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81
226. 숟가락 얹는 조건
“숟가락 얹고 싶습니까?”
그렇게 물었다.
대한민국 최 상위그룹 오너에게 대놓고 그렇게 묻다니.
최태영. 너도 참.
이럴 때 어른들은 간이 부었다고 한다.
아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여태까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박용재의 표정이 얼음으로 바뀌었다.
이 사람은 화가 나면 이렇게 바뀌는 스타일인가?
반대로 수행원의 얼굴은 붉게 타올랐다.
저기에 기름 살짝 뿌리면 스프링 쿨러가 동작할 각이다.
~딸깍~
박용재의 앞에 놓인 찻잔이 소리를 냈다.
“제 말이 이해가 안되시면 조금 다르게 말씀을 드릴까요?”
수행원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서로 명함교환도 하지 않았다.
계속 수행원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숟가락을 얹는다 라.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안 좋아지네요.”
답은 박용재가 했다.
“아, 저도 혼자 말 때문에 좋은 기분이 아니라 말이 그렇게 나갔나 봅니다. 이해하십시오.”
박용재가 수행원을 돌아보았다.
“사과하고, 나가 있어요.”
“아, 아닙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박용재의 말에 태영이 말렸다.
저 수행원은 차라리 말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거다.
“…”
“어떤 경찰이 그러더군요. 제가 매를 버는 화법을 쓴다고 하더군요.”
“훗.”
박용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한번 죽었다 살아와서 그런 가 봐요.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수행원이 난처한듯 고개를 돌리는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다.
“그럽시다.”
박용재가 말하면서 가볍게 웃는다.
그래서 오히려 분위가 나아졌다.
“거기, 숟가락 얹으시려면…”
“거 숟가락 얹는다는 말을…”
태영이 다시 숟가락 이야기를 꺼내자 수행원이 제동을 건다.
다된 밥에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모습이라는 언급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것 같다.
“나가시게 놔 둘 걸.”
태영도 혼자 말처럼 했다.
“아… 죄송…”
사과는 태영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시선은 박용재를 향해 있다.
“농사지어, 밥 지어, 반찬 만들어. 그리고 밥상에 올리는 중인데, ‘나도 먹자.’ 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맞습니다. 가장 적절한 비교인데, 흥분했네요. 숟가락을 얹을 수 있는 조건을 말해보세요.”
박용재가 요구조건을 말 하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태영을 찾아와서 만날 일은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생에는 만나졌다.
“그보다…”
“그보다?”
“그 자리에는 초대손님으로 주빈과 일반손님, 그리고 말석. 그 다음에 식객이나 각설이, 그 외에 찬모도 있는데, 어디에 속하고 싶은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 구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여러 가지 표정이 얼굴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후에는?”
“그때부터 조건이 붙겠죠.”
“흠.”
급을 정하라는 말인데, 찬모 하고싶을까?
절대로 아니다.
손님이라면 주빈이 되고 싶고, 주인자리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은 누구요?”
갑자기 주인을 물어 온다.
“주인이 하고 싶습니까?”
답을 안 한다.
“제가 빠질까요?”
“……?”
“제 자리에 대신 서면 주인이 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기술이 없죠?”
기술의 사준을 놀려먹는 재미도 있다.
자금은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성통신사업이라는 것이 돈이 끝없이 들어가지만, 사준은 그 정도의 자금력은 있다.
성공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사준전자로서는 돈 때려 부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스타조인이 초기 자본 30조를 위성통신사업에 밀어 넣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는 일부 영역밖에 커버하지 못한다.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은 얼마가 더 들지 그냥 짐작할 뿐이다.
“밥상이 엎어지지 않겠습니까?”
박용재가 물었다.
“제가 빠져나가면서 뒷일이 어찌 될지 제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밥상 엎지 않고 우리가 참여할 길을 열어 주시죠.”
박용재는 담담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테니테크가 이 일을 진행하면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는 조사를 하고 왔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서는 저리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것이 실현되느냐 아니냐 까지는 확인하지 못해도, 그건 나중 문제다.
“동의를 받아올 수 있습니까?”
“…오영배… 라면 결코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동의를 받을 사람이 오영배라는 것을 바로 안다.
두 사람 사이가 안 좋은가?
아니면, 사준에서 통신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오영배가 기를 쓰고 막고 싶어 할까?
