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26
272. 개입(4)
이진기가 나섰다.
화를 참으며 이빨을 뿌드득 가는 소리가 들린다.
“산업부 장관 성격이 저런가? 그것도 내가 부른 장소에서?”
VIP는 조금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동시에 언짢아한다.
산업부 장관이 서명했다.
수행원들이 따라 들어오려 하다가 보안 요원에게 막혔다.
어이없어하면서도 모두가 서명하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산업부 장관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어서 와요. 활극은 잘 봤습니다.”
“네?”
“저기.”
VIP가 사이니지의 영상을 가리켰다.
“헉.”
“명패의 자리에 앉으세요.”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나는지 이마에서 빛이 반사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뒤로 지체 없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만, 기분 나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린 사람은 많았다.
끝으로 김경훈, 유병진, 연구소장인 정기욱, 유제범, 정우찬까지 들어오니 총원 53명이다.
가운데 15개의 의자 중에 9개에는 착석하고, 6개가 비어 있지만, 수행원들은 거기에 앉지 않았다.
거기 앉으면 장관과 동격이 되거든.
모두들 보조 의자를 찾아 장관의 뒤쪽에 적절하게 앉았고, 테니테크의 임원들은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고개 숙인 산업부 장관의 모습이 애처롭다.
글쎄, 왜 그랬니?
태영은 상석의 반대편 책상 끝에 가서 섰다.
그쪽에 빈 의자가 있어서, 그중 하나에 제스를 앉혔다.
“저건 뭐 하는 거요?”
사이니지를 가리킨 과기부 장관이 물었다.
태영은 손을 들어 잠시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터니테크 대표 최태영입니다.”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 총리님의 부름을 받고 관저에서 상담하다가 대통령님께서 직접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하셔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꿀꺽~
누군가 침을 넘기는 소리다.
“앞에 보이는 사이니지를 통해서 영상으로 먼저 보시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에 실제 공장에 가서 영상으로 본 것을 눈으로 직접 보시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기술 자문회의 부의장이다.
저 사람은 공직일까, 아닐까?
“네.”
“시작도 하기 전에 질문해서 미안한데, 사실은 참석 가능하다면 꼭 하라고 하셔서 왔는데, 주제가 뭔지도 몰라요. 오늘의 주제는 무엇이오?”
오늘의 주제?
틀린 말은 아닌데, 뭐라고 대답할까?
좋은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오기는 하는데, 웃으면 안 되고.
“주제는 무제입니다. 직접 눈으로 보시고 스스로 주제를 붙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했다.
{뭔 소리야, 대체.}
{무제라니, 미술품이야 뭐야?}
VIP와 함께한 자리이니 대놓고 불평은 못 하고 속삭이듯 불평을 하는 사람은 있다.
미술품에 ‘무제’라고 붙은 것을 태영도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이름이 없는 창조물이라니.
“자,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앳윌플레이 제조 영상이다.
레티어로 조정하자 앳윌플레이를 프린팅하는 모습이 플레이되었다.
{엇, 저게 뭐야?}
{저, 저저저저…….}
목소리는 작았지만, 거의 비명에 가까운 놀람이다.
영상을 일시 정지시켰다.
“지금 영상은 앳윌플레이를 생산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가지고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장난하는 거야?”
산업부 장관이다.
서명을 할 때부터 화가 나 있었기에 언성이 높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런 식으로 어찌 생산을 한단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 나중에 생산 현장을 보여 준다고 했으니까, 계속 좀 봅시다.”
VIP가 손을 들며 말했다.
역시 두 사람은 급이 다르다.
대통령의 머릿속에서도 저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거다.
그렇지만 생산 현장을 보러 간다고 했으니 그때 따져 봐도 된다.
산업부 장관은 슬쩍 움츠러들었지만, 태영을 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영상은 2분도 걸리지 않아 끝났다.
이어서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다음 영상은 로직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국내의 팹리스 회사가 개발한 반도체 칩입니다.”
