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39
285. 응징의 시간(5)
“그리고 에런에게 투자를 좀 하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좋지. 그리고 미국 갔을 때, 에런을 만날 수 있겠니?”
투자자가 의결권까지 위임하고 업무에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는데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의사는 전해 놓겠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투자 안 하세요?”
“돈 없다.”
태영의 질문에 단칼에 없다고 하신다.
하긴, 기존의 COM 일은 계속하지만, 새로운 약들은 아직 판매되지 않기에 수익이 많지 않다.
“빌려 드릴까요?”
“빌려 줘?”
“네, 한 1억 달러쯤?”
“태영아, 나는.”
누나가 싱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누나는 월 매출이 얼마인데? 빌리지 않아도 충분할걸?”
“티힛, 들켰네.”
“혹시, 어머니는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
“올해 우리 현베스트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
“네, 결산 시점이 아니니까요.”
“엄마, 얼마나 되기에?”
누나가 물었다.
“조 단위?”
“우와, 수익이 조 단위라고?”
“그래.”
“와, 어머니 대단하세요.”
이새봄이 두 손을 벌려 양쪽 엄지를 세웠다.
“그래, 고맙다. 그중에 투자자분과 우리 자체분이 거의 절반씩 차지하는데, 미국에 투자한 것이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두 분, 미국 출장 가실 때, 경호팀 충분히 꾸려서 가셔야 합니다.”
“그럴 필요가 있어?”
의아한 눈빛을 한 아버지의 질문이다.
“아버지는 바이오 사업을 하는 굴지의 회사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 말은 맞다만.”
“아버지와 어머니 따로 각각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경호팀을 데려가세요.”
“그렇게 많이?”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요. 지난번 일, 기억하시죠?”
“그래, 그럼 그러자.”
“저도 기말고사 치고 나서 한번 갔다 와야 합니다.”
그때쯤 아이즈벤지 프로젝트의 1차 작업이 완료될 것이다.
그에 따라 정리해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문제는 VIP가 사옥을 해결해 주고, 제조 기술 발표를 하게 되면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네.”
“봄이도 같이?”
“가능하면 같이 가려고 합니다. 근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
“봄이 회사의 메타버스 서비스가 6월에 오픈하거든요. 안정적으로 잘 진행되어서 문제가 없으면 같이 가고, 일이 바빠지면 저 혼자 가야 하구요.”
“그래도 가능하면 같이 다녀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
“처가 식구들 하고도 종종 이런 자리 가지는 거지?”
“…….”
처가라니.
둘이 사귀자고 했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잠시 대답 대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비록 형식은 거치지 않았지만, 부부와 다름없으니 잘 해야 한다.”
이런 부분으로 보면, 확실히 어머니도 옛날 사람이 맞다.
‘우리 그냥 사귀는 사이인데요.’라고 말하면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위험한 시도는 금지.
“어머님, 그냥 봄이네 식구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식사도 자주 함께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이새봄이 한발 앞서 답했다.
그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졌지만, 이새봄이 잘 마무리했다.
“다음 주에 사무실 한번 들르겠습니다.”
“왜? 일이 있어?”
“미국 출장 가시면 사용 중인 시스템에 접근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레티어 PC에 앱을 하나 올려서 거기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지.”
식사 후의 여담은 얼마간 더 이어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잠실 한강 공원.
부모님과 헤어진 후에 이곳으로 왔다.
여름의 초입에 다다른 늦은 봄이 무르익기도 했으니까.
“바람이 상쾌해.”
“반소매가 대부분이네.”
공원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긴소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반소매이다.
이미 여름으로 가고 있으니까.
아무런 준비 없이 왔지만, 차 안에 돗자리는 있었기에 그거 하나 달랑 들고 움직였다.
“저기 편의점 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으응, 시원한 커피.”
“그래, 가자.”
[마스터 김주선 친구 건입니다.]편의점을 향해 걷는 중에 들려온 위니의 음성.
“응.”
[조승규가 혼자 양양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이동 중입니다.]이새봄 모르게 수신호를 할까?
잠시 망설였다.
이걸 감춰야 하나, 알려야 하나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바로 옆에 같이 걷고 있는데 감추는 것도 결코 좋지 않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면,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봄이도 듣게 해 줘.”
[네, 마스터.]태영의 말에 이새봄이 잠시 돌아보았다.
