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34
280. 알 권리
두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태영만 엘리베이터 홀 앞에 남았다.
보안 경비 요원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전부다.
저들이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여러분, 때때로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린 알 권리를 위해…….”
태영의 말을 자르는 한 명.
40대는 되어 보이는 자가 벽에 기댄 몸을 바로 세우며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악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뜻이다.
대체 저놈의 알 권리라는 것이 어디에 명시되어 있는 것일까?
헌법에 명시되어 있나?
태영의 머릿속에 남아 지금도 언론을 싫어하게 된 이유.
지극히 간단하다.
‘왜 너만 살아왔는데?’
그 한 줄의 문장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각인되어 있다.
그 말은 함께 실종된 병사를 아들로 둔 국회의원 유재구가 얼떨결에 울분을 터뜨리며 한 말이지만,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부풀려서 키우고 키워서 널리 퍼뜨린 곳은 언론이다.
기자들마다 그 한 줄을 경쟁적으로 옮기고 퍼트렸다.
요즈음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간혹 듣는 말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유일한 한 명의 생존자, 그리고 352명의 희생자.’
태영이 생환하여, 군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중에 한 언론사에서 내걸었던 제목의 기사이다.
문제는 그 내용.
제목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내용은 생존한 태영을 비방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논조는 생환하지 못한 352명의 희생으로 태영이 돌아왔다고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강요된 희생일 수도 있다고 했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체 태영이 뭘 어쨌길래?
그런 등의 이유로, 언론과 기자라고 하면 일단 싫다는 사고가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알 권리보다 우선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네. 알 권리보다 우선하는 의무가 어디 있어? 있으면 대 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생사도 모르는데, 혼자 살아온 주제에.”
하아.
태영도 매를 버는 화법을 쓴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저놈은 더한 것 같다.
정말 짜증 나는 놈이다.
‘위니, 저놈 누구?’
[조현태. 조아 일보 기자. 유일한 한 명의 생존자라는 그 기사를 쓴 자입니다.]그렇다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무척이나 위하는 것 같은 저 말은 모두 거짓이다.
누군가를 타깃으로 삼아 희생자들의 이름을 걸어서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
“알 권리를 말하면서 의무는 별것 아니다? 그 얼굴 똑똑히 기억해 두지.”
그래도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경고했다.
“씨발 기억해 두면? 기억해 두면 뭘 어쩔 건데?”
그 경고에 부르르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알게 될 때가 있을 거야. 자, 길 비켜요.”
태영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기자들을 밀면서 사장실 쪽으로 지나갔다.
기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거나 말거나.
“대통령이 찾아오고 하니까 네가 뭐라도 된 줄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지나가는 등 뒤에 대고 하는 말이 귓가를 찌르듯 들려왔다.
뭐라도 된 줄 알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여태까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라는 판단을 하기 전까지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악인의 무리라고 판단된 야제와 그 부하들은 용서하지 않았고, 경재호 같은 놈은 그대로 둔 것이다.
그런데, 저놈은 야제의 무리들보다 더 나쁘다.
언론의 가스라이팅.
바르지 않은 뉴스와 정보를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전파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의 싹을 틔우게 하는 것은 가스라이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조현태와 그 무리들은 시민을 상대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것이 맞다.
개인 대 개인과 달리, 언론사의 가스라이팅은 수많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착각을 한 적이 없고, 위세를 떨지도 않는데, 너는 꼴에 기자라고 그런 착각을 하고 위세도 떠는가 봐?”
“꼴에?”
“그래, 꼴에.”
“새파란 새끼가 어른에게 반말이나 찍찍 하고 말도 좆같이 하고 그지? 응?”
비아냥거림과 무시가 잔뜩 들어간 말.
저런 것도 자신을 어른이라고 한다.
“자신만이 정의롭다는 기가 막힌 개소리네. 그만 짓고 꺼져라.”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좋아. 싸워 보자고 하면 싸워야지.’
뒤에서 여전히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사장실로 들어섰다.
“하이?”
사장실 내부에 분리된 공간으로 마련된 회의실에 들어서자 박원규와 함께 앉아 있던 조병원이 몸을 일으키며 외국인처럼 인사를 했다.
“잘 지냈어?”
“어, 잘 지내……습니다.”
박원규의 표정을 보더니, 반말을 하려다 존대로 바뀌었다.
“이야기 들었어. 터니가드에 입사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군에서는 자신이 조사관이었고, 상관이었다.
태영의 전역 이후에 어찌어찌하다가 서로 반말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고, 이제 터니가드에 입사하면 완전히 뒤바뀐다.
