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40
286. 응징의 시간(6)
간편한 복장의 젊은 여자가 문을 열어 준다.
김주선의 여동생이 맞을 것이다.
“들어오세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했다.
여러 개의 신발이 어지러이 놓인 현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중간에 자바라 커튼이 걷혀 있고, 그 안쪽으로 작은 1인용 침대에 김주선이 앉아 있다.
침대와 벽의 모서리에는 목발 2개가 비스듬히 서 있다.
“어서 와라. 오랜만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앉아서 맞아서.”
“반갑다. 뭐 하러 일어나? 우리가 체면 차리고 그럴 사이냐?”
“하긴.”
“몸은 좀 어때?”
“여전하지 뭐.”
“이 자바라 커튼을 치면 거기가 네 방이냐?”
“집이 좁아서 그러니 이해해라.”
“그래, 이해한다.”
대충 둘러보니 거실과 공유하는 주방과 2개의 방이 있다.
부모님 방 하나, 여동생 방 하나.
김주선은 거실을 자바라 커튼으로 분리해서 방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여동생을 거실에서 살라고 할 수 없으니 이해가 된다.
자바라 커튼을 치면 거실은 반쯤 사라지고 통로 공간 정도만 남을 것이다.
“여기 앉으세요.”
김주선의 여동생이 태영이 선 바로 옆에 있는 식탁 의자를 빼 주었다.
“고마워요.”
“내 여동생, 이름이 김지선이고 대학 2학년이야.”
김주선이 여동생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최태영입니다.”
“네, 김지선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한다.
“혹시 차는 뭐 드릴까요?”
“믹스커피 말고는 없으면서?”
김지선의 질문에 김주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보는 여동생과 오빠의 사이?
아니다.
표정에서 오빠가 다치기 그 이전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안쓰러움이 나타난다.
“내가 마시는 허브차가 있거든.”
“야, 그걸 너 혼자 마신다고?”
“믹스커피 주세요.”
태영이 끼어들어 정리를 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김지선이 주방 쪽으로 갔지만, 사실 몇 발자국이었다.
“보모님은?”
“일 나가셨지.”
일요일에 일을 나갔으면,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픈 이야기 꺼내서 미안하지만, 보상 못 받았지?”
“그 개새끼.”
김주선의 입에서 격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언론사의 클라우드 서버가 날아간 사건에 묻혀 버린 조승규의 사고 소식은 고속도로에서 전기차에 불이 났다는 정도의 이야기로 지나갔다.
“그런 놈이 검사라니. 이…… 썩어 빠진…….”
김주선이 뱉어 내는 화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자신이 차에 받히고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기에 사고 후에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얼마나 원통하고 분했을까?
집이 있는 곳, 그리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하기에 쉬워 보이지 않는 사정을 말해 준다.
또, 치료를 받아도 장애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기 포트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 믹스커피를 타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커피 그리 줄까?”
“그래.”
거실과 주방이 일체화된 작은 공간이기에 바로 눈앞에 4인용 식탁이 있다.
그쪽으로 가서 앉으면 좋겠지만, 움직임이 편치 않은 김주선이 이쪽으로 달라고 했다.
김지선이 제 방으로 가더니 작은 이동식 테이블을 밀고 나왔다.
침대나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 같은 것을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는 용도다.
그 위에 믹스커피 두 잔을 올려 주었다.
“말씀 나누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싱크대에 몸을 기대고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듣겠다는 거다.
“학교는?”
“아직은 휴학 상태라…… 그렇지만,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말을 하는데 눈가에 물기가 맺힌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차로 데려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하고 여행 좀 갔으면 하는데, 갈 수 있어?”
“……여행? 이 몸으로?”
집 주소를 묻고, 오겠다는 말을 할 때 마음의 준비를 위해 미리 말해 둔 것이 있지만, 그래도 뜬금없기는 했다.
“그래서 가자는 거다.”
“나 놀리냐?”
화는 내지 않았지만, 얼굴이 붉어진다.
“너도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 속에 든 화를 터뜨려 내고 싶은 마음 없어?”
“…….”
입을 앙다문다.
“그래서 너는 가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고 묻는 거다.”
“…….”
김주선은 대답 대신 여동생 김지선을 바라보았다.
태영도 그쪽을 보니 아무런 표정 없이 오빠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단지, 여동생 김지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두 줄기 눈물로 전해지는 말이 있다.
코에서도 흐르는 물이 입술을 지나 턱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시선은 그대로 오빠에게 두고 있었다.
