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62
207. 28세기에서 온 도둑
“바이호르미어, 정말 감사합니다.”
태영은 현관에 선 상태이다.
한지아도 현관에 선 상태로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를 한다.
외견상, 한지아가 태영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캐롤라인이 55세라고 했으니, 한지아도 그 전후일 것이다.
“아, 들어오십시오.”
뒷걸음으로 들어간 한지아의 뒤쪽.
캐롤라인이 엉거주춤 서 있고,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않은 사람은 알프레도 헤이즈다.
처음 봤을 때는 거의 90대 나이의 노인이었는데, 지금은 70대 정도로 보인다.
그래도 쉽게 걷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살아났네?”
“고맙습니다, 정말.”
소파에 앉은 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캐롤라인이 감사 인사를 또 한다.
얼굴은 서양인인데, 말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니 느낌이 묘하다.
“효과가 달리네. 두 번째라서 그런가?”
“그래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회복이 되고 있다.
시공간을 거슬러 와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노화 가속 현상이 발생해서 그것을 되돌리는 것일까?
노화 역행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2주 정도 만에 저 상태라면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난 것이다.
“지난번에 보려고 했더니 일이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만나지 못하고 그냥 갔는데, 무슨 일 해?”
한지아에게 물었다.
“그게…….”
“말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돼. 알고 싶어서 물은 것은 아니니까.”
“그게…… R존에서 오신 것이 맞습니까?”
한지아가 20대 중반으로 보이듯 외견으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깍듯한 존댓말로 물어온다.
“그걸 왜 내가 대답해 줘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지만, 그 간단한 것도 답을 못 하니 까칠하게 답했다.
그래도 그 대답 속에는 R존에서 왔다는 답이 들어 있다.
“아, 죄송합니다.”
“대가를 지불할 거야?”
한지아의 사과 뒤에 알프레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왜 놀래?”
“아, 그…….”
“척 보니 돈은 없어 보이구만.”
“네, 사실 그렇습니다.”
“신분증은 어찌 만들었어?”
이게 제일 궁금했다.
지난번에 캐롤라인이 얼버무리며 답을 피해 갔다.
“…….”
역시 답을 머뭇거린다.
캐롤라인이나 알프레도의 얼굴은 의심의 여지없이 외국인이다.
귀화를 하려면 원래의 신분이 증명되어야 한다.
난민으로 새 신분을 받으면 되지만, 그 역시 난민임을 증명해야 한다.
“왜? 무적자야?”
질문을 하면서 캐롤라인을 돌아보았다.
캐롤라인은 고개를 돌린다.
“취업이 안 될 텐데? 통장을 만드는 것도 안 되고, 운전면허 취득도 불가능하고, 전화 개통이나 여권…….”
한지아는 본래 한국인이니 얼굴 모습 같은 외부적인 것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28세기에서 왔기에 이 시대의 정상적인 신분은 없다.
신분증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그건 누군가 보호자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자립해야 한다면, 신분증 없이는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통장을 만들 수 없고, 신용 카드나 캐시 카드도 불가능하다.
전화를 개통할 수 없고, 운전면허를 딸 수도 없다.
여권을 만드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다.
신분증 없이는 취업도 불가능이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해도 신분증은 있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그 중요성을 일상에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정상적인 취업이 안 되는데, 이 집은 어떻게 얻어서 살고 있을까?
“시공간 이동, 너희는 R게이트라 부르지만, 나는 피디지로 불러.”
“……?”
갑자기 대화 주제를 바꾸니, ‘왜?’라는 의문의 표정으로 태영을 바라본다.
“피디지를 열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해.”
“네.”
“시공간을 넘을 수 있는 그 순간을 호모페놈이라 부르지.”
이것은 28세기의 R존에서 연구소장인 아린 위버가 해 준 말이다.
이들과는 시공간 차원을 넘었다는 동질성이 있고,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수 있기에 말을 했다.
“그때, 막대한 에너지에 노출되는 것과 함께 호모페놈으로 만들어진 썸 포인터를 지나는 사이, 몸에 비정상적인 변화가 생겨.”
아린 위버도 이 변화에 대한 부분은 몰랐다.
피디지를 넘어 본 적이 없으니까.
“호모지나세이션 퍼나미논.”
어?
태영이 호모페놈(Homophenom)은 말하긴 했다.
그러나 호모지나세이션(Homogenization)과 퍼나미논(Phenomenon)의 합성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합성어를 알아?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가?
조금 놀랐다.
“아린 위버…… 유운기 박사님, 그루 언니…… 흑.”
허.
놀라고 있는 사이에 한지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건 뭐야?
