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65
210. 블랙박스를 달았어야
연구소 현장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는 터니엔디와 프리 모바일에서 나온 직원들이 2대의 자동차 주변에서 설명을 하고 있고, 대기 자동차 직원들이 그 설명을 듣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터니엔디의 자동차 사업 본부장 정길한 상무다.
그는 작업복 차림이다.
본부장이 샘플 장착에 직접 참여할 필요가 없지만, 일부러 복장을 그렇게 갖춘 것 같다.
터니엔디의 4개 사업 본부에서 매출이 이제야 처음으로 발생하는 자동차 사업 본부다.
그러니 기대가 클 것이다.
“고생하십니다. 설치가 끝난 모양이군요?”
“네, 설치는 다 끝났고 설명 중인데, 잘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그래도 잘 좀 알려 주십시오.”
“네, 사장님.”
기계적인 부분은 설명할 것이 많지 않다.
***
“기승에서도 관심을 보이면서도, 좀 못마땅해하는 것 같아.”
현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회의실로 올라온 최원재가 그다지 밝지 않는 어조로 말한다.
그룹 내의 회사라도 급이 다르고 순위가 있다.
대기차는 아무래도 영원한 후순위일 것이다.
태영이 내부 사정이야 모르지만,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 아닌가?
“그거 예상하신 거 아닙니까?”
“예상은 했지. 하필 회장님이 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비교를 해서 예를 드는 바람에.”
다른 계열사나 다른 부서의 책임자들에게서 견제가 들어온다는 거다.
동료이면서 경쟁의 관계.
상대 쪽에서는 실패하라고 고사를 지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사장쯤 되어도 직장인이다.
“성공할 겁니다. 그래서 승진하시면 더 좋구요.”
“음…….”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왜요?”
“……그…… 독점 가능하겠는가?”
“에이, 욕심이 과하시네.”
“그렇지?”
태영의 반응에 멈칫하며 웃는다.
“대신 뭘 어찌 하시냐에 따라 일정 기간 가능할 수도 있구요.”
매정하게 자르지 않고 여지를 두었다.
그리고 기간을 정해 두고 가능함도 함께 말했다.
“대가로 뭘 제시하라?”
“그게 서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좋네, 우리가 뭘 줄 수 있는지 검토를 해서 다시 한번 만나세.”
“그럼 저는 이만.”
“저녁 식사는 하고 가야지?”
“오늘 군 동기 모임이 있는데, 이번에 또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웃는다.
세상에 군 동기 모임이라니?
대개는 쳐다보지도 않는 곳 아닌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군 생활이라는 것이 힘들면 생각나지만, 정말 지긋지긋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거든.
***
“어서 와라, 최태영.”
식당 옆으로 나 있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몇 명이 태영을 보고 손을 흔든다.
그중에 이한봄이 담배를 빨아들이고 있다.
만나는 장소는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지나가는 금정역 인근의 식당.
모두가 서울과 경기 지역 거주자이다 보니 이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냐?”
“어, 미안.”
이한봄에게 물었는데, 다른 동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이한봄은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태영을 향해 내뿜었다.
“에이, 이 더런 놈.”
“야, 최태영 너 지난번에 안 왔지?”
정재룡이 담배를 비벼 끈 손을 옷에 문지르고는 손을 내민다.
“바쁘다 보니 그리되었다. 다들 왔어?”
“반 정도, 들어가자.”
“야, 최태영. 너 지난번에 불참했으니 오늘 밥값은 네가 낼 거지?”
안으로 들어서려 하는데 이한봄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논리야? 지난번에 나 말고도 불참자가 여럿 있다고 했는데, 그럼 다 같이 나눠 내는 거야?”
“야 씨, 돈 많이 버는 사장이 좀 내면 안 되냐?”
“음, 너도 많이 벌었지?”
“내가 뭘?”
뭐기는?
딥페이크로 인생이 망가진 이새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바로 이 동기 모임에서다.
딥 러닝 알고리즘에서 파생되어 나온 딥페이크 알고리즘.
딥 러닝이 산업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른다.
대신, 딥페이크 알고리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트렸는지는 대략 안다.
지금 이새봄은 장지동 사무실에 그들과 있을 것이다.
“어이, 최태영.”
식당 바로 앞에 있는 공영 주차장 쪽에서 큰소리를 지르며 오는 사람은 강인목이다.
“어서 와라.”
“그래, 너 혹시 김주선이 소식 들었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김주선? 무슨 일이 있어?”
“그놈, 방학 때 배달 알바 뛰었는데, 사거리에서 신호 위반한 차가 와서 받았는가 봐.”
그럼 바이크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거다.
“언제?”
“두 달 좀 넘었지.”
“많이 다쳤어?”
“그런가 보더라. 한교진하고 집이 가까운 것 같던데, 못 오겠다고 하는 걸 교진이가 데리고 온다고 하긴 했다.”
“교진이 집이 좀 살지. 그놈이 차가 있으니 데려오면 되겠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한교진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고, 무척 부유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 1학년 때부터 차를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어서 와라, 최태영.”
동기회 회장인 엄태호가 반긴다.