아무래도 후자 같이 생각된다.
오영배는 자회사를 통해서 사준전자의 영역에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어떻게 해 주기 바랍니까?”
“최사장이 이 일의 기획자이면서 사실상 허가를 받아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뭘 받고 싶은지 태영이 선택해라?
이런 식은 태영이 딜 하는 방식이었는데, 거꾸로 당하니까 기분이 아주 묘하다.
“일단 오영배를 설득하세요. 설득도 못하면 길이 없는 것이지만.”
“일단?”
“네, 그리고 우리에게 줄 것은 알아서 뭔가 하나 던져 보세요. 받아보고 정하죠.”
“하….”
어처구니없겠지.
그래도 그게 좋다.
“그럽시다.”
박용재가 한숨한번 쉬고는 대답을 했다.
“그보다는 반도체시장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그쪽은 신경 안 쓰나 보죠?”
두 사람이 돌아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태영이 툭 던졌다.
사실, 태영에게는 이것이 중요하다.
반도체 시장보다는, 기회가 생겼을 때, 저 사람과 비즈니스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것.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앞에 앉은 저 사람에게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
절대 아니다.
코웃음도 치지 않을 것이지만, 그보다 연락시도 자체가 중간에서 커팅 될 거다.
그래서 기회를 기다렸는데, 이렇게 연락해 주다니.
반도체 시장의 모든 정보는 이들의 손안에 있을 것이니 시장이 어떠니, 환경이 어떠니 해 봐야 의미가 없다.
이들은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2위다.
1위는 대만의 회사로,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이 세계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가고 있지만, 대만과는 다른 스탠스가 있다.
대만이 1위를 하는 것도 다른 스탠스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은 대만을 자국이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실제로 먹겠다 생각하고 총을 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래서 미국에서 대만에 엄청난 힘을 보태 주고 있다.
동시에 대만회사가 어찌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사준에도 그에 못지않는 힘을 실어주고 있다.
“…….”
두사람의 표정에는 네가 거기에 대해 뭘 알아? 라고 씌어 있다.
태영의 전공은 알고 왔을 거다.
박용재의 입장에서 태영의 말은 세상물정 모르는 햇병아리가 뭔가 으스대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화의 마무리는 반도체여야 한다.
세상은 반도체로 움직인다.
모든 산업에서 반도체를 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반도체는 비록 물리적인 살상 력은 없어도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반도체 전쟁은 표면적으로 미중간의 승부이고, 전선 변화가 어찌될 것인지 하는 것은 논외로 하죠.”
빅용재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태영을 바라보고 있고, 태영은 한마디 더 했다.
여전히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바라보기만 한다.
이게 참 웃기는 일이다.
파운드리 분야로 한정 지어 보면, 점유율은 대만이 1위, 한국이 2위이다.
미국과 중국이 3위와 4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인데, 3위부터 끝까지 합쳐도 2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2위부터 끝까지 합쳐도 1위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표면적인 싸움은 3위와 4위가 하고 있다.
이유?
3위와 4위의 주먹이 가장 세니까.
뒷골목 주먹들의 세력 싸움과 다를 바 없다.
“반도체 부품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지가 꽤 되었고, 수급불안은 여전합니다.”
일부에서 보면 안정권에 접어들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달라지지 않는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고, 가격이 심하게 오른 것은 수십 배까지 올랐는데…….”
맞다.
기 계약된 제품을 제조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도산한 사례도 있다.
“앞으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두 사람의 표정은 태영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
“우리회사도 IT제품 제조회사입니다.”
“그…….”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눈치 챘을까?
“IT제품을 제조하는 회사가 반도체 부품 없이 제품을 만들 수 없죠.”
당연한 이야기다.
반도체 부품 없이 IT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쌀 없이 밥을 지겠다는 말과 같다.
“반도체 대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풀어낸 장광설의 요점이다.
“반도체 대란에도 영향을 받지 않다니,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터니테크는 아무 문제가 없는가?
“하… 그게…….”
박용재의 옆에 앉은 사람은 이제야 태영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모양이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지 않아서 이름은 여전히 모른다.
위니가 알려주었지만, 모른다고 해 두고 대화를 하는 거다.
그렇게 보면 저놈은 싸가지가 없다.
두 사람 다 말이 없다.
“우리…….”
한참 만에 박용재가 입을 떼었다.