둘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오고 있다면, 갈 때는 일행이 있었어?”
[그렇습니다. 인태프를 통해서 확인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로 혼자 돌아오는 중입니다.]“그 사건 불기소 처리되고 사건 종결되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민형사상 어떤 책임도 없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민사 책임도 형사 책임도 없다는 것.
군 동기인 김주선이 심각한 상해를 입고 끝나 버린 사건이다.
평생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김주선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분명히 조승규 검사가 운전 중에 폰을 보다가 신호를 못 보고 바이크를 받았다고 했다.
지인과 주고받은 톡에 그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위니가 확인해 주었다.
그렇지만,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승규가 주장한 내용에 따라, 군 동기인 김주선이 예측 출발해서 차를 받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상황이다.
조승규는 오히려 김주선이 학생인 점과 열심히 일하려 하다가 낸 사고임을 감안해서 원만하게 끝내고 싶다는 개소리로 자신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권력의 힘이란 그렇다.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CCTV가 지워지고,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럼,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일단 클라미를 보내.”
이새봄은 가만히 들으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낮 시간이어서 사프캣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아, 그렇다. 사프캣.”
최근 들어서 클라미를 많이 이용하다 보니 생각이 그쪽으로 돌아간 것 같다.
[네, 지금 출발시킵니다. 조승규의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와 거리를 계산하면 11분 후에 만나게 됩니다. 예상 이동 거리는 113Km입니다.]“방법을 제시해 봐.”
[가장 좋은 방법은 배터리 폭발과 화재입니다.]“혹시 전기차야?”
[조승규의 자동차는 미국 L사의 전기차로 지난번 사고 후에 새로 구입했습니다.]“새 차네?”
“미국 L사 전기차면 3억이 넘는 차인데.”
이새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는데 죽으면 안 돼. 다른 자동차나 사람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죽지 않아야 김주선이 당한 그 고통을 평생 동안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될 거다.
[네, 알겠습니다.]대화가 끝나자 이새봄이 슬쩍 돌아본다.
설명해 줄 거지? 그런 의미로.
“지금 위니가 말한 그놈.”
“…….”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검사인데, 배달 아르바이트하던 군 동기 바이크를 차로 치어서 동기가 장애인이 되었어. 그리고 그놈의 지위와 경찰인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태영은 천천히 말했다.
“한이 오빠와도 아는 사이겠네?”
“그렇지. 동기 모임에도 같이 나가니까.”
“위니가 추적해서 알아낸 거지?”
“그놈이 지인과 나눈 톡에서 가해 사실을 말한 것이 있어. 그걸 위니가 찾았고.”
“그럼, 가해자가 뒤바뀌었으면 보상도 못 받고, 치료는 자비로?”
김주선이 바이크를 타면서 보험 가입이 되어 있었나?
그건 확인해 보지 않았다.
“아마도.”
“하, 나쁜 놈이네. 그런 놈이 검사라고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다니.”
“그래서 추적하라고 했고, 혼자 멀리 가 있을 때는 알리라고 했었어.”
“잘한 거야. 그런 놈은 지가 그렇게 된통 당해야 해.”
“그래야지.”
“오빠, 뉴스 볼까?”
장소가 공원인데도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쉬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언론사의 뉴스 서버가 모조리 지워진 일이니 열띤 논쟁도 있을 것이다.
“아니야. 그냥, 우린 오늘의 휴일을 즐기자고.”
“근데, 언니 전화야.”
이새봄이 폰을 들어 보여 주는데 ‘국민 류지현’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국민?
국정원이라고 쓸 수가 없으니 ‘국민’이라고 쓴 듯하다.
태영의 폰에 들어 있는 주소록처럼, 어딘가의 소속을 먼저 쓰고, 뒤에 이름을 써서 분류하는 방식을 따라 하다가 생긴 현상이다.
“받아 봐. 난 커피 사러 갔다고 하고.”
“응.”
일부러 두 번 더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통화 사인을 밀었다.
“응, 언니.”
[너 혹시 태영이랑 같이 있어?]그다지 평온하게 느껴지지 않는 류지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같이 있는데 커피 산다고 편의점에 잠시 갔어.”
[멀어?]“여기 한강 공원이야 편의점이 멀어.”