총무인 변종익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야, 터니테크 사장이라면서?”
변종익이 물었다.
“그리되었다.”
“강인목이가 알려 줘서, 나도 그거 구매 대행 알바로 손에 돈 좀 쥐었다.”
강인목과 이한봄은 메이스타 초기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니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잘했다. 지난 모임에 내가 못 나와서 정보를 못 줬네.”
“그거 다 네가 만든다면서?”
“그래.”
“야, 이놈 이거 대단해. 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사장이라니. 거기에다 경쟁도 없다면서?”
“다른 친구들도 좀 하고 있지?”
“지난번 모임에서 인목이가 방법을 공유해 줘서 지금은 다들 하고 있을 거야.”
그때 바깥에 있던 군 동기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야, 주선아 괜찮아?”
김주선은 두 개의 목발을 짚었고, 그 뒤에 한교진이 따라 들어왔다.
다른 동기들도 같이 들어오면서 식당이 꽉 차는 것 같다.
“죽었다 살아났다. 이번 생은 좀 괜찮아져야 할 텐데.”
“새끼가 농담이 나오냐?”
“농담이라도 해야지, 슬퍼지지 않을 거 아냐?”
“다친 건 어때?”
“많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의사 말이 완치되어도 다리를 쩔뚝거리게 될 거라고 한다. 당연히 복학은 못 했다.”
김주선이 자신의 다리를 가리킨다.
“야, 어쩌다가?”
그때부터 김주선의 사고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졌다.
메이스타 제품의 구매 대행 알바를 했다.
그건 PC 앞에 앉아서 하거나 폰으로도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5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배달 아르바이트도 했다.
사거리에서 파란 신호를 보고 출발했는데, 신호를 위반한 차가 자신을 치고 나갔다.
뺑소니를 치지는 않았지만, 음주 운전인 것 같다고 했다.
“음주 운전 아니었어?”
“모르지. 몇 미터를 튕겨서 날아갔는데 내가 그거 확인할 정신이 있었겠냐?”
“그건 그렇지만, 나중에 확인 안 했어?”
“내가 정신 차렸을 때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 음주 측정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신호 위반은 12대 중과실이어서 무조건 기소되어야 하는데, 기소도 되지 않았단다.
“사과? 얼굴도 못 봤다. 아니 딱 한번 봤네. 사고 나던 그날. 그날 이후로 코빼기도 못 봤다.”
사과는 받았느냐는 한 친구의 질문에 격하게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 새끼 검사야.”
“검사?”
“그놈 애비가 경찰이야. 개새끼들.”
태영 같아도 욕이 나오겠다.
나이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비는 경찰에서 고위 간부일 가능성이 있다.
“고소했어?”
“변호사와 상담을 했는데, 이기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해.”
누군가의 질문에 김주선이 답했다.
“왜?”
“아씨, 블랙박스를 달았어야 하는데, 그게 천추의 한이다.”
“증명할 방법이 없는 거야?”
“그래, 그 씨발 새끼들이 내가 예측 출발한 것으로 모두 처리를 해 놔서…….”
이건 참 애매하다.
양쪽의 주장이 상반되면 누구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거냐 하는 거다.
“CCTV는 찾아봤어?”
큰 사거리라면 CCTV는 무조건 있었을 것이다.
“경찰에서는 거부당했고, 변호사 말을 듣고 구청에 요청했는데, 그 사거리의 CCTV가 고장이었단다. 뭔 개 같은 소리인지.”
군 동기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다.
그렇지만, 상대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본인은 검사에, 아비는 경찰.
그것조차도 권력이니 답은 뻔할 것 같다.
검사도 검사지만, 아비가 경찰이니 이런 일의 처리 과정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방법을 찾기 전에 길을 모두 막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스터.]태영은 중지를 구부려 엄지를 그 위에 얹고 손을 까딱거렸다.
[조백려가 1주일 전에 중국에서 불러들인 무리들 중에 둘이 마스터의 차를 건드리고 있습니다.]태영은 식당에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있는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다.
태영이 미국에 있을 때, 조백려가 부른 그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지난번에 불러들였던 자들은 인천의 부두 창고에서 모두 정리를 했는데, 또 불러들였다.
조백려는 그 일을 태영이 한 것인지 모른다.
오늘도 강제로 데려갈 전령을 보낸 것인가 싶다.
‘?’
손가락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번호판 확인하고 운전석 문을 건드려 보기만 하고 돌아섰습니다.]“그 검사나 경찰이라는 자는 이름을 알아?”
태영이 김주선에게 물었다.
“조승규인데, 경찰인 애비 이름은 몰라.”
군 동기가 당한 일이니, 확인은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오지랖이지만 모임을 함께하는 군 동기 아닌가?
“사고 난 곳이 어디라고?”
“운동장 사거리…….”
‘CCTV?’
김주선의 설명을 들으며 손으로 썼다.
[사고 일로부터 기간이 많이 지나서 영상 확보는 어려울 것입니다.]‘왜?’
손끝으로 질문을 계속했다.
