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23
269. 개입(1)
“조만간 또 보게 될 거야.”
40대가 문 쪽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잊지 마.”
태양도 한마디 더 해 주었다.
그 말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돌아본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거.”
저들은 말도 안 되는 협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발버둥 치는 반항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감당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보통은 모두가 다 그랬을 테니.
공권력의 지위를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협박하는 무리.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들이다.
문손잡이를 잡은 40대가 돌아섰다.
“흠.”
태영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선을 주었다가 문밖으로 사라졌다.
중간에 내뱉은 마른기침은 무슨 뜻일까?
곧 알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공식적으로 경찰서와 부서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가 버린 거다.
책상에 앉으며 사내 관리 시스템에 접속했다.
“하, 뭐가 이리 많아?”
비서실 심다윤이 올린 보고서 화면.
태영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한 사람들의 숫자가 100명이 넘어간다.
태영은 위니가 이름을 알려 주는 사람이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번호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회사의 유선 전화로 연락한다.
그중에 태영을 만나자고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과 만나자는 이유를 회사의 관리 시스템에 올린 것이다.
“지종해, 오재영?”
국회의원 지종해, 오재영 이 둘은 과기위 소속이다.
지난 금요일 회의에 비서관들을 보내기도 했고.
~삐이~
인터폰이 울렸다.
“말해요.”
“약속하지 않았는데.”
이건 비서실에서 거절하기 곤란하지.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그렇게 기다리게 해 놓고 10분을 넘겼다.
성질이 급한 오영배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한계 시간일 거다.
“어서 오세요.”
회의실로 들어가며 간단히 인사를 했다.
“어서 와? 야, 대체 사장실에 회의실 오는 문 두개만 열면 되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려?”
얼굴이 붉어진 오영배 회장이 회의실에 앉아 씩씩거린다.
“약속도 없이 오신 분 잘못이죠, 뭐.”
“좋아, 그건 그렇고, 그따위로 자꾸 전화 끊을 거냐?”
“어떻게 끊었는데요?”
“그…….”
“아무튼, 어떻게 오셨습니까?”
쓸데없는 소리에 전화를 무조건 끊어 버린 것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기보다는 빨리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진짜, 이건 솔직히 말해 봐라. 그 기사들.”
“기사들 사라진 것이요?”
“야, 애도 아니고, 그 지경이 되었으면 사라지는 것이 맞는데, 그걸 궁금해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요?”
“그 영상이 어찌 된 거냐고?”
“회장님.”
“응, 그래. 말해 봐.”
“글쎄, 그걸 내게 물으면 답이 나옵니까?”
“……하, 이씨.”
“나도 모르는 일인데, 왜 내게 자꾸 물어요?”
“야, 야, 야. 잠시만.”
“회장님 밑에 직원들 참, 불쌍해.”
그렇게 말하면서 뒤쪽에 앉은 유길준 상무를 보았다.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한 표정이다.
“어때요?”
유길준에게 시선을 주고 일부러 물었다.
“여하튼 고약한 성격하고는.”
맞다.
일부러 고약하게 물은 거다.
“우리 직원들에게 물어봐요. 내 성격이 고약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지.”
“자꾸 대답이 곤란한 질문하지 말고, 이번 일에 대해 말해 봐.”
“어제 국회의원 임미지가 비서관을 한 명 보내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임미지가?”
조금 있으면 신윤희 부사장이 올 거다.
오영배는 통화하다가 그냥 끊어 버리니, 약이 올라서 그냥 쳐들어온 것이고, 신윤희는 약속을 잡고 오는 거다.
그러니 오영배를 내보내야 하는데,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말을 꺼냈다.
“네.”
“아, 그거 고약한 놈인데.”
임미지 국회의원은 여자인데, 놈이라고 한다.
“왜요?”
“입이 아주 맵고 싸가지가 없으니까. 그런데 왜 보자고 한 거야?”
“모르죠, 만날 이유가 없으니 거절한다고 했고.”
“순순히 갔어?”
“협박을 하고 갔는데, 오늘 아침에 경찰 둘이 왔더라구요. 무슨 폭행 신고가 들어왔다는 핑계를 대고.”
“잘 쓰지 않는 수법 중에 하나이긴 한데, 고약하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요? 그랬다는 거지.”
이 정도면 초점 흐리기는 된 거다.
~똑똑~
그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딸깍~
“사장님, 약속한 손님이 오셨는데요.”
문이 반쯤 열리며 심다윤이 말했다.
“손님? 누구?”
오영배의 질문이다.
“내 손님을 왜 오 회장님이 궁금해합니까?”
“그럼, 나. 가야 되는 거야?”
“당연하죠. 약속한 손님이 우선인데.”
“최 사장, 오랜만.”