“박 대표님.”
“네, 사장님.”
“전역하게 된 사유, 아시지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면 정신 교육부터 다시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
박원규의 말에 움찔하는 것 같지만, 태영에게 입사 허락을 받았다는 점에서 안심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취업할 생각을 했어?”
천만 달러가 든 지갑을 줬다.
그 돈이면 평생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취업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여행 다니면서 놀아 보니, 노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박원규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말을 조심하는 행동이다.
노는 것이 재미있지 않다는 것은 맞다.
힘들게 일하면서 그사이 사이에 얻어지는 휴식이 달콤한 것이지, 놀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무료하고 지겨울 수 있다.
“그래?”
“그 지겨움 속에서 생각해 보니, 내가 전에 하던 일을 제외하고는 잘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직 상태 멀쩡한 거야?”
“받아 줘서 고맙습니다.”
정확한 존대어를 구사하며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제 확실하게 조병원의 상관이 된 것 같다.
“전역하게 된 이유가 우리와는 상관없으니 내가 신경 쓰지 않겠지만.”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시 그와 같은 실수를 하면, 어깨 위의 그것이 어떻게 된다?”
“그 말, 그냥 겁만 주겠다는 말은 아니지요?”
조병원이 씁쓰레하게 웃으며 목을 만졌다.
그나마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그걸 알면 되었어.”
“……압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조병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박 대표님하고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가.”
“네, 그럼. 대표님, 다음 주에 출근하겠습니다.”
“그래요. 출근하면 보도록 하지.”
조병원은 태영과 박원규에게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제가 주의를 주고 교육도 잘 하겠습니다.”
조병원이 나가자 박원규가 한 번 더 강조하며 말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안보실장과 국방 장관과의 만남에 대한 것은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네.”
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장을 열고 작은 천가방과 따로 놓인 여러 개의 지갑 중에 한 개를 꺼냈다.
“이거.”
“이게 무엇입니까?”
“천만 달러가 든 통장입니다.”
“네?”
지갑을 집었던 박원규의 손가락이 가볍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꼭 사용할 일이 있을 때 쓰십시오. 어디에 썼는지 묻지 않을 테니 1년에 한번, 연말이 되면 잔액이 얼마라는 것만 말해 주시면 됩니다.”
“아…….”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회사 운영을 위해 쓰라는 돈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필요하면 더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안 물으십니까?”
“물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디서 나온 돈인지, 왜 주는 것인지 묻지도 확인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수요일에 수련원 방문 계획이 있습니다.”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알리는 이유는 참석하라는 의도이니까.
그리고 방문 예정 시간은 집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박원규가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위니, 기자들은?”
[1층 로비에 3명, 지하 주차장에 2명 있습니다. 그런데.]그사이에 대부분 돌아간 것 같다.
더 있어 봐야 얻을 것이 없으니 그게 맞지.
“그런데?”
“별짓을 다 하네.”
같이 가자고 하거나, 말을 전하거나 하겠지.
[그리고, 마스터의 자동차에 위치 발신 장치를 붙인 자들이 있습니다.]“언제?”
[1분 전입니다. 영상 보시겠습니까?]1분 전이면 박원규와 대화 중이었거나 사무실을 나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영상을 보려고 하니 그것도 성기시다.
“수신 장치를 가진 자들이 근방에 있나?”
[네, 주차장을 벗어나는 중입니다. 그리고 통신은 Wifi를 사용합니다.]주차장을 벗어나고 있다면 발신 장치를 부착하고는 바로 철수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Wifi를 사용한다고?
“그건, 그자들이 근접 거리에 따라붙지 않아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폰이나 PC 앞에 앉아서도 위치 확인이 가능합니다.]공용 Wifi를 쓰면 로그인 없이도 통신이 가능하긴 하지만, 공용망이 없는 곳에서는?
가능하니까 그러겠지.
혹시, 이번에는 올리비아가 경고했던 그놈들일까?
“어떤 자들인지 확인해 줘.”
[네, 마스터.]저런 식으로 위치 발신 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뒤를 따라붙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선을 추적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주에는 의도치 않게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는데, 주말은 좀 편히 쉬게 해 주면 안 되나?
[발신 장치는 그냥 두실 것입니까?]발신 장치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위니가 물어왔다.
“혹시 주차장에 지방에서 올라온 차가 있는지 확인 가능하나?”
[조회해서 확인하겠습니다.]“그리고 가짜 뉴스 관련 처리는 오늘밤 0시에 시작하자.”
1주일간 참고 기다려 주었던 일을 이제 시작해야 할 때다.
