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648
294. 손잡지 않겠소?(1)
“아니, 안 들어도 된다.”
서명 하나에 5조여서 그런가?
바로 안 들어도 된다고 한다.
“자, 그럼 끝.”
“아, 아니 하나 더.”
“또 뭘?”
“다이나믹 스카이, 너희 계열사지?”
비밀도 아니니 이상할 것은 없지만, 분명 DIA와의 일을 떠올린 것 같다.
“그런데요?”
“미군.”
한 단어만 말하면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나 싶을 정도로 태영을 쏘아본다.
“서명 하나 더.”
“에이씨, 안 해.”
“자,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아주 대놓고 욕을 해라. 이래 놓고 안녕히?”
흐음, 이해된다.
그래도 그 정도에서 물러나 준다니 얼마나 고마워?
***
‘현재 기술로 가능한 것은 모두.’
오영배는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최태영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불가능이 없다는 말이다.
수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미·중 사이의 갈등.
그 갈등의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다.
자동차가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지만, 자신은 자동차 관련 사업은 하지 않으니 무관하다.
어찌 되었거나, 중국과 미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한국.
아니 샌드위치가 아니라, 맷돌에 끼어 있는 땅콩이다.
돌리면 갈리는 운명.
미국에 치이고, 중국에 치이고.
중국의 반도체 기업은 이미 많이 무너졌고, 지금도 속속 무너져 가고 있다.
티엘 그룹의 중국 반도체 공장도 이미 가동률이 많이 떨어졌다.
“내가 우주 통신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나?”
사준전자의 박용재도 그 서류에 서명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다.
“대체, 너희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냐?”
두 사람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은 그 일에서 빠져 있다.
아니, 여태 몰랐는데 오늘 알게 되었다.
우주 통신에는 사준전자도 투자해서 동일 지분을 가진 2대 주주가 되었다.
주주가 되도록 다리를 놔 준 사람이 자신이며, 그것으로 받아 낸 것도 있다.
그것만으로?
아니, 아니야.
폰을 꺼내 들었다.
“나요, 오영배.”
[지금 제가 회의 중이니 나중에 통화하시지요.]“알겠소.”
회의 중이라는 박용재의 정중함이 마음에 걸린다.
헤더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별것이 다 마음에 걸린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최태영의 회사에서 그런 것들을 보고도 평상시에 대하던 것처럼 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그게 아니다.
속이 타들어 간다.
그 기술.
원소 매핑이라고 했던가?
그 말도 안 되는 기계에서 모두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모두.
그런데, 화급한 성격 탓에 물어보고 확인해야 할 것들을 묻지 못하고 확인도 못 했다.
조금만 열을 식히고 머리를 짜내서 궁금한 것을 확인할걸.
5조 원 배상 서약서도 써 준 마당에 물어보지 못할 것이 뭐가 있다고.
그놈이 그 기술로 본격적으로 나서면?
제조 기업은 모두 다 죽는다.
“모조리…….”
망한다.
그게 결론이다.
물론 일순간에 그리되는 것이 아니지만, 모두가 서서히 말라 죽게 될 거다.
저가의 대명사인 중국이 가장 먼저다.
거기는 저가의 장점은 있지만 매우 조잡하다.
한국의 제조 기업들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똑같다.
오늘 본 것은?
그 어떤 것도 가장 완벽하고, 가장 뛰어난 품질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품질은 한국도 미국도 따라잡을 수 없고, 가격은 중국산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아?
지금 주머니에 든 레티어.
벌써 몇 번을 보았지만 볼 때마다 그게 뭐냐고 물었었다.
게이밍 PC 최고 사양의 256배라고 했던가?
그걸 출력해 내는데 얼마나 걸렸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봤지만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휴~ 우리…….”
어떻게 하지?
그런데 왜 다른 제품에 손대지 않을까? 만드는데 아무 문제도 없을 텐데.
생각해 보니 제조 기술의 하늘……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폰을 꺼내 들었다.
[왜 또 전화하셨습니까?]밉다.
최태영의 말투가 자신에게만 그러는지 모르지만, 저 싹퉁머리 없이 말하는 거.