[공공 기관은 25일에서 30일, 민간은 통상 1개월 이내입니다. 그조차 용량 문제로 2주 이내에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보관 기간이 30일이라면, 영상은 이미 파기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경찰에서 거부했다고 하니 그것도 의심스럽다.
증거 영상은 확보가 불가능하고, 진실 확인도 불가능이다.
위니와 정보 확인 중에도 동기들은 학교 이야기, 여친 이야기들을 비롯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폰…….’
글을 쓰다가 중단했다.
아무래도 이건 구두로 시켜야 할 것 같다.
“잠시, 화장실.”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니, 김주선의 폰에서 조승규 찾을 수 있어?”
화장실로 향하며 물었다.
[있습니다. 26회 걸었고, 2번 통화되었습니다.]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는데, 거기서 일단 의심스럽다.
흔히 하는 말로 개무시?
“저쪽에서 걸려 온 적은?”
[없습니다.]김주선의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 저쪽이 가해자인데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조승규 폰에 인태프 심고, 거기 톡 기록이나 메시지 찾아서 분석해 봐.”
[알겠습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화장실에 온 것은 핑계지만,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마스터.]손 건조기에서 물기를 말리고 있을 때 위니가 불렀다.
조승규 폰에 있는 정보들을 불러오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응, 말해 봐.”
[조승규가 가해자가 맞습니다. 지인과의 톡 중에 ‘톡 온 것을 보느라 신호 못 보고 받았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김주선의 말이 맞네.
그럼, 돌려줘야지.
기다리면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교통사고 수준이니 폰을 압수해서 조사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소조차 되지 않았으니, 폰의 내용을 지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검사이니 얼마나 잘 알까?
“이번 모임이 첫 모임 이후 두 번째다.”
안으로 들어가니, 총무가 경과보고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몇 사람이 빠졌었는데, 이번에는 모두 참석했다.”
같은 날 입대하고, 함께 훈련을 받은 입대 동기들은 많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가까운 사람들 몇이 주동이 되어 연결된 동기 모임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15명.
여기 모인 동기들 대부분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산다.
그중에 집은 지방이지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3명이 합류했다.
“연말에 태영이가 참석은 못 했는데, 찬조금을 좀 보냈더라. 지난번 우리 모임 파한 뒤에 입금되어서 오늘 알리는 거다.”
“얼마나?”
총무의 말에 이한봄이 묻는다.
저놈은 꼭 물어보고 싶을까?
“천만 원.”
~우워~짝짝짝짝~
몇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니 조금 창피하다.
“그래서 오늘 모임 경비를 안 걷어도 되지만, 그래도 회비는 공식적이니까 모두 만 원씩만 내라.”
“나도 낸다. 찬조금, 백만.”
강인목이다.
“오, 멋진 놈, 간지 난다.”
다른 동기와 손바닥을 마주친 후, 폰을 들고 또닥또닥 두드렸다.
곁에서 거기에 시선을 주고 있는 두셋이 보인다.
~띠링~
“어, 들어왔다. 강인목 찬조금 백만 원.”
총무 변종익이 폰을 들고 있다가 소리가 들리자 확인하고 모두에게 알렸다.
“야, 이 대목에서 박수 좀 쳐 줘라.”
강인목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으스댄다.
지난해 가을 NRS에서 손에 쥔 돈이 제법 된다.
그 뒤에 메이스타 아르바이트도 했고, 지금도 구매 대행을 하고 있다.
“야, 인목이 너 돈 많네.”
곁에서 송금 과정을 지켜본 동기의 말이다.
송금을 위해 폰을 조작하는 사이에 통장 잔고를 봤던 것 같다.
“야야, 얼마나 있기에?”
“야, 그 입 닫아라.”
강인목이 그 친구의 입술을 잡고 흔들었다.
서로가 힘든 군 생활을 했던 기억을 공유한 청춘들이다.
이 모임에서는 모두들 자유 분망하다.
지나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다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다를지라도, 같은 시간대에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
태영의 차 주변에는 남자 넷이 서 있다.
‘대리 기사가 오기로 했는데.’
음주 측정을 해도 알코올 도수는 거의 0에 가까울 것이다.
단지,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이 있었기에 대리를 불렀다.
대리 기사는 주차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곱게 가기는 힘들 듯하다.
2층에 있는 노래방에서 놀기까지 해서 시간은 자정을 앞두고 있다.
밤이 깊어 인적이 드문드문해도, 주차장은 지상의 대로변이라 보는 눈이 많다.
저들이 여기서 사고를 칠까?
차로 다가가기 전에 바늘을 꺼내 소매 끝에 5개를 꽂았다.
수마트라 탐사를 갈 때, 전통 시장에서 구입한 것인데,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최태영?”
“개는 개다워야 하는데 버르장머리가 없네.”
“개라, 물리면 어찌 되는지도 알겠네?”
태영의 비아냥거림에 비아냥거림으로 되돌려 주는 저 말의 억양으로 봐서 저자는 한국인이다.
만일 중국인이라면 어릴 때부터 한국에 살아서 완벽한 한국어를 익혔다고 봐도 된다.
“광견병? 곧 주인을 물겠군.”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