태영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제법 시간이 지나고 김지선이 고개를 두 번 까딱이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 안에서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곧 물소리가 들려왔지만, 물소리를 뚫고 나오는 울음소리는 얼마간 계속되었다.
그 울음에 김주선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김주선만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의 가슴에 한이 맺혔을 거다.
“……언제?”
눈물을 닦아 낸 김주선이 물었다.
“지금.”
“지금?”
“그래, 부모님에게 설명하는 것은 동생에게 대신해 달라고 해.”
“아무 준비도 없이?”
“준비가 뭐가 필요해? 입은 옷에 폰하고 충전기나 들고 가. 혹시 태블릿이나 노트북 있으면 들고 가도 되고.”
“……네가 하는 말이…… 왜 이리 느낌이 비장해질까?”
“비장해질 게 뭐가 있어?”
“그래, 가자. 나도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
준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주선은 김지선에게 부모님에게 따로 전화를 드리겠지만, 네가 잘 설명 드리라는 당부를 하고, 작은 가방에 짐을 챙겼었다.
하루에 한번은 꼭 전화하라는 여동생의 말에 그러겠다고 답하고 집을 나선 게 1시간쯤 전이다.
“여행 가자고 하더니 평택에, 그리고 웬 아파트?”
“아파트로 가야 하니까.”
“누구 집인데?”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중에 물었다.
“응, 우리 회사 직원 사택.”
이 아파트는 주소가 평택이 아니면서 임한 공장에 근무할 사람을 위해 구입한, 많은 직원용 사택 중에 하나이다.
“직원 사택?”
“그래, 지금은 비어 있어.”
~삐빅~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으로 환하게 빛이 들어온 거실이 반긴다.
거실 소파 앞의 탁자 위에 크로스백을 내려놓고 거실 창을 가리고 있는 얇은 커튼을 걷었다.
김주선은 현관에 목발을 세워 놓고 벽을 짚고 소파로 와서 앉았다.
“와, 경치가 멋지네.”
커튼이 걷힌 창으로 시선을 돌린 김주선의 얼굴이 환하다.
“집이 넓네. 우리 집보다 훨씬.”
앉은 채로 거실과 주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 집은 33평형의 새 아파트이다.
“네가 한 달간 살 집이다.”
“한 달? 왜?”
“목발 없이 걷고 뛰고 싶지 않아?”
“놀리지 마라.”
“일단 설명을 들어 봐.”
화를 내는 김주선을 앉히고 오르스힐스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짧은 설명의 사이에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정말, 진짜냐?”
“믿거나 말거나.”
“야, 좀.”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데 한 달간 빈둥빈둥해 보면 알 것 아니냐?”
“그…… 그렇기는 하다.”
“약속해 줄 게 있다.”
“뭔데?”
“그 누구에게도 그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그 누구…… 부모님에게도?”
“그래.”
“……쉽지 않네.”
“내가 말해도 된다고 하면 그때는 해도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말 네 말대로 몸이 나으면 어떻게 하든 설명해야 할 것 아니냐?”
“알아. 그래도 ‘죄송합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
“……그래.”
변명이나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납득시킬 논리가 없다.
병원 가서 치료받았다고 하면 병원을 대라고 할 것이고, 약을 썼다 하면 무슨 약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럴 바엔 그냥 말 못 한다고 하는 게 좋다.
“다음, 그 누구도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말고, 이 집에 들이지 마라.”
“그건…… 왜?”
“방금 전에 한 말 잊었어?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말?”
“……그래, 누군가 오면 알게 되겠구나.”
“혼자 외롭겠지만, 한 달간 정도는 외로워도 된다. 집에 TV도 있고, 노트북도 가져왔으니, 그동안 해 볼 수 없었던 것 있으면, 혼자이니까 마음껏 해 봐라.”
“그…….”
“그리고, 3주가 지나면 집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해도 된다.”
“목발 집고?”
“그때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래, 고맙다. 정말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한 달 뒤에 하면 된다.”
말끝에 크로스백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자.”
“이건 뭐냐?”
“네가 한 달간 생활하는데 현찰이 필요할 때 쓰라는 돈.”
“야, 나도 돈 있어.”
있겠지.
그보다는 자존심의 문제이다.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로 손에 돈을 좀 쥐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일은 하지만, 치료비가 워낙 많이 들어갔다.
“돈 있다는 건 말 안 해도 안다. 이건 내가 빌려 주는 거니까 학교 마치고, 회사 들어가서 돈 벌면 최우선으로 갚아라.”
이 돈은 주려고 가져왔지만, 그냥 준다고 하면 이놈은 태영에게 집어던질 것이다.
