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64
209. 준비할 것들
“최태영 씨가 어떻게 그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다른 사람들은 중요할지 몰라도 내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오.”
태영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네 번째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내가 바라는 것은 나라를 위해 그 힘, 좀 보태 주지 않겠느냐 하는 거요.”
이주현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
질문처럼 하는 강요에 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꼰대들은 마치 맡겨 두었던 자기 물건을 돌려 달라고 하듯 말할 거요. 그렇지만, 나는 다릅니다.”
“……?”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지. 그게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글쎄, 나라를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친 군인들 352명의 가족에게 하는 행태나…….”
“그거…….”
“정부의 요청에 협력했다가 정권 바뀌면 좋지 못한 꼴을 늘 반복해서 보여 주니, 난 별로.”
“흐음…… 맞아, 그것도 맞아요. 하는 꼴들이 내가 봐도 마음에 안 드니까.”
맞장구도 잘 친다.
저는 뭐 다를까?
결국은 똑같아질 거면서.
“그럼 이야기 끝난 거죠?”
“에이, 그래도 돈을 달라고 하거나 지원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괜찮지 않겠소?”
“그런데, 워프 항법을 어찌 알고 있는 겁니까?”
이주현이 잠시 말을 멈춘 사이에 자신을 김순길이라고 밝힌 사람의 질문이다.
저 질문으로 이주현과의 대화 주제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답을 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은 안다.
“김 박사님.”
“네, 비서관님.”
김순길이 저리 부르는 것을 보니 이들은 이미 잘 아는 사이가 맞다.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뭘 줄 수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해하고 있을까?
태영이 보기에 이들도 꼰대 레벨 수치가 제법 높을 것 같은데.
“전임 시장에게 가서 따져야 하는 일인 거죠?”
“아……하하하, 이야기가 그렇게 되네.”
태영의 질문에 잠시 멍하게 말의 의미를 파악하던 이주현이 웃는다.
이 말은 공무원이 민간에 하는 약속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일을 할 때, 민간 사업자에게 구두로 여러 가지 약속을 하는 일이 많다.
그 대신 반대급부로 무언가 요구를 한다.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서류에 기재되지 않는 것들이다.
일이 진행되는 사이에, 담당이 바뀌거나 시장이 바뀔 수 있다.
문제는 바뀌었을 때 일어난다.
‘이 일의 시작 시에 이런 약속이 있었다.’라고 하며, 그 약속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신임 시장은 ‘전임 시장에게 가서 해 달라고 해라.’라고 답한다.
바뀐 시장은 서류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없고, 지켜야 할 의무도 없다.
“아무튼, 무조건 5월 안에 사업 허가가 나오도록 해 드리겠소. 그럼 도와줄 수 있는 거요?”
중요한 일의 길목에는 항상 정부의 허가라는 것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뭐, 바리케이드가 없으면 폭주족들이 또 가만있지 않으니 이해는 된다.
정부는 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슈퍼 갑질을 하는데, 이걸 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슈퍼 갑질의 벽을 뚫는데 돈으로 만들어진 창을 사용한다.
태영은 뇌물을 주고 그걸 뚫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정부와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는 위치, 딱 그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죠.”
일단 태영은 그렇게 답했다.
태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주현이 씨익 웃었다.
위니가 알려 온 정보대로라면 이 사람에게 빚을 지어 두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하는 주제 정도로는 빚을 지어 둘 수가 없다.
오늘 일로 만날 수 있는 연결점이 생겼으니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빚을 만들어 두리라.
“하나 부탁을 하자면……, 아까 그쪽하고 더 긴밀하게 협력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아까 그쪽은 대한통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이 정도로는 빚을 만드는 것으로 할 수 없다.
그리고 양대 사업자가 서로 주도권 경쟁을 하면 피곤해질 거다.
그건 풀어 나가야 하는 일이지만, 변명거리로 한마디 던져 주었다.
“그건 나도 인정, 그럼 전임 시장에게 따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안을 주시겠소?”
태영은 대답 대신 뒤늦게 들어온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방안은 제가 아니라 이분들이 만들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맞을 수도 아닐 수도, 경험이 많으니 두 분이 방법을 찾아 주시겠습니까?”
“……그 전임 시장에게 따진다는 것이 무슨?”
이주현의 말에 질문을 한 사람은 서윤기 박사다.
황당하긴 하지.
저들이 방안을 서류로 줄 수 있을까?
***
“야, 너 진짜 무슨 배짱이야?”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하고 나왔을 때 류지현이 기가 차는 듯 묻는다.
제스는 다른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다고 이주현과 남았다.
“너희 회사에서는 해 주는 것 없이 공으로 묻어가려는 거지?”
“……아, 그게…….”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된다는 고전 유머에 대해 알아?”
