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586
232. 반도체 대응 준비(1)
“그렇죠? 꽤 오랜만입니다.”
박용재는 외부에서 만나기를 원했다.
오영배는 오기 싫으면 말라고 했다.
배려 없는 건방짐에 배알이 꼴렸지만, 어쩔 수가 없어서 온 것이다.
최태영에 대해 지원실에서 조사한 자료는 아주 재미있었다.
수백의 군인이 증발해 버린 그 사건.
유일하게 돌아온 생존자.
전역 이후 1년여의 기간 동안 보인 행보.
그사이에 이루어 놓은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가능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꿔 말하면,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 건방진 꼬마는 자신을 오영배에게 밀었다.
매우 모욕적이지만, 제대로 알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오영배를 설득하세요. 설득 못 하면 길이 없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줄 것은 알아서 뭔가 하나 던져 보세요. 받아 보고 정하죠.’
최태영의 건방진 말.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니.
사준전자는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대기업 그룹이다.
그럼에도 각종 언론이나 기관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들을 마구 쏟아 낸다.
그런 말들도 참아 왔는데, 그 정도야.
“그런데, 바쁘신 분이 여기까지는 웬일로?”
최태영은 어리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래도 저놈보다 짜증 나는 놈은 아니다.
“알지 않습니까?”
능글능글한 면상에 물 한 컵을 쏟아 주고 싶지만, 미소를 띠었다.
“뭘 말입니까?”
말장난을 하려 한다.
격에 맞는 손님이 왔으면, 센터의 자리가 아니라 맞은편에 앉을 수 있도록 옮기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맞은편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라도 앉으려 했지만, 유감스럽게 그런 의자가 없다.
“흣, 잘 알면서 뭘 그러십니까?”
어쩔 수 없이 좌측 끝에 가서 앉으며 다시 던졌다.
“에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우주 통신.”
“아, 그거.”
오영배의 크게 뜬 눈.
일부러 놀라는 척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쪽 일은 큰 그림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맞다.
국내의 통신 시장이라면 몇 개의 회사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지만 우주 통신은 다르다.
이건 국가 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미 여러 회사가 출사표를 던지고 각각 진행 중이다.
유럽에서는 연합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지만, 한국에서 그들처럼 진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끼워 주면 거기서는 뭘 내놓을 수 있는데요?”
“우리는 전 세계 각국에 이미 지사 또는 지점이 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기반을 단순히 얼마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다.
아무리 글로벌을 외쳐도 통신이 주력인 사업을 하다 보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는 부족했다.
최태영과 만났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최태영은 분명 전 세계에 넓게 포진한 그 인프라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놈도 해외에는 거점이 전혀 없으니까.
사준 그룹에서 끼어들면 해외 거점은 아주 쉽게 확보가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되면 또 밀린다는 거다.
“…….”
“소비자들에게 이미 친숙하기도 하고, 또 우리의 브랜드 파워와 그에 따른 밸류 체인은 큰 성공 요인이 될 것입니다.”
브랜드 파워와 밸류 체인.
그 두 가지도 저놈에게 밀린다.
***
사준전자 서울 사옥 입구.
오늘은 보안 경호팀 직원이 운전해 왔다.
“여기를 다 와 보다니.”
차에서 내리기 전에 김성태 전무가 심호흡을 한다.
정우찬 부장이 차에서 먼저 내렸다.
“처음인가요?”
“네, 전에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딸깍~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정장 차림의 몇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은 손님을 맞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안내하겠습니다.”
이런 예우는 처음 받아 보는지라 묘한 기분이 든다.
안내를 맡은 사람은 경호팀에게 신호를 하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는 로비에는 경비원과 안내인 복장을 갖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사람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후웁~
김성태 전무의 낮고 깊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안내를 맡은 사람은 손을 들어 태영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조작하는 사람이 또 인사를 하고, 뒤따라 안내인이 타며 등을 돌렸다.
~땡~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멈추는 일 없이 빠르게 올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인사를 하는 사람은 어제, 박용재와 함께 왔던 사람이다.
“두 분은 먼저 회의실로 들어가십시오, 최 사장님은 회의 전에 잠시 따로 뵙자고 하십니다.”
“왜, 모두 있을 때 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그 일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우주 통신 분야에 진출하려는 것은 내부적으로 아직 공개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럽시다. 전무님 먼저 들어가서 준비를 좀 해 두시지요.”
“네.”
이렇게 분리되어 들어가게 되어서 오히려 잘된 것 같다.