“그래…… 알겠다… 그리고 고맙다.”
“에헤이, 한 달 뒤에.”
“…….”
“사내자식이 그만한 일로 울기는.”
“…….”
“난 이제 간다.”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황당하게 서 있는 김주선을 두고 아파트를 나왔다.
[마스터.]“응.”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위니가 불렀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구두로 대답했다.
[미동 기획에서 위치 발신 장치를 수거해 갔습니다.]“그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수거했다고?”
하긴, 타깃의 자동차에 붙인 위치 발신 장치가 금요일 밤부터 망향 휴게소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상하긴 했을 것이다.
수거가 목적이 아니어도 찾아가 보는 것이 맞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안에 사람은 없으니 목소리로 대화를 해도 된다.
[추가 정보가 있습니다.]“응, 뭔데?”
[아딘은 M&A 대상의 정보 조사 전문인데, 이번 일은 CIA의 의뢰입니다.]“아하, 알았어.”
올리비아가 말한 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직접 조사하지 않고 의뢰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여기까지 온 김에 가 볼 곳이 있다.
“임은이. 지금 집에 있는지 확인 좀 해 줘 봐.”
김명준이 잘 케어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4분 정도 필요합니다.]“충분해.”
[김명준, 임은이, 도하일. 세 사람 모두 집에 있습니다.]차에 올랐을 때, 답이 왔다.
“그래, 그쪽으로 가 봐야겠다.”
***
~띵똥~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딸깍~
인터폰에 비친 태영의 얼굴 때문인지 안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들리더니 바로 문이 열렸다.
신발 3개와 슬리퍼 2개가 단정하게 놓인 현관.
“어서 오십시오.”
정자세로 서서 인사를 하는 임은이.
그 뒤에 피식 웃음을 띠고 선 김명준.
그리고 임은이에게 매달리듯 선 도하일.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들어오십시오.”
세 사람을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봄인데, 나들이도 가지 않고 뭐 했어?”
“찾아올 줄 알고.”
태영의 장난에 바로 장난으로 답하는 김명준이다.
“하일아, 아저씨께 인사드려야지?”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그러고 보니 선물을 사 오지 않았네. 자, 선물 대신.”
지갑을 열어 사임당 두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애한테 그런 거 주고 그럼 안 돼.”
“네가 빼앗아 가지 말고.”
김명준에 말에 역시 장난처럼 대답했다.
“아픈 데 없어요?”
“내 마누라 아픈지 안 아픈지 네가 왜 궁금해?”
임은이에게 물으니 김명준이 장난을 친다.
“지금 네 마누라…… 내가 하일이가 있어서 참는다.”
도하일을 참시 바라보며 툭 튀어나오려던 말을 참았다.
법적 아내와는 이혼 소송 중이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러니 동일하게 법적으로 구분하면, 김명준이 말하는 ‘내 마누라’라고 부르는 임은이와는 불륜 관계다.
그리고 이 꼬마 하일이를 기준으로 보면 친부, 친모와 함께 있다.
법과 상관없이 인륜적으로 보면 진짜 가족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은이 씨, 이놈이 공주님처럼 모시지 않으면 내게 말해요. 아주 혼을 내 줄 테니.”
“야, 야. 내 열심히 잘 모시고 산다.”
“너무 잘해 주세요.”
김명준과 함께 임은이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걸린다.
그래, 행복하면 된 거다.
여태 그리 살아오지 못했으니, 이제부터라도 그리 살면 되는 거다.
몇 달 전까지 임은이를 보호해 주었던 도승준에게는 미안하겠지만.
태영과 김명준이 식탁 의자를 빼서 앉고, 그 옆에 도하일을 끌어 올린 임은이가 차를 준비하려는 듯 움직였다.
“넌 어때?”
“아직은 별산제 사무실에 그대로 있어. 저쪽과 법적으로 정리되면 서울로 올라가서 단독으로 열어야지.”
사무실은 같이 사용하지만, 개인별로 각각의 사업자인 형태가 별산제라고 들었다.
이렇게 일하다가 이혼 문제가 정리되면 서울로 가겠다는 거다.
“우리 회사 법무 팀 만들어 줄 테니, 거기 와서 일해 볼 거야?”
법적인 것은 모두 법무 법인 송이길에 일을 맡기고 있다.
그러나 태영과 달리 직원들은 사소한 일까지 그곳에 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작은 일들을 담당해 줄 수 있도록 내부에 법무 팀을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생각도 못 한 제안이네.”
“싫으면 말고.”
“생각할 틈은 주고 다음 말을 좀 해라.”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