대머리라는 말에 머리를 쓸어 넘긴다.
“내가 힘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
“넌, 핑계 대는 방법이 구태의연하다. 어찌 그리 바뀌는 것이 없냐?”
“힘이 없는 것을 없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엘리베이터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제스 안 기다려?”
태영의 차로 가는데 류지현이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두 사람, 금방 끝날 이야기가 아니야.”
“그렇다고 치고, 이번에도 네가 동행하나?”
“그래.”
“왜 자꾸 여자 요원인 네가 따라붙어?”
“넌 내가 불편해? 아니, 그게 아니면 내가 여자로 보이긴 해?”
“너, 남자였어? 미안해. 예쁜 여자 얼굴이라 남자인 줄을 몰랐네?”
“이게 정말.”
여장 남자인 것으로 말을 바꿔 장난을 치자 주먹을 올리며 바르르한다.
여자 맞지, 그것도 아주 예쁜 여자다.
조병원의 말처럼 연기자 강한아를 빼다 박은.
“잘 하면 한 대 치겠다?”
“여하튼 누구 말처럼 매를 버는 대화법이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험한 일에 왜 여자 요원을 보내느냐고? 너희 회사는 원래 그래?”
“나 생각해 주는 거야?”
“생각해 주긴 개뿔.”
여자의 몸으로 위험 지역을 겁도 없이 넘나들고 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도 걱정이 될 텐데, 몇 번을 함께 사선을 넘어온 사이다.
걱정이 안 되면 이상한 거지.
그래도 걱정되어서라는 말은 앞으로도 절대로 안 할 거다.
수마트라에서 돌아오는 이틀 동안 그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 류지현을 백 허그로 꼭 안고 왔다.
엘리샤 페인이 함께 있기는 했지만.
아마, 이새봄에게 마음을 주고 있지 않았다면, 류지현이 여자로 보였을 수도 있다.
현실 나이가 많고 재벌 남친이 있다지만, 그게 여자로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보안이 생명인 직종이야. 나는 너에게 이미 노출되었으니 그냥 그대로 가는 것뿐이야.”
그게 머리로는 납득이 되긴 하는데.
“노출은 무슨.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사실이라니까.”
“너희 회사 사람들 신상을 내가 한번 털어 봐?”
“아, 쫌. 우리 회사 해킹하다 걸리면 평생 햇빛 못 봐.”
~삐빅~
차 안으로 들어가자 류지현이 조수석으로 들어와서 앉는다.
주차장에 도청 장치를 엿듣는 자가 없지만, 차 안이 대화를 나누기에 편하다.
“뭔 그딴…… 아무튼 좋아. 그 대신 위에 보고하는 정도는 조절하자.”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또 뭐 있어?”
“너, 뭔가 이유가 있구나?”
이번 작전이 끝나고 무엇을 할 것이라는 말을 흘린 적이 없는데, 눈치챈 건가?
“꼭 이유가 있어야 해?”
“혹시…… 이번 일 끝낼 때, 스위스 프랑 같은 그런 거?”
“아마도?”
같이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그러면 류지현이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냥 인정했다.
“은행을 털거나 그런 거 아니지?”
“미쳤냐?”
“그럼?”
“절대 권력자들의 비자금?”
“오호……, 그보다 우리나라 아니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데?”
“음, 그렇네. 그런 거라면, 임무에는 포함되지 않는 부수입이니 뭐.”
“그래서 하는 말이야.”
“사지에서 건져 오는 것이니 뭐 상관없지.”
그것으로 합의가 된 셈이다.
또 그걸 핑계로 몫을 나눠 줄 수 있으니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이번 출장, 중국으로 밀입국이잖아?”
“그러기로 했지. 저쪽과.”
밀입국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입국하면 지난번보다 더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그럼 한국 출국은?”
“……어, 그게…….”
봐, 그건 생각 안 해 두었을 거 같더라.
“지난번처럼 미군 수송기로 데려다 달라고 해.”
“어디까지?”
“인도 북동쪽 끝에 다포리요라는 곳이 있어.”
“다포리요?”
“군용 수송기로 가까운 곳으로 가서, 다포리요까지는 자동차로 가거나 헬기로 가야 해.”
“공항이 없어?”
“있긴 하지만 아주 작아서 수송기로 가면 낙하산으로 내려야 하거든.”
“그런데, 왜 그쪽으로 가는데?”
“티베트 조사 지역인 다롱까지 직선거리로 260Km 떨어진 곳으로 히말라야를 넘기가 편해.”
“거기, 차가 없…… 혹시 지난번 그 드론으로 갈 거야?”
“그래.”
“……음, 아무튼 알았어. CIA와 NASA 쪽은?”