김성태가 들어가는 회의실 문틈 사이로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몇 명?’
[2명으로 직위는 모두 사장입니다. 그리고 옆방에 2명이 더 있습니다.]위니의 대답을 들으며 따라가자 중후한 느낌으로 인테리어가 된 방으로 들어갔다.
2명이라면, 박용재까지 합쳐서 3명이 되니 나쁘지 않다.
사람이 많으면 비밀 엄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방이라니?
“어서 오십시오.”
태영의 걱정과 무관하게 환한 웃음으로 박용재 회장이 반겼다.
이 사람은 아직 말을 편하게 하겠다거나 하지 않는다.
[조셉에게서 온 전화를 거절하고 회의 중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답신으로 화요일에 온다고 합니다.]‘알았어.’
골드바의 세탁이 끝난 건가?
세계 각국의 화폐들과 T-Bond도 있었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네, 안녕하십니까?”
박용재가 내미는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그는 편안해 보이는 소파로 이끌었다.
“어제 만났는데, 혹시 이야기 들었습니까?”
“오 회장님이요? 아뇨.”
“최 사장님과 만날 때, 양해 없이 절대로 반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왜 쓸데없는 소리를.”
“왜요?”
“대한민국 최상위의 회장님과 맞짱 뜰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리게 하다니.”
“하하하.”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태영도 웃으며 회의 결과를 물었다.
“잘되기는 했지만, 아주 많은 것을 내주었습니다.”
대답하면서 얼굴이 굳는 것을 보니, 정말인 듯하다.
비즈니스이니까 주고받고 하는 거지 뭐.
“대신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사업가이니 반대로 얻을 것을 생각하고 있겠지?
우주 통신을 하려면 수많은 지구국과 중계 장치들,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폰과 앱 스토어다.
가장 큰 매출과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을 테니.
오영배가 그런 것에 욕심을 냈었다.
특히 폰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지만, 태영은 가차 없이 잘랐다.
‘하던 일이나 잘 하세요.’라고 하면서.
“회장님의 곁에 많은 고급 두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일거리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맞는 말이군요. 그나저나.”
“네, 말씀하십시오.”
“그 자료대로 정말 가능합니까?”
“누군가가 심하게 방해하지 않으면요.”
2년 이내 시범 서비스 조건인데,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국내 한정으로 누군가가 방해하지 않으면 올해 안에 본 서비스에 들어갈 수 있다.
방해꾼이 문제일 뿐이지.
“그래요? 우리 두뇌 집단을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하던데.”
“눈높이가 다른가 보죠. 조금 더 끌어 올리라고 하세요.”
“눈높이가 다르다?”
“네, 선반 아래에서는 선반 위의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니까요.”
“흠.”
이쪽의 두뇌 집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학파일 것이다.
그리고 박사 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이 직접 들었으면 모욕적이지.
태영이 다니는 학교가 인서울이긴 해도 톱 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학교의 재학생이 하는 말로는 많이 건방지지만 달리 말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내기한 것은 들으셨습니까?”
“내기?”
“2배로 주기요.”
“못 들었는데, 그건 무슨 이야기요?”
“누가 성공 못 하면 어쩔 거냐고 묻기에 2배의 배상을 하겠다고 했죠.”
“아…….”
“그리고 성공하면 너희들이 2배를 내라고 했더니 입을 다물던데, 그쪽 두뇌 집단과 내기를 다시 시작해 볼까요?”
“내기해서 그들이 지면 내가 배상하게 되는데…….”
“그리되나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내기군요.”
“에이, 배짱이 없으시네.”
“그런데 배짱부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럼, 가실까요?”
“그럽시다. 헌데.”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지만,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다가 멈추며 태영을 돌아보았다.
“네.”
“정말 내가 보고를 받은 최 사장님이 맞아요?”
“글쎄, 보고받은 내용을 모르니.”
“학생…… 맞아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어온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난 나하고 비슷한 연배의 사업가와 이야기하는 것 같을까요?”
“그런 말 많이 듣는데, 좀 특이하죠?”
“확실히.”
“죽었다가 살아와 보면…… 그런데, 그건 경험해 보시라고 권할 수가 없네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노련하다는 말을 들을 때 종종 써먹는 말이다.
죽었다 살아온 것.
“흠.”
경험 이야기 때문일까?
잠시 말없이 바라본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자, 가시지요.”
박용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태영을 따로 불렀지만, 별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없다.
내용은 우주 통신 관련 일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알린 것.