[그 인간, 왜 전화를 안 받는지. 전화를 안 받아서 봄이에게 연락한 거야.]“아침에 부재중 있었다고 했는데, 그 뒤로 또 전화했어?”
[부재중이 떠 있으면 리턴 콜을 해야 할 거 아냐? 그 나쁜 놈은.]“언니, 내 남자에게 자꾸 이놈 저놈 할 거야?”
말은 화난 것처럼 하면서 태영을 보고 웃는다.
[어? 아, 그렇게 되네. 정말 미안. 말은 그래도 뜻은 안 그렇다는 거 알지?]“아니, 몰라.”
[아,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화 풀어라.]“그럼 이번에는 봐준다. 그런데 왜? 무슨 일 있어?”
이새봄이 눈을 찡긋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나름대로 재미있다.
[사이버 테러로 발칵 뒤집힌 거 알지?]“아침에 뉴스로 잠깐 봤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야 강 건너 불구경이지 뭐. 그런데, 언니도 그쪽 일과 상관있어?”
[걸리는 게 많아서 말 못 하는 거 이해해 줘. 그리고 네 오빠 오거든 전화 좀 달라고 해 주라.]“으응, 알았어. 전해 주면 되지?”
[그래, 부탁해.]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전화할 거야?”
“아니.”
이새봄의 질문에 바로 답해 줬다.
“저 언니 불같은 성격에 열불 나게 생겼네.”
“보나 마다 이번 일로 인해 보안 관련 이야기할 텐데, 가능하면 애가 닳도록 만들어 두는 게 좋아.”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워졌거나 상관없이, 한강 공원은 상쾌한 바람이 적당히 불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마스터.]“응.”
커피를 사서 하나를 이새봄에게 전달해 주었을 때 위니가 불렀다.
[조승규의 자동차와 만났습니다. 영상으로 보시겠습니까?]“봄아 같이 볼래?”
“아니, 그냥 결과만.”
“그러자. 위니, 내게도 처리 결과만 알려 줘.”
[네, 마스터. 그렇게 하겠습니다.]마음이 착잡하다.
가해자가 사실을 조작하여 법망을 피해 나가면서 피해자 행세를 했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태영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김주선에게 신경 복원제인 오르스힐스를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승규를 그냥 용서할 수는 없다.
[전신 20퍼센트에 4도 화상, 40퍼센트에 3도 화상, 왼쪽 다리 발목까지 소실, 오른쪽 눈 실명, 얼굴 전체에 3도 화상입니다.]위니가 결과를 알려 왔다.
“그 일을 정상적으로만 처리했으면, 그리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중얼거렸다.
보나 마나 조승규의 아비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소송 전을 하겠지.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지만, 이기든 지든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
일요일 오후.
태영은 내비게이션에 김주선이 불러 준 주소를 찍고 집 부근에 도착했다.
군포시 당동.
왕복 6차선 도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며 보이는 길을 보고 황당해졌다.
“여기 차가 들어갈 수나 있나?”
차가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인도로 보이는 좁은 길이다.
중앙선도 없는 그 좁은 길의 가장자리에는 점포에서 내어 놓은 물건과 주차된 차량들로 복잡하다.
[…….]위니는 답이 없다.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걷기도 힘든 동기에게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기에 찾아가는 중이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고 있기에 가장자리로 차를 붙였지만, 가게에 설치된 스카이 어닝에 부딪칠 정도로 바짝 붙어 주어야 했다.
“거리가 얼마나 남았다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가 빤히 보이지만, 위니에게 물었다.
[140미터 남았습니다.]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좌회전을 한 후에 바로 후회했다.
자동차 2대가 겨우 비켜 갈 정도의 좁은 길에 주차된 차들이 제법 있다.
그래도 한 방향으로만 주차되어 있어서 지그재그로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다.
“여기네.”
드디어 아파트가 보였다.
오래되어 무척이나 낡은 저층 아파트 2개 동이 마주 보고 서 있다.
그 가운데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몇 평?”
[20평입니다.]태영이 사는 집의 절반보다 작다.
여기에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네 식구가 산다고 했었다.
공동 현관에 들어섰지만, 오래된 아파트에다 저층이어서인지 엘리베이터는 없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띵동~
방화문에는 디지털 도어 록이 붙어 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여동생이 아닐까?
“김주선 친구입니다.”
~딸깍~ 문이 열렸습니다~
도어 록에서 음성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