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30
276. 방법을 찾아야지
레피우스 대회의실.
총리가 정 중앙에 앉고, 좌측은 정부요인들, 우측에는 레피우스의 연구진들과 임원들이 자리했다.
정부측에서 온 고위직은 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식약처장이다.
그들의 옆과 뒤쪽에는 수행원이 한두 명씩 자리하고 있다.
그 외에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왔다.
국립보건원, 보건산업진흥원, 의사회와 약사회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정부측과 연구진들이 있는 곳에 적절히 배분하여 앉았다.
태영은 이주현, 류지현과 함께 연구진들 뒤쪽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제스 역시 이번 일에 빠지지 않겠다는 듯 그 역시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FDA에 승인 신청된 약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모두 끝난 뒤다.
“신경 복원제의 효과 때문에 그쪽에서 곧바로 달려왔다고 했지요?”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한 사람이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약은 어떤 형태로 제공된 것입니까?”
“아들의 요청으로 샘플로 주었습니다.”
“그거 약사법 위반임을 알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연구진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상황이 올 것에 대비해서 위니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태영으로서는 위니의 설명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정도가 한계이다.
그 정도로는 저런 질문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슨 놈의 법 논리는 그렇게 복잡한지.
“알고 있습니다. 샘플로 제공한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요.”
“…….”
질문자가 잠시 멈추고 한쪽을 돌아보았다.
그쪽은 식약처장을 동행하고 온 사람이다.
식약처의 수행원은 서류를 보고 있지만, 눈으로 읽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고발된다면, 대한민국의 제약회사 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외국 약을 수입하는 곳 역시 마찬가지 이구요.”
아버지는 그들을 한 번씩 쳐다보고 마저 말했다.
“…….”
“…….”
말없이 몇 사람의 시선이 서로 잠시 얽혔다.
만일, 샘플 제공한 것을 두고 약사법 위반으로 고발한다면, 다른 모든 제약사도 고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약을 수입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총리까지 참석한 상황이다.
만일, 레피우스를 고발한다면, 다른 모든 회사도 고발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자, 이렇게 합시다.”
총리가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시간을 황금같이 써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답 없이 계속된 수초 간의 침묵을 깬 것이다.
“FDA에서는 그들이 직접 찾아와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FDA보다 먼저 진행하면 되지 않겠소?”
식약처장에게 물었다.
“그게, 법규가…….”
“미국은 더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최대표께서는 FDA에서 샘플로 가져가서 그들이 승인하면 어쩔 것인지 계획이 있소?”
답을 하지 않자, 비서실장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국내에서 불가능 하다면, 해외로 나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안한 어투로 말했다.
다만, 듣는 사람들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법의 엄중함은 나도 압니다.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하구요.”
그러면서 복지부 장관을 잠시 보았다.
“그럼, 미국은 법이 엄중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이 획기적인 신약을 FDA에서 찾아와서 승인해 주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보고만 있자는 것입니까?”
“…….”
“국내에서는 막겠다는 것인가요?”
“…….”
“안 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설 채비를 갖추었다.
이제는 갈 시간이 되었다는 거다.
***
돌아가는 길.
총리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호주머니에 든 작은 파우치를 꺼냈다.
오늘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 방문 기념품이다.
모두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최재원 사장이 직접 들고 왔었다.
{다른 분과 바뀌지 않도록…….}
그때, 그렇게 말했었다.
전해주는 그 짧은 시간이었기에 말이 이어지지 못하고 끝났다.
몇 사람은 파우치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고, 그곳에는 유산균제 한 병이 들어 있었다.
그 누가 섭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건강기능성 식품.
고가품이 아니었기에 기념품으로 줘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준 파우치에는 대체 뭐가 들었기에 직접 건네 주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준 것과 바뀌지 않도록?
회의 내내 궁금했다.
파우치를 열었다.
약병이 손에 잡혔고, 그 옆에 또 다른 것이 있다.
설명서는 병에 붙어 있을 터인데, 노란 메모지가 따로 보인다.
메모지에 적힌 손 글씨.
“흡.”
보는 순간, 감정을 조절할 틈도 없이 숨이 가빠지며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
슬플 때 보다는 감동했을 때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아내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것은 6개월 전.
여러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아 봤지만, 결론은 모두가 같았다.
발견이 너무 늦었다는 것.
항상 밝고 건강한 사람이다.
격년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소견은 없었다.
그래서 별도의 검진을 추가로 받을 일은 없었고,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그랬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힘든 치료를 계속하고 있지만,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이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어제.
속사정은 말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췌장암 치료제가 포함되어 있느냐고 물었었다.
이 파우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오늘 미팅이 끝나면 레피우스 최재원 사장을 잠시 따로 만날 생각을 했었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샘플 약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볼 예정이었다.
아직 승인신청조차 되지 않은 약이다.
즉, 연구실 바깥쪽에는 없는 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방이 나올 수가 없고, 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입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실의 샘플.
그 외에는 없다.
그런데, 다른 곳에 샘플로 제공했다고 하자, 약사법 위반이라고 말하면서 다그친 보건복지부 직원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낙담했었다.
따로 만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메모지에는 아래쪽에도 글씨가 씌어 있었지만, 눈물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읽어보자.’
파우치 속에 그대로 다시 넣고, 호주머니에 넣었다.
뒷좌석 한쪽에 놓인 차량용 휴지 봉지에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꺼냈다.
룸 미러를 통해 운전기사가 볼 수 없도록 유리 창 쪽으로 머리를 기대 얼굴을 비볐다.
“후우~”
긴 숨을 내 쉬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포기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완치. 가능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완치 가능할까?
믿어보자.