그것이 전부다.
박용재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니, 안내해 왔던 사람이 서 있다.
고개를 꾸벅.
그리고 김성태가 들어간 회의실로 발을 옮겼다.
“아.”
회의실에 성큼 들어서던 박용재의 탄성.
그곳에는 이미 3D 사이니지가 펼쳐져 있다.
박용재는 처음 보는 거다.
그리고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게?”
태영이나 김성태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실 내의 자사 임원에게 묻는 것이다.
“이거, 거기서 만드는 거요?”
“네.”
박용재의 질문에 선선히 대답해 주었다.
“이름이?”
“사이큐브.”
“사이……큐……?”
질문을 하며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보니, ‘너 이런 거 알아?’ 그런 뜻이다.
조금 놀란 모양이다.
이건 이미 우주 통신 회의를 처음 할 때, 모두에게 공개한 것인데, 아직도 모르나?
“차 맛보다 찻잔이 궁금하신가 보네요?”
“아…… 그.”
찻잔이 더 궁금한 것도 이해가 된다.
태영을 안내했던 사람도 회의실 안쪽 입구에 서있어서 박용재 포함 4명.
“모두 참석할 것입니까?”
인원수를 정해 두고 회의하기로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럴 예정입니다만?”
“정 부장님, 서명 받으세요.”
“네, 사장님.”
정우찬이 태블릿을 꺼내서 서류를 띄웠다.
태영은 회의실 의자에 앉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위니에게 신호를 주었다.
‘막았지?’
회의실이니 CCTV는 없다.
대신에 조금 다른 영상 촬영 장치가 있다.
그것은 회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용도이면서 옆방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계되는 거다.
[촬영 장치는 모두 재녹화 방식으로 5분간의 대기 장면이 계속해서 보이며 녹화되도록 했고, 휴대폰 포함 회의실 내의 모든 전자 장비를 동작 정지시켰습니다.]‘그래.’
그러는 사이에 정우찬으로부터 전달받은 태블릿 화면을 본 표정이 아주 볼 만하다.
옆 사람에게 보여 주며 말도 안 된다는 이야기라며 소곤거린다.
“서명이 곤란하시면 회의 참석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불만의 표정이 계속되기에 태영이 한마디 했다.
“봅시다.”
박용재가 태블릿을 들고 있는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받아서 내용을 한번 읽어 본 후 태영을 바라보았다.
“정말?”
“네.”
“흐음, 흐음.”
서명하기 쉽지 않을 거다.
오늘 회의에서 나온 터니테크의 기술 내용을 유출할 경우, 돈으로 배상하라고 쓰여 있다.
누가 흘렸는지는 무관하게 연대 책임으로 참석자 1인당 5천억.
입구에서 안내한 사람까지 참석자가 4명이니 2조 원이다.
터무니없는 금액이니 말이 안 되지.
회의실 내 영상 녹화 장치의 카메라로 시선을 주는 사람이 있다.
저것이 녹화하고 옆방에서 볼 것인데, 모르겠지?
아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
박용재가 서명을 하고는 건네준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비밀 유지 조건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생각인 거죠?”
박용재가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태블릿을 받은 사람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서명하고 다음으로 넘겼다.
회의실 입구에 섰던 사람은 박용재의 손짓에 밖으로 나갔다.
한 사람이 줄어서 1조 5천억이 되었다.
각각의 사람들이 서명을 하는 중에 위니는 정상적인 정보가 맞다고 알려 주었다.
“자, 용기를 내어 주신 점에 감사드리며 간단하게 저의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름이 뭔데?”
이름을 말하기 전에 물어오는 누군가의 말투에 불만이 가득하다.
이름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닐 거다.
태블릿에 서명한 것에 대한 간접적 불만 표현이다.
“그러는 너는 이름이 뭔데? 라고 바로 받아치면 싸움이 되겠죠?”
“……흡.”
“…….”
어처구니없지.
숨을 훅 들이켜는 사람도 있다.
“사전에 양해되지 않은 경우, 직위와 나이 불문하고 상대가 말 놓으면 같이 놓고, 욕하면 같이 욕합니다. 참고로 이런 제 성격을 미리 알려 드린 것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박용재가 웃더니, 곧 표정이 우거지상으로 바뀌었다.
“…….”
“…….”
모두들 굳은 표정이다.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영상을 보고 난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그래요.”
박용재의 대답이다.
“그리고 이 영상을 우리 직원 이외의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도 처음입니다.”
“…….”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