[대상은 정기 뉴스, 투데일리, 중론 신문, 매일 뉴스. 이렇게 정하는 것이 맞습니까.]“정기 뉴스가 박우진 기자가 일하는 데지?”
[맞습니다. 선위 일보는 유영민, 투데일리는 천종혁, 매일 뉴스는 조태경입니다.]“한곳 빠졌다. 데이비드 강.”
[포커스 투데이는 너튜브를 통해 운영하는 곳입니다. 그곳을 포함하겠습니다만, 포커스 투데이와 너튜브는 상관관계가 없습니다.]“강행하자.”
어쩔 수 없다.
그들은 플랫폼 사업자일 뿐이다.
플랫폼에 올라오는 콘텐츠의 진위 여부를 가려 주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와는 무관하게 콘텐츠만 없애 버리면 된다.
“대신, 범위를 포커스 투데이로 한정해.”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부친의 회사에 특이한 방문객이 있습니다.]“그래?”
[오늘 방문객 15팀이 있었는데, 16번째 방문객이 경호원 9명을 데리고 왔고, 터니가드 보안 경비 팀과 대치 중입니다.]바로 어제.
정부 인사들, 그것도 총리를 필두로 한 최고위직이 대거 아버지 회사에 다녀갔다.
그것이 어제 오후부터 오늘 낮까지 계속해서 뉴스의 첫 꼭지를 장식했다.
레피우스.
관련 분야에 종사하거나, 거래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아버지가 인수하기 전까지는 바이오 분야, 그중에서 위탁 생산을 위주로 하는 작은 CMO(의약품 위탁 생산)기업이었다.
인수 후에 CDMO(의약품 위탁 개발, 위탁 생산) 기업으로 바뀌는 중이지만, 그래도 알려지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얼마 전부터 암 치료제를 포함한 몇 가지 신약의 임상 시험을 진행할 것이라는 것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차이는 없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의문이 들었을 것이고, 조사를 한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조사 후에, 바이오 기업이나 투자 전문 회사가 아니라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방문한 회사들은 모두 그런 회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호원을 9명이나 데려와?
“영상 보자.”
[네, 지금 전송합니다.]회사 사무실 건물 앞에 출입구를 등진 보안 경비 팀 5명이 서 있고, 주차장에서 보안 경비 팀을 향해 5명이 서 있다.
3명은 주차장에 제대로 주차하지 않고 적당히 서 있는 자동차의 운전석 옆에 모습이 보인다.
경호원 한 명이 부족하다.
“방문자는?”
싸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싸움이 일어나도 경비원들이 우세할 것이다.
[회의실로 바꾸겠습니다.]“그래, 보자.”
영상이 바뀌고 회의실에 앉은 네 명과 서 있는 한 명.
아버지와 관리 총괄 임원이 앉고, 맞은편에 외국인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인데, 외국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경호원이다.
얼굴을 보아하니 라틴계 서양인인데, 강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일단, 음성으로.”
[네, 마스터.]태영은 저녁 식사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초부터 언론에 쉴 새 없이 태영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래서 연락해 온 사람들 중에 박주한 회장이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을 뿌리칠 수 없어 약속을 했다.
[……투자를 하겠다구요?]아버지의 음성이다.
[네, 맞습니다.] [우리는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데요?]‘특이한 점이 뭐야?’
복도에 사람은 없지만 수신호로 물었다.
위니가 특이한 방문객이라고 했었다.
[동행한 외국인은 로난 비슬리. 다국적 제약 회사 에젠틱의 글로벌 사업부 리서치 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글로벌 사업부 리서치 팀?’
[네, 뛰어난 신약 개발 회사들과 사전 제휴를 통해서 신약을 선점하거나, 그 회사에 개발비를 지원하여 자사 제품화하는 업무를 하는 부서입니다.]‘해를 입히지는 않겠네?’
[발각되지 않고 기술을 빼내 간 사례가 3회 있습니다.]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럼 한국인은?”
지금의 로난 비슬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윤서진, 글레인바이오 정보 전략 부문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윤서진이 하는 일은?”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수신호 대신 말로 물었고, 그때부터 위니가 유서진의 업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글레인바이오와 에젠틱이 손잡고 무언가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네.”
[예상되는 부분은 추가로 확인하겠습니다.]“알았어. 내일 대략 언질을 드리지 뭐.”
그런데, 상담을 위해 방문하면서 경호원을 8명이나 데리고 온 이유가 뭘까?
압박의 수단?
아니면 로난 비슬리에게 뭔가 있는 것일까?
“위니, 경호원들 조사 좀 해 봐.”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