정밀 짜증 나도록 밉다.
회사 안에서 저렇게 짜증 나도록 밉게 말하는 임원이 있으면, 엄청 괴롭힌 뒤에 쫓아내면 된다.
그런데 저놈에게는 화풀이도 못 한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만 묻자.”
[네, 물어요.]물어요?
아, 진짜. 틀린 말은 아닌데, 속이 끓어오른다.
“다른 제조 분야는 왜 손대지 않는 거냐?”
[그쪽 분야 다 죽일 일이 있어요? 일이란 게 사정도 봐줘 가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사정을 봐줘?
하! 이런.
정말 패 주고 싶지만, 말 그대로 사정을 봐주지 않으면 저놈 말이 맞다.
최고 사양의 게이밍 PC의 256배 성능이라고 했는데, 가격은 말도 안 되었다.
레티어를 6월 1일부터 판매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게 시판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다른 PC 제조 회사들은?
개점휴업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될 거다.
그리고 천천히 피가 말라 갈 거다.
“한 가지만 더.”
[한 가지만 묻는다면서?]“사준전자와 반도체 관련 일을 하고 있나?”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거요?]역으로 물어오는 저 질문.
더 이상 안 들어도 뭔가를 같이하고 있다는 말과 동의어다.
이대로 차를 돌려서 최태영에게 돌아가?
가서 멱살이라고 잡을까?
아니면 박용재의 전화를 기다려?
이번에 우주 통신 부분에 끼워 주면서 사준전자에서 얻어 낸 것이 제법 크다.
얻은 것은 오늘 본 것과 비교하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더 많은 것을 내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박용재와 최태영이 앉은 테이블에 의자 하나 끼워 넣고 거기에 자신이 앉아야 한다.
엉덩이 반쪽만 걸친 쪽팔린 자세라도 꼭 그래야 한다.
오늘 본 그…… 원소 매핑 기술로 제조해 내는 것.
세상을 뒤집어 놓을 거다.
그것을 갖지 못한 곳은 모두 망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맞다.
“아니, 알았다. 금요일에 보자.”
[네, 그리고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고민 안 해.”
통화를 종료했다.
미쳐 버리겠다.
고민을 안 해?
그런데, 제조 기술만 가지고 있을까?
요즈음은 제조 기반 기술도 중요하지만, 지식 기반과 데이터 기반 기술도 시장이 커졌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인공 지능이다.
그놈이 인공 지능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야,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일단, 박용재를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자 하나 놓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 수도.
“사준전자 서울 캠퍼스로 가지.”
“네, 회장님.”
거기에 가도 박용재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가 보는 거다.
***
기다렸다.
여기서 중역 회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벌써 1시간.
빈 회의실에 앉아서 기다린 시간이다.
거실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진 넓은 회의실.
그곳의 안락하고 푹신한 소파.
그러나 편치 않다.
이런 마음이면 좁은 테이블과 쿠션이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를 놓은 작은 회의실이 오히려 편할지도.
그만큼 마음이 초조하다는 거다.
비서실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중요한 회의이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니 약속을 따로 잡고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지만, 기다리겠다고 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박용재가 들어섰다.
“정말 기다리신다는 말씀 듣고 놀랐습니다.”
박용재는 예의 그 순박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인사를 했다.
“예고 없이 찾아왔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제가 한 3분 정도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단둘이, 가능하죠?”
박용재의 뒤에 선 비서를 흘깃 보고는 물었다.
“그러죠.”
박용재가 비서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했고, 곧바로 문이 닫혔다.
두 사람만의 공간.
“나도 그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네?”
“박 회장님이 최태영의 요구에 서명한 그 서류. 나도 서명했습니다.”
“아, 네.”
답을 한 박용재가 웃는다.
이제 같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생산하는 과정을 직접 봤습니까?”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박용재.
“이곳으로 오기 전에 나도 젠룸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제조하는 것을 두 눈으로 봤습니다.”
“…….”
박용재는 시계에 눈을 한번 주었다.