“그 사람들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몇 명인지 미리 알아 둬. 괜히 한국으로 와서 같이 가자는 소리 나오지 않게.”
“다른 준비물은?”
“위성 전화기, MCX 단축 소총, 탄창에 채운 것으로 300발, AW50이나 AS50 중에 하나, 소음기 필요하고, 탄은 150발.”
근접 거리는 바늘이 가장 좋은 무기다.
다만, 야간이 아니면 일행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쓰기에 좋지 않다.
“그건 저격 총인데, 그것도 필요해?”
“거기는 시야가 넓으니까 필요할 것 같아.”
“아무튼, 그래도 그거 다 못 들고 다녀.”
“내 것은 내가 들 테니, 넌 네가 들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
“에이, 뭐 슈퍼……맨이니까. 또?”
“옷 따뜻하게 준비하고.”
“봄…… 아, 히말라야 넘는다고 했지.”
“낮은 더울 수도 있지만, 밤에는 추워. 그러니 기본적인 방한복은 준비되어 있어야지.”
거긴 서울과 달리 초여름 기후일 것이지만, 밤에는 춥다.
~우웅~
[조셉의 전화입니다.]진동이 느껴지고 위니가 알려 왔다.
“Hi.”
“Mr. Choi, what is this? What did you do to Allison? (최, 이거 뭐야? 앨리슨에게 어떻게 한 거야?)”
저쪽에서 격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앨리슨이 일어선 모양이다.
“What are you talking about? Why do you ask that? (무슨 소리야? 그걸 왜 네가 물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앨리슨이 일어섰어. 앨리슨이 흐으윽.)”
목소리는 거의 고함치는 수준에, 마지막에는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최.)”
“(나와 약속한 그 일을 끝내고 나면 뛰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너는 나의 영웅이야. 최, 정말 고마워, 그리고 그 일, 잘 해 보자.)”
영웅은 무슨?
애들처럼.
비밀을 지켜 달라고 했다.
조셉이 집으로 찾아왔으면, 일어선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당연히 비밀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겠지.
역시 짐작한 대로다.
3개월 동안 사선을 넘어온 두 사람이다.
그것도 히말라야를 넘어왔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동료 이상의 끈끈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FDA 승인 요청을 해야 해.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될 거야)”
“(……아직이야.)”
“(아직? 네가 그리 말하니 이유가 있겠지?)”
“(맞아.)”
“(좋아, 그건 만나면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어때?)”
“(그래.)”
울음이 진정된 조셉이다.
다음 주에 보게 될 테니, 그걸 지금 뭔가 정할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고 나자 류지현이 물었다.
“앨리슨이 일어섰다고.”
“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쪽 의료진에서?”
“그랬지.”
“그런데?”
“그런 게 있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
“에이, 진짜 말 안 해 줄 거야?”
“음.”
“좀, 알자 나도.”
얘는 또 왜 이리 치근대나?
“……아버지 회사에서 개발 중인 약이 있어. 그걸 앨리슨에게 줬거든.”
“뭐? 그래서 그 약으로 일어섰다고?”
“맞아.”
“개발 중인 약이라고?”
“그것도 맞아.”
“승인은?”
“당연히 신청도 안 되어 있지.”
“그런데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섰다고?”
“그래.”
“뛸 수 있을 거라고?”
신정현 모친, 임은이, 그 두 사람을 치료한 약도 있지만, 그 역시 승인 신청이 되어 있지 않다.
“발표만 해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네?”
“조셉도 그러더라.”
***
대기 자동차 연구소.
“이거 이렇게 만나기 힘들어서야.”
최원재 부사장은 회의실로 들어서는 태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운 불평을 하며 웃는다.
3월까지, 포레웨이 자율 주행 시스템, 어피션 오토와 어피션 솔의 샘플을 공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뭐, 좀 바쁘게 살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덕분에 유준기 대표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이 고생을 했지.”
프리 모바일이 대체 불가능한 제품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대기 자동차에 샘플을 공급하지만 직원이 몇 되지 않는 작은 회사이다.
대기업과 갑을 관계.
유준기가 받은 압박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려움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샘플을 이제 공급하고 있으니 팔로우 업 할 것이 없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서로 만날 일이 없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회의실 한쪽에 서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준기다.
그 뒤쪽에 이유담 과장이 인사를 한다.
고비로텍을 관두고 프리 모바일로 이적한 후에 유준기와 합이 잘 맞는다고 들었다.
“엔디 쪽은 현장에 있나요?”
“네, 그쪽 기술진들은 모두 현장에 있습니다.”
“가실까?”
“네.”
최원재가 태영과 나란히 회의실을 나갔다.
연구소 현장은 공장과 다를 바 없다.
포레웨이 버전 N1이 도착해 있는 연구소 현장.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