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49
194. 1주년의 일(2)
태영과 이새봄은 5분 후에 식을 시작할 테니 회의장으로 들어와 달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야.”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보니 조병원이 양복 차림으로 서 있다.
“왜 왔어?”
“야, 이제 반말하면 안 되지.”
“한번 반말은 영원한 반말이지, 무슨 소리야?”
“그…… 근데, 이…… 이분과 무슨 사이?”
이새봄을 힐끗 보고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사생활 캐는 버르장머리는 아직 못 고쳤네.”
“아…… 아이. 야, 이렇게 물어보는 건 사생활 캐는 것이 아니지.”
“그럼 취조하는 거야? 습관처럼?”
“마…… 말을 꼭 그렇게 하냐?”
“그럼 왜 그러는 건데?”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사생활 캐는 것과 구분 좀 해라.”
“종이 한 장 차이지, 무슨.”
“안녕하세요. 이새봄이라고 합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새봄이 싱긋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조…… 조 벼… 조병원이라고 하, 합니다.”
조병원은 예쁜 여자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이러니 아직도 싱글이겠지만.
이새봄이 소개를 하면서 웃어 주자 진정되어 가다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여기 초대받지 못했을 텐데?”
“……아아, 그…… 초대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 프린…… 류…… 류지현도 올 거야.”
태영의 말에 한참을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태영은 그 사실을 몰랐다.
하긴 사단 법인의 모든 일을 태영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고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니,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할 수도 없다.
“걔는 또 왜?”
“야, 우린 또 그런 사이잖아.”
이제 떨림에서 벗어난 것 같다.
“조병원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지만, 재벌 남친이 있어서 말도 못 꺼내는 사이.”
“남들이 들으면 오해해. 그러니까 말조심 좀 해 줘. 그런데 아직 안 왔어?”
“몰라, 얼굴은 안 보였어.”
“들어가자.”
단상 중앙의 스크린에는 증발 군인들의 사진과 이름이 영상으로 떠 있다.
계급 순과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352명의 사진이다.
태영은 이새봄과 함께 참관인 자리의 한곳에 자리했다.
참관인이 많지 않았기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조병원은 태영의 옆에 붙어 앉았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 양복.
목에 나비넥타이를 맨 사람이 회의장 사이드의 단상 앞에 서서 장내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회원 이외의 참석자의 입장을 알리며 그들을 소개했다.
3명의 국회의원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 보낸 고위직 인사와 후원금을 낸 기업에서 보낸 대리인들이 귀빈석에 앉았다.
군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전역한 장교들과 병사들 여럿이 참석했다.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빈석이 아닌 동료들의 자리에 앉았다.
“넌 왜 귀빈석에 안 가고?”
“난, 귀빈이 아니니까. 그리고 저기 앉으면 얼굴 팔려서 안 돼.”
정부 부처에서도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보훈처의 사람들이 강제로 참석하고자 했지만, 그들은 쫓겨났다.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의 연설은 없다.
후원금을 많이 낸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연설해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연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뒤로 돌았다.
뒤쪽에는 거대한 태극기가 영상으로 펄럭이고 있다.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다음은 애국가를 부르시겠습니다.”
잠시 후 애국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은 없다.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행사이다.
애국가가 시작되고 잠시 후에 회의장 안의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애국가가 끝나자 사회자는 묵념을 말했고, 장중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묵념이 끝나고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영상은 증발 경과보고로 이어졌다.
증발 병력의 숫자와 당시 현황에 대한 내용이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주소지 지역별로 증발한 사람의 숫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79명, 경기 105명, 부산 64명, 영남 51명, 호남 23명, 충청 17명, 강원 11 명, 그리고 미국 1명.
서울을 선두로 증발한 인원이 많은 지역부터 표시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군복무를 하다가 증발한 1명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차기원 화장의 말이다.
사망 판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
바로 저 의미와 상관이 있다.
국방부나 보훈처에서도 사망으로 판정이 내려지지 않아서 보훈 대상도, 유공자도 아니라고 한다.
실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적된다고 하는데, 실종 사유에 따라 제적 기간이 다르다.
그때부터 증발한 군인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보내는 장면 등 행복했던 시간의 영상이 짧게 지나갔다.
꽤나 공들여서 만든 영상이다.