반도체 생산 영상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생산된 칩을 기계에 넣고 시험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연구소 직원 한 명이 엄지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은 지금 11층에 있다.
그리고 바로 플레이되는 영상.
레티어 PC다.
1분 정도 영상이 플레이되었고, 그사이에 12개의 제품이 만들어졌다.
영상을 또 일시 정지시켰다.
“지금 보고 계시는 영상은 여기, 제 손에 들려 있는 이것입니다. 이름은 레티어, 현재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PC임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레티어의 스크린 조작 버튼을 눌러서 다양한 크기로 변경시키며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아니, 저리 작은 게 PC라고?}
{스마트폰만 한데, 저렇게 디스플레이가 크게 나온다고?}
“참고로 이 레티어는 현재 개인용으로 사용 중인 최상급 PC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 뭔 소리인지? 저게 스마트폰이지 무슨 PC야? 저 작은 것이 최상급보다 좋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불평도 나온다.
“이것은 6월부터 시판에 들어갑니다. 총리님과 비서실장님은 이미 사용하고 계십니다.”
“1시간쯤 사용해 봤는데, 정말 기가 막힙니다.”
총리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레티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레티어를 쓰기 시작하면 다른 PC는 결코 만져 보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총리의 나이는 MZ세대가 아니어서 PC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정말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이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레티어를 꺼내 올려놓았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다들 비서실장의 입에서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는 표정들이다.
“레티어가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되면, 지금 PC를 만드는 다른 회사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추가했다.
{그 정도야?}
{다른 PC업체들 모두 망하는 거야, 그럼?}
{망하기야 하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비슷한 의미의 작은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이제 태영이 설명을 계속할 시간이다.
“우리는 일반 제조 분야에 매우 제한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영상을 본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영은 이 말을 해 놓고, 일시 정지를 해제했다.
이번 영상은 수송용 드론의 조각조각을 출력하는 모습이다.
드론의 몸체 조각들, 엔진, 배터리까지 연이어서 출력되었다.
수동 조립 방식으로 사람의 힘으로 조립이 끝났고, 크기는 컨테이너의 절반 정도.
플레이를 또 일시 정지시켰다.
“이것은 DIA에 공급하기로 한 드론과는 다르지만, 화물 수송용 드론입니다.”
{DIA? 거긴 어디지?}
{아, DIA에 공급하는 거, 저거구나.}
{그런데 저게 날아다닌다고? 날개가 없는데?}
{무슨, 말도 안 돼.}
“민간용 시제품 개발 후 테스트용으로 만들면서 촬영된 영상으로, 탑재 중량 7톤, 속도 2백 킬로미터, 무선 조종 반경 6백 킬로미터로 국내 전역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중거리용 모델인 DSM-70이다.
“와, 저게 저게…… 미치겠군.”
국방 장관이 탄성을 질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람은 산업부 장관이다.
{거 좀, 가만히 봅시다.}
과기부 장관이 산업부 장관을 나무란다.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이니 DIA에 공급하게 된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 때문인지, 웅성거림이 심해졌다.
“조금 전에 아주 제한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
VIP가 고개를 끄덕이며 태영을 바라보았다.
“여기 계시는 분 중에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물류 수송에 저것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
끄덕끄덕.
맞다.
태영이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운수업체와 운수업 종사자 모두가 몇 달 안에 파산하게 됩니다.”
이미 어젯밤에 몇 사람에게 한 말이지만, 인원이 대폭 늘어났기에 다시 한번 말했다.
“허.”
“파산?”
“모두가 파산이라고?”
충격인 모양이다.
신기술은 대부분 환호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신기술의 그림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기술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와 전자 장비, 인공 지능 등이 대신 서게 된다.
결론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거다.
그렇다고 신기술 도입을 안 한다?
그럴 수 없다.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은 도태하게 되니까.
“지금까지 저희는 가능하다면 기존의 제품들과 같은 유의 제품은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파산이라는 말의 여파도 있었으니, 말에 적절한 간격을 두었다.