“그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한번 해 봅시다.”
*
최태영이 들여 보내준 연구실.
류지현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혼자 사용하는 공간으로는 아주 넓다.
그리고 그는 손님을 만나고 오겠다며 갔는데, 그 손님이 사준 전자 회장이다.
“왜 왔지? 아니, 그게 아니라 부르지 않고 왔다고? 그리고 기다린다고?”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룹 회장들에게도 급이 있다.
사준 전자 회장 정도이면 대통령 만나기보다도 힘든 사람이다.
그들은 1분 1초를 다투어 가며 사는 사람일 텐데, 찾아왔다고?
그리고 무작정 기다린 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야?
“뭔 일이야 대체?”
머릿속에 의문을 가득 담고 중얼거리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한쪽에 싱크대가 있다.
싱크대 옆으로는 자판기도 아니고, 키오스크도 아닌 특이한 장비들 몇개가 벽에 붙어 서 있다.
싱크대 위에도 여러 가지가 놓여 있고, 그 중에 캡슐커피 머신과 커피 그라인더도 보인다.
“에잇, 일단 커피나…….”
싱크대 하단의 설합을 열자 캡슐커피와 알 커피, 그리고 여러 종류의 국산차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주변은 항상 깔끔하다.
상단의 문을 열고 그곳에 가지런히 놓인 머그잔 한 개를 꺼내 캡슐 커피머신에 올렸다.
캡슐을 밀어 넣으며 오늘 이곳에 오기전의 일을 떠 올렸다.
오늘 오전.
제스와 함께 이주현 비서관을 만났다.
이주현 비서관의 요청이었다고 했고, 자신과 함께 와야 한다고 했다.
~쪼르르르르~
버튼을 한번 누르자 커피가 흘러나온다.
아마도 최태영의 입맛에 맞게 추출시간이 세팅 되어 있을 것이다.
커피가 나오는 사이에 안쪽을 보았다.
개인 집무실, 회의실, 그리고 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 2개가 보인다.
“저긴 뭐 하는 곳일까?”
문이면 손잡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문에 가까이 가자 희미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이 어디지?”
벽을 툭툭 건드려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포기.”
사무실 안에 나누어진 다른 칸으로 가는 과정을 이따위로 만들어 둔 것인지.
힐끗, 천정을 올려보니 손바닥 보다 작은 물체 몇 개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CCTV다.
“에이.”
궁금한 것은 많은데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괜히 짜증이 났다.
커피잔을 들고 탁자로 가 앉으며 이주현의 질문을 떠 올렸다.
‘…다르다는 느낌 같은 것이 없었습니까?’
이주현은 그렇게 물었다.
‘네?’
요점이 빠진 질문.
류지현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제스를 쳐다보았다.
제스는 ‘나도 몰라.’ 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최태영과 함께 임무 수행 중에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 그런 느낌이 혹시 없었나 해서요?’
‘… 그… 다르다는 뜻이…?’
많이 다르지.
정말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 더 많은 질문이 이어질 것 같다.
‘흠, 나도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르다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임무에서 소지허가를 받은 무기를 중국 입국 때에 공항에서 압수당했다.
모두들 허탈한 상황일 때, 최태영은 기척도 없이 무기를 구해왔다.
지금도 어떻게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용병이라 말하는 적을 물리치는 과정.
어둠 속이어서 본적은 없지만 수십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임무에서 적과 맞닥뜨리면 죽느냐 죽이느냐 라는 극단적 선택만 남는다.
자신이 살려면 적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최태영은 적을 간단하게 쓸어버리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 했다.
“수마트라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였지.”
상상이라도 일을 처리했던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마스크는?
영화에서 본 페이스오프보다 더 감쪽같이 사람이 바뀐다.
그걸 설명해?
아니 절대로 설명 못해.
그리고, 설명하면 납득을 할까?
‘임무에 관한한 매우 냉철한 성격입니다.’
그렇게 답했다.
그렇게 답한 것이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답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래요?’
‘우리는 매우 오래 훈련을 받고 요원으로서 현장에 투입되는데,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오랜 기간 요원생활을 해온 사람들보다 더 뛰어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류지현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 속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속이는것과 말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자신은 그냥 말 하지 않았을 뿐이다.
‘만일, 이건 가정인데요.’
‘네.’