그때 문틈으로 오영배를 본 신윤희가 웃으며 들어섰다.
“어, 만나기로 한 사람이 신 부사장이야?”
“네.”
오영배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답해 줬다.
“그럼, 내가 같이 있어도 되지?”
태영은 신 부사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
“안 되는데.”
“진짜요?”
태영은 가만히 있고, 손님 둘이서 되니 안 되니 한다.
오영배의 자존심이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까짓것, 그럽시다.”
결국 신윤희가 한발 물러서는 척 그러라고 한다.
“며칠 동안 뉴스만 틀면 최 사장 얼굴이 보였는데, 내가 실물을 영접하네.”
신윤희가 자리에 앉으며 던진 말이다.
“내 얼굴 써도 좋다고 한 적이 없는데, 모조리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까요?”
“고소까지야, 뭐.”
“저를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어제오늘 사이에 100명이 넘는데, 한 분은 약속도 없이 쳐들어오고.”
“좋아, 다 좋은데.”
“네.”
“거어~기, 사준전자가 지분 참여했다면서?”
말을 늘이며 물어온다.
“그랬죠.”
“우리는 엘프 통신이 참여해서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았거든.”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서요?”
“폰 만드는 거, 우리도 하자.”
신윤희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다.
“흥, 우리도.”
오영배가 콧바람 소리를 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기술 사양은 모두에게 공개할 예정이라는 거.”
“우리는 지분도 있는데, 일찍 좀 알려 주면 안 되냐?”
“그래, 그래야 미리미리 준비하지.”
오영배가 맞장구를 친다.
“그 말, 모르십니까?”
“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는 말.”
“그 개소리는 같은 편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거야. 그거 몰라서 하는 말 아니지?”
같은 편일 경우에만 평등하고 공정?
해석이 그리되나?
이건 정말 재미있는 논리다.
하긴, 정의는 같은 편을 지켜주는 것이 정의라고 했던가?
위성 통신 회사에 지분 참여하는 회사는 모두 85개사.
개인으로 참여한 경우는 없다.
정부의 지분이 특이할 뿐이다.
위니에게 참여자의 성향 분류를 시킨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관여된 회사가 7개.
항공사와 해운사가 합쳐서 7개에 사준이나 티엘 등을 제외하고도 대기업 집단의 계열로 볼 수 있는 회사가 34개다.
해외의 통신 회사도 10개가 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일까?
“그래요?”
“우리는 지금 같은 편이잖아? 아니야?”
“맞네요.”
“그럼 미리 보기가 가능한 거지?”
“그러죠. 다만, 공개할 때 가장 중요한 통신 회사의 이름이 빠지면 안 되니까, 창립총회 다음 날 설립된 법인과 터니테크의 이름으로 함께 공개하는 거 어때요?”
“좋아, 며칠 남지 않았네.”
그렇게 두 사람이 한꺼번에 만난 회의가 끝났다.
오영배는 이와 관련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좋다고 하며 돌아갔다.
지분 참여사에게만 공개되는 일은 없을 거다.
모든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고,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할 거니까.
문제는, 그렇게 공개해도 만들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지만.
***
정복 차림의 경비원.
차를 보더니 잠시 대기 후 확인 절차 없이 하얀 철문이 열렸다.
“총리 공관이야.”
류지현이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뱉어 낸다.
이곳으로 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류지현은 정문을 통과하는 이 시점에 와서야 말하는 것이지만.
오늘의 만남을 기점으로 정부의 개입이 거의 확실해지게 된다.
어디까지 양보하고 물러설 것인지가 중요할 뿐, 개입 자체는 바꿀 수 없다.
“총리?”
놀라는 시늉은 해 줘야 하니까, 그런 제스처를 보였다.
“그래.”
“총리가 할 일이 없어 심심한가 봐?”
“너, 이씨, 안에서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차는 정문에서도 제법 들어가 공관 건물 출입구 앞에 섰다.
검은 양복을 입고, 귀에 투명한 튜브 이어폰을 낀 경비원.
뒤쪽의 경비원과는 다른 복장의 여성이 한 명 서 있다.
“어서 오십시오.”
“보안 검색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행동에 정중한 말투이지만, 기분이 나쁘다.
“양쪽 팔을 올려 주십시오.”
류지현에게는 뒤쪽에 서 있던 여성이 몸수색을 하기 위해 다가왔다.
“난 안 들어간다. 너 혼자 들어가.”
“뭐?”
태영의 말에 류지현이 깜짝 놀라서 쳐다본다.
“내가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닌데, 몸수색까지 받으면서 들어갈 필요 없지 않아?”
“야,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안이고 밖이고 상관없다. 이런 대접 받으러 온 건 아니니까.”
몸수색을 하려던 경비원이 살짝 당황한다.
그런데 뒤에 선 경비원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린다.