“대통령, 총리, 안보실장, 비서실장, 그 외 각 부처 장관들도 봤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할 때에 비로소 박용재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조금 놀란 반응이다.
“우리 손잡지 않겠소?”
“우리, 거래한 것이 있었지요. 대가도 이미 드렸구요.”
“반도체 부분에 내 의자 하나 놓아 주시오.”
“……?”
박용재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평상시의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제조 과정을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자신은 직접 현장을 보지는 못했다.
직접 보기로 약속까지 해 놓고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이다.
반도체 분야는 지난번에 팹리스 회사 고현성 회장을 소개해 줬다.
함께 골프를 하면서까지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최태영과의 만남이 시작된 이유.
반도체 관련 부분이 아니라 우주 통신에 지분 참여를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얻어 내는 대신, 조성이 끝난 산업 단지의 공장 부지를 값싸게 팔았다.
그리고 오늘.
점심 약속을 한 이유가 바로 반도체와 위성 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딜이 될 수 없는 사안이기에 직접 움직이는 거다.
“위성 폰, 생각하고 있죠?”
오영배가 물었다.
“…….”
그걸 어찌?
아, 생각하지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최근에 위성 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다만, 엄청난 개발비와 설비를 투입하고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아니 만들어 내도 마케팅에 성공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이나 중견 기업은 도산하게 될 것이다.
국내에서 거기에 뛰어들 수 있는 회사는 몇 개 안 된다.
뛰어들기 위해서는 자본과 기술 인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탁월한 마케팅 능력도 있어야 한다.
해외의 회사들이 제법 있지만, 그쪽은 아직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터니테크가 추진 중인 우주 통신, 아니 한국에서 추진 중인 우주 통신 프로젝트는 실패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사준에서 못 만들어요.”
“못 만들어요?”
오명배의 그 말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오늘 최태영을 만나서 나눌 의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영배가 단정적으로 말한다.
못 만든다고.
오영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하나 꺼냈다.
폰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뭔지 아시오?”
“폰입니까?”
“PC입니다.”
PC?
요즘의 폰은 PC와 다름없다.
다만, 정보 생산용이 아니라, 정보 소비용에 치우치기에 차이는 있다.
그리고 정보의 생산은 인공 지능이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장담하건대, 30년쯤 후에나 나오면 정상인 PC가 지금 나왔습니다.”
“…….”
그렇게 말하며 버튼 한쪽을 툭 누르는데, 홀로그램 스크린이 나타났다.
처음 본다.
“6월부터 시판된다고 합니다.”
“…….”
6월이면 며칠 남지 않았다.
“이거요. 스크린 사이즈가 32인지, 상하좌우 크기가 플랙시블입니다.”
그러면서 화면 크기를 마음대로 키웠다 줄였다 한다.
“…….”
“반응을 보니 못 보신 것 같은데, 이거 나오기 시작하면, PC 제조사가 셔터 내리는데 며칠 안 걸릴 겁니다.”
우리도 만드는데.
비록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미안합니다. 시간이…….”
박용재는 저것이 정말 궁금하지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오영배의 눈앞에서 평정심을 계속해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숨을 제대로 쉬고 싶었다.
오영배의 말을 종합해 보면…….
생각이 거기에서 멈추었다.
최태영과 예정된 점심.
거기서 해야 할 주제에 대한 보충적인 정보를 때맞추어 오영배가 나타나 알려 주고 있다.
마음이 초조한 것 같다.
“우리 손잡지 않겠소?”
오영배가 다시 한번 물어온다.
그러나 지금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서도 안 된다.
“따로 둘이 한번 뵐까요?”
“그러죠. 내가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이 말도 안 되기는 합니다.”
“실은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냥 들이닥쳐서 손잡자고 말하는데 황당하지.
“네, 그만큼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네.”
“우리는 어쩌면 살아생전, 최대의 위기와 최고의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군요.”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맞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오영배가 몸을 돌려 회의실을 떠났다.
어깨가 많이 처져 있다.
최대의 위기와 최고의 기회.
그 말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함께 점심을 하면서 알아내야 할 사안이다.
2부