‘그쪽의 최상급 블랙요원… 음, 열 명 정도라고 해 봅시다. 그들과 생사 투가 벌어진다고 가정하면 어찌 될 것 같아요?’
가정?
생사투?
반드시 상대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그리 부를 것이다.
2부 227.?네가 살아 있는 거
어떤 답을 원하는 것일까?
승부의 결과는 뻔하다.
어느 수준으로 답해줘야 할까?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결국 그렇게 말을 해 버렸다.
‘정말? 말도 안 돼, 이런 반응이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네?’
‘얼마나 걸릴까요? 그렇게 되는데?’
‘어떤 곳에서… 처한 상황에 따라….’
‘그렇죠? 내가 질문하고도 참 웃겨요.’
만일 제한된 테두리 안쪽이라면 1분 안에 전멸한다라는 쪽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저.’
‘네.’
조금은 맥이 빠진 자세의 이주현 비서관이다.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으시는지?’
‘그냥 궁금한 것이 많아서 라고 해 둡시다.’
어차피 자신이 궁금한 것만 묻고, 류지현이 궁금한 것은 저런 식으로 피해 갈 것이다.
단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스와 자신을 불러 이런 것을 물어본다?
말이 안 된다.
류지현이 알기로 대통령 실이라는 곳이 그리 한가한 조직이 아니다.
특히 이주현 비서관은 매우 바쁜 사람이다.
‘국장님은 아시죠?’
되돌아오면서 물었다.
‘때때로 모르는 체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아.’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아 버린다.
***
“갔어?”
태영이 연구실에 들어서자 류지현이 물었다.
“응.”
“왜? 왜 온 거야?”
사준전자 회장이 왔다 갔으니 관심이 가겠지.
“아쉬운 것이 있어서.”
“아쉬운 거? 그 사람이 아쉬운 것이 있어서 너를 만나러 왔다고?”
“그래.”
“야, 야. 대체 그 정도 되는 사람이 뭐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
“왜 없을 것 같아?”
“말이 안 되니까 그렇지.”
“너도 아쉬운 거 있어서 오늘 왔잖아? 그 사람이라고 없겠어?”
‘나도 아쉬운 거 있어서 왔다고?’
류지현은 잠시 멍 해졌다.
‘그게 아쉬운 거 맞구나.’
팩트로 갑자기 한대 맞으니 잠시 멍 해졌다.
아쉬운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일까?
마스크가 아직 남았지만, 그걸 사용하면 얼굴이 유럽인으로 바뀐다.
국내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마스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 그걸 받기 위해 온 것이니 아쉬운 것이 있다.
‘호의가 권리가 된 거네.’
자신이 생각해도 그게 맞다.
“아냐?”
류지현이 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어… 정말 그러네. 나도 아쉬운 것이 있어서 오긴 했지만, 상황이 다르지.”
“뭐가 다를까?”
“암튼, 그런 것 치고는 빨리 끝났네?”
“아쉬운 것을 해결하는 것은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돌려보냈으니 빨리 끝난 거지.”
“그럼?”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대체, 그런 기업의 총수가….”
“사무국 직원 죽은 거 알지?”
자꾸 다른 쪽으로 주제가 넘어갈 것 같아서 중요 포인터를 쿡 찔렀다.
“… 사무국 직원? 그… 아. 그… 진짜야?”
잠시 생각하던 류지현이 누구인지 알고 깜짝 놀란다.
“아직 몰라?”
“하… 진짜야?”
“너에게 거짓말해서 생기는 것도 없고.”
“잠깐.”
폰을 꺼내더니 통화를 한다.
당연히 그쪽에서도 모른다고 답을 하겠지.
이건 공개된 정보가 아닌데.
“넌 대체 누구니?”
전화를 끊자 말자 물어온다.
“이 상황에서 장난할 마음이 생기냐?”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참는다.
“그런데, 너는 어찌 알았어?”
내부정보라고 볼 수 있으니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이고, 방송이나 신문에도 나오지 않을 거다
“그냥 알게 되었어.”
“해킹?”
어처구니없는 듯 가만히 보다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말 되는 소리를 해라.”
류지현과 입씨름해 봐야 입만 아프다.
“에잇 정말, 그거나 줘.”
태영이 더 이상 답을 않으니, 손을 내밀며 마스크를 달라고 한다.