{흐으으응, 동윤아아, 동윤아아…….}
{오빠, 보고 싶다. 오빠 꼭 돌아와야 해. 흐으윽.}
{상철아, 상철아…… 흐으으으으…….}
{아빠, 왜 안 돌아오세요? 보고 싶어요, 아빠.}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울음소리.
오빠를 그리워하는 여동생의 흐느낌.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어린 딸의 외침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가 영상에 나올 때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병사들의 훈련 장면과 전투 장면이 교차로 보였다.
이어지는 행군 장면에 울려 퍼지는 군가.
전체적인 흐름은 사람들의 감정선과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는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뭉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행사는 마무리되어 갔다.
문제는 사회자가 폐식을 선언하는 중에 일어났다.
“난 국회의원 유재구요. 여러분들에게 할 말이 있소.”
유재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음악도, 영상도 꺼진 상태.
회원들의 훌쩍임이 끝나고 마음이 많이 진정된 때이기에 큰 소리는 장내를 울렸다.
예정에 없던 돌발 상황에 놀란 사회자가 차기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재구는 사회자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단상으로 빠르게 갔다.
경호 요원들도 제지할 틈이 없었다.
“의원님, 안 됩니다.”
마이크를 빼앗으려는 행동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등 뒤로 숨겼다.
그러나 유재구를 따라 단상으로 나온 두 사람이 사회자를 붙잡았다.
유재구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 말이 시작되자 많은 회원들의 시선이 태영을 찾아 움직였다.
“오빠.”
“저 미친.”
이새봄의 걱정스러운 부름에 뒤이어 조병원의 욕설이 들려왔다.
유재구가 말을 이었다.
“돌았군.”
태영을 죽이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했고, 가족을 상대로 그렇게 했던 자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혼을 내고 조용히 지냈기에 그냥 두었다.
안재희에게 복수할 기회를 줄 생각도 했기에 더 이상 손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옳소. 조사해야 한다.}
{그 말이 맞다. 어떻게 혼자만 돌아올 수 있었는지 해명해야 한다.}
{검찰에서 조사해야 한다.}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
{최태영, 조사를 받아라.}
{유 의원님, 말이 맞다. 고발해서라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
저들은 태영이 군에서 1개월 반이나 조사받은 것을 모르나?
“머리 검은 짐승이라.”
태영이 내뱉은 말에 조병원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태영을 바라보고 있는 조병원이 마지막 날까지 태영을 조사한 사람이다.
전역을 시켜 주지 않고 무려 1개월 반을 조사하고 마지막 날에 찾아왔었다.
[유재구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이 194명, 마스터를 옹호하는 사람이 71명, 나머지 84명은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3명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위니가 알려 왔다.
[다만, 지금도 변화가 있으니 아직 미확정으로 보시면 됩니다.]분위기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유재구에게 동조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왔다 갔다 하는 쪽일 테니, 그렇게 봐야 한다.
그래도 55%가 유재구의 별것 아닌 선동에 넘어가다니.
“많은 도움을 줬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은 사람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의사 표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 24% 이상인데, 저들이 유재구 쪽으로 붙으면 80%이다.
그게 조사 대상이 되기는 하나?
태영이 생각하는 중에도 유재구는 선동과 비난을 계속했다.
“선동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유재구가 길을 터 준 거지.”
태영의 말에 조병원이 덧붙인 말이다.
“분노의 표출 대상이라.”
“그들 모두는 분노가 잠재되어 있었는데, 유재구가 너를 타깃으로 정하고 꼭지를 틀었지. 모두 돌아오지 못했지만 너는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그런 건가?”
이새봄이 팔짱을 끼고 태영에게 매달렸다.
걱정하는 떨림이 느껴진다.
이새봄의 손을 툭툭,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거기에 너는 아주 돈을 잘 벌고 있으니.”
“흠.”
“대가 없는 호의도 문제였지.”
“대가 없는 호의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결론은 내가 잘못했다는 거네?”
“아, 그렇게 단정 지을 필요는 없고, 저들은 네가 베풀어 준 호의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거지.”
“왜 그럴까?”
“복잡한 문제야. 아주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차라리 오늘 일이 다행이다.
무조건 돕고 싶었다.
그래서 했던 일이 이렇게 돌아올지는 몰랐지만.
증발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 그 일.
후손들이라 볼 수 있는 28세기의 지구에서 그들이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벌인 일이었다.
그 일로 이곳의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한 피해이지, 태영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걸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후우.”
혼자 돌아온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능력이 닿는 데까지 가능하면 많이 돕고 싶었다.