28세기 그곳 카트만두 지하에 있는 R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
한그루 박사의 이름을 언니라 부르며 말끝에 울음이 배어 나왔다.
“한그루가 언니야?”
“……?”
‘그걸 왜 몰라?’ 같은 의문이 얼굴에 보였다.
한지아의 의문은 보는 관점이 다른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넌, 내가 R존에서 온 사람으로 아는 거야?”
“그럼?”
“난,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랐어.”
“……그, 그게 어찌?”
“질문은 거기까지. 네가 피디지를 넘어오면서 얻었거나 잃은 것은 뭐야?”
“…….”
말을 할까 말까 갈등하며 머뭇거리는 느낌이다.
“너희 생활을 그 능력으로?”
“……네.”
“이제 말을 해 봐.”
“…….”
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눈동자.
“잠깐만……요.”
“……?”
한지아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여기서 태어나서, 어느 날 R존으로 갔다가 다시 오신 것이군요. 맞아요?”
“…….”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에 기다려 주었다.
“지난해 봄, 353명의 군인이 사라져 버린 그 사건…….”
통신도, 방송도 없는 산골짜기에 살지 않는 이상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그때, 사라졌다가 혼자 살아서 돌아온…… 그사이에 R존에 갔다 온…… 아, 이제야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는?”
저 혼자 의문을 표하고, 묻고 답하면서 해답을 찾아 갔다.
그러다가 또 얼굴 가득 의문사를 품고 말을 멈춘다.
그사이에 R존에 간 것은 맞다.
그보다 먼저 고려에 갔고, 그 이후에 R존에 갔다.
“오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가는 것은 어찌……?”
한지아의 일행도, 태영도 가만히 있는데 한지아 혼자 묻고 답했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 의문.
어떻게 갔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 기술로 가능해?”
“……아니요.”
“그럼 그 답은 네가 내놔.”
~꼬르륵~
알프레도의 배에서 나는 소리다.
“……아까, 질문하셨던 신분…….”
알프레도를 한번 바라본 한지아가 태영이 질문했던 처음으로 대화를 되돌렸다.
“그래.”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도둑질로 살았습니다.”
“도둑질?”
“네.”
“그럼 3년을 도둑년으로 살았어?”
태영이 ‘도둑년’이라고 하자 얼굴이 붉어진다.
“지금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이 집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는 능력이…….”
의식을 지배하는 능력?
뭐지?
“제대로 설명해 봐.”
“상대를 지정해서 제가 시키는 대로 행동을…….”
“짧은 시간? 그게 얼마나 돼?”
“……약 3분 정도.”
“캐롤은 일정 거리를 순간 이동하니까, 그럼 둘이서?”
“……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캐롤라인이 고개를 푹 숙인다.
“둘 다, 그 능력을 알아낸 것이 신기하네.”
“…….”
“…….”
“쿨 타임은 어느 정도나 돼?”
“정확히 재어 본 것은 아니지만, 12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가능합니다.”
“3분이 아닌 1분 정도라면?”
“바로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재미있는 그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캐롤은?”
“연속으로 5회 정도 사용 가능하고, 그 후에는 몇 시간에 한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캐롤라인의 답이다.
“알프레도는 없습니다.”
한지아가 알프레도를 한번 돌아보고 답을 했다.
“얻는 사람이 있지만, 능력을 잃는 사람도 있어. 그것도 비정상적인 변화이니까.”
“그럼?”
“알프레도는 노화 가속일 거야. 전에 내가 만난 한 사람은 1년에 10년씩 늙어 갔어.”
“……아, 그럼 바이호르미어…….”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
이건 태영도 모른다.
“조촐하지만, 저녁을 준비하겠습니다.”
캐롤라인이 일어섰다.
“배달 음식으로 하지.”
“…….”
“……왜?”
“말씀드린 신분 때문에…….”
“세상에, 배달 음식 주문도 못 하는 거야?”
“……네.”
참 어렵게 살고 있네.
도둑질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살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폰을 꺼내면서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다.
그리고 치킨과 맥주, 족발, 탕수육을 시켰다.
10인분은 되는 양이다.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지아는 거기서 직업이 뭐였어?”
주문이 끝나고 물었다.
“무기 개발, 그중에서 우주 병기 개발입니다. 우주 병기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구요.”
그때, 그곳에서의 우주 병기는 매우 중요했다.
중추적인 분야였을 것이다.
Q행성과 전쟁 중이었으니까.
시대가 다른데, 그런 분야가 여기도 있을까?
“그 대단한 재원이 식당에서 서빙을 해?”
“……네.”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고, 시대적으로 보면 자신의 세상인 28세기와는 너무 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회 체계가 너무 달라 적응도 쉽지 않았을 거다.