“맡겨 둔거 찾으러 온 것처럼 말한다?”
“에이, 정말.”
“사용한 거 회수 먼저.”
“가져왔어.”
사용한 마스크의 잔재는 반드시 되돌려줘야 한다고 미리 말해 두었으니.
오늘 말해 줄 거지만, 검증장비에 넣으면 누가 사용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야 아무나 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터니가드의 경호팀에는 경호의뢰자가 반드시 얼굴을 감춰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대신 그 용도 이외에는 절대 사용해서 안 되며, 사용 시에는 적절한 비용을 받으라고 했다.
트루아이즈 멤버들도 마스크를 사용하게 할 것이지만, 규칙은 동일하다.
단지, 트루아이즈 멤버는 별도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여기.”
태영은 류지현에게 받은 폐 마스크를 한쪽 벽에 세워진 체크장비에 던져 넣었다.
“뭐하는 거야?”
태영을 지켜보던 류지현이 물었다.
“누가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장비야. 한 개는 누가 사용한 거야?”
한 개에서 류지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한 것으로 표시가 되었다.
“아… 엄마에게 잠시…”
“잠시?”
“… 그래. 얼마나 젊어 보이려나 싶어서.”
“내가 그냥 줬다고, 이게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를 모르는구나.”
“야, 미안하다.”
“아무튼, 이유 없이 장난처럼 낭비하면 그때부터는 안 줄 테니까 그리 알아.”
“까칠하기는.”
패드로 앳윌플레이를 켰다.
“그건 뭐야.”
“잠시 봐.”
류현선과 이진기의 대련장면을 툭툭 건드렸다.
며칠 전.
정보유출과 유출자에 대해 말 해줄 때.
류지현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패스트로데인을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이 애쉴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갈등없이 결정했다.
류지현과는 생사를 오가는 극한상황의 임무를 함께하며 만들어진 끈끈한 그 무엇이 있다.
흔히들 정이라고 부르는.
아마 그 뜻이 맞을 거다.
사프캣이 지켜 주기는 한다.
그래도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태영이 손을 써 볼 기회가 사라진다.
그러니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하나 더 추가해 주는 것이다.
유현선과 이진기가 서있는 모습이 앳윌플레이에 나타났다.
유현선이 이진기에게 묻는다.
“어 저 사람.”
류지현이 유현선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진기는 몇 차례 봤다.
이진기의 대답.
~타닥~타닥~후웅~
유현선의 기합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자국 소리.
그리고 이진기에게 몸을 날렸다.
~쐐액~팍~ 사악~훙~
~타닥~팍~슈앙~파바박~
유현선과 이진기가 벌이는 대련은 칼바람 소리가 난다.
그리고 눈으로 동작을 쫓아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극 강의 빠름이 있다.
박원규의 소리에 맞춰 두 사람이 대련을 중단하고 호흡을 골랐다.
“후우.”
그 타이밍에 맞춰 류지현도 숨을 길게 내 쉰다.
“어때?”
“저거, 고속 재생 아니지?”
“정속 재생이야.”
“너희 회사 경호 팀이잖아?”
“맞아.”
“어마 무지 하구나.”
“붙으면 어떨 것 같아?”
“…난 3초도 견디지 못해. 그리고 저 정도면 특급요원들 열 명쯤 붙어도 절대로 상대가 안 돼.”
저 둘이 이 새봄의 옷자락도 건드려 보지 못하고 30초 만에 날려갔다.
“저렇게 되도록 해 줄 수 있어.”
“……?”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눈으로만 의문을 표하다가 가만히 있으니 물어온다.
“저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고.”
“… 그… 그게 진짜야?”
“…….”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떻게?”
“어떻게 보다, 생각이 있느냐가 중요해.”
“…그래. 해.”
망설임 없이 그러자고 한다.
“알았다.”
“혹시 우리 회사 다른 사람들도 저리 만들어 줄 수 있어?”
“…….”
대답대신 고개를 저었다.
“나만?”
“응.”
“…….”
아쉬워하는 표정이 살짝 지나갔다.
“단점, 아니 부작용이 있어.”
“부작용? 그게 뭔데?”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세히 알아야겠지?”
“말 해줘.”
태영은 장에서 패스트로데인을 꺼냈다.
“이름은 패스트로데인.”
패치형으로 된 주사제다.
“여러 개?”