“그 예로 앳윌플레이 같은 제품이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여러분도 짐작하실 것입니다.”
“파산?”
국토부 장관이 태영이 했던 말 중에 한 단어로 반문했다.
“네, 맞습니다.”
“흠, 그럴 수는 있지만…….”
생각을 많이 하는 듯, 말을 늘인다.
“저희가 손을 대면, 그 산업 분야는 크든 작든 타격을 받게 됩니다.”
“저런 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맞으면…… 일리가 있어.”
“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PC는? 레티어 말이네.”
과기부 장관이 물었다.
“우리가 레티어를 출시하면, 조금 전에 실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PC관련 사업을 하는 곳이 얼마나 견뎌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조만간 우리 계열사에서 서비스해야 하는 것 중에 레티어가 없으면 안 되는 분야가 있어서 출시를 결정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VIP가 두 손 깍지를 끼고 그 위에 이마를 얹었다.
충격인가?
도산이나 파산을 생각했을까?
PC와 관련한 수많은 파생 산업이 있다.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렇게 PC와 관련한 부품 제조 산업의 타격은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국내만이 아니다.
전 세계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제조가 아닌 PC 기반 위에서 하는 응용 사업 분야는?
오히려 그쪽은 더 좋아진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극단의 양면성이지만, 기술의 발전은 항상 극단의 양면성을 만들어 낸다.
산업부 장관의 얼굴이 심각하다.
그의 머릿속에도 이제야 경각심이라는 것이 들어차는 모양이다.
“물류 운송…… 하아, 참.”
국토부 장관의 한숨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PC보다는 물류가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이 분야는 파업이 정말 많고 사고도 많은 곳이다.
물류 운송은 산업의 혈관이다.
피가 흘러야 사람이 생존할 수 있듯, 물류가 중단되면 산업이 병들고 뒤따라 경제 전체가 병들게 된다.
“이게 정말이라면…… 아니 정말이라고 했으니…… 그래도 말이 안 되는데…….”
과기부 장관이 푸념처럼 중얼거린다.
“들어오실 때, 비밀 유지 각서 쓰고, 그걸 어기면 위약금을 제법 크게 내라고 한 이유.”
거기까지 말하고 끊었다.
“…….”
“…….”
대답 대신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지은 사람도 물론 있다.
오늘 보고 들은 것을 밖에 나가서 말하면?
수많은 반향이 나타날 것이다.
환영, 질시, 투자, 회피, 파괴, 탈취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이제 질문하십시오.”
“…….”
“…….”
그러나 아무도 질문을 안 한다.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
수행원들도 질문을 하려는 듯 움직임이 있다가 멈춘다.
“이거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인데, 가공 식품류는? 그것도 가능해요?”
원래 참석 예정에 없었던 중기부 장관이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지금, 아닐 뿐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앳윌이 팔리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그렇지?”
과기부 장관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네.”
“이렇게 제조하고 있다는 것이 밖으로는 그 어떤 정보도 새어 나가지 않았다고?”
“네, 그렇습니다.”
PC 관련 산업 이야기는 머릿속에 없는 걸까? 생각하며 답해 주었다.
“…….”
“…….”
잠시간의 침묵.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키로 했다.
“약은 어떻습니까?”
이주현의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존댓말로 물어오긴 했는데.
저 새끼.
와, 정말 짜증 나는 놈.
뻔히 알면서 물어오니 더 짜증이 난다.
“제약 분야의 혁신이 되겠지요. 그리고 글로벌 제약사…… 그들에게 미안해지겠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없나요?”
이주현이 또 물어왔다.
아, 저놈 정말.
계속 물고 늘어지려는 거냐?
왜 저 말을 꺼낸 거지?
본인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이번 기회를 빌려서 해결하려고?
“뭘 원해요?”
그런 것 같아서 대놓고 노려보며 물었다.
“식약처와 이야기했지만, 해결 안 된 것들.”
하이고, 진짜 패 주고 싶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