“여튼, 나는 갈 테니 수고해.”
“야, 야. 잠시만, 잠시만.”
입구에서 뒤돌아 나가려 하자 류지현이 재빨리 뛰어오더니 앞을 막았다.
경비원 두 명도 태영의 전방 좌우로 섰다.
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위치다.
“비키는 게 좋을 거요.”
태영의 말에 입에 비웃음을 걸었던 경비원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까탈스레 굴지 말고, 보안 검사는 여길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야. 그러니 들어가자, 좀.”
“통과 의례라고 하니, 너도 앞으로 우리 회사 오면, 몸수색하라고 할 거야.”
“진짜 할 거야?”
그때까지 복장이 다른 여성이 마이크를 입에 대고 몇 마디 나누다가 태영에게 다가왔다.
“그냥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가시지요.”
비웃음을 걸었던 경비원의 표정이 바뀌었다.
총리 공관을 지킨다는 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좋습니다.”
{너도 참 대단하다.}
태영이 수락하고 몸을 돌리자, 류지현이 귓가에 가깝게 다가와 한마디 하고는 눈을 흘긴다.
“이제야 알게 된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기는.”
그 이후로는 말없이 여성 안내원을 따라갔다.
“어서 와.”
회의실로 들어가자 원탁의 뒤쪽에 이주현이 앉아 있다가 반긴다.
이주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이주현 외에 한 명과 류기현이 와 있다.
류기현이 미국 데인즈캅과의 최종 서명을 위해 출국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어서 오십시오.”
류기현이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이곳에 불려 오면서 조금은 긴장했을 텐데, 태영이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와 계셨네요.”
“네.”
“납치된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주현이 피식거린다.
“여하튼, 저 꼴통 데려오느라 고생했어.”
이주현은 류지현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태영을 골통이라고 말했다.
“정말 골통 짓 좀 해 볼까?”
“야, 참아 주라. 참아 줘.”
웃으며 던진 말에 손을 내젓는다.
“여기는 최태영. 1년 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 또 온 나라를 반쯤 뒤집어 놓은 사람, 아시죠?”
이주현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소개를 시켰다.
“알다마다요. 난 정원모라고 하오.”
“네, 반갑습니다.”
정원모.
비서실 소속이다.
그가 앞으로 나오며 점잖게 손을 내밀기에 태영도 그에 맞춰 주었다.
어제 식당에 왔었지만, 다른 방에 있었기에 공식적으로는 초면이다.
잠시 후, 태영이 들어왔던 문이 아닌 다른 곳의 문이 열리며 국무총리가 들어섰다.
그 뒤로 비서실장, 제스, 처음 보는 사람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집합이 뭔가 이상하다.
총리와 비서실장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거기에 국정원 사람은 또 뭐람?
“드디어 만나 보게 되는군. 말 편하게 해도 되지?”
국무총리가 물었다.
“그러십시오.”
나이도 많고, 국무총리쯤 되는데 어쩌랴.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에 마주 악수를 했다.
“보안 검사 안 받고 돌아간다 했다고?”
“네, 그랬습니다.”
“하하하, 웃을 수밖에 없지만, 대단한 배짱이야. 뭐 지니면 안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
“네, 그런 거 없습니다.”
한번 짚고 넘어가는 거?
“난, 이민건. 총리실에서 일하고 있소.”
“네, 반갑습니다.”
“자, 앉읍시다.”
가운데가 빈 원탁이다.
둥그런 자리라 어디가 상석인지 구분이 안 되지만, 총리가 앉으면 거기가 상석이겠지.
총리가 앉고, 비서실장이 좌측에, 그리고 제스가 우측에 앉았다.
실제의 간격은 팔을 뻗어도 닫지 않을 정도로 멀다.
그사이 이주현은 태영과 류기현을 총리의 맞은편으로 안내했다.
이민건은 총리의 좌측 뒤쪽, 정원모도 비서실장 좌측 뒤쪽, 류지현이 제스의 뒤쪽에 앉았다.
예외적으로 이주현이 추가로 남았는데, 태영의 뒤쪽에 앉는다.
“왜?”
뒤를 돌아보며 이주현에게 물었다.
“오늘 이 시간만큼은 내가 네 보좌관이다.”
“그 말, 잘 기억하고 있어라. 미친 것 같지만.”
“그래, 같이 좀 미쳐 보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서빙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그러곤 작은 생수병과 빈 잔, 그리고 커피를 내려놓는 것으로 일을 마친 사람들이 나갔다.
“어제의 이야기는 간략하게 들었네.”
좌중이 정리되자 총리가 말문을 열었다.
“네.”
“간밤에 발생한 화재와 사망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는가?”
“함께 오면서 들었습니다.”
제스의 뒤쪽에 앉은 류지현을 가리키며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