손으로 만져보더니 물어 온다.
“시작하면 1주일 단위로 3회 주사. 그리고 3주후에 1회 주사.”
일단 주사를 맞고 나면, 운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온 몸이 근질거리고 좀이 쑤셔서 운동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 할 거다.
“간단하네.”
거기 까지만 들으면 간단하지.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그 후에 3개월에서 4개월 간격으로 1회 주사.”
“… 혹시, 그 간격으로 계속?”
“맞아.”
“단점이라는 것이 그거야?”
“다음 주사를 해야 할 때,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비록 수 개월이 걸리기는 해도 몸은 주사전으로 돌아가.”
“그게 뭐… 아니… 아니구나. 심각하구나.”
“그래, 그 주사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몸이 기억하는데.”
“…그래, 원래대로 돌아가면 견뎌내지 못하겠구나.”
“육체적 박탈감도 있지만, 정신적 박탈감이 아주 심각해.”
“…….”
민첩성이 높아진 몸이 그 전으로 복귀하면 견뎌 내기 쉽지 않다.
그 의미를 류지현은 바로 알아들었다.
몸의 문제지만, 정신적인 것을 수반하는데 이것이 더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복귀된 뒤에는 다시 시작해도 효과가 다르다.
그래서 일단 시작하면,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다시 시작할 때의 문제점은 이 새봄 에게만 말해 주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해.”
“그럼 네가 그렇게 빠르고 힘이 좋은 것도 그것…?”
“…뭐 비슷.”
태영의 능력을 그렇게 오해해 주니 정말 마음에 들어서 대충 얼버무리며 답을 했다.
“아무튼 계속 줄 거 아니야?”
“너, 지배와 종속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
“지배… 종속?”
“다시 맞아야 할 때, 그걸 조건으로 무언가를 시키면 안 할 수 있겠어?”
“하… 그… 종속.”
어깨가 축 처지며 한숨을 쉰다.
“물론 약하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정신적 육체적 박탈감을 이겨낼 수 있기만 하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중독성에 기반 한 것이 아니니까.
중독 약물에 의한 지배와 종속이라는 관계와는 달리,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그냥 주사 전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무서운 일이네, 그래, 네가 시킨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
“…그렇게 할 거야?”
“아니지. 그렇지만 미래에 절대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건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 계획은 맞춰서 변한다.
그리고 변해야 하는 것이 맞고.
“…난, 너에게 뭘 주면 돼?”
“…….”
“말을 해. 그래야 나도 머릿속에 담아 둘 거 아니냐?”
“네가 살아 있는 거.”
그 외의 사심은 없다.
남녀이기에 생길 수 있는 그 어떤 것?
없다.
그동안 몇 번의 임무를 함께하면서 만들어진 끈끈함이 있지만, 그냥 친숙함과 편안함 일 뿐이다.
그 선을 넘어서지 않는 이유?
태영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다시 되돌아온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이 새봄.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지현이 죽는다면 좀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런데 왜 쟤는 약간 감동 먹은 표정이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이 살짝살짝 움직이고,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 후…….”
“그거 면 돼.”
한숨을 푹 내쉬기에 그거 이외에 바라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말해주었다.
“고맙다.”
“뭘, 그 정도로.”
“혹시, 위험해?”
“사무국 직원이 어떻게 죽었는지 해서?”
“응.”
“머리에 총 맞았어.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후우.”
표정이 조금 날카롭게 변한다.
그걸 어찌 아는지에 대해 다시 다그쳐 묻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과는 다르니 총을 들고 덤비지는 못 할 거야.”
“그 말 정도로는 조금도 안심이 안 돼.”
“그래, 알아. 그래도 대응 가능해.”
“그래서?”
패치를 들어 태영에게 보이며 묻는다.
“그래.”
“이거 비밀유지가 필요한 거야?”
“절대적으로.”
비밀유지를 원하는 일이 늘어나면 안되는데, 이것만은 신약 등의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할 수가 없다.
“결정했다. 지금 하자. 네가 놔줘.”
“…내가?”
“그래, 왜?”
“에이, 그래 그럼. 거기 책상 짚고, 엉덩이 까.”
“뭐? 야이. 야이 씨.”
패스트로데인은 일반 주사와는 달리 근육 주사이고, 근육주사는 엉덩이에 놓는 것인데, 왜?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