하반신 불수인 사람이 뛰어다닌다고 했으니,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당신, 이제 살았어.’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자동차 안이 아니었으면,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을 것이다.
가슴 속에 벅차오르는 희열을 표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는 것이 오히려 힘이 든다.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는데… 하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아내만이 아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설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 약들이 정말 설명대로 효과가 있다면, 그리고 승인이 나서 처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야지.”
중얼거림도 절로 나왔다.
운전기사가 룸 미러를 통해 자신을 흘깃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
손님들을 전송하고 개인 연구실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쌓여 있는 원료도 확인하고, 이것저것 점검을 한 후에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 오랜만에 오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아버지.”
“응. 왜?”
“임상시험 진행계획을 저에게 말씀하신지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그래. 그랬지.”
“승인 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셈이지. 계속 서류 보완을 하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다.”
임상시험 계획의 승인에 시간이 그렇게 많이 소요되다니.
이건 분명히 수작질이다.
“손을 좀 써 드릴까요?”
늘 느끼지만, 정부는 허가기관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아무리 중요하고 필요한 일도, 허가기관에서 허가해 주기 전에 추진하면 불법이 되고, 탈법이 된다.
그래서 그 일을 진행하는 공무원의 갑질은 막을 수가 없다.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일은 어떨지 모른다.
처리 기한이 정해진 일은 기한의 마지막 날까지 들고 있다가 반려하거나 보완요구를 하면 민원인은 아주 미쳐버리게 된다.
그로 인해 낭비되는 인력과 기간을 비용으로 산출하면 그 규모는 매우 크다.
“오늘 일도 있고 하니, 1주일만 더 기다려보자.”
“총리 수행원 명함 교환하셨지요?”
“했지.”
“일주일 후에도 승인 나지 않으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그러마.”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나도 오늘 하루동안 아주 정신이 없었으니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
“위니.”
차에 타자 말자 위니를 불렀다.
계속 서류보완을 요구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다.
[네, 마스터.]“누가 중간에서 방해하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조사 좀 해봐.”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
임상시험 계획을 발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정말 많은 환자들이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로비에 의한 것이거나 고의라면, 수많은 생명을 죽인 것과 동일하다.
[알겠습니다.]“가능하면 디테일 하게 조사하고, 관련되는 모두를 확인해봐. 제도적인 것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허가와 승인을 방해하여 고의적으로 지연시킨다?
이것은 이유도 모르고 속절없이 기다리는 환자를 간접 살해하는 것과 같다.
법리적 판단은 태영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겠지만.
~웅~
“심대리 왜요?”
차를 출발시키는데, 수행 팀 심다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분이…….]“왜? 행패 부려요?”
[고압적이기는 하지만, 행패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의원님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위니, 확인.’
심다윤의 말을 들으며 위니에게 곧바로 지시했다.
“보좌관이 그리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정황으로 봐서 그렇습니다.]정황으로 봐서?
오호, 눈치 빠른데.
“의원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임미지 의원 사무실에서 왔다고 합니다. 보좌관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에 정차된 차 안에 임미지 의원이 있습니다. 심다윤이 지칭한 사람은 문찬석으로 4급 보좌관입니다.]그 사이에 위니가 확인한 것을 알려왔다.
국회의원들은 참 편하게 사는 건가?
대부분이 보좌관이나 비서관 시켜서 찾아온 자료들을 국회에서 입으로 떠들기만 한다.
그 조차도 엉터리 자료가 넘쳐나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에서 창피를 당한 국회의원들의 짤이 넘치도록 돌아다닌다.
너튜브에서 보이는 ‘국회의원들의 헛발질’ 같은 제목의 영상을 보고 꽤 웃기도 했다.
매년 국고에서 수억 원씩 그런 놈들에게 지급하다니.
돈이 아깝다.
“그럼, 브리핑 룸으로 안내해 주시고, 회사까지 1시간 30분 정도 예상되는데, 교통상황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예상시간을 꼭 말해주세요.”
[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그래요. 고생이 많습니다.”
방문객들의 같잖은 갑질.
그것이 권력과 그 권력을 등에 업은 힘일 경우에는 갑질이 더욱 심하다.
그런 류의 행패를 직원들이 1차적으로 받아내야 한다.
태영이 세간의 관심을 받을 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아닙니다. 나름 재미있습니다.]웃음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힘들어 하면서도 재미있어 하는 느낌?
그러면 된 거다.
국회의원 임미지.
어제 비서관을 보내서 연락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아예 본인이 보좌관을 앞세우고 찾아왔다.
어제 오늘 사이에 언론을 통해 자신들이 알게 된 일들.
왜 정부 고위직이 찾아간 것인지를 밝혀내지는 못했겠지만, VIP까지 찾아온 상황이다.
그러니, ‘연락해라.’ 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이 조급 해졌다는 것이다.
상황판단이 빠른 것 인지, 아니면 당의 고위직에서 시킨 것인지.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에 심다윤으로부터 온 보고는 국회의원이 함께 와서 안내를 했다는 것이다.
“위니 영상 보자.”
[네, 마스터.]“운전 지원 좀 해주고, 임미지의 국회 활동내용 요약 좀 해줘.”
기다리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다린다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보는 필요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20분 후에 다시 걸려온 심다윤 대리의 전화.
[사장님 돌아갔습니다.]“그래요. 알았습니다.”
[오시는 대로 연락 달라고 하면서 명함을 남겼습니다.]“이름이 뭡니까?”
[보좌관 문찬식입니다.]태영에게 접근해 오려 하지만, 본인을 대신하여 심부름꾼을 계속 보내오고 있다.
되먹지 못한 권위의식이다.
가능하면 연결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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