돕기는 해도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웬 한숨이냐?”
“후회가 되어서.”
태영에게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27년의 다른 삶이 있다.
고려에서의 8년과 28세기에서의 19년.
그곳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대학 3학년의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까?”
위니에게 수신호를 보내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아닙니다, 마스터. 차기원, 선영란 두 사람은 가볍게, 김경훈, 이정아, 박호석, 정이진은 유재구의 발언에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신정현은 오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임원들은 적극적으로 표시하면 안 되니, 차기원과 선영란의 행동이 맞다.
신정현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등기 임원의 성향도 궁금한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변화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증발 군인 가족들 중 얼마나 만났어?”
조병원이 물었다.
“15명인가.”
“제법 만났네. 차 회장님이나 그분들도 증발 군인 가족이지?”
“차 회장님은 아들, 선 부회장님은 남편, 지부장들은 대부분 아들을 잃은 사람.”
“지부장들?”
“지역별로 나눠서 7개 지부인데, 증발한 인원이 많은 곳은 등기 임원, 순위 이후는 비등기라고 했어.”
“지부장들은 그 지역의 여론을 바꿀 수 있는 위치이지?”
“아마도.”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항상 생각해 둬. 호의가 과하면 독이 되는 거야.”
조병원이 조사 능력 이외에는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조언을 할 줄도 안다.
~웅~
(분위기 왜 이래? 저놈은 뭐 하는 짓이야?)
폰을 들어 보니 류지현이 보낸 메시지다.
회의장 안에 앉아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안 되는 일이었어.”
“뭐가 안 돼.”
태영의 중얼거림에 ‘살려 두면’이라는 말이 빠졌었는데 조병원이 물어왔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럼?”
“정말 궁금하면 식 끝나고 따라오든지.”
“P도 같이 가는 것이 좋겠지?”
눈빛이 반짝이며 류지현까지 끌어들이려는 것을 보니 뭔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든지.”
이미 식은 끝났다.
일부의 사람들은 회의장을 슬슬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저기 있다. 최태영이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어디?”
“잡아라, 잡아.”
“앞으로 끌어내. 왜 혼자 돌아왔는지 들어 보자.”
고함 소리가 켜지며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어떡해?”
이새봄이 조바심을 낸다.
“봄아, 걱정하지 말고. 조병원, 부탁 좀 하자.”
태영이 이새봄에게 말하며 조병원에게 말했다.
“어쩌려고?”
“빨리 나가. 시간 없어. 저거 안 보여?”
국제 회의장 안이 넓어 봐야 실내다.
“오빠.”
“봄아, 나 믿어. 걱정하지 말고 이 사람 따라 나가서 차에 가 있어.”
자동차 키를 이새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으응, 알았어.”
태영이 한쪽으로 이동해서 이새봄과 조병원이 있는 장소와 거리를 벌렸다.
애초에 저들의 목적은 태영을 잡는 것이니, 조병원과 이새봄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는 몇 개의 입구 중에 사이드 쪽을 향해 느릿한 걸음으로 통로에 나섰다.
사람들이 태영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일부는 달려오기에 이새봄과 조병원이 무사히 회의장 입구 쪽으로 갔다.
“위니, 류지현에게 나가라고 메시지 보내고, 봄이 건드리면 처리해.”
[네, 마스터. 새봄 님에 대해 최상급 방어 체계에 들어갑니다.]그럼 되었다.
조병원과 이새봄이 회의장 문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차기원과 선영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다.
차기원에게 마이크를 달라는 신호를 했다.
“위니, 차 회장, 선 부회장에게 피신하라고 메시지.”
[지금 보내겠습니다.]이 상황에서 메시지를 볼 정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리는 해야지.
가능하면 저들이 두 사람을 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턱~
누군가가 태영의 앞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를 크게 냈다.
터니가드의 경호원 둘이 태영의 앞에 섰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십시오.”
“물러나세요.”
경호원이 소리쳤다.
“비켜, 이 새끼야.”
다가오는 사람은 욕설부터 시작하면서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퍽~
경호원은 주먹을 피했지만, 다른 주먹이 배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방검복을 입고 있었기에 타격이 덜하겠지만, 폭행은 폭행이다.
“경호원 두 분, 물러나요.”
태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사장님을 경호…….”
~퍽~
다시 주먹이 날아왔고, 경호원은 어깨로 막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