“몇이 왔어?”
“7명이 출발했고, 도착했을 땐 셋이 빠진 4명이었는데…….”
“한 명은 죽은 거야?”
“……네.”
피디지를 넘어올 때, 그 막대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면 넘어오면서 죽는다.
이건 28세기의 그곳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중에 하나로 들었다.
그리고 같이 진입해도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은 28세기의 그들은 모르는 일이다.
“알프레도와 캐롤은?”
“알프레도는 전투 경호 요원, 캐롤은 에너지 공학입니다.”
에너지?
“우주 무기에서 필요로 하는?”
“네, 그렇습니다.”
이들의 전공과 관련한 자료들을 위니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구현하려면 누군가는 그것을 공부해야 한다.
이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배달 음식이 도착해서 대화가 끊어졌다.
음식을 보는 눈빛이 모두 아이처럼 바뀌었다.
“와, 이…….”
“흐음, 치킨. 치킨 냄새.”
사흘쯤 굶은 사람들처럼 덤벼들어 어느 정도 배가 찰 때까지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먹기만 한다.
맥주와 콜라의 탄산을 트림으로 밀어내다가 태영과 눈이 마주치자 계면쩍게 웃는다.
그때부터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컴퓨터와 무기는 가지고 왔을 거 아냐?”
“전투 요원 둘이 캐리어를 들었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군.”
빈손이 되었다는 거다.
태영이 고려로 날아갈 때, 무려 352명의 군인들이 더 있었지만, 고려에는 혼자 갔다.
그 후, 수마트라에서 김정표와 오석현의 백골을 발견했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다른 장소로 날아갔다.
심지어 한지아 일행은 함께 피디지에 들어갔는데, 서로 헤어졌다.
“…….”
이어진 이야기는 신상에 대한 것들도 있다.
피디지를 넘을 당시에 한지아의 나이는 54세로, 이곳에서 3년을 살았으니 합치면 57세인 셈인데, 얼굴은 20대 중반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이 알면 부러워 죽을 일이다.
“2650년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왜 시간이 뒤틀렸는지 이유는 모르겠네?”
“그렇습니다.”
Q행성에서 지구를 공격한 시기는 2699년.
49년이면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에 충분하다.
“밝혀진 차원의 수는 아주 많아. 이곳이 너희가 있던 동일 차원이라고 생각해?”
“……?”
멍하게 바라본다.
그것을 생각했을까?
태영이 갔던 고려와 이곳이 동일 차원이라면, 현재의 대한민국과 지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도 바뀌어 있어야 맞다.
그런데 아니다.
고려로 날아가기 전의 그 세상 그대로다.
그들이 확인한 차원의 수는 256개.
다중 차원이지 평행 차원이 아니라고 했다.
각각의 차원은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완전하게 일치해서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29팀을 보냈다고 했으니, 팀당 중복되지 않는 한 개 차원으로 갔다고 봐도 같은 차원으로 갈 확률은 11%이다.
19년을 거기서 살았다.
29팀 중 그 누구도 베이스제로 차원의 과거로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안다.
같은 차원의 과거로 갔으면 뭐가 달라져도 달라졌을 것이다.
매리설산의 얼음 동굴 속에 얼음이 되어 남아 있는 87명.
그중에 몇 사람은 29팀 중에 한 팀일 수 있다.
또는 태영처럼 다른 시대의 그 누군가가 본의 아니게 휩쓸려 그곳에 도착하여 얼어붙었을 수 있다.
그들을 데려왔으면 좋겠는데 문제가 있다.
중국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 냉동 보존 상태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시키는 일, 해 보겠나?”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물었다.
“R존에 다녀오신 분이니, 저희는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태영도 그게 좋다.
같은 비밀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좋으니까.
“다만?”
“저희 생활고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지…… 해서.”
“해결해 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캐롤라인의 눈가에 물이 맺힌다.
생활고를 해결해 준다는데, 눈물을 비칠 정도로 어려웠나 싶다.
“알프레도는 혼자 지낼 수 있나?”
“외부로 움직이는 것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집 안에서는 혼자 움직이고 식사하고, 모두 가능합니다.”
“와야 할 장소와 날자는 따로 연락해 주겠다. 그리고 내일 퀵으로 생활비를 좀 보낼 테니, 당분간 그걸로 생활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통장이 없으니 퀵이 아니면 현찰을 직접 가지고 와야 한다.
“알프레도는 몸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 정하기로 하고.”
“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한 장소는 어디일까?
그리고 넷이 왔다고 했다.
한 명은 사망했다는 뜻인데, 어떻게 했을까?
묻었나?
함께 일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그때 물어보기로 하자.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