다. 그건 무슨 말이야?”
“결과는?”
[실제 도시 하나가 잿더미가 되었고, 그 도시 거주자의 78%가 사망했습니다.]“허.”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군인, 그것도 사단장이면 무력 동원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뇌파 통신으로 인공 지능과 통신 가능한 시대의 무기들 수준은?
병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무인 조종 가능한 화력은 차고 넘쳤을 테니.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꿈을 꿀 때에도 뇌파는 요동치니까.
수많은 뇌파 실험은 시험자를 재워 놓고 진행한다.
“78%? 몇 명이나 살던 도시였는데?”
[46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정말 끔찍한 일이다.
46만 명의 인구 중에 36만 명 정도가 죽었다는 말이니까.
그 사례 단 한 건만으로도 폐기가 마땅하다.
“동일 증상으로 가장 많은 부작용은 어떻게 돼?”
[사용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일입니다.]“갑자기 사망?”
[네, 신체 건강한 사용자가 돌연사하는 일인데, 그 회수가 5,229회입니다.]그 말은 그 많은 사람이 뇌파 통신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이다.
물론 36만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그것도 간과할 일은 아니다.
“그건 원인이 뭐야?”
[추론은 1만 가지가 넘지만,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습니다.]꿈은 꿈이라는 명확한 원인이 있다.
그런데 돌연사는 모른다?
그렇네.
뇌파 통신을 하다가 네가 언제 죽는지 시험해 보자고 하면?
그걸 제안하면 상대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실험에 누가 지원할까?
물론 인공 지능 내부에 로그를 남기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간으로 가장 짧은 기간과 가장 긴 기간으로 나누면 어때?”
[사용 후 7일 이내에 사망한 사용자가 1,201명. 조사 내용 중 가장 기간이 긴 경우는 3년입니다.]“그 정도면 뇌파 통신은 폐기가 맞아.”
[그래서 뇌파 통신은 폐기되고, 오직 음성으로 전달하도록 바뀐 것입니다.]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꼭 말로 하는 경우 외에 위니와 소통 방법이 없을까?”
[약속된 신호 이후에 수화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수화는 내가 다시 배워야 하니까 어렵고, 그냥 한글로 쓰면 안 되나?”
[가능합니다. 시작 신호를 정한 후에 하면 됩니다.]그 말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튕겨서 소리를 내 보았다.
시작 신호가 필요하지.
쉽고 단순하면서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왼손 중지를 접고, 엄지를 그 위에 겹쳐서 팔을 돌리는 것으로 하자.”
“그래, 글씨는 아무 손이나.”
추가적인 설명을 한 후에 태영은 방금 설명한 대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잘 인지됩니다. 앞으로 음성으로 저를 부를 수 없을 때, 그 신호를 시점으로 보겠습니다.]검지로 ‘이 건물이야. 말로 해 봐.’라고 썼다.
[이 건물이야. 말로 해 봐, 라고 하셨습니다.]인식은 정확할 것이다.
태영의 신체 능력이 있기에 평소 쓰는 수준에 비해 10배 정도로 빠르게 썼다.
그래도 한 자도 틀리지 않는다.
그 정도 속도라면 말로 하는 것보다 빠르다.
“그래, 되었다.”
1층 로비.
약속을 말하자 직원이 직접 안내했다.
안내된 회의실은 터니테크 대회의실 크기의 4배도 넘어 보인다.
높이는 2개 층은 될 정도로 천장이 높다.
넓으면 높이도 비례적으로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한 장소가 된다.
그 넓은 회의실에 사람은 몇 없다.
“어서 와, 반가워.”
오영배는 회의실 안쪽의 입구 부근에 서 있었다.
“네, 반갑습니다.”
안 반갑습니다, 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니까.
실내에는 오영배를 제외하고 9명이 있다.
두 사람은 오영배의 근거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비서실 직원이 아닐까 싶다.
그들 중에 일부는 ‘쟤는 누구야?’ 하는 표정이다.
아는 얼굴인 고종필 박사와 윤병광 박사가 있다.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 오랜만이죠?”
고종필이 아는 체를 한다.
“네, 그렇군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박사님, 그 애입니까?”
그 애라니?
그렇게 말한 사람은 중년의 여자다.
이 회의실 안에서 가장 어린 것은 맞다.
그래도 이미 만난 적이 있으면서, 놀러 왔다면 몰라도 일하러 왔다면 애라고 하면 안 되지.
‘에이, 한번만 넘어가자.’
오늘 밤, 먼 길 떠나야 하는데, 조금만 참지 뭐.
“반가워요.”
이번에는 윤병광 박사다.
“아, 네. 반갑습니다.”
청해 오는 악수에 잠시 손을 잡은 후, 오영배를 바라보았다.
설명 좀 해 봐, 라는 의미의 눈빛을 담아서.
“저, 터니테크 사장님 오셨습니다. 좌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영배의 옆에 서 있던 한 명이다.
“갖고 왔지?”
오영배의 질문이다.
사이너큐브를 가지고 왔느냐 하는 질문이다.
천장이 높은 회의실을 선택한 이유가 이것 때문 일 것이다.
“그 왜, 이걸 가져오라고 해요?”
사이니지를 넣어 온 가방을 들어 보이며 투덜거렸다.
“그걸로 보면 완벽하게 3D로 보이니까.”
사이니지로 보면 실제처럼 눈앞에 보이니 좋기는 하지.
“이건 누구를 시킬 수도 없고, 내가 직접 다 해야 하는데, 성가시게.”
“그러니까 한 대를 먼저 주고 교육을 좀 시켜 달라니까.”
“에이, 시끄럽고.”
“진짜 안 줄 거야?”
“약속이 이행되기 전에는 어림도 없어요. 시간 지체되면 다른 데 줄 테니까 그렇게 아시고.”
“알았다. 인사나 먼저 나누자.”
오영배의 말에 둘러보니, 오영배 회장과 박 실장, 그리고 또 비서 한 명.
윤병광 박사, 고종필 박사, 고종필과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역시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넷.
남자들은 모두 중장년의 나이다.
윤병광과 고종필은 이미 아는 사이다.
들어서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나, 남수진이야. 고 박사님과 같이 왔고.”
여자가 먼저 말했다.
이 여자는 기본적으로 예의가 없다.
윤병광과 고종필이 태영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바로 하대를 한다.
‘그 애’라고 할 때부터 거슬리더니.
시작이 좋지 않다.
“아, 난 최태영이야.”
“뭐? 야, 너 나이도 어린것이 반말이야?”
“남 박사님.”
오영배가 불렀다.
“네, 왜요?”
얼굴을 홱 돌리며 아주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저 친구는 양해 없이 반말하면 같이 반말합니다. 내가 처음에 그것 때문에 얼마나 약이 올랐던지.”
“그래서요?”
둘이 다투기라도 할 건가?
“양해를 먼저 구하시죠.”
“내가 저, 핏…….”
옆에 있던 고종필이 남수진을 툭 쳤다.
가만두었으면 ‘핏덩이’라고 했을 것이다.
“남 박사님, 여기 왜 왔습니까?”
고종필의 질문이다.
목소리는 가라앉았고, 노려보는 표정이다.
“공적인 자리이니 공적으로 합시다.”
“내가 뭘. 대체, 에잇.”
고종필의 말에 남수진이 짜증은 내긴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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